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에게 듣는 박근혜와 유신:“민중을 물어뜯은 사냥개를 거느리고 무슨 사과입니까?”
인터뷰 김문성 , 정리 김지윤 · 이현주
레프트21 91호 | 기사입력 2012-10-20 12:25 | 주제: 공식정치
다양한 저서를 통해 우리가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교훈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줘 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진)를 유신 40주년 당일에 만났다. 한홍구 교수에게서 박정희 독재와 그 계승자인 박근혜의 실체를 들었다.
한홍구 교수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수장학회 사건의 실체 등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조사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쓴 《장물바구니: 정수장학회와 한국사회》(돌아온산)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흔히 우파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 5·16 쿠데타나 유신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평가합니다.
전혀 불가피하지 않았습니다.
5·16이 불가피했다면 육군 소장 박정희가 집권하려고 불가피했고, 유신은 3선까지 해 먹은 박정희가 더 집권하려고 불가피했던 거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나온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경제 발전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유신 체제는 박정희가 민주 사회의 지도자로서 그렇게 할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죠. 박정희 본인이 민주 사회 부적응자예요.
반대하는 놈들은 반체제 반국가로 몰아서 배제하거나 감옥으로 보내거나 한 게 박정희 체제였고. 그런 동원을 하려고, 국민을 감시하려고 고유번호를 부여했고요, 그 번호에 모든 정보를 집적시켜서 개인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게 주민등록증 제도죠.
유신 시대가 어떤 시대냐 하면, 중앙정보부, 보안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같은 공안기관이 말 안 듣는 자식을 잡아다가 두둘겨 패니까 유지되는 체제란 말이죠. 두들겨 패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체제.
그런데 우리 사회 민주화가 밀고 올라가는 그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옛날보다 함부로 잡아다가 간첩 사건을 못 만드는 거지. 고문도 거의 없어졌죠. 그전에는 안심하고 고문을 했는데, 이제 고문을 하면 자기가 옷을 벗게 되니까. 개과천선을 해서 없어진 게 아닌 거야. 고문하는 자식들을 이제 국가가 더는 비호를 못 해주게 된 거예요.
박정희 체제의 폐해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될 거예요. ‘우리가 유신 시대에 지어진 집 속에 살고 있다.’ 그 집을 다시 지은 것도, 리모델링 한 것도 아니고. 도배 정도만. 도배도 그나마 하다 말았죠.
결과를 갖고 모든 출발과 과정을 정당화하는 것, ‘하면 된다’라고 밀어붙이는 것, ‘총화단결’이라는 이름 하에 조금의 비판도 허락하지 않는 것, 민주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 갈등을 조정하고 그것을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을 비효율이라고 몰아붙이는 것 등.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사고방식이에요. 새끼 천황이라고 할까요? 박정희는 천황을 꿈꿨고, 그러다 보니 새끼 천황을 무지 많이 낳았어요. 사람들이 유신 체제가 1979년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신 이후에 13년간 군사독재가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누구냐면 유신 시대 박정희 경호원들이에요. 전두환이나 노태우 둘 다 경호실 작전차장보 지낸 자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바로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에도 박정희의 근위병들이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이어간 것이죠.
지금도 박근혜가 국회의원 사상 검증 하자는 얘기를 거침없이 하잖아요. 사실 유신 체제가 그러다 망했거든요. 부마항쟁이 일어난 한 계기가 김영삼 국회 제명 아닙니까. 그때 김영삼 제명하는 과정이 사상 검증이었거든요.
박근혜는 과거는 털어 버리고 미래로 가자고 합니다.
박근혜의 경우에 박정희 딸에다가 유신 시대 공주마마죠. ‘유신공주’라는 별명이 그냥 어린 공주가 아니고 왕비 없는 공주였단 말이에요. 유신 시대의 가장 상징적인 기둥이었단 말이에요.
[문제는] 본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 시대엔 그랬지만 돌이켜 보면 국민에게 많은 고통을 준 시대였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는데 그걸 옹호하고 정당화하잖아요. 이건 [딸이니까 박정희 잘못에 책임져라 하는 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우릴 과거로 끌고 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고 본인이 유신 시대에 중요한 구실을 했기 때문에 뼛속까지 그런 것 아니냐 하고 우리가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것이죠.
대한민국 헌정사는 동일인에 의해서 헌법이 두 번이나 유린당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딸이 나와서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옹호한다면,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시기에, 정치적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혹은 본인이 집권해 보니까 좋더란 말야, 더 하고 싶어졌을 때, 동일한 방식으로 헌법을 유린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민주시민으로서 당연히 의구심을 갖게 되는 거죠.
최근 정수장학회와 박근혜의 관계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사람을 석 달 동안 가둬 놓고 하는 게 강압이고 강탈이라는 것이고, 강탈된 재산이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게 맞는데, 그걸로 부모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는 건 창피한 일입니다.
국가 기구가 개입해서 정수장학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요, 국가 차원의 장학회 사업이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박정희, 육영수 돈은 한 닢도 들어가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아주 그냥 개인적인, 박정희 우상 사업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본인 자신이 정치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문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죠.
예컨대 5·16 장학회를 만든 게 김지태의 개인적 재산을 탐낸 게 아니잖아요. 언론사를 뺏고, 그게 박정희의 언론 장악인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MBC 파업, 부산일보 파업 같은 게 일어나는 게 정수장학회 문제 아닙니까.
강탈 재산에 기대서 집권을 하겠다, 그걸 또 팔아서 선거에다 써 먹겠다 하는 거죠. 1971년도 선거를 보면, MBC 팔아서 박정희가 선거 치렀다고요. 그래서 지금 지분이 30퍼센트만 남은 거죠. 국회에서 그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됐습니다. 그 의혹을 제기한 이종남 의원은 유신 선포하고 난 다음에 헌병대에 끌려가서는 죽도록 고문 당했습니다.
이번에도 MBC 팔아서 선거를 치르겠다고 하는 것이 ‘부전여전’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정수장학회 인맥 문제도 있어요. 김기춘 같은 사람은 장학회 1기 출신이에요. 나중에 검사 돼서 유신헌법 만든 실무자예요. 강기훈 유서 대필 때 법무부장관이었고, 지금 7인회에 있고.
국가적인 장학사업이라면 가난한 학생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데 결국은 유신의 앞잡이들을 키워낸. 그걸 지금도 박정회 우상화하는 일들을 하는 것으로 나오고요.
그런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때 나쁜 짓 했던 놈들이 다 박근혜 캠프에 가 있다니까. 그러니까 클린검증 소위원장이니 뭐니 떠드는, 남기춘이니 이런 것들, 그때 다 지휘 선상에 있던 놈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민중을 물어뜯은 사냥개 아닙니까. 박근혜가 과거사 사과를 했는데, 그때 물어뜯은 사냥개들을 옆에 애완견처럼 거느리고 하는 사과가 무슨 놈의 사과야. 그러면서 그 놈이 ‘정수장학회 옛날 같으면 총칼로 빼앗아 오는데’ 그따위 소리 지껄이고 있는 게 무슨 과거사 사과냐고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명박이 우리 역사에서 정말 처음이었던 건 뭐냐면,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이만큼도 없는 자가 집권을 한 거예요. 그게 박근혜를 낳게 하는 또 다른 거예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낳았던 겁니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가면 정권교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난 박근혜가 잡으면 복지 할 거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경제민주화도. 재벌개혁도.
대신 박근혜는 박근혜대로 할 겁니다. 방향이 틀리죠. 뭐냐면 박정희 시대를 기준으로 돌아가겠죠. 그때는 서열이 확실했잖아요. 대통령 밑에 한참 아래 재벌이 있는 거였는데 지금은 하는 얘기가 ‘권력은 시장이 있다’ 이런 거잖아요.
복지도 시혜로서의 복지죠.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가령 1970년대 버스 차장들 있었잖아요. 굉장히 힘들었죠. 열여섯, 열일곱부터. 애들 등하교 시간을 보면 사람이 많으니까 차장이 문도 못 닫고 사람들 손으로 틀어 막고 출발해요. 그게 겨울이라고 해 봐요. 버스 사장 놈들이 저임금에 파카도 안 입혔다고.
그런데 ‘가카’는 그걸 그냥 가만 보고 계실 분이 아니거든(웃음). 그래서 방한복을 하나씩 사 줬어요. 그리고는 ‘박정희 각하께서 친히 고른 디자인이다’ 이러면서 나눠 주는 거예요. 신문에도 그렇게 내고.
[그러니] 시혜적 복지라는 것도 과거 회귀죠. 우리가 생각하는 건 권리로서의 복지. 박근혜 대통령께서 골라 주신 파카 입고 싶냐 아니면 [충분히 월급 받고] 백화점 가서 내 맘에 드는 파카 사 입고 싶으냐. 그 차이죠.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게.
복지 문제에서 노동이 빠진 복지가 어디 있어요.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는 거는 노동 민주화를 얘기하는 거고 노동자가 권리를 갖고 임금 제대로 받고 [하는 거죠.]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이 법적으로 강제가 되면 비정규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노동 문제가 빠진 경제민주화는 사기라고 하는 거죠.
과거사 문제는 골치 아프죠. 피해 갈 수 없고. 그렇지만 박근혜의 발목을 잡는 문제지 박근혜를 쓰러뜨릴 문제는 아니에요. 진짜로 결정타를 날리려면, 미래에 대한, 민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내놔야 돼요.
그러니까 대중에게 직접 와닿는 문제들을 갖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죠.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의 나아갈 바를 정하는 겁니다. 방향을 정하는 선거예요. 우리 세대한테는 노후가 달린 거고, 지금 20대들한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달리는 문제예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고 나서야 해요.
‘유체이탈(維體離脫)’(유신 40년 공동 주제 기획)
“유신체제에서 탈출하자, 유신체제를 벗고 떠나자”라는 뜻을 가진 이 전시회는 한홍구 교수와 뜻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기획한 ‘유신 40년 공동 주제기획 6부작’ 전시 기획 프로그램이다.
유신 선포 40년을 맞아 ‘10월 유신’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몸과 마음에 남은 유신의 영향을 풍자·성찰하려고 공동기획한 프로젝트다.
10월 17일부터 11월 7일까지 평화박물관에서 6부작 중 2부 “구국의 영단” 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구국의 영단’은 당시 문화공보부가 유신을 홍보하려고 시리즈로 제작했던 작은 홍보책자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여러 전시물 중 하나인 위 사진 속 작품은 유신 정권이 유신의 정당성과 정권 홍보를 위해 사용한 이미지들을 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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