2021-08-23

해방정국과 남로당 이야기 < 기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코리아드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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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과 남로당 이야기

기자명 이종찬
입력 2021.05.21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1월 27일 경성역 플렛폼에는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신의주행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그는 신의주역으로 가지 않고 몇 정거장 전에 있는 비현역에서 내려 그를 기다리던 30대 초반의 한 여인과 만난다. 일제의 삼엄한 국경 검문을 피한 두 남녀는 경성을 떠난 지 무려 130일이 지나 1945년 4월 연안에 도착한다.

이들이 바로 민족 해방을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공산주의자 김태준과 그의 부인 박진홍이었다. 김태준은 명륜전문학교 교수 출신으로 해방정국 후 남한을 피로 물들인 제주 4.3사태 여순 반란 사건과 정판사 사건 그리고 전국 노조 철도 파업으로 이 땅을 혼란에 빠뜨린 주모자 박헌영이 지도했던 경성 공산당인 경성콤그룹에 참여해 활동하다 검거된다.

김태준은 1943년 출옥 후에도 공산주의자 협의회 일원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들이 연안을 행선지로 잡은 것은 좌익 항일 무장 세력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태항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의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과 연계하기 위해서였다.

경성콤그룹은 조선공산당의 핵심 그룹으로 핵심 이관술, 이순금, 김삼룡, 이현상 등 전향하지 않은 사회주의자들이 1939년 출옥한 박헌영을 조직의 지도자로 옹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경성콤그룹의 중앙 조직은 노조부, 학생부, 기관지 출판부, 가두부, 인민선전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저들이 인민선전부를 별도로 설치한 것은 코민테른의 인민선전기술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를 담당한 조선공산당의 핵심이 김태준과 이현상이었다.

코민테른은 국제 공산당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세계 부르주아의 타도와 완전한 국가 철폐의 과도기적 단계로 소비에트 공화국 창립을 위해 싸운다고 만든 것이었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말이다. 이들은 경성의 섬유, 금속, 출판, 전기 등 각 산업별 조직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연희·보성·경성공업고등학교 등에서 독서회를 조직해 의식화로 학생운동을 지도했다.

지금 이 땅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종북세력들의 의식화는 어제 오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소위 보수라는 사람들이 손 놓고 있을 때부터 저들은 의식화 교육을 하여 지난 2001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충북 괴산에서는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가 열린다. 이날 결의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년의 계획 10년의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 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한다.

그들은 이날의 결의를 ‘9월태제’ 혹은 ‘군자산의 약속’이라고 불렀다. 저들 종북세력들은 이러한 내밀한 준비 속에서 촛불혁명을 통해 이 나라를 저들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국내 공산주의 그룹인 경성콤그룹은 1940년 12월부터 실시된 세 차례의 일본총독부 탄압으로 와해되었다.

그러나 이 좌익의 뿌리는 이 땅에 남아 이승엽과 서중석의 지도하에서 절취부심하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공산당은 재건되지 못하다 해방 후 남로당의 주류로 활동하면서 해방정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시기 이승만은 정치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연설을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행한다. 그가 이런 연설을 한 것은 우익 세력과 공산당의 합작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었다. 이에 미군정은 진보적 인물로 민중의 지지를 얻은 인물로 김규식, 여운형을 지목하고 좌우합작에 돌입, 김규식을 좌우합작의 중심인물로 세웠고 김규식은 여운형과, 원세훈을 협력자로 세워나간다.

정국은 이승만의 남한 임시정부 수립론과 미군정의 좌우합작 노선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문제는 좌우합작의 중심에 있는 여운형은 남한에서 먼저 좌우합작을 하고 그다음 남북이 힘을 합쳐 통일정부를 세우면 좌익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1946년 7월 10일 출범한 좌우합작 위원회는 10월 7일 좌우합작 4원칙을 내어놓았는데 좌우세력 모두 이 안을 거부하면서 결국은 와해의 길로 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지 미군정사령관은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창설을 선포 위원수 90명으로 하되 절반은 전국에서 절반은 간선으로 미군정장관인 자신이 임명하는 관선을 통하여 세운다는 원칙을 세워 선거를 실시한다.

선거 결과 45명의 민선의원 중 우익성향의 인사가 40명이나 선출되어 우익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 이에 당황한 미군정은 서울시와 강원도 선거를 무효화하고 다시 실시하면서 하지는 관선의원을 좌우합작위원회가 추천한 중도파나 용공 인사들로 채워나갔다.

이에 격분한 이승만은 이 잘못된 미군정의 만행을 유엔에게 보고한다고 선언하고 맥아더가 마련해준 비행기 편으로 12월 7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때는 1946년이었다. 미군정이 좌우합작에 몰두하는 사이 친탁운동의 여파로 위축되었던 남한 내의 좌익들은 저들 통합작전에 돌입한다.


▲1946년 당시의 박헌영. (출처 : 위키백과)

이 통합작업은 1946년 7월 초 박헌영과 김일성이 소련을 다녀온 후 구체화 된다. 1947년 12월 10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1925년 경성부에서 조직된 사회주의운동 단체. 1928년 12월 해체, 1945년 8월 박헌영이 재조직. 1946년 11월 남조선로동당),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백남운의 남조선신민당이 남조선노동당으로 결성되니 이것이 남로당의 기원이었다.

이들 남로당은 1946년 5월 조선정판사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위조지폐 사건으로 해방정국의 경제를 무너뜨리려는 해방정국의 가장 큰 대형사건이었다. 이는 1946년 서울에서 일어난 위폐범죄 적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일으켜 남한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미군정에 의해 낙인이 찍힌 사건으로 해방정국에서 이승만과 우익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의 핵심 인물인 이관술이 은행 직원인 자신들의 조직원을 포섭 당시로는 천문학적 거액인 10만 원의 위조지폐를 만들다가 야간 순찰 중이던 미군정청 수도경찰에 적발된다.

이 사건으로 덕을 본 종교단체가 있었으니 한국 천주교회였다. 저들은 미군정으로부터 정판사를 불하받고 왜소한 교세였음에도 중앙일간지인 경향신문을 창간하게 된다. 지금의 경향신문이 바로 정판사 사건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저들 남로당은 박헌영이 당원들에게 배포한 신전술에 대한 지시서에 의해 대구 폭동 사건을 감행, 경찰서의 무기를 탈취하고 유치장을 폭파 시키면서 좌익 사범들을 석방시킨다. 저들 좌익 폭도들은 경찰과 우익인사나 그 가족들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방화를 일삼았다.

이 대구 폭동 사건으로 400명의 경찰관이 무참하게 살해된다. 이것이 1946년 10월 2일 미군정의 최초 계엄령 선포였다. 이렇게 남로당은 1947년에는 국립대학설립 반대 투쟁, 3.1절 투쟁, 3.22 총파업 등을 일으키며 사회불안을 조성해 나갔다.

저들은 계속 9월 총파업과 10월 폭동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해방 2년째의 남한 땅이었다. 물론 이들 배후에는 로마넨코를 통한 소련의 자금 지원이 계속되고 있었고 3개월 파업기간 중 남조선 투쟁기금으로 300만 원과 122만 루불을 조선공산당에 보낸 것으로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의 저자 김용삼은 적고 있다.

▲이종찬 목사 (역사신학 Ph.D)

이종찬 목사(역사신학 Ph.D.)

경기도 용인 수지 출생. 월간 「시사문단」 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빈여백 동인, 월간 「문학21」 수필로 등단했다.

▲시집 : 「부활의 계절」(2011 그림과책), 「빛을 노래한 사람」(2014 그림과책), 「보아라 저 붕새의 힘찬 날갯짓을」(4인 공저), 「지독한 사랑」(3인 공저), 「봄의 손짓」(제8, 11호 공저), 「은총의 샘물」(2016 그림과책), 「꽃중의 꽃」(2017 그림과 책).

▲저서 : 「노블레스 오블리제」, 「북동구 개혁교회 역사기행」, 「땅끝에서 길을 묻다」, 「제3의 로마방문기」, 「총회 100주년사」(6인 공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들」(2015 킹덤북스), 「20세기 탁월한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2015 킹덤북스), 「제2차 대각성주역 찰스피니」(2015 킹덤북스).

▲문학21문학상(수필. 2005) ▲美에피포드 예술협회 문학대상(수필. 2005) ▲수원고 개교 100주년 기념 시서시화전(2009) ▲효석문학상 본상(2010) ▲제8회 빈여백동인문학상(2013) ▲제11회 시사문단문학상 대상(2014) ▲제13회 풀잎문학상 대상(2016) ▲제8회 북한강 문학상 본상(2018) ▲제15회 독도예술제 시부문 대상(해양수산부 장관상. 2019).

수원고등학교 졸업, 한국성서대학교(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호서대학교(Th.M./Ph.D.), 호서대학교 객원교수, 칼빈대학교 외래교수, 총회부흥사회 증경회장, 한국기독교 부흥협의회 사무총장·연수원장, 기독신문 논설위원, 수원노회 증경노회장, 총회100주년사 집필위원, 중국동성진중학교 명예교장, 경기도 청소년 종합예술제 산문 부문 심사위원, 전 기독신문 주필.

현, 수원 권선제일교회 담임목사(38년째 시무).

이종찬 kdntvkr@kdn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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