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4

[발자취]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앞장… 90년대 초엔 주사파 실체 첫 폭로 - 조선닷컴 - 사회 >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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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앞장… 90년대 초엔 주사파 실체 첫 폭로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9.11.11 03:00
[서강대 前이사장 박홍 신부 선종]

1991년 대학생 분신 잇따르자 "죽음 선동 어둠의 세력 있다"
학생과 잘어울려 '막걸리 총장'





1990년대 초반 대학가 운동권 내 주사파(주체사상파)의 존재를 처음 폭로했던 박홍(朴弘·78·사진) 신부가 9일 새벽 4시 40분 선종(善終)했다.

1941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 신부는 가톨릭대와 광주가톨릭대를 졸업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영성신학으로 석사, 로마 그레고리안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를 졸업하던 1965년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에서 교수·총장(1989~1997)·이사장(2003~2008)을 지냈다.

박 신부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91년 대학생 분신자살이 이어지던 때 "지금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1994년에는 "주사파와 우리식 사회주의가, 제한된 학생들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 있다"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잘못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 오찬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후 "각계에 수많은 주사파가 침투해 있다" "북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교수가 됐다"며 당시로서는 충격적 주장을 이어갔고,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발언들 이후 일부에선 그에게 '극우 사제'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박 신부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사제였다. 1970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같은 해 전국천주교대학생 및 지성인 지도신부, 크리스찬사회행동협의체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을 때 함께했고, 전태일 추모미사를 집전했다가 공안 당국에 끌려갔다. 1980년엔 신군부 합동수사본부에서 심문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을 하다 검거된 학생의 구명을 위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과 폭탄주를 마셔가며 담판을 벌였다고 인터뷰 등에서 털어놓았다. 1989년 교수 직선으로 서강대 총장에 선출된 후에도 '막걸리 총장'으로 불릴 정도로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박 신부가 대학가의 주사파·친북 세력에 대한 폭로와 공격에 나선 것은 학생들의 고백을 듣고 난 이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는 신자의 고해성사를 누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며 당시 서울대교구가 나서 "고해비밀 누설이 아니다"고 입장을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주사파의 실체를 사회에 고발한 것이 생애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200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바 있으며, 2017년 7월부터 당뇨 합병증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장례미사는 11일 9시 30분 서울 마포구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예수회장(葬)으로 엄수된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내 예수회 묘역.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11/2019111100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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