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8
“참전 반대가 한반도 평화 위한 길”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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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반대가 한반도 평화 위한 길”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승인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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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가 박성준씨/“사회적 모순·제도적 폭력에 깨어 있어야”평화운동가이자 평화학자인 박성준씨(63)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고,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을 살았다. 그러다가 1981년 겨울, 13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 그는 삶의 행로를 바꾸었다. 기독교에 귀의해 교회공동체 운동을 벌였으며, 일본에 유학해서 신학박사 학위(릿쿄 대학)를 받았다. 그 후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과 펜실베이니아 퀘이커 공동체 ‘펜들 힐’에서 3년 동안 ‘평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또다시 변했다. 퀘이커 교도이자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현재 비폭력 평화연대와 ‘아름다운 가게’ 공동 대표를 맡고 있으며, 수행과 교육 공동체 ‘움직이는 학교’를 이끌고 있다. 또 2001년부터 성공회대 NGO대학원 겸임 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명숙 환경부장관은 그의 부인이면서 오랜 동지이다. 미군의 바그다드 진격이 코앞으로 닥쳐왔던 4월4일 아침, 그를 서울 신정2동 자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했다.
정부나 의원들의 고뇌는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계산만으로 참전하기에는 너무 부당한 전쟁이다. 국제적인 불이익이 있더라도 참전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참전 반대운동이나 미국의 침략에 반대하는 운동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하는 길이며, 참여정부를 돕는 길이다.
영국이라도 참전하지 못하게 막았다면 미국 홀로 전쟁을 벌이지는 못했을 텐데. 그 점은 지금도 아쉽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군수산업이 국가의 중추에 자리잡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반전 평화 운동만이 아닌 전쟁의 원인 자체를 없애기 위한 평화운동이 절실하다.
전쟁으로 지구가 절멸할 수도 있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위기를 평화로 바꿀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평화학과 평화운동이 태동했다. 그러나 반전만으로 진정한 평화에 이를 수는 없다. 다스굽타나 요한 갈퉁이 지적했듯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평화운동은 최근까지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평화라는 구호가 너무 나이브하게 비쳤던 것 같다. 그러나 9·11 사건 이후 미국의 ‘반테러 전쟁’과 북한 적대 정책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커지자 평화운동이 새롭게 인식되었고 활발해지고 있다. 가령 촛불시위는 대단히 새로운 평화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평화의 물결을 이뤘다. 평화운동가들은 이런 시민들의 창조성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내면의 평화만으로 세상의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나는 내면의 평화를 수행하면서 내 마음이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고 깊고 따뜻하게 깨어있기를 바란다. 평화는 신앙 문제이기보다는 실천 문제이고, 사회과학 문제이다 전쟁은 너무 희생이 크다. 전쟁 이후 나타날 후유증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이 행사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들의 노골적인 이해를 분식(粉飾)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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