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정아은 소설가 문화 입력 2023.12.01 11:22 수정 2023.12.06 09:01
[서울의 봄①] 12·12, 무엇이 승패 갈랐는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작가 정아은이 꼽은
키워드 셋 ①내전 ②정보 ③개인적 기질
군지휘관들이 끝내 진압을 망설인 까닭과
그들이 전두환의 하나회에 놀아난 이유,
하나회 장군들 한데 묶어낸 광폭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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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쿠데타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12·12사태는 전두환이 시도했던 가장 크고 위험한 일이었다. 한 국가를 이루는 물리력의 결정체인 군부의 체계를 뒤엎고 지휘권을 독점하는 것은 실패할 경우 ‘목숨’이 날아가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전두환이 장악했던 보안사령부의 실체를 보면 그 위험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보안사령부는 정보형 특수부대로, 연대병력을 3000명으로 잡는다면 그 중 보안부대에 속하는 인원은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사단 병력을 1만 2000명에서 2만 명 정도로 잡는다면 그 안에서 보안사령부 소속 지휘관은 기껏해야 열 명 안팎에 불과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특수경호대(군사경찰) 하나만 보내도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의 부대였다는 말이다.(주- 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사이드웨이, 71쪽) 그렇다면 직접 동원할 직속부대가 거의 없는 가운데 일으킨 전두환의 쿠데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키워드 1. 내전... 그 두려움
영화 <서울의 봄>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내전’이다. 이 말은 여러 인물에게서 튀어나오는데, 특히 반란군의 수장인 전두광(전두환 역)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 전두광은 대통령 최한규(최규하 역)에게 재가를 독촉하면서 “빨리 사인하지 않으면 아군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진압군의 출동을 막기 위해 교신할 때도 “너희들이 출동하면 아군끼리 피 흘리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상대는 주춤하며 멈춰선다. 국군수뇌부도, 진압명령을 받고 출동하려던 연대장·대대장도, 아군끼리 피를 흘리게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에 빠진다.
1979년은 전세계가 시장경제를 택한 진영과 공산주의 경제를 택한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시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택한 진영의 얼굴과도 같은 국가였고, 코앞에 반대진영의 대표주자인 ‘북한’이 버티고 서 있었다. 같은 동족끼리 잔인한 살상을 저질렀던 6·25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엇을 해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떠올리며 대비해야 하는 반 전시 상태의 국가 공동체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군끼리 피 흘리며 싸우는 ‘내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북한이 치고 내려올 빌미를 제공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전두환은, 대한민국 국군 수뇌부와 미군 수뇌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이것, 즉 내전으로 인한 남북 전쟁 '재발발'이라는 사실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진압군에게 밀릴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재빨리 목청 높여 외쳤던 것이다.
너네 진짜 쳐들어올 거야?
해 봐!
그럼 내전이야!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이러한 대응 방식은 이후 전두환이 평생 반복하게 될 특징인 ‘자기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기’의 전형이었다. 자신이 불법적으로 상관을 연행하며 병력을 동원했기에 일어난 일인데, 그에 대한 반응으로 진압군이 출동하려 하자 그것을 ‘내전유발요인’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며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이다.
“85명의 소수 군인이 3700만 대한민국을 접수한”(주-고나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북콤마, 121쪽) 하극상은 내전 발발을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던 이런 집단 심리에 기대 일어난 사건이다. 유념해서 볼 것은 이 강박관념이 주로 반란군 측이 아닌 국군 수뇌부 쪽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내전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병력을 출동시키려 하느냐'고 거창하게 엄포를 놓았지만, 전두환은 실제로 내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전방을 지키던 노태우의 9사단을 수도로 끌고 들어올 정도로 내전 유발 상황을 만드는데 적극적이었다. 반란군을 진압해야 했던 국군 수뇌부는, 내전이라는 개념 앞에 번번히 멈춰섰다.
국군 수뇌부가 우왕좌왕하며 반란진압의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솔로몬의 판결’이 떠오른다. 자신이 진짜 엄마라고 주장했던 두 여인에게 ‘아기를 반으로 나눠 가지라’ 했던 일화 속의 판결이. 진짜 엄마는 아기 몸에 칼을 대느니 차라리 아기를 포기하겠다 했고, 가짜 엄마는 태연한 얼굴로 아기를 반으로 가르자 응수했다. 국군 혹은 국민의 목숨을 ‘아기’에 비유한다면, 전두환은 12·12를 일으킬 때도, 일으킨 뒤에도, ‘아기’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입만 열면 ‘국가보위’ 운운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국가의 안위에 치명타를 가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전방의 부대를 수도로 이동시켜 제 권력찬탈에 이용하고,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의 최정예부대인 공수부대를 시민에게 보냈다. 그러니 12·12라는 한국 현대사 최대 사건에는 대한민국이 ‘분단국’이라는 절대상수와, 그 상수를 제 잇속에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야수 같은 군인의 기질이 결합되는 화학적 과정이 있었던 셈이다.
영화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전두환이라는 돌발적인 ‘악’이 나타났을 때 국방부 장관이 도망치고, 결정적 순간에 육군참모차장이 진압군의 출동을 가로막는 모습이 비겁하고 우유부단하게 비칠 뿐이다. 12·12의 순간에 국방 장관이 자리를 비우고 도망쳐 제 한 몸의 안위만 추구하거나 육군참모차장이 반란군 쪽의 간계에 넘어가 8공수(주- 영화에선 8공수, 실제는 9공수였다)를 회군시킨 것은 지휘관으로서의 판단력, 책임감, 과단성, 리더십 모든 측면에서 조금도 점수를 줄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역사에 기록되어 두고두고 비난받아야 할 과오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데에는 ‘내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자칫하면 제 2의 6·25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일종의 시대정신처럼 공기 중에 서려 있었다는 사실도 조금은 참작해주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 후에 세워진 신생독립국인 대한민국이 중요한 사건과 맞닥뜨릴 때마다 ‘법’, ‘규정’, 혹은 사회구성원들이 지키기로 합의한 일정한 ‘선’이 아닌, ‘힘’의 향방에 의해 해결책을 마련해왔다는 역사적 선례들도 최고 결정권자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을 것이다.
한강 다리를 끊고 피신했다 돌아온 이승만 정부가 한강 다리를 끊어 국민을 희생시킨 책임을 최창식이라는 일개 대령에게 물어 사형시킨 사건만 보더라도, 커다란 일이 일어났을 때 공무원들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능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키워드 2. 정보....그 압도적인 힘
1979년 12월 12일 밤에 있었던 거대한 사건의 승패를 가른 두 번째 요인은 ‘정보’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진압군 리더인 이태신(장태완 역)이 여기저기 연락을 할 때마다 그것을 감청하는 하나회 요원의 모습이 이태신의 모습과 나란히 클로즈 업 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보’는 모든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 역할을 해왔다. 적이 어떤 길로 갈 것인가,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를 파악하면 그에 걸맞은 대응책을 세울 수 있었고, 그렇기에 전쟁 당사자들은 언제나 적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진압군의 수장인 이태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두광에게 알려지는 것에 반해, 전두광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이태신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소수의 병력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접수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이렇듯 ‘정보’의 비대칭에서 기인했다.
1979년은 유선전화보급률이 7.9%에 불과했다. 사람들 간 소통과 정보전달이 쉽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힘을 손에 쥔 자가 마음 먹으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사실을 왜곡해 거짓을 퍼뜨릴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국민 모두가 스마트 폰을 손에 들고 있는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23년 현재, 누군가가 하극상을 일으켜 참모총장 공관으로 총을 들고 쳐들어간다면, 그 인물의 모습과 이름은 실시간으로 전국민에게 알려질 것이다. 뿐인가. 전 세계가 총을 든 그 인물의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로 인한 통신기술 발달과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성공하기 힘든 이유다.
키워드 3. 전두환의 기질...그 무데뽀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그 밤의 쿠데타가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세 번째 요인은 신군부 수장인 전두환이라는 인물의 '개별적 특성'이다. <서울의 봄>에서는 상황이 불리해질 때마다 반란군 쪽 장성들이 전두환에게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되풀이된다. “전 장군, 대통령 재가를 금방 받아온다더니 이게 뭔가!”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선배 장성 앞에서 전두광(전두환)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받아친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캅니까? 지금 참모총장이 우리 손에 있지 않습니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상과 언행이다. 쿠데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전두환은 상황을 깊이 파고들어 분석하며 ‘잘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대신 ‘이루어놓은 성공사례’를 강조하며 앞으로 잘 될 것이라 큰소리친다. 일어난 일에 대해 분석하며 깊이 파고들어가는 대신, 사건의 표면에서 머물다 어느 지점에서 깊이 파고 들어가기를 멈추고 ‘잘 될 것이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결론을 믿고 힘차게 밀고 나간다.(주- 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1부 8장, ‘전두환의 특별한 가벼움’ 참조.) ‘희망사항’을 ‘현실’로 치환시킨 뒤 그에 매달려 무데뽀로 밀고 나가는 전두환의 이런 성향은 ①‘내전’을 두려워하는 군 수뇌부의 심리와 ②정보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유리한 국면과 합세해,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발걸음을 우악스럽게 잡아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우성이 역할을 맡았던 이태신.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우성이 역할을 맡았던 이태신.
감독은 두 남자의 캐릭터에 충실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다. 모든 요소들을 아우를 수 없다. 책이라면 “그렇게 총격전이 있었다”는 한 마디로 치고 지나가면 끝이지만, 영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수 없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총과 탱크를 동원해 화면으로 주조해내야 한다. 당연히, 감독이 내보내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 외의 다른 것들을 희생시켜야 했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을 김성수 감독의 최종 선택지는 두 남자의 캐릭터가 어떻게 부딪히고 승부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으리라. 영화 관람 뒤 역사 속 실제 상황이 어땠고, 그 배후에 어떤 배경과 상황이 있었을지를 알아내고 탐구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같은 사건을 소재로 책을 썼던 이로서, 영화 <서울의 봄>을 대단히 흥미롭게 보았다. 내가 수많은 지면과 낡은 스틸컷들로만 접했던 정보들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나와 드라마로 전개되는 걸 보고 있으니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번뜩번뜩 번져갔다. 나는 영화를 잘 몰라서 이것이 잘 만든 영화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동행했던 이는 ‘상업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각하게 화두를 붙들고 늘어지는 주제 영화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선 영화라 표현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긴 한 영화였다.
그러나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두 인물, 전두환과 장태완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해내 관객이 이입하게 했다는 면에서, 그로 인해 12·12라는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곱씹게 했다는 면에서, 압도적인 영화였다.
※ 정아은 소설가는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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