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문화 입력 2023.12.12 17:29 수정 2023.12.12 17:55
[서울의 봄③] 악마가 아니어서 더 惡한 전두광
‘절대악’의 화신이 되는 순간, 그의 죄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동조한
인물들의 행각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감독이 그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묘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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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은 단 하나의 단어 '책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러 세 번이나 영화관에 갔습니다. 누군가, 세 번을 보면서 가슴에 남는 하나의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게는 그것이 ‘책임’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유족이 청문회 때 외치던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단 한 놈만이라도, 한 놈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단 한 놈만 책임이 있다고 말해라, 어떻게 단 한 놈도 책임진다는 놈이 없어!”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그 절규가 아프도록 귀에 쟁쟁합니다. 이 말을 새삼 떠올린 것은 <서울의 봄> 이태신 장군(정우성 분)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투항을 권하는 부하 강 대령 앞에서 한 말 때문입니다. 먼저 강 대령이 이렇게 외칩니다.
“사령관님, 다 돌아서고 이제 혼자 남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싸워봤자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잠시 침묵)……그게 군대냐?”
나에게는 이 말이 그렇게 크게 와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는,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단 한 명이 없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것이 비록 실패로 끝났다 할지라도 지켜야 할 것을 마지막까지 지킨 어떤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후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누가 가장 나쁜 놈일까요
<서울의 봄>에서 가장 화가 나는 장면은 어느 장면인가요?
당연히 전두환한테 화가 나야 마땅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왜 그럴까요? 당연히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클테지만, 그들은 그냥 ‘나쁜 놈’이었다고 치고, 대체 왜 그들을 막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나 회한 때문일 것입니다.
과도한 욕망의 존재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합니다. 그런 존재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든 시스템이든 어떤 반작용이 있어야 했는데, 그 때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여러분, 여러분은 이 영화 어느 부분에서, 누구한테 가장 화가 났습니까?
나는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차장한테 가장 화가 났습니다. 국방장관은 바로 이웃인 참모총장 관저에서 총성이 울리자 상황을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없이 버선발로 튀어나가 택시를 타고 미 대사관으로 도망갑니다. 그는 약 아홉 시간 후,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반란군의 편에 서서 이태신을 직위 해제합니다.
한편, 육군참모총장이 반란군에게 납치되어 간 상태에서 참모총장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참모차장은 우왕좌왕 초기대응에 실패합니다. 총리공관에서 반란군 수괴 전두광을 체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그의 우유부단함과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반란군은 2공수를 후퇴시킬 테니 그를 막으려고 출동한 8공수도 후퇴시켜달라’는 전두광의 감언에 속아 마지막 방어 찬스를 넘겨주고 맙니다.
그는 결국 육군본부를 버리고 수도경비사령부로 피난을 갑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두 사람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때 역사는 멍들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최한규(최규하) 역시 만약에 끝까지 저항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최한규를 죽였을까요? 그가 서류에 남긴 날짜와 시간 덕분에 훗날 쿠테타의 전위를 밝히는데 큰 단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결재 장면은 내내 아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세는 기울었다"는 말 한마디
내 기억에 ‘대세는 기울었다’는 말은 조금씩 입장과 표현이 다르긴 하지만, 약 세 번 정도 나옵니다. 사실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기억나는 것은 세 번입니다. 우선 그중 두 번은 전군의 통신망을 장악한 반란군의 입을 통해, 한 번은 앞에서 언급한 이태신의 부하 강대령을 통해서입니다.
첫 번째는 노태건(노태우)의 명으로 전방에 있던 2공수가 서울을 향하고 있을 때, 수도사령부의 요청으로 야전사령관은 수기사(수도기계화보병사단)와 26사단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 순간, 야전사령관의 전화가 울립니다. 반란군의 통신망으로부터 문일평(전두광의 비서실장)이라는 자의 목소리가 전달됩니다. 그는 반란군이 ‘통신망 전체를 꽉 쥐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대세가 기울었습니다.”
야전사령관은 전투의지를 잃고 이태신에게 말합니다.
“쟤들이 다 듣고 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두 번째는 특전사를 접수한 반란군 하창수가 이태신에게 경고하듯 하는 말입니다. ‘대세는 기울었’으니 더 이상 아군 간에 피를 보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강 대령이 이태신의 신변을 염려하면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이니 제외하더라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상당히 심리전의 요소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문일평의 말은 실제로 대세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은 심리적 무기가 되기도 하며, 설득당한 자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합니다. 대세에 상관없이 본인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케 합니다.
전두광이 노태건에게 이런 말을 하죠. ‘사람들이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명령해 주기를 기다린다’고. 책임을 기피하고자 하는 자에게 무엇이 달콤한 것인가를 전두광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 한 장면.
영화적 ‘전두환’에 대하여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전두환을 악마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권력을 탐했고 그 욕망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원하는 것을 위해 직진했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 영화에서 전두광이 '악마'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악마’나 ‘절대악’의 화신이 되는 순간, 그의 죄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릴 뿐 아니라 ‘악마 전두환’에게 동조한 인물들의 행각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인간’인 전두환이 보여야만, 그가 인간이고서는 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리면서까지 욕망한 것, 그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 역사가 그런 일그러진 욕망과 탐욕을 막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으며 그 결과가 서울의 봄을 7년 이상 가로막았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영화 속의 전두환은 아슬아슬하게 주변을 압도하며 ‘남자다움’을 뿜어내고, 군의 장성들이 그에게 자신의 책임을 의탁합니다.
이 영화는 ‘스포’가 의미 없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보는 내내 괴로운 심정을 누를 길 없는 사람이 많죠. 영화 보는 동안 심박수를 체크한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관람하고, 또다시 분노하게 하는 이 영화. 분노는 이 영화가 다룬 전두환(극중 전두광)의 9시간이 이듬해 봄, 1980년 광주의 비극과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를 암울하게 만들었음을 알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열거한다면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뒤에,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 <1987>의 앞에 위치하는 영화입니다. 이제 한국 영화는 그 암울한 시대의 퍼즐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입니다. <화려한 휴가>등 5.18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전두환은 가해자이며 학살자이고, <그때 그 사람들>이나 <남산의 부장들>처럼 12.12나 박정희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전두환이 크게 부각 되지는 않으나 야심가의 면모가 표현됩니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 마지막 부분에서, “대통령 암살로부터 47일 후 신군부 세력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또 다른 군사 독재의 서막이 올랐다”라는 자막과 함께 전두환이 혼자서 커다란 군용 가방을 메고 들어가 청와대 금고를 열어 돈을 쓸어 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장면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박정희의 금고를 이어받았다는 의미에서는 대단히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죽는 날까지 추징금을 내지 않고 ‘29만 원이 전재산’이라던 생전의 전두환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동안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전두환의 직·간접적인 이미지는 크게 학살자, 탐욕가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반해 <서울의 봄>의 전두환은 생생하게 다양한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살아 움직입니다. 영화 속에서 1979년 12월 12일, 9시간 동안 그는 친구 노태우와의 우정을 재확인하거나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장성급 인사들의 비겁함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독려하는 리더십까지 보여줍니다. 이 생생한 캐릭터는 사실상 황정민의 연기에 의존한 바 큽니다.
이 영화의 의미는 우리 사회가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서울의 봄>으로 인해 1979년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 듭니다. 극단의 모욕감과 분노를 딛고 그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에게 책임을 의탁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무거운 의미를 젊은 세대에게도 전해야겠지요.
※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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