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8

Park Yuha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 2102

 Facebook: Park Yuha


전우용 얘기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페친 분들이 많아 기쁘다.
숫자로 따지자면 압도적인 소수지만 이런 분들이 더 많아질 때 한일 관계는 물론 한국 내부도 분열과 대립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북한과도 그 때에야 비로소, 끌려다니거나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중심을 잡고 평화로운 교류가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일본에 대해서든 북한에 대해서든, 적개심은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개심의 끝은 피튀기는 싸움이거나 단절. 달리 말하자면 가해나 피해주체가 되거나 고립되는 일이다. 그만큼, 따뜻한 평화와는 멀어지는 일.
전우용의 레토릭에 반응한 건, 과거 일본인을 소환해 (소수를 다수로 치환해), 결국 현대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방 전후 조선반도로 건너 왔던 일본인들 중에는 처음부터 침략적인 의도로 건너왔다기보다는 ‘일본은 좁다, 남아라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뜻을 펼치자!’는 국가의 선동에 속아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일굴 땅이 없는 차남이하 청년들이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도시노동자들이었다. 국가전략에 부응하기 위해 명확한 의도를 갖고 건너온 소수 엘리트 말고는 대부분 살기 위해 건너왔던 셈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조선이 왠지 무서워서 건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떨면서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그들 중에는 물론 악덕 고리대금업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고리 대금 업자가 된건 일본 땅 한평이면 조선에서는 열평을 살 수 있다는 국가의 선동에 혹했으나 막상 주어진 건 황무지였던 현실 앞에서의 체념의 결과였다.
어디나 그렇듯 오만하고 질나쁜 사람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럭저럭 자리 잡고 조선인들 속에 섞여 제 할 일을 성실하게 하려고 했다. 경계심 가득했던 조선인들 역시, 때로 차별받고 반체제적일 경우 잡혀가 고문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모순 속에서도 그럭저럭 어우러져 살았다.
일제시대 일본인을 “총칼 찬 침략자로만 떠올리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는 조선으로 간너온 아버지가 경주중학교 교장이어서 대구와 경주와 김천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제목은 경주지만 대구 이야기가 중심인 책이다. )
그녀에 따르면 아버지는 조선과 일본을 대등한 존재로 여기라는 교육을 딸에게 했고 그런 교장에게 마을 조선인들은 사과며 김치, 닭이며 생선을 건네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소녀는 ‘내 안의 조선’을 의식하며 조선에서 다시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키웠다. 경주박물관장이었던 한 일본인은 오만한 일본인보다 조선인을 좋아해 다른 일본인들의 배척을 받았다.
물론 이런 이들은 소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이들의 존재는 기억 되어야 한다. 세상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폭력적인 다수가 아니라 그런 것에 저항하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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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 책은 원본에 없는 사진이며 주석이 붙어 있어서 원본보다 흥미롭다



416李昇燁, 이소 and 41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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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원본에 없는 사진이며 주석이 붙어 있어서 원본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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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읽어 주셨군요. 참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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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e Matsui Ishioka
       아, 번역자 선생님이셨군요! 미처 의식 하지 못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주석과 사진 자료를 보니 정말 고생 많으셨을 것 같더라구요. 좋은 책 번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모리사키선생께 제가 관심이 원래 많았던지라(<제국의 위안부> 전반부에서도 인용했지요)더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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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작가의 아버지께서 모교의 초대교장을 하셨지요...
      여기에 '최긍'이라는 분 경주최부자선양회 사무국장에게 물었더니 최부자집 족보에 없고 잘모르겠다해서 원본을
      갖고 계신 대구박물관장에게 물었더니,원본에도 그렇게 나와있다고 하던데, 좀 궁금합니다...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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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중학교 나오셨군요.^^
      저는 이 책을 문고본으로 읽었고 연구실 어딘가에 박혀 있을 텐데 쉽게 찾기 힘들 것 같네요. 
      Rie Matsui Ishioka
       선생님이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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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고등학교입니다
      중ㆍ고 구분이 없던 시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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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진
       네. 당시엔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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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Chan Jin
       선생님, 반갑습니다.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다른 분도 최긍씨가 누구신지 궁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작가 아버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어요. 거기에 최긍 씨 이야기도 나오지만 한자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긍(肯)자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작가님이 책에 최긍이라고 쓰셨 길래 번역책에는 그대로 최긍이라고 쎴지요.
      같은 글에 최긍 씨 아드님이고 경주중학교 학생인 최활(活) 씨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혹시 이 이름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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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 저는 일본에 살고 공동번역자는 한국에 살기 때문에 같이 작업하기가 힘들어서 출판까지 긴 시간이 걸렸어요. 주석 작업할 시간도 자료를 수집할 시간도 많이 많이 있었습니다.
      번역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교수님께서 Facebook 어딘가에서 이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써 주신 걸 읽었습니다. 제가 의미가 있는 번역을 맡고 있다고 참 큰 용기를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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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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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 저자의 기억력이 아주
      탁월하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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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Rie Matsui Ishioka
       아 그런 일도 있었군요. 저는 생각 나지 않지만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들으니 더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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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 慶州釀造(株)
      사장/대표 崔肯
      본점주소 경주시 노동리 30
      출전全國企業體總攬(1958년판), 大韓商工會議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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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노동동 30번지 기념관강당 지도에서 검색 주전지 쌍용자동차대리점 영양불갈비 계명대학교 경주동산병원 다이소 경북경주 경찰서 DGB대 ..B대구은행 + 앙파출소 중부동 NAVER 100m 월성초등학교 새마을금고 올리브 가마솔족발 중부동 정복지센터 경주 그랜드파크 대화만두 노동동30 롯데하이마트 노서점 대릉원일원 (노서리) 롯데시네미 경주 대릉원일원 (노동리) 농협 호우총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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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 Park Chan Jin
       선생님
      귀중한 정보를 감사합니다! 어떻게 찾으셨어요?
      모리사키 교장님이 최긍씨를 깊이 신뢰하시고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도 다시 뵙고 싶다고 생각했었대요(물론 못 만났지만요).
      교장님은 일본에 귀국해서 몇 년 후에 돌아가셨지만, 최긍씨는 오래 사신 것 같네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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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h
    • 경주에 40여 년 살다
      보니요
      최부자선양회 사무국장께서
      보내준 겁니다...
      준 아라키 선생 가족 카레
      가게도 몇 년 전까지 갔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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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h
      • Edited
    • Park Chan Jin
       선생님
      모리사키 교장님의 귀중한 사진을 저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아리키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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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h
  • 전우용 따위, 천박하고 하챦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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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泉で育った私は、子供の頃周りの大人に言われたのと森崎和江の『慶州母の呼び声』内容がほぼ同じだったでした!遠い昔の話にならますが、日本語専攻を選んだ時周りの人達から受けた敵対反応にとまどったことを思い出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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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Youngaee Kashima
       그렇군요. 모리사키는 해방이후에 아버지의 제자들과 만나지만, 양쪽다 겸허하고 서로 존중하는 태도였어요. 물론 억압의 기억도 무시되어서는 안되지만 최근 30년 동안 그 기억이 비대해지면서 균형이 깨졌지요. 상대와 정황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이 되니 적대하기 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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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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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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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시대에 우에노 미술대학 나온 한국 할머니가 일본사람을 신사라며 그렇게 칭찬했고, 독립후에도 한국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니셨다네요. 이때 외동딸은 할머니가 못마땅해 짜증내고 입막음하려던 사연을 들었어요. 저랑 결혼한 사람의 할머니고 엄마거든요. 할아버지도 한분 계신데 공부는 할머니처럼 못하셨데요, 그저그런 삶을 사셨는데 그 분도 일본인을 좋은쪽으로 기억하고 계셨던걸로 알고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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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Dongjin Kim
       개인적 경험에 따라 일본을 달리 기억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죠. 문제는 그런 다양한 기억들 중에 억압당하는 기억이 있다는 것일 거구요. 그러다 보니 공적기억조차 균형을 잃게 된 거지요. ‘다른’기억을 거부하는 건 “중심기억”에 대한 집착이고요. 가장 큰 문제는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 후대가 과거기억을 만들어 간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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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중심을 잡고’ 휩쓸려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심 잘 잡아주시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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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양승인
       저는 몸무게가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으니 무거운 분들이 많이 함께 해 주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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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30여 년 전 석사논문을 쓸 때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일본인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한 경계심을 가지셨지만, 그것은 이전에 찾아온 일본인 연구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연구자들은 인터뷰라기보다는 설교, 비판, 부정 같은 말들을 졸업생들에게 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조선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한 나쁜 놈이라는 식으로.
    그런데 나는 그분들이 사범학교에서 어떻게 조선말을 배웠는지 묻고 싶다고 했더니 마음을 터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 아이들과의 편지 교환도 계속되고 있다며 많은 편지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그러한 역사가 일부 편향된 생각을 가진 일본인 연구자들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지 않았던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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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ada Kanto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목도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의’의식이 앞선 인터뷰였기 때문이겠지만 답답한 얘기네요.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웠다는 것도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제부터라도 여러가지를 더 새로 알고 공유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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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그 일본 분들은 사범학교에서 이희승, 조윤제선생님에게서 조선어를 배웠는데 그런 것을 아는 한국인은 아마 거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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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Jamada Kanto
       선생님, 논문을 번역해서 한국에서 내세요. 필요하면 출판사 소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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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된 것이 있긴 있습니다. 조선어에 대해서는 「’지배를 위한 조선어 학습’을 생각한다」(고영진, 김병문, 조태린편『식민지 시기 전후의 언어 문제』소명출판,2012)
      일본어에 대해서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근대화와 일본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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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Jamada Kanto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논문도 선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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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 朴 裕河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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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h
  • 책 제목과 저자 이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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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ngyil Ra
       모리사키 가즈에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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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박유하
       감사합니다. 자세하게 보니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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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이런 류의 저술이나 기록이 많이 있습니까? 해방 직후 6.25 전 일본 여인이 쓴 내가 넘은 38선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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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Jongyil Ra
       해방직후 귀국의 고난을 쓴 글은 상당히 많습니다. 식민지 일상에 대해서 쓴 글은 그만큼 많지는 않아도 그래도 꽤 됩니다. 여기서 학교 나온 이들의 문집류도 많고요.
      저도 여러해 전부터 번역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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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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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렸을때 읽었습니다만 공감이 가는 글이었어요. 지금은 찾을 수가 없겟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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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저도 읽었습니다. '사람은 국가보다 품이 넓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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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서의동
       네 ‘국민’이기를 요구하
      는 국가 앞에서 고민하는 ‘개인’일본인의 모습이 보이는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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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개인적 소망이겠지만, 혹 한일공동작품으로 대하드라마나 영화소재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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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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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hwan Kim
       네. 저도 그 생각 자주 한답니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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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h
  • 외할머니가 결혼하고 나서 세들어 살았는데 주인이 일본인 부부였다고 합니다. 가끔가다가 일본식 된장이나 김이나 여러가지 먹을거를 나눠줬다고 하네요.. 그래서 친하게 잘 지냈다고... 일본이 패전하자 그 부부는 일본으도 돌아갔고 그 집을 공짜로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치고박고 싸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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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h
    • Okjin Park
       이른 바 적산 가옥이며 공장을 둘러싼 싸움은 치열했던 거 같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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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h
  • 좌파의 선동가로 지지는 받을지언정 적의가 가득찬 궤변에 속까지 수긍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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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h
  • 폭력적 다수보다는 저항하는 소수에 의해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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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h
  •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은 오죽했으면 형제 자매 다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겠느냐 일본 사람이나 우리나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운명 같은 것이지 여기 와서 사는 일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겠냐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탓이지 ! 악걸리 잔 돌리며 누구 탓만하는 남정네들 반성하는 모습이 없는 것이 나라잃은 슬픔보다 더 한스럽다고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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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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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aee Kashima
       여성들이겠군요!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결국 과도한 피해의식은 남자들이 만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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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 수정합니다. 악걸리가 아니고 막걸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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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h
  • 조선이 해방된 직후 조선(인천)에서 나고 자란 한 일본인청년은 그동안 조선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이제부터라도 조선어를 익히고 조선여성과 결혼해 조선에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고 일기에 적었더군요. 그 다짐이 실현되진 못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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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h
    • 이상훈
       90만은 있었던 듯 하니 수십만의 스토리가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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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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