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에 희생된 어린 소녀들이 왜 '전쟁의 신'이 돼야 하나"
입력 : 2014-10-16 19:47:07 수정 : 2014-10-16 23:02: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아베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 소송 제기한 세키 지에코“나는 (1945년) 8월6일 우연히 학교를 쉬는 기적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 ‘야스쿠니(靖國)의 신’이 됐을 것입니다. 나는 이 소송의 원고가 된 것을 ‘영령에 의한 소송’, ‘영령에 의한 이의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도쿄지방법원에서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제기된 위헌 소송 1차 구두변론. 원고단 대표인 세키 지에코(關千枝子·82)는 늠름한 목소리로 이 같은 의견을 진술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1년 전이던 1944년 5월 어느 날 ‘현립히로시마 제2고등여학교’ 1학년(현재의 중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의 단체사진. 얼굴이 드러난 이들은 피폭으로 사망했고, 나중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다. (×)가 그려진 이는 피폭자 중 유일한 생존자이다.
현립히로시마 제2고등여학교 2학년(현재의 중학교 2학년)이던 세키는 ‘그날’ 병으로 집에서 쉬는 ‘기적’이 있었지만, 급우들은 시청 뒤편의 건물 해체작업에 동원된 뒤 원자폭탄에 피폭돼 급우 39명 중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급우들은 전후 ‘준군속’으로 인정돼 1963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세키는 이날 “야스쿠니신사는 전사자를 영령으로 찬양하고, 국가의 수호신이자 ‘신’으로서 기도하는 곳”이라며 “원폭으로 무참하게 죽은 어린 소녀들이 왜 ‘전쟁의 신’인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진술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아베 총리에 대한 규탄이자, 일본 헌법이 정한 정교분리를 위반했음에도 아베 총리의 참배를 받아들인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절규였다. 세키를 비롯한 일본 시민과 종교인, 한국인 20명 등 273명은 지난 4월 아베 총리와 야스쿠니신사 측을 상대로 원고 1인당 1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야스쿠니신사 추계예대제(17∼20일)를 앞두고 지난 8일 이치가야역 근처에서 세키를 만났다. 접이식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그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야스쿠니신사나 히로시마 피폭, 원전 재가동 등 현안에 대해 얘기할 땐 쩌렁쩌렁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2001∼2006년) 야스쿠니에 갔을 때에는 전국 6곳에서 소송이 있었는데, 아베 총리의 경우 현재 도쿄와 오사카 2곳에서 소송이 제기됐다. 오사카에선 대만인 등 500여명이 제소했다. 대표가 된 건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이즈미 소송 때에도 원고였고, 소송의 제안자였으며, 나이도 많아 그런 것 아니겠느냐. (제2차 구두변론은) 12월1일 예정돼 있다. 고이즈미 소송 때에는 약 3년 정도 걸렸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 헌법 20조는 정교분리를 규정, 국가가 종교에 관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것을 알면서도 특정 종교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괘씸하다. 그는 ‘사적 참배였다’고 말하지만 모두에게 알리고 공용차를 타고 간 것 등은 어떻게 생각해도 공적 참배이다. 고이즈미 총리 때와 다른 건 이번엔 야스쿠니신사도 피고로 했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측은 위헌임을 알고도 그의 참배를 받았다. 아베 총리가 공용차도 타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무도 몰래 혼자 조용히 참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기에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는 총리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보통의 신사가 아니라, 2차 대전 전에 육군과 해군이 직할한 독특한 신사였다. 군 시설이었다. 일본 젊은이들은 ‘왜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을 참배하면 안 되는가’라고 묻지만,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게 아니라 찬양하는(호메다다에루) 곳이다. ‘전쟁 추진의 신사’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5월 ‘야스쿠니신사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다’고 주장했는데.
“전혀 다르다. 미국의 알링턴은 종교와 상관없는 단순히 시신을 안장하는 단순 묘지인 반면, 야스쿠니는 묘지가 아니라 영혼(다마시이)만을 가지고 가서 참배하는 시설이다. 알링턴은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야스쿠니신사는 그쪽에서 결정하면 거부도 불가능하다. (한국인 등) 자신이 싫다고 하면 합사에서 빼는 걸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다. 이번 원고단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데, 그것은 전쟁 당시 ‘기독교 신과 일본 가운데 누가 좋으냐’는 식으로 강제로 합사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단순히 ‘군국의 상징’만이 아니라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어 더 부정적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전쟁’(중·일 및 태평양전쟁)이 나쁘다고 인정하지 않기에, ‘좋은 전쟁’이거나 ‘자위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기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서 A급 전범도 합사한 것이다. 전후에도 전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군인 및 군속만이 아니라 어린 중학생들도 합사됐다는데 사실인가.
“히로시마 원폭 당시 6000명 이상의 학생이 죽었는데, 이는 히로시마 중학교 1, 2학년의 약 70∼80%에 달한다. 나중에 군인과 군속 이외에 준군속 제도가 생기면서 이때 죽은 급우들도 합사됐다. 1970년대 취재과정에서 이를 알게 돼 매우 불쾌했다. 12, 13세에 불과한 급우들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건 말도 안 된다.”
―한국인 20명도 소송에 참여했는데.
“한국인들은 자신의 가족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합사가) 싫다고 하는 한국인들을 합사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자신들은 종교의 자유라고 말하지만, ‘(합사가) 싫다’고 말하는 것도 종교의 자유이기에 보장돼야 한다.”
―야스쿠니신사의 대안이 무엇인가.
“그들도 종교이고 신자도 있기에 대안을 말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이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국가시설로 하려고 했지만 헌법 20조 때문에 실패하자, 지금은 어떻게든 정부 고위인사들의 참배를 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1944년 당시 세키 지에코
―히로시마 원폭 당시를 기억하는가. 전쟁의 무서움을 그린 만화 ‘하다시의 겐’에도 자세히 나오는데.
“어머니 일 때문에 고교시절까지 히로시마에 살았고 대학시절 이후에는 계속 이곳에 살고 있다. 나는 ‘그날’ 병으로 학교를 나가지 않고 3㎞ 떨어진 실내에 있어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급우들은 원폭 투하지점에서 1㎞ 떨어진 시청사 뒤편의 건물 해체작업에 동원됐다가 피폭돼 전부 숨졌다. ‘하다시의 겐’의 작가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 상당히 피폭됐던 것 같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한국 사람도 많았다.”
―원자폭탄 피폭에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도 아베 정부는 원전재가동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원폭을 당한) 히로시마 사람들도 처음 원전이 만들어질 때 잘 몰라 원전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東海村)에 처음 원전이 들어설 때도 서로 유치하려고 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났을 때에도 일본은 기술이 있어 그런 일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다수였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원전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옛날부터 원전에 반대했지만 소수파였다. 원전 재가동을 하려는 아베 총리의 인기가 오히려 높다.”
―최근 일본 내에서 피해만 이야기되고 가해의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옛날보다 (가해의 사실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됐지만, 가해의 역사를 아는 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거나 ‘이지메(집단 따돌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점점 전쟁의 기억이 사라지고 일본의 전쟁이 좋지 않았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아베 총리가 그래서 무섭다. 독일과 폴란드, 네덜란드 등처럼 우리도 교과서를 함께 만들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대담=글·사진 김용출 도쿄 특파원
■세키 지에코 프로필
▲1932년 3월 출생(82세)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급우 39명 중 38명 사망(1963년 야스쿠니신사 합사)
▲마이니치신문(1954∼1967)을 거쳐 전문지 ‘전국부인신문’(1980∼1997)에서 기자 및 편집장 근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위헌소송 참여
▲2014년 4월 원고단 대표로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2013) 위헌소송 제기
▲‘현립히로시마 제2고등여학교 2학년 4반’(1985) ‘도서관의 탄생-히노(日野)시립도서관의 20년’(1986) ‘이 나라는 무서운 나라―또 하나의 노후’(1988) 등 저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