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혁명 | 한길그레이트북스 150
함석헌 (지은이),함석헌선집 편집위원회 (엮은이)한길사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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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함석헌 선집 3권.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한 함석헌 선생의 글 중 대표적인 글 94편과 시 11편을 모았다. 함석헌학회와 한길사가 선생 탄생 115주년, 한길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기획했다. 선생의 사상이 농축된 글들을 선정해 분야별로 정리했으므로 통독하면 함석헌사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각 권에 권별 해제와 선집을 아우르는 전체 해제를 넣어 독자가 함석헌의 사상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제3권 '인간혁명'은 실천의 문제를 다룬 글을 모았다. 실천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폭력 평화운동의 가치를 밝힌다. 그 틀에서 '같이살기 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의의를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오늘날 필요한 혁명의 철학을 정립한다.
목차
『함석헌선집』을 발간하면서
혁명으로 꿈틀대는 정치 그리고 인간
제1부 새 윤리
제2부 저항의 철학
제3부 같이살기 운동을 일으키자
제4부 오월을 생각해본다
제5부 새 교육
제6부 인간혁명
함석헌사상의 갈래와 특성
함석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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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함석헌 (지은이)
일제하의 민족 운동가, 그리고 이후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이자 종교·평화 사상가로서 끝없는 실천의 인생을 산 함석헌(咸錫憲)은 아버지 함형택(咸亨澤)과 어머니 김형도(金亨道) 사이에서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6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로서의 진로를 결정,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갈 생각으로 평양의 관립인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2학년이던 1917년 8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웃 마을에 살던 황득순(黃得順)과 결혼을 한다(슬하에 2남 5녀). 3학년이 되던 1919년에 당시 숭실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친척 형 함석은이 찾아와 평안남북도 학생 운동의 책임을 그에게 맡기고 역사적인 3·1 운동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의사를 꿈꾸던 함석헌의 생애는 크게 바뀌게 된다.
3·1 운동 참여 이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 함석헌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수리조합에서 조합원 일을 하며 2년 간 방황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일단 학업을 이어 나가기 위해 경성으로 가게 된다. 신학기 시작을 놓쳐 입학할 학교를 찾지 못했던 그는 함석규 목사의 추천을 받아 1921년 정주의 오산중학교 3학년으로 입학한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유학길에 오른 함석헌은 고심 끝에 교육자로서의 진로를 정하고 이듬해 도쿄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甲組)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당시 일본식 국가주의로 무장된 직업 교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의 수업 과정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평생 친구가 되는 김교신(金敎臣)과 친분을 가지게 되고 이어 그가 나가고 있던 우치무라 간조의 성경 연구 모임에 같이 참여하게 되면서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김교신을 포함해 여기서 만난 조선인 친구들(유석동,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6명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성서 연구를 지속하면서 1927년 7월 동인지 성격의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도쿄에서 창간한다. 창간호(국판 44쪽)에 발표된 <먼저 그 의를 구하라>는 활자화된 함석헌의 첫 번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928년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함석헌은 귀국 후 오산학교에 부임해 역사와 수신(修身)을 가르친다. 한편으로는 ≪성서조선≫을 발행하면서 ‘성서조선 독자회’를 열고 다수의 글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지만 그의 무교회주의 방식의 신앙 운동은 기존 기독교인들에게 배척을 받기도 한다.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종교 사상을 개척해 나가던 함석헌은 1933년 12월 30일부터 이듬해 1월 5일까지 송두용의 집(서울 오류동)에서 가진 성서 모임에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 초고를 발표하고 토론을 거친 뒤 2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성서조선≫에 연재한다. 일제에 의한 조선의 역사 왜곡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이 글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이 글은 일제 당시 검열로 삭제되었던 부분을 포함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1950. 3. 28), 이후에는 ‘성서적 입장’을 빼고 대폭 수정해 ≪뜻으로 본 한국 역사≫(1962)로 제목을 변경·출간했는데 민중의 고난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씨? 사관’을 보여 주는 그의 중요한 저술이다.
일제 말기 점점 노골화되던 식민지 교육 정책 속에서 창씨개명과 일본어 교육이 강조되자 더 이상 선생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함석헌은 1938년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과수원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이해에 자식 둘을 홍역으로 잃는다. 1940년 평양 송산리의 송산(松山)농사학원을 인수해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전 주인이었던 김두혁(金斗赫)이 도쿄로 유학 가서 도쿄농과대학 조선인 졸업생들과 만든 소위 ‘계우회(鷄友會)’ 모임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함석헌도 연루자로 검거되어 1년 여 동안 평양의 대동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결국 농사학원은 폐원되었고, 아버지는 옥살이 중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1942년 3월 ≪성서조선≫에 김교신이 쓴 권두언을 문제 삼은 일제의 폐간 조치와 더불어 함석헌 역시 연루자로 지목되면서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다. 출소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중 오랜 벗이자 스승의 관계였던 김교신의 사망으로 인한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해방 공간에서 여러 자리에 불려 다니며 평안북도 임시 자치 위원회 문교부장을 맡기도 하였으나,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인 ‘신의주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소련군 사령부에 의해 체포되어 평안북도 경찰부 유치장에 또다시 50여 일을 감금당하고 만다.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산학교에 뿌려진 반정부 전단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또다시 투옥된다. 별다른 용의점이 없어 한 달 만에 석방되었으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때문에 당시 내려진 ‘지주 숙청령’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결국 1947년 월남을 감행한다. 1년여 후 아내와 자식 일부도 월남했으나, 어머니는 내려오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된다.
월남 직후 오류동 노연태의 집에서 지내면서 YMCA 강당에서 일요 종교 집회를 시작하고, 유영모 선생 등과 함께 모임을 가지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 김해 등지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때 가진 한 성서집회에서 그간의 무교회주의와 결별하는 신앙적 변화를 겪게 된다. 퀘이커(Quaker)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으로 여긴다. 휴전 이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강연 활동과 양계장을 하며 어렵게 삶에 정착해 나가는 가운데 ≪말씀≫, ≪편지≫ 등의 신앙 잡지에 여러 글을 발표한다. 그중 1956년 ≪사상계≫ 1월호에 발표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기독교의 타락상과 계급화를 비판했는데, 이 글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에도 함석헌은 ≪사상계≫에 영향력이 큰 글들을 발표하면서 장준하와 함께 군사 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는 길을 걷게 된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꿈꾸어 왔던 ‘이상촌’을 위해 기증(정만수 장로)받은 천안(봉명동)의 땅에서 교육과 농사를 함께하는 공동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의 이름을 ‘씨?농장’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직접 번역해 책으로 출간한 간디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58년 8월호 ≪사상계≫에 발표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20여 일간 구금되는, 이승만 정권 시기 대표적인 필화 사건을 겪는다. 함석헌의 첫 번째 정치 평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로 인한 필화 사건 이후 함석헌은 오히려 왕성하게 글들을 발표하면서, ‘씨?농장’에서 시국을 참회하는 단식 투쟁을 전개하는 등 사회적인 목소리를 높여 간다. 1961년 ≪사상계≫ 7월호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게 된 당시 군부 정권을 비판하는 글 <5·16을 어떻게 볼까>로 인해 사장이었던 장준하와 취재부장이 중앙정보부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당시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때문이었는지 정작 함석헌을 체포하지는 못했다.
1962년 2월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3개월 예정 방미 길에 오른다. 귀국한 직후 7월에 오산학교 강당에서 귀국 강연회(오산학교 동창 주최)를, 이어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상계≫주최의 시국 강연회를 연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기마 경관대까지 출동한 이 강연회를 함석헌은 스스로 ‘사회 참여의 시작’으로 보았는데, 이후 장준하와 더불어 활발한 강연을 통해 군사 정권의 잘못을 꾸짖는 한편 굴욕적인 한일 협정의 비준을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 1965년에는 이를 위해 각 분야 인사 30여 명이 결성한 조국 수호 국민 협의회의 상임 대표로 선출되기도 한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을 위한 개헌을 앞두고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한편, 1970년에는 4·19혁명 10주년에 맞추어 개인 잡지 성격의 월간지 ≪씨의 소리≫를 창간하지만 두 달 만에 폐간 조치를 당하게 된다. 이후 법정 투쟁 끝에 승소해 이듬해 8월에야 복간호로 3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71년에는 이후 1988년까지 지속된 ≪노자≫와 ≪장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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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집」은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한 함석헌 선생의 글 중 대표적인 글 94편과 시 11편을 모았다. 함석헌학회와 한길사가 선생 탄생 115주년, 한길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기획했다. 선생의 사상이 농축된 글들을 선정해 분야별로 정리했으므로 통독하면 함석헌사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각 권에 권별 해제와 선집을 아우르는 전체 해제를 넣어 독자가 함석헌의 사상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함석헌전집」(전 20권)과 「함석헌저작집」(전 30권)을 저본으로 삼고 각 글이 최초 게재되었을 때의 원본과 대조해 완성도를 높였다.
함석헌학회·한길사
공동기획의 의의
함석헌학회는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세워졌다. 함석헌사상의 철학적 연구는 오늘날 우리 철학계가 중요하게 다루는 화두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는 함석헌사상을 소개하는 특별분과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만큼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서 그의 글은 끊임없이 다시 읽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함석헌 선생이 남긴 방대한 글과 강의록 등을 발굴하고 정리해 책으로 내는 것이다. 한길사는 지난 40년 동안 이 작업을 꾸준히 해오며 인문학 출판사로서 ‘우리 사상가’를 ‘우리 독자’에게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그중 대표적인 책으로는 「함석헌전집」(전 20권), 「함석헌저작집」(전 30권),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간디 자서전」 「바가바드 기타」 등이 있다.
「함석헌선집」은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소중히 이어온 함석헌학회와 한길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이다. 함석헌학회 명예회장 이만열 명예교수, 함석헌학회 회장 김영호 명예교수, 함석헌학회 부회장 이재봉 교수, 함석헌학회 고문 김제태 원로목사가 주축이 되어 함석헌선집편집위원회를 꾸렸다. 선생의 사상을 열심히 공부해온 두 곳이 합심해 완성해낸 기획이니만큼 국내 학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씨’에서 ‘혁명’까지
함석헌사상의 고갱이를 아우르다
「함석헌선집」은 함석헌 선생이 남긴 방대한 글 중 “사상적으로 의미가 깊은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는지, 독창적인 사유와 발상의 전환을 꾀했는지, 사회개혁의 원리와 방법을 논했는지, 생애의 전환점을 기술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아 수록할 글을 선정했다.”
특히 선생의 핵심사상을 기준으로 각 권을 구성해 일목요연하게 함석헌사상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제1권 「씨의 소리」는
기독교와 동양종교 그리고 역사에 대한 글을 모았다. 기독교 정신의 참뜻은 무엇이며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불교를 재해석해 숨은 정신이 무엇인지 밝혔다. 무엇보다 그러한 뜻과 정신이 역사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함석헌 선생의 고유 개념인 ‘씨’을 들어 설명한다.
“씨은 믿음으로 전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제 모자람을 스스로 알면서도, 누구를 가르치잔 것도 아니요
누구에 추종하잔 것도 아니요
다만 전체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겸손하게 열린 마음으로
모든 씨들이 제 소리를 할 수 있게 될 때
전체의 소리, 소리 아닌 소리를 듣고 입으로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肉)이 되어 우리 가운데 왔다는 것이고,
그 말씀은 곧 창조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역사는 새 단계에 오르게 됩니다.”_ 제1권 636쪽
제2권 「들사람 얼」은
민중과 민족 그리고 통일 문제를 다룬 글을 모았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주의·민족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뜻’으로 대표되는 보편적인 역사관이 필요함을 밝힌다.
“문명은 병이다.
역사상의 어느 문명도 제 속에서 난 원인 때문에
망하지 않은 문명이 없다.
그럴 때면 반드시 소수의 들사람이 나타나서 썩어져가는
백성을 책망하여 맘속에 잃어버린 야성을 도로 찾도록
부르짖는다. 그 말을 들으면 살아났고 아니 들으면 죽었다.
들사람이여, 옵시사!
와서 다 썩어져가는 이 가슴에 싱싱한 숨을 불어넣어줍시사!
빈 들에 외쳐라!” _ 제2권 493~495쪽
제3권 「인간혁명」은
실천의 문제를 다룬 글을 모았다. 실천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폭력 평화운동의 가치를 밝힌다. 그 틀에서 ‘같이살기 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의의를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오늘날 필요한 혁명의 철학을 정립한다.
“사람이 고쳐 된다는 것은 정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드시 성인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새 정신은 새 시대에 있다.
새 시대의 정신에 몸을 던지란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족했던 사람도 새 시대 새 역사의 일꾼이 된다.
그것이 정말 혁명이다. 그것이 정말 종교다.
참 종교는 참 전쟁이요, 참 싸움은 참 종교다.
개인으로는 여전히 잘못이 많아도 참 싸움,
참 종교에 참여하면 참 사람이다.
내가 참을 하는 것 아니라 참이 나를 살릴 것이다.” _ 제3권 719쪽
2016 대한민국,
왜 지금 함석헌인가?
“최근에 와서 로봇,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 로봇이 가까운 장래에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대신 기계가 사람을 부리게 된다는 함석헌의 전망과 일치하는 시각이다. 그의 사상을 되살펴보아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는 그 자신이 희구하던 제3의 사상의 씨앗이 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문명의 전환과 제2의 차축시대를 촉발할 씨앗이다.” _ 김영호, 「함석헌사상의 갈래와 특성」
역사와 사회의 교차점에서 늘 사유하고 실천한 공인으로, 지공무사의 정신으로 평생을 사신 함석헌 선생.
「함석헌선집」은 함석헌 선생의 탄생 115주년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한길사의 고전 시리즈 한길그레이트북스 20주년을 기념한 책이기도 하다.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해 우리 사회에 소개한다’는 이 시리즈의 출간 취지에 시의적으로 가장 부합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함석헌인가? 그 이유는 오늘날 세계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와 맞닿아 있다.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미래가 불투명하고 비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이미 함석헌은 서구가 주도한 물질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문명의 종말은 막을 수 없다. 그의 경고 이후 한 세대가 지나가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갈등, 전쟁, 재앙, 파괴, 폭력, 탐욕, 양극화 등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각종 권력유착형 부패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각종 모순과 비리로 가득 찬 집단으로 내려앉았다. 인권, 윤리, 공공정신 등의 가치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 모든 공공재가 급속히 사유화·사물화되고 있다. 이 과정이 정치, 경제, 교육, 언론뿐만 아니라 청지기(기독교)와 무소유(불교, 힌두교)의 덕성을 가르쳐야 하는 종교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근본적인 전환과 혁명을 외치고 새 나라, 새 윤리, 새 종교, 새 교육을 설계했으나 우리 사회는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생은 현 문명의 종말과 함께 새 문명의 출현을 기대했다. 그래서 새 씨앗(씨)을 심고자 했다. 「함석헌선집」이 새 씨앗이 싹트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면 한다. 함석헌의 사상은 사상사적·문명사적 가치가 있다. 이 가능성을 「함석헌선집」을 읽는 이들이 간파하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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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교수의
함석헌사상 강연회 열려
오는 10월 13일, 20일, 27일에는 함석헌선집편집위원회 김영호 교수가 ‘함석헌사상으로 그려보는 새 문명의 청사진’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함석헌선집」과 「함석헌사상 깊이읽기」(전 3권)를 통해 함석헌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고 함석헌 선생이 꿈꾼 새 문명, 새 희망의 마중물을 길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석헌사상으로 그려보는 새 문명의 청사진”
제1강 민족에서 세계로
제2강 개인에서 전체로
제3강 한 종교에서 보편종교로
강사: 김영호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함석헌학회 회장
장소: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3층 바실리오홀
문의: 031-955-2008
주최: 출판도시문화재단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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