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7

알라딘: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알라딘: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유장근 (지은이)푸른역사2014-11-14


정가 35,000원
기본정보600쪽

책소개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유장근 교수는 2006년 1년 동안 상하이사범대학에서 머물면서 중국의 동서남북을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 체재하면서 중국 영토의 광활함, 수많은 인구, 다양한 기후대와 식생대, 또 그런 만큼이나 다양한 민족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상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중국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저자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변방 민족의 삶과 사회였다. 도대체 중국이라는 다민족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성격은 어떠한가 하는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신장이나 칭하이, 윈난, 구이저우 등을 돌아다니면서 저자는 중국이 20세기에 주조된 새로운 형태의 제국이며, 대청제국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치밀하고 확고하고 강력하게 변강을 지배하고 있는 중화제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족 중심의 전통이 강한 베이징이나 시안, 혹은 상하이와 같이 이른바 중원문화권을 답사할 때와는 매우 다른 중국이 거기에 또 있었던 것이다. <현대 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는 이 답사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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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면서
서설: 중국의 ‘근대국가 만들기’

1부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

한漢.마오쩌둥주의적 근대상과 만청적滿淸的 근대상 사이에서
시각 교정이 필요한 중국의 근대상|한족漢族과 마오쩌둥주의적 근대상|만청적 근대상|전망과 과제

1990년대 이후 중국 청사학계의 사회사 연구동향
사회사 연구의 흥기와 그 배경|사회사 연구 주제의 다양성과 그 의미|청대사의 장기적 전망|혁명사에서 사회사로

‘만청 식민주의’를 둘러싼 중.외 학계의 논의
비교사와 패러다임의 변화|만주어 자료와 만주 군주의 성격|18세기의 팽창과 식민지형 관리체계|한족의 변강 이주와 식민지적 성격|알타이 문화권과 한국 역사의 위상

2부 현대중국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

위대한 과거와 낙후한 현재 사이
중국의 실체를 기록하기 시작하다|일상생활에 대하여|국가 체제에 대하여|역사와 문화유산을 보면서|극단적인 중국 인식

현대 한국인의 중국 변방 인식
한국인 최초의 중국 변방 여행기들|알타이 문화권으로서의 변방|변방의 경관과 일상세계에 대한 인식|중국의 변방 지배에 대한 인식|한국적 변방관의 구축

3부 영화로 보는 현대중국

영화 〈천안문〉을 통해 본 천안문 민주화운동의 시말
영화 〈천안문〉과 천안문의 역사|사자 숭배문화와 천안문 민주화운동의 배경|시위 고조와 긴장의 연속|시위대의 단식투쟁과 고르바초프의 내부 붕괴|계엄령 선포와 시위 주도층의 내부 붕괴|진압과 그 이후

근대기 상하이지역 여배우의 이미지와 실상의 간격―롼링위의 경우
한 여배우의 역사성|불행한 유년 시절|영화배우가 되다|절정에 오르다|영상의 인간과 일상의 인간 사이의 모순과 충돌|근대형 여배우의 양면성

4부 민간종교결사의 전통과 그 계승

1920~30년대 초 홍만자회紅卍字會의 발전양상과 그 성격
민간결사의 자선활동에 주목하며|도원道院의 설립과 구제관|홍만자회의 발전양상과 구제활동
성공적인 자선기구로의 성장

현대중국에 있어서 파룬궁의 출현과 발전양상
갑작스런 파룬궁 사건|파룬궁의 성립 과정|성립 이후의 발전과 조직양상|정부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는 파룬궁

5부 변경으로 팽창하는 중화제국

현대중국의 샹르리라 만들기와 그 의미
20세기 말의 신상품|상상 속에 건설된 기독교 제국|조셉 록의 윈난 탐사와 샹그리라의 현실 모델|윈난성 정부의 샹그리라 건설과 그 효과|한인적 오리엔탈리즘의 재현

현대중국에 있어서 생태환경의 변화와 변경으로의 팽창주의
왜 생태환경사인가?|근대기의 인구 동향과 생태환경의 변화(1750~1950)|현대기의 인구 폭발과 생태환경의 악화(1950~2000)|생태환경사의 전망과 과제

주석
출전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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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유장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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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기 배 따먹는 동네”라는 외부의 비아냥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마산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 중심부의 엘리트들이 철벽같이 구축해 놓은 변방성에 기반하면서 중국의 근대사를 그 기간만큼이나 연구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의 중국은 청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의 중화제국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러한 인식과 중국의 곳곳을 현장답사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2014년 현재 마산에 소재하고 있는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제 긴 연구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준비 중이다. 접기
최근작 : <마산의 근대사회>,<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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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등 총 278종
대표분야 : 역사 6위 (브랜드 지수 449,79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현대중국, 새롭게 ‘중화제국’으로 제조되다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의미인가
오랫동안 우리에게 중국은 실체로서보다는 경전과 역사를 통해 알게 된 중화주의적 이미지가 강한 국가였다. 이는 ‘천자’라든가 ‘왕도’와 같은 용어에서 보듯이 ‘도덕적인 통치를 하는 국가’라는 특징이 강조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중화의식을 내면화시킨 사대부들은 중국의 거의 모든 사물들을 상대화하기보다는 심지어 우주의 원리까지도 중국에 맞추면서 절대자로서 인식하고, 반면 자신들은 그에 종속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게 된 중국은 과거의 소중화주의자들이 상상했던 대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공산당 중심의 현대중국은 헌법 정신을 통해 다민족 체제를 강조한다. 하지만 중심부와 주변부 간 정치적.지리적 위계성과 민족 간의 차별성이 너무나 명백하다. 주변부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중심부의 ‘한족’과 전혀 평등하지 않다. 오히려 개미떼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 한족들로 인해 주변화되고 있다.
한족 중심의 현대중국이 탐내는 것은 소수민족 자체라기보다는 그들이 살고 있는 영토, 그곳에 매장된 자원, 그리고 군사적 방어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국경선이다. 이러한 요소는 사실 청대 이래 축적되어온 전통이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책 제목을 《현대 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라고 지은 까닭이기도 하다.

현대중국, 중심부와 주변부로 재편되다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유장근 교수는 2006년 1년 동안 상하이사범대학에서 머물면서 중국의 동서남북을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 체재하면서 중국 영토의 광활함, 수많은 인구, 다양한 기후대와 식생대, 또 그런 만큼이나 다양한 민족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상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중국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저자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변방 민족의 삶과 사회였다. 도대체 중국이라는 다민족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성격은 어떠한가 하는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신장이나 칭하이, 윈난, 구이저우 등을 돌아다니면서 저자는 중국이 20세기에 주조된 새로운 형태의 제국이며, 대청제국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치밀하고 확고하고 강력하게 변강을 지배하고 있는 중화제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족 중심의 전통이 강한 베이징이나 시안, 혹은 상하이와 같이 이른바 중원문화권을 답사할 때와는 매우 다른 중국이 거기에 또 있었던 것이다. 《현대 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는 이 답사의 결과물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현대중국을 이해하는 틀
현대중국은 자신들의 근현대사에 대해 19세기 중엽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휘청거렸으나 공산 중국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엄살도 심하고 사실과도 잘 맞지 않았다. 특히 큰 문제는 이 같은 해석에서 주변의 소수민족이나 약소국가의 입장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 출신의 역사학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중심의 논리에 의해 희생된 주변의 의미를 더 잘 포착해야만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위상조차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가 유의미한 이유다. 이 책이 현대중국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변부에서 보는 현대중국

주변부 마산에서 문제의식을 키우다
현대중국을 ‘20세기에 주조된 새로운 중화제국’으로 보고자 한 데에는 저자가 살고 있는 마산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마산은 성리학적 전통조차 거의 없는 한갓 변방일 뿐이었다. 중앙정부를 위해 외적이나 막아주고 또 세량을 모아 수도로 보내기 위해 조창을 운영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온 것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왔던 곳이다. 사실상 국가로부터 소외된 대표적인 변방사회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곳에서 30년 이상을 살면서 변방에서 보는 국가, 주변부에서 보는 중심부라는 역사인식을 체계화할 수 있었고, 결국 변방의 관점에서 보면 청제국이나 현대 중국도 제국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거꾸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 지역이나 사람들에게도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이 있으며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주체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변방을 독자적인 중심지로 환원시키는 과정은 사실 주변부에 대한 애정,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그것은 필자가 겪은 주변부적인 인생역정 속에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중국을 긴 역사 속에서 검토하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불행하다는 E. H. 카의 언설을 상기해보면, 현장이 없는 역사가, 자신의 공간적 의미를 망각한 역사가 역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구성된 현대 중국의 제국적 실체를 사마천이 그랬던 것처럼 눈과 발로 확인하면서 또한 마산에서 구상한 역사인식을 융합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런 연구 패러다임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오늘날 한국의 중국사학을 관통하는 주류는 중화주의와 미국 일본 중심의 대국주의적 시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중국사학은 청대사와 현대중국을 연계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명대와 청대의 연속성을 더 강조하는 전통에 깊이 빠져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전통을 비판하면서 현대중국을 적어도 3세기 이상의 긴 역사 속에서 검토해보고자 했다.


‘중화제국’ 만들기, 주변부를 통한 중심부 팽창과 강화

오늘날 중국의 토대, 18세기에 만들어지다
이 책은 변방을 현대중국의 토대가 3세기 이상의 긴 역사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문제의식에 기대고 있다. 만청 식민주의와 관련된 문제는 최근 구미에서 흥기한 이른바 신청사학파의 주요 의제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청의 식민주의와 현대중국의 상호 유사성에 주목한 바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만청식민주의의 중요 유산, 곧 광대한 영토와 다민족국가의 틀을 물려받았으며, 그것은 청의 군사 정복과 식민화의 결과다. 〈한․마오쩌둥주의적 근대상과 만청적 근대상 사이에서〉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그간 중국의 근현대사학계를 짓누른 마오쩌둥과 한족주의적 근대상 대신, 만청왕조 시대에 구축된 근대상을 통해 청대와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중국의 근대는 아편전쟁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청대, 특히 군사 정복 활동이 활발하던 18세기에 이미 그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미 그 시기에 오늘날의 중국의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변부 변방의 소수민족은 중심부 중원 한족의 내부 식민지
위와 같은 중화제국 논의는 〈현대중국의 샹그리라 만들기와 그 의미〉에서 좀 더 구체화된다. 샹그리라 만들기는 윈난 서북부의 깊숙한 변경 지역에 한족사회를 체계적으로 이식하고 나아가 샹그리라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근의 소수민족 사회까지 샹그리라권으로 포섭하여 변강 지배를 확고히 하려는 관광전략이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과 1920년대에 이곳에서 식물 채집에 열중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인 조셉 록은 이 같은 목적에서 이용한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곳을 한인적 오리엔탈리즘이 재현된 곳으로 파악한다.
〈현재중국에 있어서 생태환경의 변화와 변경으로의 팽창주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어진다. 중원 지역의 한인 증가는 변경 지역의 자연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심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도가 강했고, 이 경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변강은 중원에 존재하는 한족과 그 정권에게 더 이바지할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큰 내부 식민지인 셈이다.

청대의 종교 정책,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민간종교 결사의 전통과 계승 부분도 흥미롭다. 필자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인 민간결사는 사실상 청대에는 불법적인 것이었고, 이 때문에 비밀성이 강조되었지만 공공연하게 활동한 반공개적인 조직이었다. 그 전통은 중화민국 시대에 오교합일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도원이나 그것을 실천할 기구로서 홍만자회를 탄생시켰다. 중국 역사에서 홍만자회의 구제활동은 민간조직이 성취한 위대한 성과였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사교 집단이라는 명목 아래 갑작스럽게 해체되었다.
민간종교와 유신론적 기공을 결합하여 탄생한 파룬공 역시 시대적 필요에 의해 광범위한 연공자들을 확보했지만, 국가를 위협한다는 괴이한 명분에 의해 공식적으로 소멸되었다. 이는 민간결사의 발전에 우려를 표했던 청대의 종교 정책이 오늘날의 정부에서도 연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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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장근 교수가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에 주목한다. 저자는 중국근대사를 대국 중심으로 혹은 중국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주변 국가 중 특히 약소 민족 또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근대 중국을 조망하고 있다.  구매
쎄인트saint 2021-03-18 공감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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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바라본 중국 새창으로 보기 구매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_유장근 / 푸른역사



“변방에서 바라본 중국”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키워드로 삼을 만한 단어는 ‘근대(modern)'이다. 이 용어는 19세기 들어서서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문화적 전환을 그 이전 시대와 구분하여 사용한 것이다. 다의적으로 쓰이는 개념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은 과학, 기술혁명의 변화가 어제와 완연히 다른 다소 폭발적인 ’변화의 시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각국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근대’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좋아한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학자인 이 책의 저자 유장근 교수는 상하이사범대학에서 강의를 위해 머무르는 동안 중국의 동서남북을 답사한 후 책에 실린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 영토의 광활함, 수많은 인구, 다양한 기후대와 식생대, 그리고 여러 민족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상상이 아닌 실체의 중국을 맛보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저자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변방민족의 삶과 사회였다. 신장이나 칭하이, 윈난, 구이저우 등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20세기에 주조된 새로운 형태의 제국이며, 그것은 대청 제국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치밀하고 확고하고 강력하게 변강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근대중국’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이 책을 기술하고 있다. 즉, 중국근대사를 대국 중심으로 혹은 중국 중심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다른 중국 관련도서와 비교해볼 때 사뭇 다른 관점이자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중국 주변에 존재한 약소민족 혹은 약소국의 입장에서 근대중국, 나아가 근대 동아시아와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작으로 ‘현대중국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 ‘영화로 보는 현대중국’, ‘민간종교결사의 전통과 그 계승’ 그리고 ‘변경으로 팽창하는 중화제국’등 심층적인 내용으로 기술되었다.



시각 교정이 필요한 중국의 근대상



저자는 근대중국이라고 불릴만한 변화는 청제국의 영토가 팽창하던 18세기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만주지역을 통한 중국의 이해나 만주족이 통치한 청왕조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청대후기, 곧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근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이 ‘중국근대사의 창안’ 작업을 시작한 것을 20세기 중국역사학의 최대 성과라고 표현한다. 각 대학에서 중국근대사 과목이 개설되고, 근대사 관련 여러 저술들이 출간되었다. 195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근대사’자료가 총간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의 혁명노선을 따라 근대사 연구가 시작되기도 했지만, 근대사는 견해에 따라 크게 3파의 유파로 분리된다. 문화대혁명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중국근대사학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근대사가들은 근대의 개념뿐만 아니라 역사학의 지도 이념이었던 마오쩌둥주의에 대한 반성도 곁들이고 있다. ‘혁명’에 대한 시각과 평가가 달라진 것이다. “18세기 근대의 상속자로서 현대중국은 상당한 부분에서 청대의 유산을 공산 체제라는 변형된 국가 체제 속에서 계승하고 있다. 청대에 발전시킨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화 체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신장과 티베트의 지배나 한족 이주, 개발도 청대에 행해졌던 방식이 이어지고 있다.”



파룬궁(法輪功)을 어떻게 이해할것인가?



4부는「민간종교 결사의 전통과 그 계승」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비밀종교결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는 ‘홍만자회’와 함께 ‘파룬궁’이 소개된다. 나는 진작부터 파룬궁이 어떤 조직인가 궁금했었다. 그 계기는 약 10년 전 중국동포가 많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역 입구에서 파룬궁 관련자가 생활정보지만한 크기의 신문과 그보다 작은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대림역입구로 들어서다 얼떨결에 그 홍보물을 손에 쥐게 되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대충 읽어봤는데, 중국어와 한글이 혼용된 그 인쇄물엔 파룬궁을 소개하는 내용과 중국에서 파룬궁 집단이 박해받는 과정(사진과 함께), 그리고 그들이 큰 광장에서 기공수련을 하는 사진, 한국 내에서의 모임 장소와 시간 등이 적혀있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우연히 유튜브에서 파룬궁 관련 동영상을 보게 된다. 미국에서 제작되었으리라 짐작되는 그 영상 내용은 중국에서 기공수련을 하던 파룬궁 집단이 중국 공안원들에게 단체로 잡혀가는 모습과 그들이 감옥에서 받는 고통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고통이라고 표현하기에 조심스러운 것은 그들이 장기이식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이식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전적으로)가 외국인이었다(내 지인 중 한 사람도 중국에 가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영상엔 파룬궁 관련자가 그 희생물이 되는 여러 정황이 설명되고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정밀검사를 통해 개인별 데이터가 기록 된다던가, 중국내 외국인 장기이식자 숫자가(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날로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장기 기증자 수자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 등이 그 영상의 주제였다. 결론은 중국내 파룬궁 관련자들의 인권보호와 생명의 안전을 위해 미국 의회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조사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장근 교수의 글을 통해 파룬궁에 대한 이모저모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리홍즈가 1992년에 창시한 단체이다. 처음에는 적은 규모의 파룬궁 훈련반을 출범시켰지만, 이후 수련자가 급증했다. 그의 파룬궁은 기왕에 공인받은 신체단련 중심의 기공과 달리 종교적 교의 속에서 발현했다는 특징이 있다. 세력이 확산된 요인은 대중에게 법륜대법을 소개한 이후 유신론과 치병 등 내적 특징과 노년층의 증가, 사회보장제도의 약화와 같은 외적 요인에 힘입어 급속도로 세력이 확대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약 5천만 명 정도의 수련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1998년, 랴오닝성의 선양에서 열린 아시아체육대회에서 1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연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때 대회 주최자는 중국 정부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미운털이 박혀 박해를 받기 시작했을까? 특히 1990년대에 파룬궁이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세력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그들의 세력이외에 커지는 집단의 꼴을 못 본다. 더군다나 파룬궁은 종교색이 짙다 보니 요주의 단체가 되어버렸다. 중국정부는 파룬궁 초창기엔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였지만 1996년에는 ‘미신단체’로, 그리고 1999년에는 ‘사교(邪敎)’로 규정하여 공개적으로 탄압하기에 이른다. 전통시대의 왕조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 사교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국가가 의도한 것은 건강한 기공단체였으나, 오히려 무교문화를 핵심으로 한 기공대사들이 출현하여 높은 인기를 끌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인민들이 정부의 입맛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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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03-20 공감(3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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