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shi Fujii
9 hrs ·

몇명한테 전화해서 몇시간 이야기 들었다고 '현장'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대로' 하려는 연구자나 활동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려면 몇년씩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알 권리'라는 이름의 무책임한 관음증은 이제 그만 집어치웠으면 한다.
9 hrs ·

몇명한테 전화해서 몇시간 이야기 들었다고 '현장'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대로' 하려는 연구자나 활동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려면 몇년씩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알 권리'라는 이름의 무책임한 관음증은 이제 그만 집어치웠으면 한다.
덧) 사실 이 기획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는 나한테도 연락을 했었다. 그래서 1시간 정도 통화를 했는데, 한겨레에도 쓴 것처럼 우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놓인 조건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에게 이 기자는 집요하게 정대협/정의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캐물었다.
옛날에 역문연 연구실장이 됐을 때 중앙일보 기자랑 2시간 정도 통화한 것이 생각난다. 그는 당시 화제였던 민문연의 <100년 전쟁>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내 입에서 끌어내려고 계속 그 얘기만 했고 나는 단호하게 <100년 전쟁>을 옹호했다. 물론 내가 <100년 전쟁> 식의 역사인식을 좋아할 리가 없지만 그건 중앙일보에다 대고 할 소리가 아니다. 아무튼 내가 점심 시간 포기하면서 했던 얘기는 과연 경향 지면에 반영될까...

Kija Choi18 hrs
이 기사 너무 악의적이라 무시하려고 했으나 하루종일 깊은 우울감+빡침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또 한마디 거든다.
1.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연구자들은 할머니 인터뷰부터 기초 자료까지 모두 정의연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정의연이 곧 피해자이자 한국 입장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정의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 증언집 작업을 위해 할머니들을 만날 때 모든 팀원들은 할머니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해야했다. 내가 만난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군청 여성복지과 직원들이었는데 첫 번째 방문은 물론이고 두 번째 방문 때도 공무원이 같이 가기도 했다. 증언6집 작업에 참여했던 정대협 활동가들도 할머니를 방문할 때는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대협 활동가들도 생존자복지 담당자 외에는 수요시위에 안 나오시는 할머니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담당공무원에게 연락을 하면 공무원이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사람이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들으러 온다는데 괜찮겠는지 확인하고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아주거나, 할머니 댁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군청 앞에서 만나 할머니 집까지 같이 가거나 한다. 그게 너무 당연한게 ‘위안부’로 정부에 신고했다고 해서 활동가들이, 연구자들이 아무 때나 불쑥 불쑥 찾아오는 것을 견뎌야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라며 마이크를 들이밀 때 항상 이야기를 해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다. .
2000년대 초반엔 젊은 외국인 연구자들이 몇 달동안 매주 수요시위에 나와 할머니들과 라포를 형성한 후 할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봐서 할머니 댁에 찾아가 영상을 찍거나 증언을 듣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건 정대협에서 어떻게 연결을 해줄 수도 연결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질적연구에서 인터뷰이와의 라포형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기사에서 익명을 요구한 연구자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할머니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저 정대협에 할머니 정보를 달라고 전화를 한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려고 했다면 본인의 연구윤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운동을 주도한 정의연은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들을 운동에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지지·용인하는 범주의 문제에 더해, 사회운동 특성상 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메시지가 선명하고 단순화돼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담론을 정의연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연구는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 정의연 입장에서는 이 운동을 전시성폭력 문제, 전쟁과 여성인권의 문제로 꾸준히 확장해 왔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운동이 언론에서 ‘사용된’ 방식은 민족주의 메시지로 단일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은 연구자에 대한 너무나 심한 모욕이다. 정의연이 삼성처럼 장학금이나 기금을 연구자들에게 풀어 정의연 휘하에 두고 있다는 말처럼 모욕적이다.
일본군‘위안부’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즉 이 기사에서 말하는 민족주의 담론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 아래 두 글로 판단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합적이고도 다면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한 증언자들의 자기재현에 주목한다. 자신을 재현하는 증언자들의 구술에서는 정형화된 위안부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일본군에 대한 원한은 일본군 장교와의 사랑과 공존하기도 하고, 애기집을 강탈당한 현생의 원한이 아들 낳고 살아보는 후생에의 바람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독립운동가의 딸로서의 자부심은 다른 위안부들의 삶을 ‘더러운’ 과거로 치부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증언자를 쉽게 민족주의의 투사로 상상하고, 그러한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나 의식을 예외적인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증언자들은 여러 가지 지배 이데올로기들을 내면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들에 자생적으로 저항하는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단지 과거의 ‘위안부’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불굴의 생명력과 의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뚫고 한국사회의 불리한 조건을 뚫고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의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층적인 주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시선을 개방시키고자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2001),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서론 中
“이 책에서는 동원과정만을 부각시켜 일본군‘위안부’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간“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 민족담론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경험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거대담론 아래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기억을 국가나 민족 담론 내에 위치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존의 역사 담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위안부’ 생존자의 경험을 민족주의 담론으로 단일하게 읽어냈던 통합전략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경험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그동안 민족사가 전유해왔던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여성들의 역사’로 되가져오는 작업이자 경험 당사자의 시선과 기억으로 민족을 다시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2004),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서론 中
30년간 굵직한 성과 이어온 ‘위안부 운동’…학계로 눈돌리면 해방 후 발표된 박사 논문 12건 불과기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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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②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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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Yuik Kim, Bongsik Kim and 4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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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Sejin Pak 선생님. 타케시 선생님 글의 공유가 안돼 링크겁니다.

Kija Choi18 hrs
이 기사 너무 악의적이라 무시하려고 했으나 하루종일 깊은 우울감+빡침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또 한마디 거든다.
1.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연구자들은 할머니 인터뷰부터 기초 자료까지 모두 정의연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정의연이 곧 피해자이자 한국 입장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정의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 증언집 작업을 위해 할머니들을 만날 때 모든 팀원들은 할머니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해야했다. 내가 만난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군청 여성복지과 직원들이었는데 첫 번째 방문은 물론이고 두 번째 방문 때도 공무원이 같이 가기도 했다. 증언6집 작업에 참여했던 정대협 활동가들도 할머니를 방문할 때는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대협 활동가들도 생존자복지 담당자 외에는 수요시위에 안 나오시는 할머니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담당공무원에게 연락을 하면 공무원이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사람이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들으러 온다는데 괜찮겠는지 확인하고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아주거나, 할머니 댁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군청 앞에서 만나 할머니 집까지 같이 가거나 한다. 그게 너무 당연한게 ‘위안부’로 정부에 신고했다고 해서 활동가들이, 연구자들이 아무 때나 불쑥 불쑥 찾아오는 것을 견뎌야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라며 마이크를 들이밀 때 항상 이야기를 해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다. .
2000년대 초반엔 젊은 외국인 연구자들이 몇 달동안 매주 수요시위에 나와 할머니들과 라포를 형성한 후 할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봐서 할머니 댁에 찾아가 영상을 찍거나 증언을 듣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건 정대협에서 어떻게 연결을 해줄 수도 연결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질적연구에서 인터뷰이와의 라포형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기사에서 익명을 요구한 연구자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할머니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저 정대협에 할머니 정보를 달라고 전화를 한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려고 했다면 본인의 연구윤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운동을 주도한 정의연은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들을 운동에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지지·용인하는 범주의 문제에 더해, 사회운동 특성상 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메시지가 선명하고 단순화돼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담론을 정의연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연구는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 정의연 입장에서는 이 운동을 전시성폭력 문제, 전쟁과 여성인권의 문제로 꾸준히 확장해 왔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운동이 언론에서 ‘사용된’ 방식은 민족주의 메시지로 단일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은 연구자에 대한 너무나 심한 모욕이다. 정의연이 삼성처럼 장학금이나 기금을 연구자들에게 풀어 정의연 휘하에 두고 있다는 말처럼 모욕적이다.
일본군‘위안부’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즉 이 기사에서 말하는 민족주의 담론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 아래 두 글로 판단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합적이고도 다면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한 증언자들의 자기재현에 주목한다. 자신을 재현하는 증언자들의 구술에서는 정형화된 위안부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일본군에 대한 원한은 일본군 장교와의 사랑과 공존하기도 하고, 애기집을 강탈당한 현생의 원한이 아들 낳고 살아보는 후생에의 바람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독립운동가의 딸로서의 자부심은 다른 위안부들의 삶을 ‘더러운’ 과거로 치부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증언자를 쉽게 민족주의의 투사로 상상하고, 그러한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나 의식을 예외적인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증언자들은 여러 가지 지배 이데올로기들을 내면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들에 자생적으로 저항하는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단지 과거의 ‘위안부’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불굴의 생명력과 의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뚫고 한국사회의 불리한 조건을 뚫고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의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층적인 주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시선을 개방시키고자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2001),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서론 中
“이 책에서는 동원과정만을 부각시켜 일본군‘위안부’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간“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 민족담론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경험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거대담론 아래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기억을 국가나 민족 담론 내에 위치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존의 역사 담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위안부’ 생존자의 경험을 민족주의 담론으로 단일하게 읽어냈던 통합전략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경험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그동안 민족사가 전유해왔던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여성들의 역사’로 되가져오는 작업이자 경험 당사자의 시선과 기억으로 민족을 다시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2004),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서론 中
30년간 굵직한 성과 이어온 ‘위안부 운동’…학계로 눈돌리면 해방 후 발표된 박사 논문 12건 불과기존 관...

NEWS.KHAN.CO.KR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②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30년간 굵직한 성과 이어온 ‘위안부 운동’…학계로 눈돌리면 해방 후 발표된 박사 논문 12건 불과기존 관...30년간 굵직한 성과 이어온 ‘위안부 운동’…학계로 눈돌리면 해방 후 발표된 박사 논문 12건 불과기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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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Sejin Pak 선생님. 타케시 선생님 글의 공유가 안돼 링크겁니다.
한국 언론의 문제를 솔직히 너무 모르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과 정의연이 한국언론에서 선정적 혹은 악의적으로 다뤄지는 문제는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한국언론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실 수 없다면 인용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의미에서 한때의 흐름에 의해 박유하 교수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비판/비난을 받은 것과 똑같은 오류를 (그 때 미디어는 박교수를 죽이는 편에 서서 그의 주장을 왜곡하는 역할을 했을 겁니더) 저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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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shi Fujii 공유는 될 텐데 이상하네요. 저 보고 한국 언론의 문제를 너무 모른다고 하시는 줄 알고 순간 긴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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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Takeshi Fujii 기사 링크만 공유돼서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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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shi Fujii 아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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