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2

한국의 좌파가 꼭 읽고 고민해봐야 할 책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

(1) Facebook

한국의 좌파가 꼭 읽고 고민해봐야 할 책 하나를 꼽으라면 음.. 나는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봄)을 꼽겠다. 이 책은 내가 좀 급진적인 좌파였다면 아마 반동적인 저작이라고 게거품 물었을 것이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데 광주항쟁을 절대공동체로 상찬하는 듯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홉스적 자연상태와 광주항쟁의 절대공동체는 근대국가의 질서, 사회계약이 붕괴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두가지 유형의 상황인데 전자보다 후자가 나은 건 분명하지만 후자도 결코 장기지속될 수가 없다. 특히 최정운은 광주항쟁 당시에 빈곤층 등이 무장을 하면서 절대공동체가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분열 속에서 와해되었다고 본다. 이건 내가 보기에는 직접적으로 마르크스의 파리코뮌에 대한 비판이다.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속에서 움직이던 파리코뮌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이 아니라 절대공동체를 해체시킨 민중에 의한 무도한 지배라는 비판이다. 이걸 비판하려면 파리코뮌이 어떤 식으로 '제도화' 되었는지, 그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이념이 근대국가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논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프랑스내전>은 실제의 파리코뮌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본 파리코뮌이다. 마르크스의 파리코뮌'론' 속에서 그의 정치이론이 어떻게 완성됐는지를 끄집어 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정운은 한번 대결해볼만한 학자이다.
Jong-joo Jeong, YoonSeok Heo and 48 others
2 comments
7 shares
Like
Comment
Share

2 comments

  • Suktae Oh 
    Follow
    제 독후감 슬쩍 올려 봅니다. 이 책이 나온 게 1999년으로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후속 연구가 아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존 마르크스주의와의 '정면 대결'을 선택해서 그런지... 제게는 자꾸 사회과학이 아닌 '신학'으로 다가오더군요.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BLOG.NAVER.COM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2
    • Like
    • Reply
    • 3 d
    • 손민석
      네, 그리 보실 여지가 충분하다 봅니다ㅎㅎ 이분이 아무래도 노재봉 선생의 영향을 받으신 분이다보니..ㅎㅎ

  •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2016년 읽은 책 / 책
    2017. 1. 1. 21:30
    복사https://blog.naver.com/neolone/220900118822

    '오월 광주'의 진정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아직 이른 것일까.

    일단, 오월 광주의 연대기 내지 '팩트'들을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자세히 알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모르는 것 투성이인 역사적 사건이 '광주민주화운동'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오월 광주 아닌가. 대학교 1학년 때 혹시라도 잡혀갈까봐 가슴졸이며 읽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내가 지금까지 광주에 대해 읽은 책의 전부였다. 이 책에 나온 대로 '현대 한국 사회,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는 5.18과 그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가슴 한 구석에 죄책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뒤늦게 알게 되자마자 당장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광주의 '사회과학적, 이론적 재구성'이다. 하지만, 1980년 오월 광주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제야 종합적으로 들여다 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내게 있어서 이 책의 가장 큰 의미였다.

    이 책의 1부는 5.18을 둘러싼 기존의 정치사회적 담론을 분석한다. 저자는 5.18이 맑시즘적 사회과학의 시각으로 본 '계급투쟁적 혁명'도, 부르조아 민주주의 시각으로 본 '민주화운동'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5.18의 투쟁주의가 배태한 우리의 사회과학은 자신의 출생의 역사를 다시 쓰며 자신의 모태를 매장해버렸다'는 일갈은 우리 학계가 오월 광주를 너무 안이하게 맑시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의 표명이라고 생각된다.

    5.18에 대한 흔한 비판인 '폭도론'에 대해서 저자는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육체적 힘에 의존해 살고, 싸움에 익숙하고 자신 있는 사람들이 투쟁에 앞장선 것은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논리일 것이다'라고 과감하게 대응한다. '권력에 순응하는 회색 정신노동자'인 나는 이 논리에 100% 수긍할 수만은 없음을 덧붙인다. 근대 국가는 폭력을 독점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상 상황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깡패'들의 '범죄집단'을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을까.

    '북한의 배후조종설'에 대해 저자는 '누구에게 공작금을 얼마나 받으면 공수부대와 맞서 싸울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역시 정면 돌파한다. 다만, '많은 광주 시민들은 북한 방송을 보고 소식을 알 수 있었다'고 하면서 '상당수의 북한 요원이 활동하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고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지만원이 주장하는 '광수'는 거짓이지만, 북한 공작원이 숨어 있었을 개연성은 인정하는 것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부르조아) 민주화론'에 대해 저자는 '마지막까지 항전한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해방광주 지도부와 시민군이 사수하려 했던 가치는 협상과 타협을 통해 얻는 그런 식의 민주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반박을 하고 있다. 슬슬 이 책의 핵심인 광주의 '절대화' 내지 '신비화'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근본이 '인간의 존엄성' 내지 '천부인권설'이라면야 말이 되겠지만.

    '민중론' 내지 '혁명론'에 대해서는 '분배 문제에 대한 요구나 구호는 해방광주에서 극히 드물었다' '민중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맑시스트적 계급의식 등 낡고 무딘 도구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혁명은 광주 시민들에 의해 강하게 거부되었다' 등의 반론을 제기한다.

    부르조아 민주화 운동도, 사회주의 계급 혁명도 아니라면 도대체 5.18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저자는 슬슬 이 책의 결정적인 특징인 오월 광주의 '신학적' 분석 틀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국가주의 담론에서 빠져나와 공동체 담론으로 제자리를 잡으며 광주 시민들은 그들이 투쟁해온 동기와 가치를 피의 값으로 느꼈다' '광주 시민들의 투쟁 동기는 결코 민주주의라는 근대의 정치 이념/제도에 대한 요구로 귀착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는 인권이라는 근대 서구의 법 개념으로 대체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협소한 정치 담론과 이념의 장에서 이 원초적 가치를 일컬을 말을 찾지 못했다.'
    갑자기 질문 하나를 던져 본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인가, 아니면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가치인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모두 기독교적 일신론의 토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피엔스'의 주장이 새삼 떠오른다. 유발 하라리의 이 주장대로라면 민주주의의 '상대화'는 불가능할 것이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사회과학과 절대자인 신을 탐구하는 기독교 신학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 역시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저자는 서구의 민주주의를 '상대적으로 더 나은 가치'로 치부하면서, 오월 광주를 '절대 공동체'로 승격시킨다. 그는 '절대 공동체'도 사회과학적인 분석틀 안에서의 용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자꾸만 신학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냥 '민주주의=기독교, 사회과학=신학'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그만일 텐데, 그 결론이 왜 내게는 불편한 것인가.

    제2부에서 저자는 드디어 이 책의 핵심 단어인 '절대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글이나 말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상황' '5월 항쟁이 그렇게 치열하게 전개된 것은 조직이 전혀 없이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 '앞뒤를 계산하지 않고 분노와 감정, 즉각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던 시민들에 의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 등의 표현은 오월 광주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광주 시민의 저항은 '야만이자 악마'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륜을 파괴'한 공수부대의 폭력적 진압에 대한 '이성적 분노'이며 '여기에 즉각 반응하지 못하고 도망친 자신에 대한 수치가 촉발한 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광주 항쟁을 '기층민'이 주도한 것도 결국 이러한 '수치와 분노'가 (중산층에 비해) 잠재의식 속에 더 깊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여기서의 주장은 앞의 '싸움이 익숙한 사람들이 나섰다'는 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다만, 공수부대를 '악마'로 보는 시각이 과연 사회과학적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신학이라면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겠지만 말이다.

    '절대 공동체'는 '성스러운 초자연적 체험'이기 때문에 현실의 맥락에서 '세속화'되는 순간 그 절대성을 잃는 것이 자연스럽다. '절대공동체에 국가 권위가 부여되자 공수부대는 악마에서 협상의 상대로 변환되었다' '절대공동체가 국가로 변환되어 그 무력을 갖추면서 완성되었을 때 (계급이 드러나면서) 공동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절대공동체의 성스러운 혁명'을 맑시즘의 '계급혁명'으로 '퇴화'시키는 것에 대해 저자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계속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절대공동체의 핵심은 사랑, 즉 고결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며, 광주 시민들이 추구했던 인간 존엄성은 인간이 자기 외에 더 큰 가치를 위해 생명을 거는 행위를 통해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양식 근대 국가의 인권과는 다르다' '유물론은 결코 5.18이 이루어낸 절대공동체의 정신에 접근할 수 없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의 서양에서 온 단어로 5.18을 논하는 순간 그 개념들은 절대공동체의 정신을 배신하게 된다' '5.18은 인간의 이성은 고독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임을 의식하는 인간들이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 준다' '체험의 원초적 순수함이야말로 5.18의 가장 값진 부분이며, 우리는 혁명가 없는 순수한 혁명을 잠시나마 맛보았고 그 기억은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낼 실험장이자 원료가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어깃장을 놓아 본다. 내가 최근들어 오월 광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1979년에서 1987년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5.18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월 광주를 계속 상기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가장 핵심적인 이벤트라는 얘기다. 그런데, 오월 광주를 '절대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이렇게 신비화, 종교화하는 것이 과연 지금 여기의 민주주의를 개선하는 데 무슨 도움을 줄 것인가? 적어도 내가 '오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기대한 것은 이러한 '신학적' 논의는 아니었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18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오월 광주의 사회과학적 해석과 연구에 대해 뚜렷한 진전이 없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책에 필적할 만한 단행본 출간은 없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과도한 종교적 접근이 오월 광주에 대한 논의를 '안드로메다'로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을 했으니 누가 감히 이 논의에 뛰어들겠는가. 광주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라리 광주의 '세속화'가 아닐까. 이를테면 금기를 깬다는 의미에서 오월 광주에 과연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도 있겠다. '시민군'의 증언도 너무 신성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3부에서 저자는 절대 공동체의 '균열과 분절'을 얘기하면서 슬슬 '지상의 세계'로 돌아온다. 절대 공동체가 (중산층을 대표하는) 기존의 정치-사회적 엘리트, 즉 시민수습위원회와 (기층민 중심의) 무장 시민군으로 나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두 집단을 연결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대학생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람들이 총을 들고 설치는 상황을 시민들이 불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나서야 했다'는 명노근 교수의 (계급적 편견이 드러난) 증언이 당시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 혹은 '중산층과 기층민'을 잇는 연결고리로서의 대학생의 역할이라는 이 주제야말로 5.18이 그 이후 한국 역사에 미친 실제적인 영향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연결고리 역할이 극대화된 것이 바로 학생들의 '가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1987년의 6월 항쟁, 그리고 7,8월 노동자 대투쟁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제2부에서 '절대 공동체'로 신화화되어 표현된 집단이 사실은 '기층민 중심의 복면 무장 시민군'과 동일한 집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기존의 엘리트 및 중산층이 과연 오월 항쟁 초기의 '절대 공동체'에 소극적으로나마 참가하고 있었느냐 하는 질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자의 주장대로 초기에 항쟁을 주도했던 절대 공동체가 나중에 분화된 것이 아니라 초기, 후기 모두 기층민들이 항쟁을 주도한 것 같다. 이들 '기층민'의 신화화가 아닌 세속화, 그리고 더 철저한 분석이 오월 광주의 사회과학적 연구를 위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중산층과 기층민, 수습위원회와 시민군의 갈등은 결국 무기 회수를 둘러싼 '수습파'와 '항쟁파'의 대립으로 표면화된다. 일단 수습파가 우세하여 시민군의 무기 반납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항쟁파의 마지막 선택이 바로 윤상원이 주도하는 대학생 운동권 집단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사실상의 쿠데타 방식'이라고 표현한다. 이 윤상원이 이끄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계엄군에게 끝까지 항전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최후까지 항전한 시민군이 죽음으로써 지키려 했던 '광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주장을 한다. '아마 다수결의 결과에 따라 무기를 놓고 도청을 계엄군에게 비워줬더라면 6월 항쟁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 시간도 5공 치하였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궐기대회의 대중 선동과 윤상원의 쿠데타, 그리고 권총을 빼든 박남선의 위협 등 비민주적인 행위를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솔직히, 당시 시민군들이 무슨 커다란 대의명분이나 어떤 가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도청을 '사수'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냥,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전우'들과의 연대감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 단순명확한 연대감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병사들을 '죽음을 무릅쓰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라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를 사후적으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 저자는 이들이 '절대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했다고 해석한다. 나는 이들 (즉 막판에 시민군으로 합류한 대학생 운동권)이 '중산층과 기층민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에서 한 단계 나아가, '중산층의 목표'인 정치의 민주화와 '기층민의 목표'인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한 '87년 항쟁'의 기틀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인간의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제4부에서 저자는 광주항쟁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다시 분석하고 있다. 제3부까지의 논의에서 그리 많이 진전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공수부대의 폭력은 세계 근대 국가에 예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진짜 그런지 역사를 뒤져 봐야 할 듯)' '5.18의 절대 공동체가 왜곡된 것이 운동권의 조직 절대주의다 (이것도 설득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등의 주장이 눈에 뜨인다.

    두서없는 내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본다.

    - 어쨌든 80년 오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 오월 광주를 '절대 공동체'라는 틀로 해석하면서 '신화화' 내지 '종교화' 한 것이 오히려 '오월의 사회과학(적 연구)'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광주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바라는)오늘 여기의 상황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이끌어내는 데도 부적절하고.


    - 당시 대학생 운동권들이 중산층과 기층민을 연결하고, 나아가 '쿠데타'를 통해 시민군 결사 항전을 주도함으로써 중산층과 기층민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87년 항쟁'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 반면, '절대 공동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호명된, 광주 항쟁 초기를 주도한 기층민들의 모습에 대한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얀 한복 차림의 농민 50여 명이 죽창을 들고 타임머신에서 나오는 동학농민전쟁 용사들처럼 금남로에 출현했다'는 증언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들의 활동을 '맑시즘'이 아닌 다른 틀로 연구하는 것이 진정한 '오월의 사회과학'이 될 수도 있겠다. 


    [출처]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작성자 새나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