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 나무위키
지만원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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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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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池萬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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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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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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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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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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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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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졸업 (22기)
미해군대학원 이학 박사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42년, 강원도 횡성군에서 태어났으며, 9살 때이던 1950년에는 한국 전쟁을 겪었고, 20살 때이던 1961년에는 박정희의 독재를 겪으며 국가적 존립이 세계관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육군사관학교 22기로, 졸업 이후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포대장으로 월남 전쟁에 참전하여 베트콩을 소탕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인헌 무공 훈장을 수여했다. 베트콩에게 "한국군 포병에는 눈이 달렸다."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말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 해군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경영학 박사, 시스템 공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때부터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대 혁신을 연구했다고 한다. 귀국한 이후에는 국방연구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했다. 1987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령에서 예편했다.
육사 22기였던 지만원이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하나회를 비롯한 영남지역(TK, PK) 인맥의 정치 군인들이 군대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고위 장교로 갈수록 능력과 실적보다는 출신과 인맥이 진급의 절대 기준이던 시절에 육군 사관학교 졸업, 월남전 참전 경력, 미 해군 대학원에서 취득한 석사, 박사 학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숫자도 적은 강원도 출신에 하나회도 아니었던 지만원은 자연스레 비주류로 밀려나면서 진급이 힘들었고, 국방연구원 정책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무기 도입 과정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를 지적했다가 정치 군인들에게 찍혀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편하게 된다. 당연히 무능한 정치 군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1987년에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 군사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까지는 장교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정치 군인의 청산'과 과감한 군대 혁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특히 1991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2년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등의 저서를 통해서 한국군 내부에 팽배해있던 비효율과 조직 비대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비록 군인 출신일지라도 민간인 군사 전문가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상당히 주목했다. 1998년, 강릉 무장 공비 사건 때는 군사 평론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온건 보수 성향을 보이면서도 자신과 정반대 성향에 위치한 월간지 말과도 인터뷰하고, 지금 지만원과 비교해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겨레신문에도 거리낌없이 칼럼을 기고하였다. 심지어 칼럼에서 평화 협상과 UN의 감시, 통제에 의한 남북한의 상호 군축이나 북한 체제 보장과 종전 선언을 주장하는 등, 현재 시점으로 봐도 대체적으로 상당히 온건하거나, 일견 진보적인 대북-안보 노선이었다. 혁신돼야할 군사문화, 한반도 평화는 군축에 달려있다 특히 1996년에는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 분단이다>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법률적 통일 말고 미국ㅡ캐나다 모델로 가자는 이야기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통일공약 실천가능한 겁니까
김대중이 1994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 재단을 창립하자 한동안 대외 활동을 수행했다. 정계 은퇴 이후 김대중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보수의 대표 인물 마가렛 대처를 집중 연구하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온건 보수 성향의 군인, 관료, 기업인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이때 합류한 인물이 군인 출신의 임동원, 천용택, 안기부 기획 조정 실장 경력의 엄삼탁, 쌍용그룹 전무 이사 정세균 등이며 지만원도 이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특히 공개 활동에는 이때 영입한 보수파 인사들을 자신의 좌우에 세워서 카메라에 함께 잡히도록 하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사용했다. 어쨌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음에도 96년 총선에 중용되지 못하고 얼마 안 가 김대중의 곁을 떠났다.[2][3]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훗날 망언과 역사 왜곡으로 까이는 행보와 달리 의외로 지만원은 학구파였고 엘리트 코스를 이수했다. 비록 미해군대학원(NPS)이 지만원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류 대학원'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전 모 위키러가 '미국의 군사 고등교육기관 중 최고 수위에 있는 대학이며, 이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는 출처불명의 글을 남겼는데, 이건 논란이 있는 발언이다. 미해군대학원(NPS) 홈피에 나와있는 내용을 참조하면, 석사 과정 입학에 필요한 GPA는 4.0 만점에 2.2점인데, 미국의 그 어떤 일류 명문대학원도 이 정도로 낮은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링크. 외국인 학생의 경우 이 학교에 입학하는데 필요한 토플 점수는 고작 560점. 아울러, 지만원이 나왔다는 미해군대학원(NPS)과 United States Naval Academy(미해군사관학교)는 다른 기관이다. 다만, 당시 해외위탁 고육을 보내는건 엘리트가 아니면 잘 보내주지 않았다는게 사실이다.
육군사관학교 22기로, 졸업 이후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포대장으로 월남 전쟁에 참전하여 베트콩을 소탕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인헌 무공 훈장을 수여했다. 베트콩에게 "한국군 포병에는 눈이 달렸다."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말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 해군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경영학 박사, 시스템 공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때부터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대 혁신을 연구했다고 한다. 귀국한 이후에는 국방연구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했다. 1987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령에서 예편했다.
육사 22기였던 지만원이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하나회를 비롯한 영남지역(TK, PK) 인맥의 정치 군인들이 군대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고위 장교로 갈수록 능력과 실적보다는 출신과 인맥이 진급의 절대 기준이던 시절에 육군 사관학교 졸업, 월남전 참전 경력, 미 해군 대학원에서 취득한 석사, 박사 학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숫자도 적은 강원도 출신에 하나회도 아니었던 지만원은 자연스레 비주류로 밀려나면서 진급이 힘들었고, 국방연구원 정책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무기 도입 과정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를 지적했다가 정치 군인들에게 찍혀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편하게 된다. 당연히 무능한 정치 군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1987년에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 군사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까지는 장교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정치 군인의 청산'과 과감한 군대 혁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특히 1991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2년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등의 저서를 통해서 한국군 내부에 팽배해있던 비효율과 조직 비대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비록 군인 출신일지라도 민간인 군사 전문가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상당히 주목했다. 1998년, 강릉 무장 공비 사건 때는 군사 평론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온건 보수 성향을 보이면서도 자신과 정반대 성향에 위치한 월간지 말과도 인터뷰하고, 지금 지만원과 비교해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겨레신문에도 거리낌없이 칼럼을 기고하였다. 심지어 칼럼에서 평화 협상과 UN의 감시, 통제에 의한 남북한의 상호 군축이나 북한 체제 보장과 종전 선언을 주장하는 등, 현재 시점으로 봐도 대체적으로 상당히 온건하거나, 일견 진보적인 대북-안보 노선이었다. 혁신돼야할 군사문화, 한반도 평화는 군축에 달려있다 특히 1996년에는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 분단이다>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법률적 통일 말고 미국ㅡ캐나다 모델로 가자는 이야기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통일공약 실천가능한 겁니까
김대중이 1994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 재단을 창립하자 한동안 대외 활동을 수행했다. 정계 은퇴 이후 김대중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보수의 대표 인물 마가렛 대처를 집중 연구하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온건 보수 성향의 군인, 관료, 기업인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이때 합류한 인물이 군인 출신의 임동원, 천용택, 안기부 기획 조정 실장 경력의 엄삼탁, 쌍용그룹 전무 이사 정세균 등이며 지만원도 이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특히 공개 활동에는 이때 영입한 보수파 인사들을 자신의 좌우에 세워서 카메라에 함께 잡히도록 하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사용했다. 어쨌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음에도 96년 총선에 중용되지 못하고 얼마 안 가 김대중의 곁을 떠났다.[2][3]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훗날 망언과 역사 왜곡으로 까이는 행보와 달리 의외로 지만원은 학구파였고 엘리트 코스를 이수했다. 비록 미해군대학원(NPS)이 지만원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류 대학원'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전 모 위키러가 '미국의 군사 고등교육기관 중 최고 수위에 있는 대학이며, 이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는 출처불명의 글을 남겼는데, 이건 논란이 있는 발언이다. 미해군대학원(NPS) 홈피에 나와있는 내용을 참조하면, 석사 과정 입학에 필요한 GPA는 4.0 만점에 2.2점인데, 미국의 그 어떤 일류 명문대학원도 이 정도로 낮은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링크. 외국인 학생의 경우 이 학교에 입학하는데 필요한 토플 점수는 고작 560점. 아울러, 지만원이 나왔다는 미해군대학원(NPS)과 United States Naval Academy(미해군사관학교)는 다른 기관이다. 다만, 당시 해외위탁 고육을 보내는건 엘리트가 아니면 잘 보내주지 않았다는게 사실이다.
3. 전향[편집]
1990년대까지의 지만원은 조국과 군의 미래를 고민하는 주목받는 민간인 군사평론가이자, 진보세력과도 격의 없이 대화하는 온건 보수 성향의 지식인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동안 쌓아왔던 훌륭한 지식인과 평론가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그렇게 변할수가 있나 라는 전형적인 케이스
김대중이 집권하고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데탕트 분위기가 휘몰아치던 시기에 그리고 2002년부터는[4] 5.18은 북한 특수 부대가 주도한 폭동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들고 나와서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 빼고 모두 빨갱이!"라는 포스를 내뿜는 완벽한 극우 인사가 돼 버렸다.
그와 오랫동안 알아 온 시사IN 정희상 기자의 증언에 의하면, 97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의 당선을 도왔던 사람이, 갑자기 99년 즈음에는 숨겨진 북한 땅굴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사시 보트피플이 되기 위해 본인이 서해에 탈출용 배를 준비할 것이고, ‘빨갱이 DJ’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기사 아래 서술하는 극우 인사가 된 이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김대중이 주장하던 햇볕정책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본인도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김대중의 곁을 떠난 것은 그의 정책에 동조할 수 없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대중이 집권한 이후 본인의 정치적 스탠스를 급격히 전환하여 김대중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96년 총선에서 김대중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한 것 역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여튼 태세 전환 후 이 사람의 주요한 주장은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북한에 핵개발 자금을 퍼줬다', '대한민국은 친북세력에 의해 사실상 적화된 상태다' 등이며, 주 공격 대상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라도, 민주당이다. 김대중과 전라도에 관해선 그야말로 자기 가족을 죽인 불구대천지 원수마냥 난도질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5.18북한군개입설 증거들의 상당수는 이 사람의 출처'이다.
김대중, 노무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 정당이었던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인 이명박과 박근혜에도 만만치 않게 비난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적화를 막지 않고 한국 내 종북세력을 제대로 척결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김무성에 대해서는 아예 인간 취급도 안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극우를 지향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극우 성향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TV조선이 그를 옹호했으나 본진인 조선일보는 2019년, 극우 논객 A씨라면서 상종도 하기 싫은 티를 내고 있다. # 조선일보조차도 지만원을 버린 것.
2000년대 이후 워낙 논란이 많이 되다보니 대중적 이미지는 별로지만, 넷상에서는 지만원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뉜다. 웬만한 우파들도 5.18 북한군 침투설이 헛소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반면에, 이 설은 인터넷 우익들[5]에게만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만원보다 더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인 한승조라는 인물이 있는데도 그 쪽은 인지도가 낮으며, 문서도 이 쪽이 훨씬 더 길다.[6]
김대중이 집권하고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데탕트 분위기가 휘몰아치던 시기에 그리고 2002년부터는[4] 5.18은 북한 특수 부대가 주도한 폭동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들고 나와서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 빼고 모두 빨갱이!"라는 포스를 내뿜는 완벽한 극우 인사가 돼 버렸다.
그와 오랫동안 알아 온 시사IN 정희상 기자의 증언에 의하면, 97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의 당선을 도왔던 사람이, 갑자기 99년 즈음에는 숨겨진 북한 땅굴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사시 보트피플이 되기 위해 본인이 서해에 탈출용 배를 준비할 것이고, ‘빨갱이 DJ’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기사 아래 서술하는 극우 인사가 된 이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김대중이 주장하던 햇볕정책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본인도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김대중의 곁을 떠난 것은 그의 정책에 동조할 수 없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대중이 집권한 이후 본인의 정치적 스탠스를 급격히 전환하여 김대중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96년 총선에서 김대중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한 것 역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여튼 태세 전환 후 이 사람의 주요한 주장은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북한에 핵개발 자금을 퍼줬다', '대한민국은 친북세력에 의해 사실상 적화된 상태다' 등이며, 주 공격 대상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라도, 민주당이다. 김대중과 전라도에 관해선 그야말로 자기 가족을 죽인 불구대천지 원수마냥 난도질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5.18북한군개입설 증거들의 상당수는 이 사람의 출처'이다.
김대중, 노무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 정당이었던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인 이명박과 박근혜에도 만만치 않게 비난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적화를 막지 않고 한국 내 종북세력을 제대로 척결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김무성에 대해서는 아예 인간 취급도 안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극우를 지향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극우 성향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TV조선이 그를 옹호했으나 본진인 조선일보는 2019년, 극우 논객 A씨라면서 상종도 하기 싫은 티를 내고 있다. # 조선일보조차도 지만원을 버린 것.
2000년대 이후 워낙 논란이 많이 되다보니 대중적 이미지는 별로지만, 넷상에서는 지만원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뉜다. 웬만한 우파들도 5.18 북한군 침투설이 헛소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반면에, 이 설은 인터넷 우익들[5]에게만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만원보다 더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인 한승조라는 인물이 있는데도 그 쪽은 인지도가 낮으며, 문서도 이 쪽이 훨씬 더 길다.[6]
4. 시스템클럽[편집]
5. 종북몰이, 광수놀이[편집]
정말로 본인의 말에 조금이라도 반박하면 전부 빨갱이가 되고 전라도 사람으로 변신시켜 준다.
이 사람에겐 이명박, 박근혜, 김무성, 유승민, 새누리당, 조중동, 국가정보원 등 자신의 선동을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이 좌빨이다. 이런 극단적인 성향 때문에 비슷한 우익 계열인 조갑제, 정규재, 변희재, 김진, 전원책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디시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제는 한 때의 아군이였던 일베저장소 짤방게시판에서도 우좀이라며 까인다.
극우논객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조갑제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아서 심지어 조갑제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이게 무슨 경쟁 심리 같은 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차이가 원인이다. 그는 늘 5.18을 '광주 폭동'이라 지칭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후술하는 5.18 항목 참조.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이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려고 하자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내부 반발로 영입이 무산되자 이를 반대한 김성태 사무실 앞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깽판을 치기도 했다.
이 사람에겐 이명박, 박근혜, 김무성, 유승민, 새누리당, 조중동, 국가정보원 등 자신의 선동을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이 좌빨이다. 이런 극단적인 성향 때문에 비슷한 우익 계열인 조갑제, 정규재, 변희재, 김진, 전원책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디시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제는 한 때의 아군이였던 일베저장소 짤방게시판에서도 우좀이라며 까인다.
극우논객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조갑제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아서 심지어 조갑제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이게 무슨 경쟁 심리 같은 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차이가 원인이다. 그는 늘 5.18을 '광주 폭동'이라 지칭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후술하는 5.18 항목 참조.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이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려고 하자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내부 반발로 영입이 무산되자 이를 반대한 김성태 사무실 앞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깽판을 치기도 했다.
6. 각종 망언, 논란거리 및 음모론[편집]
7. 정치 참여[편집]
8. 대외 활동[편집]
대한민국 대청소 500만 야전군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에게 5.18 왜곡 자료를 배포하며, 5.18 당시 계엄군 사망자 묘역을 참배 가기도 한다.
계속 어그로를 끌더니 결국2016년 5월 18일에 유족들에게 법원 앞에서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신을 때리는 사람한테 반격을 하고 멱살을 잡은 사람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는 한편 유족의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가 나게 하였다.
9. 고소 고발[편집]
이 사람의 광주항쟁 모욕 발언을 견디다 못한 5.18 역사왜곡대책위가 결국 2015년 5월 14일 법률 대응을 결정하였다. 광주시는 지만원이 북한군 개입설의 증거로 제시해온 복면 쓴 시민군의 사진의 당사자인 임모와 구모가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기사에는 5월 내로 법적 소송을 내겠다고 하였으나 현재 6월 말까지 별다른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늦춰진 듯 하다.
천주교에서 지만원을 고소했으며, 10월 20일에 고소가 들어갔다.
2017년 8월 초에 선고된 1심에서 지만원과 지만원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낸 언론사 뉴스타운에게 8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더불어 허위사실을 담은 기사나 호외 등의 제작과 발행, 배포를 금지하도록 했다.
지만원이 문근영에 대해 색깔공세를 펴자 진중권이 이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지만원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한편 자신과 정치성향은 정반대이지만 도긴개긴인 어그로꾼 일빠인 김완섭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VS 안티 고소 드립을 날리고 있다. 고로 이 항목도 결코 안전하지 않으니 문서 작성 시 사실 위주로 작성할 것을 권한다.
천주교에서 지만원을 고소했으며, 10월 20일에 고소가 들어갔다.
2017년 8월 초에 선고된 1심에서 지만원과 지만원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낸 언론사 뉴스타운에게 8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더불어 허위사실을 담은 기사나 호외 등의 제작과 발행, 배포를 금지하도록 했다.
지만원이 문근영에 대해 색깔공세를 펴자 진중권이 이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지만원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한편 자신과 정치성향은 정반대이지만 도긴개긴인 어그로꾼 일빠인 김완섭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VS 안티 고소 드립을 날리고 있다. 고로 이 항목도 결코 안전하지 않으니 문서 작성 시 사실 위주로 작성할 것을 권한다.
9.1. 너구리알 고소 사건[편집]
이것 봐. 거기 미친 하이에나처럼 날뛰는 자네. 어차피 한국은 먹힐 짓 한 거니까 먹혔고 그나마 일본에서 먹혔으니까 다행인 걸 왜 몰라? 일본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 줄 알아야지, 이렇게 들쥐처럼 날뛰니까 한국인은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거 아닌가. 나는 피타고라스 같은 수학 정리를 6개나 만든 똑똑한 사람이야. 자네는 독도에 대해 뭘 알고 떠드는가?
그럼 내가 몇가지 묻겠네. 답할 수 있겠나? 하핫, 뭐 메뚜기 같은 놈들이 뭘 알겠나마는.
- 게임 "불멸의 이순신" 내 지만원의 대사 중 일부.
유명 플래시 게임 제작자였던 너구리알(실명 안경상, 2005년 당시 일병, 50사단 근무)이 불멸의 이순신 게임[7]을 만들었다가 지만원에게 군 복무 중 고소를 당하고[8] 여태껏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한 사건.
이로 인해 군사 재판을 받아서 국군교도소를 다녀왔고, 민사상으로도 지만원에게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했으나 400만 원만 인용되었다.
너구리알 고소 관련 판결문
수원지방법원
판 결
사 건 2006가단98732 손해배상(기)
원 고 지만원
피 고 안경상
변론종결 2007. 5. 31.
판결선고 2007. 6. 28.
주 문
1. 피고는 원고에게 400만 원과 이에 대하여 2006. 11.부터 2007. 6. 28.까지는 연 5%,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40%는 원고, 60%는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 구 취 지
5,000만 원과 이제 대하여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 변론종결일까지는 연 5%,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
이 유
1. 별지 청구원인 기재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2. 판단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원고의 실제 사진을 이용하여 이 사건 게임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즈음 언론 매체를 통하여 알려진 원고의 발언 내용을 인용하여 원고를 극단적인 친일파 인물로 묘사하여 게임을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한 행위는 원고의 초상권 및 인격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고는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아가 손해 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살피건대, 피고 스스로 이 사건 게임 삭제를 요청한 점, 이 사건 게임을 이용하여 영리를 취득한 사실이 없는 점, 피고가 이 사건 게임을 제작하면서 고의로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피고가 원고에게 사과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400만 원으로 봄이 상당하다.
3. 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400만 원과 이에 대하여 소장 송달 다음날인 2007. 11. 3부터 항쟁함이 상당한 이 판결 선고일인 2007. 6. 28.까지는 연 5%,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한다.
이후에 나온 버전에선 지만원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된 버전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이 게임의 구버전을 플레이하기 매우 힘들어졌다.[9] 이 사건 때문에 어린 시절 이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에게도 영구까임권을 획득했다.
여기서 '일본의 은혜' 어쩌고 하는 대목은 지만원이 발언한 적이 없다. 조선이 먹힐 만해서 먹혔다는 건 국제 정치의 특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한편 저 게임은 실존하는 국내 인물을 친일파로 묘사했다. 게다가 지만원은 게임 내에서 적 캐릭터로, 이순신의 칼을 맞으며 도망다니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때문에 지만원에게 고발당했고, 경찰은 8개월간의 수사 끝에 게시자를 검거하게 된 것.
여담으로 수학 정리를 6개 만들었다는 것은 그가 해군 대학원 시절 수학 논문을 쓴 것을 말한다. 실제로 그의 이름이 미 해군대학원에 등재되어 있다.
그는 식근론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국제 정치를 철저히 힘의 논리로 인식한다.
10. 근황[편집]
그러다 2017년 12월 10일 드디어 불구속 기소되는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2017년 6월 서울역 앞 집회에서 '광주교도소는 북한 특수군이 공격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인터넷 매체 뉴스타운 게시판에 같은 취지의 사설을 게재했다가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피소된 것. 근데 어차피 2015년 7월~9월부터 뉴스타운을 통해 '특종 1980년 5·18 광주에 황장엽 왔다. 충격 80년 5·18 광주-북한 손잡고 일으킨 내란 폭동. 5·18광주 침투 北 군·관·민 구성 600명 남한 접수 원정대'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하고, 이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으며, 검찰은 그냥 이 두 사건을 하나의 소송으로 병합해 달라고 하는 중인 것이라 어차피 기소될 운명이었나 보다.[10] 결국 뉴스타운과 지만원에 모두 8,200만 원의 배상금을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 씨의 아들이 지만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만원으로부터 북한 특수군인 '제73광수'로 지목당한 5·18시민군 지용 씨(76)도 함께 고소장을 제출했다.
2019년이 되어서도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만원이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잠입했다는 북한 특수부대로 지목한 탈북민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탈북여군장교라고 소개한 김정화 씨는 “저는 1976년 1월 5일생인데 1980년 4살에 어떻게 대한민국 광주에 내려왔다는 건가”라고 지적했으며, 탈북민 강철환씨는 “저는 77년부터 89년까지 12년간 요덕수용소에 있었다”라고 지만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
그런데 2014년 5월 17일자 오마이뉴스에 놀라운 기사가 올라왔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 육군의 원로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2003년 6월경 육군회관에서 열린 친목 모임에 참가한 지만원과 만나서는 "지 박사님의 5·18 시각에 대해 저는 100% 동감입니다. 그런데 저는 용기가 없었고, 지 박사님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만약 저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군 내부에 냉전 극우적 성향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또 지만원이 그런 군 원로들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
GZSS 대표 안정권과 친분이 있고, 안정권이 지만원을 존경한다고 한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 재조사 과정에서 지만원의 주장을 뿌리채 뒤흔드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자 지불하지 않고 있던 배상금을 지불하는 등 일단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이 일어난 가운데 소녀상에 대해서 부끄럽다면서 강제 징용에 대하서 징용이 긍정적이였다는 망언도 해버렸다고 이데일리에서 보도하였다. #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 씨의 아들이 지만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만원으로부터 북한 특수군인 '제73광수'로 지목당한 5·18시민군 지용 씨(76)도 함께 고소장을 제출했다.
2019년이 되어서도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만원이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잠입했다는 북한 특수부대로 지목한 탈북민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탈북여군장교라고 소개한 김정화 씨는 “저는 1976년 1월 5일생인데 1980년 4살에 어떻게 대한민국 광주에 내려왔다는 건가”라고 지적했으며, 탈북민 강철환씨는 “저는 77년부터 89년까지 12년간 요덕수용소에 있었다”라고 지만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
그런데 2014년 5월 17일자 오마이뉴스에 놀라운 기사가 올라왔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 육군의 원로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2003년 6월경 육군회관에서 열린 친목 모임에 참가한 지만원과 만나서는 "지 박사님의 5·18 시각에 대해 저는 100% 동감입니다. 그런데 저는 용기가 없었고, 지 박사님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만약 저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군 내부에 냉전 극우적 성향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또 지만원이 그런 군 원로들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
GZSS 대표 안정권과 친분이 있고, 안정권이 지만원을 존경한다고 한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 재조사 과정에서 지만원의 주장을 뿌리채 뒤흔드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자 지불하지 않고 있던 배상금을 지불하는 등 일단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이 일어난 가운데 소녀상에 대해서 부끄럽다면서 강제 징용에 대하서 징용이 긍정적이였다는 망언도 해버렸다고 이데일리에서 보도하였다. #
11. 기타[편집]
조갑제, 서정갑과 사이가 매우 나쁘다. 조갑제를 상대로 수 차례 경고문을 올리고, 서정갑과는 소송까지 갔을 정도. 이유는 조갑제의 5.18에 관한 평가, 조갑제닷컴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던 지만원에 대한 비방글, 서정갑의 공금 운용 문제, 서정갑의 강연장에서 지만원에 대한 인신 공격 때문이다. 보수 인사이지만 의외로 조갑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직접 광주에 잠입해서 현장을 취재하였으며, 이후로도 꾸준히 5.18을 반공민주화 운동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자료를 가지고 역사 왜곡을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당연히 5.18 북한군 개입설의 원조인 지만원하고 사이가 좋을 리 없다.[11]
지금이 적화 통일 직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맨 위에 있던 움짤은 2016년 5월 19일 5.18에 참여한 시민군을 ‘북한군’으로 주장했던 지만원이 오전 10시 25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525호에서 열린 '정보통신이용촉진법위반' 관련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고 나오자 법정에서 보인 태도와 그동안에 망언에 질릴 대로 질려서 화가 난 30여 명의 5.18관련자들이 지만원을 린치하여 만신창이가 된 지만원이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다.[12]
다만 지만원이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적제재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건을 악화시킨다. 법원에 고소를 했으면 재판이나 기다리자. 괜히 꼬투리 잡힐거리만 주는 행동이기도 하고..
논란 항목에도 있지만 진중권이 논객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그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논쟁 내용 자체는 병맛이었지만 진중권은 자신의 책에서 지만원을 꽤 높이 평가했다. 자세히 말하면 어디까지나 군사전문가인 지만원을 높게 평했다. 군사 개혁이나 군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다만 그 특유의 극우 스탠스가 문제라는 전제가 붙었다.
자유한국당의 친박 극우 성향으로 악명이 높은 김진태 의원이 지만원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며 심지어는 지만원 박사를 존경한다고 언급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만원 박사는 박근혜를 매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김진태가 왜 자신의 주군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지만원을 존경하는지는 의문이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지만원을 "보수의 암적인 존재", "지만원은 안보 사기꾼",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투입되었다는 지씨 주장의 근거는 완전히 허위조작",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는 가설은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것을 믿고 주장하기 위해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씨 주장의 근거는 입증된 게 하나도 없다. 그에 반해 허위조작으로 입증된 건 굉장히 많다." 라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지만원은 하태경 의원을 허위주장으로 고소하였다.#
우남위키에서 부계정으로 활동하는 듯하다.
지금이 적화 통일 직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맨 위에 있던 움짤은 2016년 5월 19일 5.18에 참여한 시민군을 ‘북한군’으로 주장했던 지만원이 오전 10시 25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525호에서 열린 '정보통신이용촉진법위반' 관련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고 나오자 법정에서 보인 태도와 그동안에 망언에 질릴 대로 질려서 화가 난 30여 명의 5.18관련자들이 지만원을 린치하여 만신창이가 된 지만원이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다.[12]
다만 지만원이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적제재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건을 악화시킨다. 법원에 고소를 했으면 재판이나 기다리자. 괜히 꼬투리 잡힐거리만 주는 행동이기도 하고..
논란 항목에도 있지만 진중권이 논객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그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논쟁 내용 자체는 병맛이었지만 진중권은 자신의 책에서 지만원을 꽤 높이 평가했다. 자세히 말하면 어디까지나 군사전문가인 지만원을 높게 평했다. 군사 개혁이나 군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다만 그 특유의 극우 스탠스가 문제라는 전제가 붙었다.
자유한국당의 친박 극우 성향으로 악명이 높은 김진태 의원이 지만원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며 심지어는 지만원 박사를 존경한다고 언급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만원 박사는 박근혜를 매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김진태가 왜 자신의 주군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지만원을 존경하는지는 의문이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지만원을 "보수의 암적인 존재", "지만원은 안보 사기꾼",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투입되었다는 지씨 주장의 근거는 완전히 허위조작",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는 가설은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것을 믿고 주장하기 위해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씨 주장의 근거는 입증된 게 하나도 없다. 그에 반해 허위조작으로 입증된 건 굉장히 많다." 라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지만원은 하태경 의원을 허위주장으로 고소하였다.#
우남위키에서 부계정으로 활동하는 듯하다.
12. 저서 목록[편집]
-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1년)
-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상)(하) (1992년)
-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 (1993년)
- <문민 IQ> (1994년)
- <싱크로경영> (1994년)
-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 (1996년)
- <추락에서 도약으로 시스템 요법> (1997년)
- <국가개조 35제> (1998년)
- <시스템을 통한 미래 경영> (1998년)
- <한국호의 침몰 이대로 가면 진짜 망한다> (2000년)
- <뚝섬 무지개> (2009년) : 내용의 상당부분은 <나의 산책세계>의 재탕이다.
- <발상전환을 위한 ACTIVATOR 시스템 경영> (2009년)
- <12.12와 5.18-수사기록으로 본 다큐멘터리 역사책 압축본> (상)(하) (2009년)
- <솔로몬 앞에 선 5.18> (2010년)
- <사상 최대의 군 의문사: 530GP> (2010년) : 박영섭 , 전제용, 이찬호, 김용배, 송영인, 지만원 공저
- <오욕의 붉은 역사 제주 4.3 반란 사건> (2011년)
- <5.18분석 최종 보고서> (2014년)
이 중에서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까지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시스템에 의한 군대 개혁, 사회 혁신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5.18 분석 최종 보고서>는 지만원의 5.18 관점을 집약한 책이다.
[1] 총 두 번 결혼했으며, 3녀는 전처 소생, 1남 1녀는 현재 부인 소생이다.[2] 이것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김대중 주변 측근들간의 권력 암투에서 밀려났다는 썰, 두번째는 첫째의 연장선상에서 16대 총선에서 전국구 공천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스스로 떠났다는 썰, 셋째는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리당했다는 썰이다.[3] 참고로, 사생활에 관한 루머는 오랜 시간 지만원을 괴롭혔고, 후술하는 조갑제와의 갈등에도 영향을 끼쳤다.[4] 북한 특수부대 이야기를 시작한건 2002년 8월 16일 동아일보와 문화 일보에 광고를 내면서부터이다[5] 넷우익 = 극우로 보면 된다. 넷상에서 목소리가 큰 세력들은 일반적으로 극단주의 세력이다.[6] 참고로 아래의 9.1 문단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너구리알이라는 네티즌이 만든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에서 각각 첫 라운드와 중간 보스로 등장한다.[7] 고이즈미 준이치로같이 일본의 식민 침탈을 미화하는 한국인 공공의 적들이 이순신한테 신나게 썰리며 독도를 지킨다는 내용이다.[8] 군인복무규율은 입대 전에 올린 글도 해당된다.[9] 참고로 구버전을 보유하고 있는 한 유튜버가 있다.[10] 김선웅, '검찰, "5·18에 북한군 개입" 지만원 불구속기소', 뉴시스, 2017년 12월 10일[11] 실제로 조갑제와 서정갑은 5.18 민주화 운동을 반공 민주화 혁명이라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지만원은 그야말로 북한 간첩 혹은 우파를 참칭한 정신병자로만 취급하는 게 현실.[12] 그런데 이 관계자들이 지만원뿐만 아니라, 이 싸움을 말리던 정 모 씨(69)와 법원경찰관, 그리고 사회 복무 요원도 폭행을 하여 논란이 되고있다. 위 움짤은 지만원이 집단 구타를 당하다가 도망치던 도중, 한 5.18단체 여성회원이 지만원의 도주를 막기 위해 붙잡으려 하자 그걸 피하기 위해 때려 뿌리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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