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영화)/줄거리 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23-12-12
서울의 봄(영화)영화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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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 서울의 봄의 줄거리.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2월 14일까지이다.
2.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
1979년 10월 26일 밤, 국무위원 및 정부 고위관계자, 수도권 및 전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된다.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인 이태신 소장 역시 어리둥절해 하며 육본에 도착, 육군 헌병감[1] 김준엽 준장과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일인지 묻지만 김준엽은 물론 육본에 있는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한다. 잠시 후, B-2 벙커에서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고 일시 묵념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27일 새벽 4시, 비상국무회의 의결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법에 따라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정상호 총장은 계엄법에 의거하여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고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전두광은 합수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대통령 시해범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을 향해 세상은 아직 그대로라며 조롱조로 빈정댄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눈물을 훔치고 있는 전두광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의 손을 움켜쥐는 이태신을 차례로 보여주고 동시에 거리에서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2]
대통령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수장의 공백으로 동시에 무력화되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 소장이 대한민국 내의 모든 정보를 독식하게 되고, 심지어는 각 정부부처 차관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모아 보고를 하게 하는가 하면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원을 유용하는 등[3][4] 온갖 월권행위를 자행한다. 전두광의 이런 막나가는 행보에 정상호 총장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정치에 관심있어하는 군인들에게 군인은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정치와는 멀어지라는, 사실상 하나회를 겨냥한 경고성 발언을 한다.[5]
하지만 전두광은 아랑곳 않고 회의가 끝난 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에게 수도 서울을 지키는 육군 최고 요직 중 하나인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직에 그의 친구인 제9보병사단장 노태건 소장을 추천한다. 점점 도를 넘는 전두광 소장의 태도에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인사권은 참모총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일갈하며 하나회라는 군 내 사조직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마음먹게 된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국무총리 공관에서 오국상 국방부장관에게 전두광, 노태건 등의 하나회 멤버들을 각각 동해경비사령부와 제56보병사단으로 좌천시킬 것을 건의하지만[6] 여기저기 퍼져있는 하나회 군인들의 귀를 통해 이 소식들이 전두광에게로 흘러들어간다.
3. 반란 모의와 준비
연희동 자택에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좌천 후 군복을 벗게될것임을 예상한 전두광은 친구인 노태건에게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을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이유로 끌어내릴것을 제안한다. 계엄사령관을 끌어내리자는 말도 안되는 전두광의 제안은 점점 구체적으로 커져가게 된다.
한편,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이태신 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한다. 이태신 소장은 수도경비사령부 교리발전부장이던 중령 시절, 보안사령부의 국내 정보수집임무를 없애고 오직 군사안보 지원 임무만 하게 해야한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실은 논문을 작성할 정도로 보안사령부의 막대한 권한을 경계하던 인물이었다. 이태신은 이런 시국에 수도경비사령관 자리가 주는 의미를 알기 때문에 거절하지만 정상호 총장이 거듭 요청하다 급기야 전두광을 제어해야 하는데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간청에[7] 결국 수도경비사령관에 취임하게 된다. 정치군인이 아니며, 우직한 갑종장교 출신인 이태신 소장은 취임하자마자 작전참모인 강동찬 대령에게서 어느 직할부대가 하나회의 통제를 받는지부터 파악한다. 수경사 직할부대 중 제30경비단, 제33경비단, 헌병단은 사실상 하나회 소속이었고, 야전포병단과 방공포병단만이 이태신 소장이 지휘할 수 있는 부대였다.
전두광은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을 세우고 제일 먼저 친구인 노태건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노태건의 지지를 얻은 전두광은 이후 연희동 자택에 하나회 회원들을 불러모은다.[8] 전두광의 자택에 모인 이들 역시 계엄사령관이 자신들의 군복을 벗길것이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던 상황에서 전두광의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에 아연실색하더니 결국 뜻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새 내각이 들어서기 전인 12월 12일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정한다.
계엄사령관 정상호 육군참모총장 재수사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수도 서울 방어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한곳에 모아야만 했다. 전두광은 이 셋을 연희동 요정에 모이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비서실장인 문일평 대령을 수경사 야전포병단 화력시범장으로 보내 이태신을 초대한다. 문일평 대령은 '전 장군님이 동해경비사령부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를 대접하시고 싶어한다.'면서 재차 연회에 올 것을 부탁하고 이태신은 마지못해 수락한다.
4. 반란의 시작
12월 12일. 작전명 생일 잔치. 전두광을 비롯한 하나회 멤버들은 경복궁 내에 주둔중인 제30경비단에 하나둘씩 집결한다. 이들은 최한규 대통령이 임시로 머무르는 국무총리 공관과 한남동 공관촌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같은 시간에 도착하여 재가를 받고 동시에 정상호 총장을 납치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때, 국무총리 공관으로 재가를 받으러 가는 전두광에게 정상호 총장의 호출이 내려온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참모총장 집무실에 간 전두광이었지만 예상 외로 정상호 총장은 전두광이 동해경비사령관으로 가는 걸 달래주고, 김동규가 최후 진술에서 용공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진술을 하게 만들어보라고 부른 것이었다. 한시름 놓은 전두광은 이 타이밍을 이용해서 저녁참에 보고할 게 있으니 보안사 인원을 보내겠다고 하여 행동할 여지까지 확보하게 된다.
당일 저녁, 이태신이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번지르르한 고급요정이었다.[9] 거기에 수경사 헌병단장 원경 대령이 마중하는 걸 보고 보안사 인원도 아닌 놈이 여기서 뭐하냐며 질책하고 전두광이 오지 않았다는 말에 그냥 떠나려하지만 마침 도착한 공수혁 소장이 원경 대령이 준장 진급하는 거 축하해줄 겸 기다리자는 말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10]
전두광은 총리 공관으로 가서[11] 최한규 대통령을 독대하고 정상호 구속에 대한 재가를 받으려 하지만 최한규는 아무리 급한 사안이라도 국무회의를 거쳐 임명된 계엄사령관을 함부로 수사할 수 없다며 내일 날이 밝거든 국방장관과 함께 정식으로 절차를 거치자며 미룬다. 전두광의 속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윤우명과 하창수를 비롯한 보안사 인원들이 30경비단 병력들까지 데리고 총장 공관으로 향한다. 정상호는 단순히 전두광이 낮에 말했던 건으로만 알고 편하게 대하지만 보안사 인원들은 박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해 더 조사할 것이 나왔으니 녹음 가능한 곳으로 모셔가겠다고 한다. 정상호 본인도 방첩부대장을 해본 경험이 있어 그 말 뜻을 알아듣고 격노하지만 보안사 인원들이 총을 빼들고 그걸 막으려던 권형진 준위가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밖에서 상황도 모르고 M16을 난사한 보안사 요원에게 윤우명과 하창수까지 죽을 뻔하고 겨우 정상호를 끌고 나오는데 마침 공관 경비를 담당하던 해병대 병력들이 도착하고 정상호가 해병! 해병! 이라 외치자 30경비단과 해병대 간에 교전이 시작되고 그 난리통에 보안사 일당은 정상호를 납치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총장 공관 근처 국방부장관 공관에 살던 오국상 국방부장관은 갑작스런 총격전에 놀라 파자마 위에 코트 하나 걸친채 가족들 데리고 빠져나와 급하게 택시를 타고 도망을 가버린다.
5. 진압군의 저항[
연희동에선 주최자인 전두광 사령관이 올 낌새가 없고 원경이 자꾸 사라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이태신이 한쪽 구석에서 몰래 통화하는 원경을 찾아내 다그치지만 원경은 얼버무리다가 그대로 도망가 버리는데 갑자기 수경사 작전참모 강동찬 대령이 와서 정 총장이 납치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서둘러 자기 부대로 돌아간다. 이태신은 수경사 본부에 부상당한 권형진 준위[12]가 보안사가 벌인 일이라는 소식을 듣고 육군본부로 간 김준엽 헌병감은 마침 대통령 재가를 못받고 일단 물러나는 전두광이 공관을 나서기 직전 붙잡아두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바로 체포하려는 김준엽을 참모차장 민성배 중장이 너무 자극하지 말자는 1차 트롤링을 저지르고(...) 정문 앞에서 멈추고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두광은 기지를 발휘해 하차해 있던 이학주에게 슬쩍 지시하고 이학주도 같이 하차한 운전병에게 슬쩍 지시를 내리고 대뜸 운전석에 올라타 문을 잠가버린다. 갑자기 벌어진 소동에 초병들의 주위가 쏠린 사이 운전병은 정문에 걸린 빗장을 뽑아내고 전두광이 탄 차는 정문이 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운전병채로 쳐서 밀어버리고 빠져 나간다.[13] 초병들이 도주하는 차의 뒷 유리창을 사격했지만 전두광과 임학주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은 채 빠져나간다.
이후 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반란 진영에 들어가자 반란군 측의 장성들은 망연자실하고 한영구와 배송학은 전두광을 찾으며 난리를 치기 시작하고 때마침 전두광이 들어와 대통령 재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에 한영구가 전두광에게 달려가 당신이 책임진다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전두광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거냐며 오히려 장성들을 일갈한다. 말을 마친 직후 숨을 고른 전두광은 노태건과 도희철에게 각각 전방 2개 연대와 2공수여단의 출동을 지시하고 두사람은 반발한다.
결국 열받은 전두광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뒤이어 노태건이 따라나가는데... 전두광 또한 사실 겁에 질려 있었고 따라 들어온 노태건에게 한번만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이에 노태건은 난 겁 안먹었다며 다시 들어가서 2개 연대 출동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이에 선배 장성들도 마음을 다잡고 전두광을 따라 총리공관으로 향한다.[14] 결국 2공수와 9사단 예하 병력의 서울 출동이 결정되고 노태건과 도희철을 제외한 반란군 측 장성들은 총리 공관으로 가 다시 한번 대통령 재가를 요청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의 장관을 찾아오라는 으름장에 다시 한번 재가는 실패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출동한 2공수 역시 이태신이 한강다리를 죄다 통제해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행주대교로 우회하게 된다.[15]
미8군 영내로 피신한 오국상은 주한 미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과 만나는데 대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Are you ok? 하자 오국상은 Yes.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며 상황 파악이고 한국정부와 군과 아무런 연락도 안되고 있는 걸 보여준다. 그꼴을 본 미군 사령관은 한심해하고 대사도 막막한 표정으로 한국 내부 문제에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 육본으로 가야한다고 설득하고 미군이 운전하는 차를 태워 보낸다.[16]
한편 이태신 역시 행주대교를 틀어막기 위해 관할 부대장인 모상돈 30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행주대교 봉쇄를 요청하고 모상돈 역시 이에 응하지만 반란군 측의 문일평이 통화를 도청한 뒤 모상돈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통화내용은 보안사가 감청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내심 겁에 질린 모상돈은 통화가 끝난 후 전방 2개 연대의 행주대교 통과를 묵인하고, 이태신에게 이를 통보한다. 하지만 행주대교 앞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돌아가라고 엄포를 놓는 이태신의 기백에 놀란 2공수여단은 다시 회군한다.[17]
이후 경복궁으로 돌아온 전두광은 2여단장 도희철을 설득 반 협박 반으로 구워삶아서 직접 2공수로 가서 병력을 데려오게 하지만 이태신 역시 8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집요한 설득 끝에 지원을 약속받게 되면서 반란 진영은 또다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자 전두광은 민성배 육군참모차장에게 공수8여단과 공수2여단을 동시에 회군시키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는데, 민성배 차장은 어리석게도 이를 받아들이고 진압군에게 회군을 종용한다. 8여단장은 근처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으면 안 되냐고 반발하고 김준엽 헌병감 또한 절대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막지만 민성배 차장은 듣지 않고 부대복귀하라며 억지를 부린다.
결국 8여단은 부대복귀하고, 당연히 근처에서 잠복 중이었던 2공수는 이 때를 틈타 행주대교 아래로 도강해 초소를 제압하고 행주대교에 무혈입성한다. 이 소식이 육본에 전해지자 육본의 똥별들은 다같이 절망하고, 어이없게도 육본을 버리고 이태신이 있는 수경사로 가기로 정한다. 이에 참다 못해 터진 김준엽은 총까지 들고 아무도 나갈 수 없다며 위협에 가까운 애원을 하지만, 장관이란 작자도 할 말이 없었는지 자신의 직위만을 내세우며 아니, 국방부장관이 육본 지키는 자리야?라고 외치는 등 발암의 끝을 보여준다. 결국 그의 결의가 무색하게 민성배 차장과 국방부장관을 필두로 모조리 수경사로 도망을 가고[18], 김준엽은 혼자 육본에 남는다.
진압군이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로 자리를 옮긴다는 첩보를 듣자 반란군은 화색을 띄며 멍청한 진압군의 똥별들을 비웃는다.[19] 육군 최선임자[20]와 국방 총책임자라는 인간들이 그저 자기들이 책임지기 싫고 목숨 아깝다고 자신들의 본거지를 떠나 수경사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는 나중에 이태신 소장이 수경사 병력을 집결시킬때 강 대령의 대사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오국상 장관의 빤스런을 보며 전세가 기울었음을 느낀 공수혁 특전사령관은 부대원들에게 몸을 피해있을 것을 명령했지만, 사령관 비서실장인 오진호 소령만은 사령관님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면서 공수혁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사무실에 있던 온갖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쳐 문을 막아놓지만 김창세가 이끄는 4여단이 기어코 문 앞까지 와서 총을 꺼내들자 똑같이 총을 꺼내고, 결국 방어막을 뚫고 들어온 4여단과 총격전을 벌이다 무차별 벌집 사격으로 인해 전사한다. 목숨은 건졌지만 피투성이가 된 공수혁은 김창세에게 내가 너를 15년 동안 자식처럼 대했는데, 전두광 똘마니 짓이나 하냐고 절규하다가 김창세 일당에게 끌려간다.
수경사로 모여든 육본 지휘부를 바라보며 이태신은 자기 혼자라도 출동하겠다며 강동찬 대령의 만류[21]도 뿌리치고 전차 4대와 장갑차 4대, 행정병, 취사병 같은 비전투병력까지 모은 총 104명의 병력, 그리고 마지막에 소총 들고 합류한 강동찬과 함께 이들을 이끌고 출동한다.[22]
한편 도희철과 2공수는 빈집이나 다름없는 육본과 국방부를 장갑차를 몰고 급습, 접수하여 김준엽을 체포하는 데에 성공하고[23] 홀로 사라진 장관은 알고보니 국방부 청사 지하 환풍구 안에 짱박혀 숨어있다가 도희철에게 발각된다.
6. 최후의 저항, 그리고 반란의 성공
30경비단 앞까지 간 이태신의 진압군은 전차를 앞세워 겹겹이 쳐진 바리게이트를 밀어붙이고 만사여유로워진 전두광은 주위에 있는 시민들 시선을 의식해 진압군이 먼저 쏘지 않는 한 쏘지마라는 지시를 내리고 자신도 현장으로 나간다. 이태신의 병력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우세한 전두광은 이태신을 조롱하지만 이에 이태신은 최후의 수단으로 경복궁 30경비단을 조준한 야포단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고 5분 안에 투항하지 않으면 쏘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이에 전두광은 물론 지휘부 안의 반란군 장성들도 노태건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탈하려하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전두광도 어떻게든 막으려 들지만 야포단은 하나회도 아니고 인맥으로 연락 닿는 곳도 아니라 그야말로 외통수에 빠진다. 시가지라 부수적인 피해도 있을 거라는 설득에도 이태신은 끝까지 밀어붙이고 반란군에게 절망적으로 제한시간이 끝나가는 찰나...
야포 사격까지 단 15초를 남긴 상황에서 방금전 2공수에게 발각되었던 국방장관이 30경비단으로 끌려와 반란군 측 확성기로 야포단에 사격 중지를 명령한다. 거기에 국방장관은 이태신에게 전두광과 대화로 풀어보자는 소리를 지껄이고, 이태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포단에게 사격을 재차 명령하자 국방장관이 이태신을 직위해제시켜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방으로 반란군 2공수 병력까지 몰려들고 한밤중의 소란때문에 시민들까지 길거리에 나오면서[24] 야포단이 이태신에게 명령을 이행할 수 없다며 죄송하다는 무전을 보낸다.
이에 이태신은 쓸쓸히 부하들에게 자신을 따라준 데에 감사를 표하고 원대복귀 명령을 내린다. 이후 이태신은 아무도 따라오지 마라며 혈혈단신으로 권총 한 자루 차고 반란 진영에서 확성기를 들고 자신을 조롱하는 전두광에게 향한다. 이제까지 외롭게 반란군에게 맞선 것을 나타내듯 홀로 바리케이트와 철조망을 헤치며 전두광에게 다가간다. 그러다 중간에 한번 넘어져 권총마저 떨어뜨리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이런 이태신을 반란군이 저격하려 하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에 노태건이 말려서 그것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태신은 전두광에게 다가와 넌 인간으로서도 군인으로서도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고 체포되며 한밤중의 전쟁은 결국 반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반란 성공 이후 장민기가 축하드린다고 웃으며 악수를 청하지만 웬일인지 전두광은 웃지 말라며 정색을 한다. 뒤이어 마중을 나온 노태건의 지프를 타고 이동하던 중 혼자 걷고 싶으니 당신이 승리 소식을 전해달라고 말한 뒤 차에서 내려 경복궁 옆을 쓸쓸하게 걷는다. 한편 30단에 홀로 도착한 노태건은 우리가 이겼다며 샴페인을 터뜨리고 반란군 지휘부는 일제히 환호성을 즐기며 술에 취한다. 오국상 국방장관 역시 반란군 진영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노태건이 올리는 술을 다들 나라 생각해서 한거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받는다. 뒤이어 혼자 걸어갔던 전두광이 들어오자 노태건이 당신이 해냈다며 전두광을 치켜세우고 전두광은 씁쓸하게 웃으며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뒤이어 나온 노태건이 전두광에게 '우리 아직 친구 맞제?' 라며 묻자 전두광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웃어보이고는 화장실로 들어가고 뒤이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며 폭소를 터뜨리면서 미친듯이 좋아한다.[25] 이러한 전두광의 모습을 뒤로 하고 이태신이 체포되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구금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때 옆방에 정상호 총장이 구금되어 있는 걸 알고 눈물을 흘린다.
반란군 지휘부는 국방장관을 앞세워 결국 재가를 받아내는 데에 성공하지만 최 대통령은 재가안을 가져가려는 전두광의 손에서 기안서를 붙잡고 재가일과 시간을 명시하며 사후재가라며 조용히 읊조린다.[26] 그 후 반란 성공 직후인 다음 날 13일 보안사에서 거하게 파티를 여는데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앞으로 죽었다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자는 전두광의 연설을 시작으로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전두광, 술에 취해 미친듯이 웃는 노태건, 흥에 겨운 듯 웃으며 춤을 추는 한영구, 배송학, 현치성, 술주정을 부리며 소리지르는 도희철과 김창세 그리고 가발을 쓰고 탬버린을 흔들며 분위기를 띄우는 장민기, 원경, 문일평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고[27] 동시에 얻어맞으며 물고문을 당한 듯한 이태신, 조사실로 끌려가는 김준엽, 총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공수혁, 고문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정상호의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다시 다음날인 1979년 12월 14일, 전두광의 안내를 받으며 반란군 지휘부는 하나 둘씩 모여 자리를 잡고 단체 사진을 찍는다. 동시에 반란군 장성들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그들의 이후 행적과 이력들이 하나 둘씩 명시되고[28] 플래시가 한번 더 터짐과 동시에 사진이 흑백으로 변한 후 화면 전체가 암전이 되며,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도중에 실제 모티브가 된 하나회 인사들의 실제 사진으로 바뀌어 비친다. 동시에 신군부가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을 무참히 짓밟았음을 자막으로 띄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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