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 막을 자, 구원문을 열자 누구인가?"
12.12와 5.18 학살의 주범 전두환 일당은 물론, 이태원 및 오송 참사 등 수많은 인재 앞에서도 결코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은 굥 정부의 태도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모습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결코 진정어린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 정계나 보수적 시민의식과 잇닿아 있어 보인다.
지난 봄, 식민지 지배는 당할 만 했던 우리 탓이라 말하던 굥의 기괴한 3.1절 기념사와 그에 호흥하는 일본의 정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월간지 <복음과 상황>의 강동석 기자께서 해설을 요청해 와서 몇 자 적어 보았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 거기서 가능한 화해와 용서, 새로운 출발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래도 저 12.12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의 행보가 작은 희망을 불씨를 발견하게 한다.
(산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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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문을 열 자 누구인가 ― 일본 땅에서 곱씹는 역사 책임과 참회의 문제 |구원문을 열 자 누구인가 ― 일본 땅에서 곱씹는 역사 책임과 참회의 문제
[390호 세상 읽기]
2023-04-27 홍이표
왜 책임지지 않을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공자의 경구 ‘군군신신’(君君臣臣)이라는 말처럼 유교 이념에 기초한 조선 사회는 ‘군신’(君臣), 즉 왕과 신하에게 백성을 영도하고 이상적 사회를 건설할 책임을 부여했다. 따라서 그들은 바른 사상을 연마하고 도덕을 실천하여 군자(君子)의 인간상을 표징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이는 스스로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고려는 물론 조선에서도 온 땅에 가뭄이 들면 왕은 목욕재계하고 허술한 초가로 거처를 옮겨 식음을 전폐했고, 자신의 부덕함과 실정을 책망하며 기우제를 올렸다.
하늘의 진노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석방하기도 했다. 모든 사태의 책임은 군신에게 있었고 민(民)에게는 근본적 책임이 추궁되지 않았다. 그 결과 부패하고 타락한 군신에 대항해 혁명이 가능했고 절대적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과 만민공동회, 일제하 3·1운동의 역사는 모두 이 흐름 위에서 발생했다.
이와 달리, 근대 일본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건 메이지유신을 통해 제국을 건설하고 식민지를 확장해가면서 군신 개념을 버리고 ‘신민’(臣民) 개념으로 기울어져갔다. 일제강점기에 자주 등장한 ‘황국의 신민’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군(君)은 1880년 곡조가 붙어 지금까지 일본 국가로 불리는 기미가요(君が代)에서 “임금(君)의 치세는 천 대에 팔천 대에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서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를 통해 일본 신민들 의식 속에 스며들었고 그 주인공 덴노(天皇)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갔다. 흠 없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하는 조선의 군신과 달리 덴노와 황실은 결코 흠이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설명되었다. 당연히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고 잘못이나 죄를 범할 수 없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모든 사태의 정죄와 책임을 신민이 뒤집어쓴다. 군(君, 기미)은 구름 위로 사라지고 ‘신민’만이 덩그러니 땅 위에 남는다. 청일·러일전쟁, 주변국의 식민지화와 대량 학살, 생체 실험, 강제징용 및 징병, 창씨개명,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수없이 자행된 범죄들은 덴노의 책임이나 죄여서는 안 된다. 덴노가 책임지는 순간, 그 죄는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서 덴노에게서 멈추지 않고,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국을 세운 진누덴노(神武天皇)를 거쳐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로 대표되는 일본 태고의 아마츠가미(天津神)에까지 영향을 미쳐 만세일계의 일본 황통 전체가 오염돼버린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국 자체의 불명예, 아니 부정으로까지 이어지기에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로 인식된다. 따라서 그 책임과 죄벌은 신민이 대신 지는 구조가 고대·근세·근대를 거쳐 현대 일본의 정치 문화를 지배적으로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전후 대표적 일본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1977년 국제 기독교 대학(ICU)에서 행한 ‘마츠리고토의 구조’(政事の構造)라는 강연 내용 일부로, 일본 정치사의 독특한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전후 도쿄재판에 회부된 A급 전범 용의자 도조 히데키가 “덴노는 책임이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도 바로 그러한 메커니즘에서 비롯된 신민 계통에 전가된 설거지 작업, 꼬리 자르기 수법이다. 오직 일부 A급 전범 용의자들(臣)의 처벌과 동원된 조선인을 포함한 수많은 B·C급 전범들(民)의 희생양적 처벌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껏 식민지 침략과 전쟁에 관한 덴노의 책임 있는 발언이나 행동이 전무한 이유다.
이러한 덴노의 절대성에 기초한 무책임성은 불행히도 해방 이후 남북한 독재자들 모습 속에서 재현되었다. 이제는 ‘검사동일체’ ‘검사무오류’ 신화에 도취된 검사들이 권력을 장악해가며 아무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국 일본의 검판 제도에 뿌리를 둔 이들이 그 사회의 비겁한 정치 구조인 ‘마츠리고토’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다. 4·3 학살, 한국전쟁 당시의 한강 다리 폭파와 학살, 광주 학살, 세월호, 10·29 참사에 이르기까지 신민의 희생 외에 책임 있는 자의 사과나 반성이 있었는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권력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생각하면 작금의 사태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일본 매스컴들은 매년 8월이 되면 패전(敗戦)이 아닌 ‘종전’(終戦)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이 또한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으로 일으킨 전쟁이 패배로 종식되어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실현하고 제국 신민들에게 고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덴노가 주체적 결단으로 전쟁을 스스로 끝냈다는 의미로서 ‘종전’이다. 이러한 일본이기에 1990년대에 수면 위로 새로이 등장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개인 청구권 소송 등은, 전후에도 여전히 덴노(근대천황제)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일본의 ‘신성한(?) 국체’를 훼손하고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보란 듯 지배했던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역사 왜곡을 불사하며 강하게 부정하고 대립하는 이유다.
이에 일본 기독교계는 지속적으로 일본국과 일본인의 죄와 책임을 추궁해오고 있다. 일본 최대 개신교 교단인 ‘일본 기독교단’에서 1967년 의장 명의로 〈제2차 대전하에서의 일본 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을 발표하여 “마음 깊이 아파하며 이 죄를 참회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함과 함께 세계의,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그곳의 교회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우리 동포들께도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또 다른 예로 2009년 발간되어 일본 신학계에서 화제가 된 《일본에서의 칼 바르트: 패전까지의 수용사와 여러 단면들》을 언급할 수 있다. 제목만 보아도 종전이라는 말을 회피하고 패전을 강조하여 바르트 신학마저도 파시즘에 부역하도록 왜곡했던 일본의 책임과 죄를 다시 묻고 있다. 지금도 일본 기독교인들은 반성을 외면하는 일본 사회를 향해 진정성 있는 참회와 각성을 촉구하는 소수자들로 분투하고 있다. 지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양교(良教)와 망교(妄教)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번째 3·1절 기념사에서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제국주의 침략국이었던 일본을 향해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도리어 화를 자초한 한국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신냉전을 연상하는 한미일 3국 동맹 강조 발언까지 등장했다. 3·1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었다고 본다.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비판하며 민족 주체성과 자결성, 약소국 권리 보장을 강조했던 3·1 정신은 강대국 눈치나 보며 하부구조에 기생하는 천박한 사상이나 운동이 아니었다.
기미 독립선언서 초안은 당대 지식인이었던 최남선이 주로 썼지만 거기 담긴 자유·평등·정의·박애·평화 등의 사상은 기독교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최남선은 “나는 대체로 어려서부터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읽었고 또 기독교인들과 수시로 상종하는 동안에 자연히 기독교적인 사상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본래부터 자유사상이 농후한 사람인데다가 독립, 자유, 평등 및 정의와 같은 말이 다 기독교에서 나온 것인 만큼 나에게서 기독교를 빼고서는 나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956년 2월 병상의 최남선을 찾아간 YMCA의 전택부 총무는 “(최남선) 선생이 쓰신 3·1 독립선언서를 읽으면 어떤 기독교 사상가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다”라고 질문했고, “내게서 기독교 사상을 빼면 아무것도 없지”라고 답한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신구약성서만 아니라 외전(外典)까지 탐독했다는 것, 인물로서는 레프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신앙인으로서는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그 교회 뒷방에는 이준 이회영 안창호 등 애국지사들이 자주 모였는데 당신은 거기서 물심부름을 하면서 자랐다는 것” 등도 회고했다. 3·1운동은 제국(帝国)이 아닌 ‘민국’(民国)을 선포한 시민 해방 운동이면서 기독교적 인간 해방 선언이었다. 갈릴리 땅이 아닌 20세기 한반도에서 실현될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다. 신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고결한 존재임을 천명한 셈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강조한 천도교 지도자들과 주로 협력하여 민족대표 33인을 구성한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후 일본으로 넘어가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부정하며 말도 안 되는 제3자 변제안과 구상권 청구 포기 등을 멋대로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 정신을 부정하며 대한민국 주권을 스스로 내팽개쳤다. 신학자 칼 바르트도 1946년 발표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와 시민들의 공동체》에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삼권분립을 기독교 삼위일체적 세계관의 세속적 표현으로 보며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세계”를 지탱해가는 중요한 원리임을 강조했다. 라인홀드 니버는 현대 시민사회가 그러한 원리에 기초해 하나님 나라에 근접해가야 한다는 점을 근사성(Approximation)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폭주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실현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일본에 간도 쓸개도 다 내어놓는 파격적 행보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거나 일본군 ‘위안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등의 내용은 오히려 삭제해버린 초등학교 교과서 검인을 강행했다. 또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용인과 WTO 제소 취하에 따른 일본 수산물 수입 가능성 고조,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국내 유치 등 뉴스가 이어지며 아연케 했다. 되로 주로 말로 받는 현 상황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일본 정치 외교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는 근대천황제 근간을 이루는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다. 애니미즘·토테미즘·샤머니즘 등 민간신앙이 융합되어 그때그때 처한 위치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신격화하여 숭배한다. 일본인의 종교심을 형성하는 다신교적 감각인 야오요로즈노가미(八百万の神々) 관념이다.
일본 최초의 비교종교학자이자 요코하마 밴드의 기독교인이었던 다카하시 고로는 《제교편람(諸教便覧)》(1881) 제1장 ‘신도’에서 “신도의 신은 … 존귀한 신이 있는가 하면 천한 신도 있고, … 선한 신이 있으면 악한 신도 있다”(14쪽)라고 신도의 신 개념이 지닌 기본 특성을 설명한다. 이것을 선악 구분이 모호하고 양쪽 성격이 혼재한 ‘선악 2신’(善悪二神)이라 표현하면서 선악 구분과 죄와 벌의 개념이 명확한 기독교와 대비한다. 이러한 신도는 도덕인의(道徳仁義)에 둔감하고 권선징악적 사고도 희미하기에 오로지 강력한 힘에 대한 숭배와 의존을 더욱 강화해간다. 따라서 종교는 양교(良教)와 망교(妄教)로 나뉘는데 신도는 후자에 속한다고 다카하시는 강조한다. 근대 이후 일본의 역대 동맹국만 보아도 대영제국·독일제국에 이어 현재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때마다 가장 강력하게 존재하거나 부상한 나라들이었다. 힘을 향한 숭배 논리가 결국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민중의 고통 따위는 쉬이 멸시하도록 이끈다. 신사참배와 일장기 배례로 대표되는 과거 식민지 시대 힘의 지배 논리에 승복했던 자들이 부활해서 발호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일본 수상과 각료들이 착석할 때까지 공손히 대기하거나, 일장기에 공손히 배례하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이란, 절대적 존재인 덴노를 정점에 올려놓았던 제국의 ‘힘’에 대한 굴복이자 이른바 ‘망교’와의 동거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영세계의 최태민, 통일교의 문선명에 이어, 이제 다시 한기총의 전광훈, 신천지의 이만희, 그 밖의 건진법사, 천공 등 온갖 한국형 망교들과 야합한 정치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확실히 시전 중이다. 망교들 간의 축배와 축제는 이웃 일본에서도 성황을 누렸다.
지장 신앙,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역사의 시계를 한없이 뒤로 돌려버린 대통령의 열도 방문 소식에 답답한 맘 달랠 길 없어 무력한 발걸음을 산으로 옮겼다. 어느새 당도한 곳은 샤카가타케(釈迦ヶ岳, 석가악, 1641m). 미나미 알프스와 반대편 후지산 파노라마가 조망되는 정상에 이르니 아담하고 귀여운 지장보살(地藏菩薩)상 두 개가 놓여있다.
석가악 정상에서 만난 지장보살상. (사진: 필자 제공)
석가악 정상에서 만난 지장보살상. (사진: 필자 제공)
석가여래 입멸 이후 다시 올 미륵불의 출현 때까지 자신의 열반(해탈)도 포기한 채 일체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이 땅에 남은 대자대비의 보살을 지장이라 한다. 그의 가장 큰 사명은 모든 중생을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옥문 앞을 지키고 서서 그곳에 들어가려는 중생들을 가로막아 돌려보낸다. 지옥 중생들까지 모두 성불하도록 이끌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도 성불하겠다는 다짐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때(종말)를 생각하면 사실상 성불을 포기한 희생인 셈이다.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관음보살과 비교할 때 사후 고통까지도 돌봐주는 지장보살이기에 한반도는 물론 일본에도 지장 신앙은 널리 퍼져있다. 원치 않은 지옥살이에 신음하는 중생들을 보면서 어떻게 자신만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이 그것이다. 지옥에서 절규가 들리는데 어떻게 나만 천국에서 편할 수 있을까? 지옥으로부터 절규 소리가 들려 참상을 떠올리게 되는 그곳 역시 지옥이나 다름없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도 지장보살과 닮은 부분이 있다. 세계 기독교의 공통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보면, 유독 한국 개신교만 예수께서 “지옥에 가셨다”(He descended into Hell)라는 표현을 누락해 옮겼다. 1894년과 1905년 장로교 우리말 찬송가에 실린 사도신경은 각각 ‘디옥에 나리샤’(지옥에 내리사)와 ‘음부에 나리셧더니’(음부에 내리셨더니)라고 번역했지만, 1908년 감리교와 공동으로 발행한 합동 찬송가부터는 내용이 사라졌다.1) 가톨릭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라고 기도하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 직후 땅에 묻히고 지옥으로 내려가셨던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도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공동번역)라고 말하듯이, 마지막 불순종자들마저도 예수는 지옥에 남겨두지 않고 구원하려 하셨다.
나약한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 케노시스(kenosis)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딤전 2:4)이시다. 그래서 예수는 지옥과도 같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나서도 지옥에 또 내려가셨다. 지장보살의 결단과 유사한 그리스도의 결행이 있었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인간이 받는 심판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려는 것”(벧전 4:6, 공동번역)이었다. 이에 이찬수 교수는 “죽음 이후조차 무언가 바뀔 가능성이 있으니 희망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예수 이야기”라면서 지옥과 진배없는 무참한 상황일지라도 언젠가 결국 구원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러한 지옥 굴 상황을 만든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하는 일이 지장과 쏙 빼닮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명임을 강조한다.2) 백찬홍 선생(유영모, 함석헌을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도 이 구절을 설명하며 “예수는 영원한 형벌로 고통받는 죄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지장보살을 만나 반갑게 포옹을 하고 나중에 올 죄인들의 구원을 부탁했을 것”3)이라 힘주어 말한다. 3·1운동 당시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인 민족을 고통에서 구해내고자 천도교·불교·기독교 지도자들이 한데 모인 것도 이러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었을까? 후지산이 보이는 석가악 정상에서 두 지장보살과 조우한 나는 어느새 지장과 예수의 만남과 포옹을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었다.4)
참회와 용서 사이에서
최근 한 인물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다. 그는 미국에서 참회와 반성, 전 씨 일가 죄악 폭로 등 유튜브 활동을 이어가다 귀국하여 3월 31일, 5·18 광주 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 가문의 일원으로서는 처음 광주를 방문해 90도로 정중히 절하며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그가 보인 뜻밖의 행보에 지장보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제 할아버지는 광주 학살 죄인이며, 저 또한 죄인입니다.” “추악한 죄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고, 사죄할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게 오게 돼서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늦게 온 만큼 저의 죄를 알고 반성하고 더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 삶을 의롭게 살아가면서 제가 느끼는 책임감을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회개하고 반성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전 씨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번 사죄 행보의 직접적 계기로 교회 봉사 활동을 꼽았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현지에서 다니던 교회를 통해 5·18의 진상을 알게 됐다고 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평생 자라왔고, 저 자신도 비열한 늑대처럼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게 됐습니다. 제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이 너무 커서 이런 행동(사죄)을 하는 것입니다.”
필요할 경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와 5·18 기념식 등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광주에 내려간 그는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러 가서 1980년 5월 첫 희생자인 청각장애인 김경철 씨 묘비, 희생자 중 가장 어린 전재수 열사(희생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묘비, 행불자 묘비를 찾아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닦았다. 5·18민주묘지 방명록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
‘어둠’(죄와 벌, 지옥)에 있던 자가 ‘빛’(용서와 화해, 천국)으로 옮겨왔다. “민주주의 진정한 아버지”를 광주의 영령들이라 밝힌 부분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저는 남편(전두환)이라고 생각해요!”라던 할머니 이순자 씨의 2019년 발언을 의식해 썼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족이 악행과 반인륜의 길을 걸으며, 남들도 지옥 같은 삶으로 몰아넣고, 자신들도 생지옥 같은 곳에 서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성불을 한없이 미룬 채 많은 이들의 지옥 입성을 막아보려는 지장처럼 보인다. 전우원 씨가 자신은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까닭도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족들도 모두 진정 참회하고 반성하며 여전한 지옥 굴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현재까지 그의 진정성은 통하고 있다. 많은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통한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씻어내며 지옥 굴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 듯하다. “이번에 광주를 찾으신 이후에도 5·18 단체, 유가족들과 계속해서 접촉을 이어가실 계획인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네… 마음이 풀리실 때까지 필요한 만큼 계속해서 연락을 드리고 싶고, 연락을 받아주실 때, 마음을 열어주실 때 감사히 생각하고 축복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진행해가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3월 20일, 마포경찰서 수사 이후 나오면서)
그 맘 변치 않아 진정 지장보살과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걷게 되길 바랄 뿐이다.
지옥문을 막을 자, 구원문을 열 자 누구인가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구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요 10:7-8)라고 말씀하셨다. 월터 윙크는 “예수의 제3의 길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또한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염원하는 것을 이미 살아 냄으로써, 이미 도달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5)라고 했다. 구원의 문은 죄의 자각, 적극적 참회와 반성이라는 실천이 담보될 때 비로소 열린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첫 한 발자국을 내딛기조차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 7:13-14, 이하 새번역)면서 힘든 여정 앞에 용기 어린 각오를 권면한다.
구원문을 여는 일은 지옥문을 막아서는 일보다 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 길 위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면서 강권과 폭력이 이기는 세상은 비로소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 평화를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3월 29일 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씨 손자 전우원 씨를 만나러 온 건 다름 아닌 기독 청년 故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씨였다. 곧장 광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오르는 전우원 씨에게 전태삼 씨는 이렇게 말한다. “힘내세요! 용기를 잃지 마시고…” 광주에 내려가 기자회견을 끝낸 뒤 전 씨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 앞에서 무릎 꿇고 큰절했다. 오월 어머니들도 눈물을 훔치며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며 전 씨를 꼭 안아주었다.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약하다 숨진 故 문재학 열사 어머니는 손을 붙잡고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며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가해자 손자와 피해자 어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섞으며 신비롭게 해원상생(解寃相生)하고 있었다. 그렇다. 참담한 역사를 이 시대에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저 혼자만의 천국행을 포기하고 지옥 굴에 과감히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순절 시기에 전우원 씨가 이러한 참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과연 우연이기만 할까? 우리도 함께 그 구원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힘들게 분투 중인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에도 좌절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터나 시리아·튀르키예 대지진 재해 현장 등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에 아비규환의 지옥 굴 같다. 이 와중에도 과거의 제국주의적 욕망에 가득 차 퇴행적 회귀를 획책하는 권력가들은 여전히 ‘힘’의 숭배를 포기하지 않고 발악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자처하는 자들도 부화뇌동하며 혹세무민에 열중이다. “거짓 예언자들을 살펴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마 7:15) 세계인이 보는 넷플릭스 작품들 〈수리남〉, 〈나는 신이다〉,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기독교, 기독교인들 모습은 빛을 잃은 이 시대 한국교회 자화상이다. 오죽하면 목사요 선교사인 내가 석가라는 이름의 산에 올라 지장과 마주하며 그들에게 위로를 청하였을까?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의 오른쪽 큰 지장은 마치 ‘평화의 소녀상’ 얼굴 같아 보인다. 오랜 풍설에 마모되어 이목구비조차 알 수 없게 된 왼쪽 작은 지장은 어린 소녀의 얼굴을 이미 잃어버린 양금덕 할머니, 그리고 그 이름자도 얼굴도 모두 잊히게 된 수십만 강제징용 희생자들처럼 보인다. 이 무참한 시대에 누가 지장의 뒤를 따라 지옥문을 막아설 것이며,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구원문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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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 백찬홍,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예수를 만났을까?!”,〈가톨릭뉴스 지금여기〉(2009. 2. 5.).
2) 이찬수,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동연), 236쪽.
3) 백찬홍, 위의 글.
4) 지장보살은 본래 인도 바라문의 딸로,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간청에도 부처의 가르침을 비방하다 죽었다. 어머니가 지옥에 갔으리라 여긴 딸은 마음을 다해 공양한 결과 지옥에 다녀올 수 있었다. 참상을 목격하던 중 어머니가 안 보여 물어보니 자신의 정성 어린 공양 덕에 어머니가 다른 죄인 여러 명과 함께 무간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에 간 지 3일이 지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카이로스의 순간일까? 그녀는 외친다.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나이다(地獄未濟 誓不成佛).”
5) 월터 윙크, 김준우 옮김, 《예수와 비폭력 저항》(한국기독교연구소).
홍이표
연세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교토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9년부터 기독교대한감리회 파송 선교사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내한 선교사의 정치사상, 근대 일본 기독교인의 신도(神道) 이해와 사회사상의 관련성, 한일 기독교 관계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 기독교단 효고 교구, 교토 교구 등에서 목회했고 현재 야마나시 에이와 대학(山梨英和大学)에서 준교수 및 종교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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