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 Park Yuha
전우용 얘기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페친 분들이 많아 기쁘다.
숫자로 따지자면 압도적인 소수지만 이런 분들이 더 많아질 때 한일 관계는 물론 한국 내부도 분열과 대립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북한과도 그 때에야 비로소, 끌려다니거나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중심을 잡고 평화로운 교류가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일본에 대해서든 북한에 대해서든, 적개심은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개심의 끝은 피튀기는 싸움이거나 단절. 달리 말하자면 가해나 피해주체가 되거나 고립되는 일이다. 그만큼, 따뜻한 평화와는 멀어지는 일.
전우용의 레토릭에 반응한 건, 과거 일본인을 소환해 (소수를 다수로 치환해), 결국 현대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방 전후 조선반도로 건너 왔던 일본인들 중에는 처음부터 침략적인 의도로 건너왔다기보다는 ‘일본은 좁다, 남아라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뜻을 펼치자!’는 국가의 선동에 속아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일굴 땅이 없는 차남이하 청년들이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도시노동자들이었다. 국가전략에 부응하기 위해 명확한 의도를 갖고 건너온 소수 엘리트 말고는 대부분 살기 위해 건너왔던 셈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조선이 왠지 무서워서 건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떨면서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그들 중에는 물론 악덕 고리대금업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고리 대금 업자가 된건 일본 땅 한평이면 조선에서는 열평을 살 수 있다는 국가의 선동에 혹했으나 막상 주어진 건 황무지였던 현실 앞에서의 체념의 결과였다.
어디나 그렇듯 오만하고 질나쁜 사람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럭저럭 자리 잡고 조선인들 속에 섞여 제 할 일을 성실하게 하려고 했다. 경계심 가득했던 조선인들 역시, 때로 차별받고 반체제적일 경우 잡혀가 고문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모순 속에서도 그럭저럭 어우러져 살았다.
일제시대 일본인을 “총칼 찬 침략자로만 떠올리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는 조선으로 간너온 아버지가 경주중학교 교장이어서 대구와 경주와 김천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제목은 경주지만 대구 이야기가 중심인 책이다. )
그녀에 따르면 아버지는 조선과 일본을 대등한 존재로 여기라는 교육을 딸에게 했고 그런 교장에게 마을 조선인들은 사과며 김치, 닭이며 생선을 건네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소녀는 ‘내 안의 조선’을 의식하며 조선에서 다시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키웠다. 경주박물관장이었던 한 일본인은 오만한 일본인보다 조선인을 좋아해 다른 일본인들의 배척을 받았다.
물론 이런 이들은 소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이들의 존재는 기억 되어야 한다. 세상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폭력적인 다수가 아니라 그런 것에 저항하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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