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3

알라딘: [전자책] 순이 삼촌

알라딘: [전자책] 순이 삼촌
[eBook] 순이 삼촌 
현기영 (지은이)창비2015-03-25 

전자책정가
10,500원

책소개

탄탄한 구성과 서정적인 묘사가 어우러진 중후한 문체로 제주도 수난의 역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특히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왔던 '현기영의 중단편전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아버지'(1975)부터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4.3소설의 최고봉이자 4.3사건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이 삼촌'(1978), 단편소설의 백미인 '마지막 테우리'1994)까지 모두 30편의 중단편 작품(마당극 '일식풀이'와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 포함)을 개정해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첫째권 <순이 삼촌>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대표작 '순이 삼촌'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30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된 진실을 생생히 파헤친 문제작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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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드방놀이 · 순이 삼촌 · 도령마루의 까마귀 · 해룡 이야기 · 아내와 개오동 · 꽃샘바람 ·
초혼굿 · 동냥꾼 · 겨울 앞에서 · 아버지

책속에서
첫문장
큰 흉년이던 계축년 3월, 정의고을에 진휼이 실시되어 기민에게 죽사발을 돌리던 날, 같은 시 같은 곳에서 기민창 색리 윤관영이 부형(釜刑)을 받았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하필 여기가 가려울까? 환장하겠네˝
아저씨, 아저씨, 혹시 거기서 새살 돋아나오려는 거 아녜요? 봄 되니까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 트려고 가려울 거예요, 아저씨. 너는 굴다리 밖으로 나오면서 올봄에는 저 아저씨에게 미끈한 종아리가 진짜로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나도 약방에 들러야겠다. 그 의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면 테라마이신을 사 먹으라고 했다. 어서 빨리 새살이 돋아나야지.
너는 약방 앞 쓰레기통 속에다 손수건에 싼 금붕어를 미련 없이 집어넣어버린다.

- 꽃샘바람 중에서  접기 - 高河
처벌했든지 간에 아무튼 일단 끝나버린 일, 공연히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더구나 저것들이 죄를 뉘우친다고 엎드려대죄하고 있는데…… 

형 집행권이 잠시 농락당한 것이 서운하다면서운하지만 저 실성한 것들이 그만하면 실컷 화풀이도 됐을 테니오히려 잘된 일이다. 하여튼 죽은 놈만 불쌍하구나. 

쯧쯧………사또는 잠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남은 진휼을 마무리짓기 위해 피 묻은 돌무더기와 윤관영의 시신을 치우라고 명했다.  접기 - 라스티
재빛 바다 안으로 날카롭게 먹혀들어간 시커먼 현무암의 갑())저걸 사투리로 ‘코지‘라고 했지. 바닷가 넓은 ‘돌빌레(盤)‘에 높직이 쌓여 있는 저 고동색 해초더미는 ‘듬북눌‘ 이겠고, 겨울 바다.
에 포말처럼 둥둥 떠 있는 저것들은 해녀들의 ‘테왁‘ 이다. 

시커먼현무암 바위 틈바구니에 붉게 타는 조짚불, 뭍에 오른 해녀들이 불을 쬐는 저곳을 ‘불턱‘이라고 했지. 나는 잊어먹고 있던 낱말들이심층의식 깊은 데서 하나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남모르는 쾌재를불렀다. 

이렇게 추억의 심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 머릿속은 고향의 풍물과 사투리로 그들먹해지는 것이었다.  접기 - 라스티
나이가 원수인 세상에 어른 되려고 하급 받으면 어찌하려고….… 나이가 자라서는 안된다. 나이 먹어서도 안되어.
다니 이 난세에 아이는 자라서는 안된다.
이가 죄요 원수인지라 반드시 총 맞거나 죽창 맞아 죽는 날이 오는법이다.

 어떤 아이들은 모자 안에다 철사테를 넣어 순경 모자같이 춤을 높이고 테두리를 팽팽하게 해서 쓰고 있는 게 보인다. 무척 순경이 나 병정이 부러운 아이들이다. 아마 커서 그렇게 되고 싶은 게다.
참 꾀가 약다.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 군경 가족이나 공무원 가족 을 빼고는 모조리 산폭도 가족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이니까. 순원이 도 면서기가 어려우면 그렇게 만들고 싶구나.  접기 - ----------------
현기영 (지은이)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과 자연 속의 인간의 삶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성가작을 선보여왔다. 소설집으로 『순이 삼촌』(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1983) 『바람 타는 섬』(1989)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누란』(2009), 수필집 『바다와 술잔』(2002) 『젊은 대지를 위하여』(2004)가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신동엽문학상(1986) 만해문학상(1990) 오영수문학상(1994) 한국일보문학상(1999) 등을 받았다. 접기
수상 : 1999년 한국일보문학상, 1994년 오영수문학상, 1990년 만해문학상, 1986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순이삼촌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큰글자도서] 순이삼촌 2 >,<[큰글자도서] 순이삼촌 1 > … 총 6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주의 4월, 그곳에는 ‘순이 삼촌’이 있다
현대사에 빛나는 거장 현기영의 문학인생 40년

탄탄한 구성과 서정적인 묘사가 어우러진 중후한 문체로 제주도 수난의 역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특히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왔던 현기영의 중단편전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아버지」(1975)부터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4.3소설’의 최고봉이자 ‘4.3사건’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이 삼촌」(1978), 단편소설의 백미인 「마지막 테우리」(1994)까지 모두 30편의 중단편 작품(마당극 「일식풀이」와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 포함)을 개정해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인이 초원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제 격정은 아니었다. 그 잔잔한 슬픔은 마치 가슴속에 마르지 않는 찬 샘을 갖고 있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무서운 격정에 사로잡혀 영각하는 소처럼 들판을 향해 울부짖기도 했다.
초원의 안개는 여전히 죽은 자들의 슬픈 영혼으로 무리 지어 떠돌고, 임자 없는 백골들이 아직도 어느 굴헝, 어느 굴속에 뒹굴고, 풀 뜯다가 풀 속에 숨어 있는 녹슨 탄피까지 잘못 먹어 장파열로 죽는 소도 있건만, 세상은 초원의 과거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았다. (「마지막 테우리」 25면)

첫째권 『순이 삼촌』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중에서 오랫동안 금기시했던 ‘4ㆍ3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순이 삼촌」, ‘그날’의 처절한 현장을 역사적 현재의 수법으로 절실하게 재현해낸 「도령마루의 까마귀」, ‘4ㆍ3사건’의 비극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적 사건으로 부각시킨 「해룡이야기」 등 초기 3부작이 돋보인다. ‘폭도’에 가담한 아버지를 둔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한 등단작 「아버지」 역시 ‘4.3사건’과 맞닿아 있다. 특히 대표작 「순이 삼촌」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30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된 진실을 생생히 파헤친 문제작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아직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순이 삼촌」 85-86면)

이밖에 지식인의 고뇌와 개인의 무력감을 섬세하게 그린 「아내와 개오동」, 소시민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동냥꾼」 등은 작가의 사회의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개인의 의식세계를 미학적으로 파헤친 「꽃샘바람」 「초혼굿」 「겨울 앞에서」 등에서는 초기 소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부정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한 「소드방놀이」는 탁월한 상상력과 상징성으로 오늘의 세태를 정곡으로 찌른다.

어째서 큰 부정은 죄가 안되고 작은 것만 죄가 되나. 부정이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부정의 탈에서 벗어나는가? 그렇다. 도둑도 좀도둑이 훨씬 도둑답다. 그것이 대담해져서 명화적쯤 되면 이미 도둑의 탈은 벗겨지는 법. 부정이란 것도 좀스럽고 쩨쩨한 구석이 있어야 진짜 부정이지, 쥐가슴 태우며 훔쳐내는 쌀 한톨, 실 한가닥은 부정이지만 환곡미 이백석 횡령은 이미 부정이 아니었다. (…) 그건 이미 부정이 아니라 지체 높은 권세였다. 큰 부정일수록 이렇게 모두 환골하고 탈태하여 나라 경영의 대종을 이루었던 것이다. (「소드방놀이」 27-28면)

둘째권 『아스팔트』에는 ‘4.3소설’에 속하는 「잃어버린 시절」 「아스팔트」 「길」 외에 제주도 출신 영세민의 애환을 그린 「귀환선」, 식민지적 잔재가 온존하는 교육현장을 고발한 「나까무라 씨의 영어」, 마당극 형식을 빌려 선악의 대립을 통해 민중의 각성을 일깨운 「일식풀이」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작가는 여기서 수난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사건의 폭력성과 참상을 고발하기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통해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보여준다. 이전의 작품들이 죽은 자를 위한 진혼의 서사였다면 이 세 작품은 살아남은 자를 위한 위로의 서사라 할 만하다. 특히 「아스팔트」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를 엿보이며 마무리되고, 「길」에서도 분노 대신 4?3사건의 상흔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가 애잔하게 묘사된다.

그러니 그것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사람 몫의 죽음이 아니라 남의 죽음에 덤으로 얹힌 무의미한 죽음이었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연히 처리되다니! 일순 노여움이 불끈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눌러 진정시켰다. 아서라. 휘진의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돼. 평상시 안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것이 난세의 논리가 아닌가. 흔히 시국 탓이라고들 말하지만, 가해자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발광케 만든 한 시대였다. (「길」 122-123면)

셋째권 『마지막 테우리』에는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우리 단편문학 역사에 빛날 명작”(염무웅)이라는 평가를 받은 표제작 「마지막 테우리」를 비롯하여 「거룩한 생애」 「목마른 신들」 「쇠와 살」 「고향」 등 ‘4?3사건’ 관련 작품과 자전적 소설 「위기의 사내」, 당대의 현실을 다룬 「야만의 시간」 등 7편의 소설과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각색한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가 실려 있다. 전통적인 소설 문법의 형식을 벗어나 파격적인 형식 실험을 보여준 「쇠와 살」에서 작가는 자못 격정적인 어조로 “개인을 발광케 만든” 야만의 시대를 절규하며 비극의 현장을 들려준다.

아,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전대미문이고 미증유의 대참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그렇게 무참히 파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짐승도 그런 떼죽음은 없다. 가해자들은 ‘사냥’이라고 했다. 그것은 ‘빨갱이 사냥’이라고 했다.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때 죽은 자는 모두 빨갱이다. 빨갱이가 아니면 왜 죽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떼주검을 휘발유 뿌려 불태울 때 그 냄새가 돼지 타는 냄새와 흡사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그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자기가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새삼 확인했는가. (「쇠와 살」 177면)

작가 현기영의 작품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4.3사건’을 소설화한 것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4?3’ 이외의 이야기로, 초기 소설에서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회의,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인간의 황폐한 내면 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닉 등에 골몰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교직생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자신을 모델로 한 자기고백적 소설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매는 뼈를 피해 살집만 골라 정확히 타격했다. 그의 육체는 활활 타는 불길 속에 내던져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 고통스러운 육체를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정신을 배반하는 육체, 제 몸이 이렇게 저주스러울 줄이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까무러치기라도 했으면…… (…) 매질이 끝났을 때 그는 교사도 작가도 아닌, 세 아이의 아버지도 한 여자의 남편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팬티에 겁똥을 깔긴 한마리의 사냥감 짐승이었다. (「위기의 사내」 223면)

그럼에도 현기영은 명실공히 제주와 ‘4.3문학’을 대변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되었다. 이것은 4.3문학 전반을 놓고 볼 때 현기영이 가장 독보적이며, 작가 자신에게는 ‘4.3사건’이 문학적 고갱이이자 기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4.3사건’은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謫客)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國馬)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해룡 이야기」 159면)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제주도민의 트라우마이자 작가의 문학인생을 완성하는 삶과 역사의 상징인 것이다. 임규찬의 평가처럼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꾼 사려깊은 문학적 삶”(「해설」)을 견지해온 작가 현기영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소설을 살아온 것’이다.

백조일손, 그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무렴, 4.3 조상은 그렇게 모셔야지. 내 조상 네 조상 구별 말고 섬 백성이 모두 한 자손이 되어 모셔야 옳았다. 4.3을 모르고 무슨 사업을 하고 무슨 학문을 하고 무슨 인생을 논하나. 그 모두 다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나같이 천한 심방놈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벌이는 원혼굿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한날한시에 죽은 원혼을 진혼하려면 온 마을 사람들이, 아니 온 섬 백성이 한 자손 되어 한날한시에 합동으로 공개적으로 큰굿을 벌여야 옳다. 바람길 따라 구름길 따라 무리 지어 흐르는 수만의 군병들, 전대미문의 가장 억울한 죽음이기에 가장 영험 있는 조상신으로서 우리를 보우해줄 것이다. 어허, 백조일손, 얼마나 좋은 말인가. 덩지덩지 덩덩 덩더꿍. (「목마른 신들」 99면)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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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마다 들어있는 감정의 깊이가 깊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구매
蘭芳桂馥 2017-05-15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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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여행가려고 알아보다가 제주도4.3사건울잘표혀놰준책이라고해서읽게되었습니다. 잘몰랐던제주도역사에대해조금이나마알게된것같았습니다.  구매
타카히로 2015-11-3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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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관련한 작품은 1/3 정도임에도 제주 4.3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현기영의 소설은 매우 쓰리다. 슬픔과 노여움, 용서와 화해 등이 서로 들락거리는 심리 표현이 절묘하다.  구매
hsislee 2018-04-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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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구매
아라 2018-07-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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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없이 그저 원칙을 따른 군인들에 의한 제주 민중 학살사건. 독재정권의 죄악의 역사. 구입한 뒤 읽기를 몇 해동안 망설였으나 읽어냈다. 쓰라리다. 오늘따라 제주 4.3을 추념하는 동백꽃 뱃지가 빛난다.  구매
양천재 2020-04-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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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우리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사건. 새창으로 보기


'제주 4.3사건을 아시나요?'

현대사에서 '제주 4.3 사건'을 입에 담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그래서였다고 스스로를 변명해봅니다만 이제서야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인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고도 불리우는 4.3사건이 이 책 '순이삼촌'을 통해 극적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네이버 사전의 요약에 의하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의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즉, 하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무려 7년에 걸쳐 벌어진 일인데요. 희생자 대부분이 양민이라는 것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고문과 잔혹한 학대를 가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중앙정부의 병력에 의해서죠. 

당시 제주도민의 전체 인구가 30여만명인데 이때 학살당한 희생자가 3만명에서 6만명에까지 이르른다고 합니다. 한 지역의 인구 10~20%를 절멸시킨 사건이 바로 제주 4.3사건이죠.  제주도민들은 좌익분자, 빨갱이, 폭도로 규정되어 학살당해야 했으며 부모형제, 친지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었습니다. 더우기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그 사건들을 철저히 금기시했어야 했습니다. 출신 고향도 숨겨야 했고 사투리도 버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유일하게 세상에 향해 던진 텍스트가 바로 이 책 '순이삼촌'이지요. 그것도 사건이 종료된지 무려 25년이 지난 1979년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자 현기영 작가는 바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국가가 감추어야 할 사건을 세상에 알린 죄로 말이죠.

이 책 '순이삼촌'은 현기영 작가의 중단편 모읍집입니다. 제주 4.3사건을 겪으며 지옥같은 그곳을 겨우 살아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살펴보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공감을 가져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 3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44년의 인생을 지나면서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숙연해졌던 건 처음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백해야겠습니다. 4.3사건을 알게 된 건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통해서입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가까이 4.3사건을 마주하고 분노하고 슬픔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지요.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순이삼촌 #제주43사건 #현기영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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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 2018-04-25 공감(1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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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 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 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이 중편쯤 되는 소설은 제주 학살의 사건을 세상에 고발한 소설이라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37살에 써서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로 인해 고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딱 내 나이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순이삼촌은

(고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린다.)

큰 옴팡밭에서의 삼만 명의 도민이 총살 당할 때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제주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처음에 그 사건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 내가 근대 한국소설을 기피하는 이유가 나왔다.. 우라나라가 근대시대로 넘어갈때 나타나는 아픔들.

그런 아픔들을 알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략 사건은 이렇다.

5.10 선거 때 부락 출신 몇몇 공산주의 골수분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선거를 보이콧한 사건이 화근이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공비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견벽청야 작전의 일부를 진행한다. 육지에서 군인이 대거 내려온 것이다.

선거를 보이콧한 김진배는 산으로 도망가고 아내는 부락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군경은 마을 남자들은 밤낮으로 산으로 가지 않은 자들은 공비라 칭하고 마구 죽이게 된다.

남자들은 늘 군경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나 실제로 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군경을 피해 도망간 마을 남자들이고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군경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학교 운동장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직계가족이 군,경,공무원인 사람들을 분리 해내고

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공비라 믿고 총살에 이르게까지 한다.



살아남은 남자들은 조용히 숨어지내다가  6.25 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해병대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신 잡는 해병. 햐.. 참. 나도 그 겉멋에 지원했지만,

제주도 남자들은 그때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더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있다간 다시 빨갱이로 몰려 개죽음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섬 출신 청년 삼만 명을 주축으로 이루게 된 해병대 3기들. 그들에게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래도 내가 빨갱이냐?" 하면서 용맹을 떨치는 모습을.

그건 시대의 아픔을 전쟁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건이 30년 동안 신문 한 토막 나오질 않았다.

와.



우린 이런 시대를 거쳐 온 것이다.

우리 주변엔 순이삼촌이 많을 것이다. 순이삼촌은 그 공포의 시간 속에서 세상에 알리기 두려워 지금도 가만히 떨고 있을 것이다.







해룡이야기.

p.163

중호는 사무치는 자괴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으락?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해룡. 해룡에게 먹히는 사람들은 다 팔자소관일 뿐, 해룡에 대한 적개심은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덜덜 떨리게 두려울 따름이다. 피 묻은 흰 저고리와 시푸른 군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것은, 그러니까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바로 겁이었다.



이번 단편도. 제주의 한 사건을 겪은 중년의 이야기 이다. 자신들을 해룡에 재물을 바치는 마을 사람들로 비유하고 있다.

중호는 본적을 서울로 옮기고 서울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학창시절 동창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오래전 그 소각사건을 떠올린다. 옴팡밭의 기억. 자신의 기억에 숨어버린 중호는 이제서야 자신을 찾으려한다. 아내에게 당당히 말하고 어머니에게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선 우선 본적을 제주도로 다시 옮기는 것부터 한다.



이제 더이상 겁내지 말자. 불같이 노여워하고 무섭게 증오해야 한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속에 묵혀둔 피해의식을 떳떳한 증오로바꾸기 위해서, 그러나 증오가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집 나가신 날을 기일로 제사 올리는 아버지의 억울한 혼백, 항상 자학의 채찍질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자격지심, 나의 육지 콤플렉스를 위하여. 그 육지 콤플렉스라는 것은, 삼십년 전 그 세거리길에서 어린 나의 뇌리에다 화인으로 뿌지직 태워놓은 상흔이었다.



이 소설 이제야 읽어서 세상에 참으로 부끄러웠다.



​ 

작가에 깊은 존경을 느끼며 잘 것이다.





오늘 밤엔

'지상의 숟가락 하나' 를 꺼내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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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2018-03-2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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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순이삼촌 새창으로 보기
#book #현기영 #순이삼촌. 동명의 표제작뿐만 아니라 함께 수록된 10편의 단편 모두에는, 제주 4.3사건처럼 국민에게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포함해, 약하고 힘 없는 자를 짓밟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신보다 힘없는 자를 향해 주저않고 쏟아내는 각자의 적나라한 ˝갑질˝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Kay S. 2018-05-1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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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새창으로 보기
2014년에 처음 가본 제주도는 중국인들이 많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생긴 관광지의 겉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이제 제주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을 통해서<순이삼춘>을 읽은 적이 있는데, 4.3 사건의 비극을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됐다.

재일 동포중에 제주도 출신이 많은데, 4.3 사건 후에 일본으로 밀항해서 살 길을 찾은 경우들이다. 

2000년 초에 현기영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안사에 끌려 았을 때 조사관이“ 해병대 제대했네. 해병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육군 많이 때렸지” 라는 말을 하면서 유머 속에서 강연을 했다.

폭도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병대를 자원하거나, 제주도에 주재중인 북한 출신 군인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안정망을 구축하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4.3 제주도를 그린 단편들과 신문사 기자가 여공들의 살아있는 현실을 쓴 기사는 부장에게 컷 당하고, 사표 내고 나온 후 번역 일을 하는 당시의 시대상, 제주도 출신들의 고단한 서울 살이를 엿 볼 수 있는 단편들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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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 2018-08-2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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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오인된 이데올로기의 참사 새창으로 보기


순이삼촌 / 현기영 / 창비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순이삼촌>은 현기영의 중단편전집1로 여러개의 중단편중 [순이삼촌]은 제주도 4.3사건을 다루고 있다. 현기영은 제주도 출신으로 4.3사건의 대표주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순이삼촌>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저 제주도 4.3사건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한다.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전쟁시에 전략적 기지로 사용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6만여 명이 주둔한 전략적 기지였고 8.15 광복 직후에는 일본군이 철수하고 외지에 나가 있던 6만여 명의 제주 주민들이 일시에 귀환하여 급격한 인구 변동을 겪었다. 당시 제주도나 육지나 일거리와 먹을거리, 생필품 등이 부족했으며 특히 제주도는 전염병에 극심한 흉년과 식량냔이 겹쳤다. 게다가 일제에 부역한 경찰들이 미군정하에서 다시 치안을 책임지는 군정경찰로 변신, 민생이 피폐한 상황에서도 군정관리들은 사리를 채우는 부정행위를 일삼고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가 부각된 상황에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발생하여 4.3사건이 발발하게 된다.





1947년 3월1일, 3.1절을 맞아 좌파진영의 제주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의 약칭)이 기념집회를 주최하고 시가행진을 하며 가두시위에 돌입,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기마경찰이 그대로 가려하자 일부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로동 제주도위원회가 사건 대책 투쟁위원회를 결성, 반경활동을 전개한다.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단체에 동조자이거나 관련이 있는 좌익분자의 거점으로 알려져있다"고 보고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이다보니 제주도의 선량한 도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순이삼촌>은 조부모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나'. 친척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 서울구경 삼아 '나'의 집에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내려온 순이삼촌의 안부를 묻자 얼마 전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순이삼촌아 서울에 있는 동안 제주도말을 쓰는 순이삼촌과 제주도말을 모르는 집사람과의 신경전으로 골치를 섞었는데 그 일이 순이삼촌에게 화가 미친 것은 아닌가 염려된다. 그리고 친척들에게 듣게 된 순이삼촌의 이야기. 4.3사건을 겪은 순이삼촌은 외상 후 스트레스인지 사건 이후로 환청증세를 보인다.





그녀, 순이삼촌의 입장에서 그려 본 4.3 사건은 군인들이 집을 불태우고 양민들을 학살했다. 행방불명된 남편들, 총에 맞아 죽으면서 아기를 지킨 어머니들, 공비의 습격을 막고자 성을 쌓고 허물고 노역에 스러져가는 도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초토화된 마을과 초토화된 정신수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다보면 극악무도한 행태들때문에 잠깐 읽기를 멈춰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순이삼촌>에는 순이삼촌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4.3 사건을 겪은 심리적 갈등을 다룬 이야기도 있고([아버지]) 제주도가 고향인 인물들이 느끼는 제주도에 대한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에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를 살찌우는 

목마에만 신경 썼던 역대 육지 목사들.

(중략)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을 버리고 싶었다.

찌든 가난과 심한 우울증밖에는 가르쳐준 것이 없는 고향,

그것은 비상하려는 그의 두 발을 잡아 끌어당기는 깊은

함정이었다."(해룡이야기)







고향을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하고 보호받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민으로서 4.3사건을 겪은 이들은 대놓고 위령제 한 번 지내지 못하는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산 폭동으로까지 오인되었던 4.3사건은 섬 전체를 파괴시킨 오인된 이념의 부작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은폐되고 붉은 섬으로 낙인찍혀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제주도. <순이삼촌>이 발표 될 당시 피해자들의 신세한탄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그 억울한 죽음은 어디가서 달랬을까? 잃어버린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 동생들의 넋을 달랠 수야 없겠지만 우리가 4.3사건을 잊지 않고 역사를 뒤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부끄럽지만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들추어 또 다른 피해가 없어야겠다. 4월을 맞아 4.3사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순이삼촌>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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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마 2020-04-15 공감(2) 댓글(0)


순이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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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Sun-i Samch'on
저자 현기영
국가 대한민국
언어 한국어
장르 소설
출판사 창작과비평
발행일 1978년 9월
《순이삼촌》(順伊三寸)은 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의 사실주의 중편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에 일어났던 1949년 1월 16일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4·3 사건을 최초로 다룬 작품으로 문학사적, 역사적 의의가 큰 1970년대 대표적 문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된다. 4·3 사건 언급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제4공화국 시절에 발표되어 작가가 고문과 금서조치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4·3 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고 문화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순이삼촌」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신이 일구던 밭에서 생을 마감한 ‘순이 삼촌’의 자살 원인을 찾아 나아가는 ‘의문-추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려 고향에 들른 서술자 ‘나’가 친척 아주머니인 ‘순이 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다.)이 죽은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되어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30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의 한가운데서 두 자식을 잃고 천행으로 살아남았으나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고 평생을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며, 그 비극의 현장인 자신의 ‘옴팡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자살하였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이삼촌 [順伊三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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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 극복 위해 ‘순이 삼촌’ 쓰지 않을 수 없었죠”

등록 :2019-11-24 15:10수정 :2019-11-25 02:35
최재봉 기자 사진
최재봉 기자

현기영 작가 21일 ‘순이삼촌’ 40년 간담회
4·3 진실 알린 첫 소설로 고문 고초도

“어릴 때 겪은 4·3으로 말더듬이 증세까지”
이경자·김정환 등 문인 30여명 참석

<순이 삼촌> 작가 현기영. 최재봉 선임기자

21일 저녁 서울 망원동 창비 건물 지하 행사장에서 뜻깊은 모임이 열렸다.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 삼촌> 발간 40주년을 축하하는 간담회였다.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장 원종국)가 마련한 이 모임에는 주인공인 작가 현기영을 비롯해 동료 문인 30여명이 참가했다.

<순이 삼촌>은 현기영의 첫 소설집이다. 특히 표제작인 중편 ‘순이 삼촌’은 제주 4·3의 진실을 처음으로 소설로 알린 작품이다. 이 소설 때문에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책 <순이 삼촌>은 금서로 묶여 그 뒤 14년 동안 독자를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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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유미주의 성향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1일 모임에서 그는 “4·3 얘기를 한 번은 소설로 쓰고 그 뒤에는 ‘문학’이란 것을 좀 하려 했는데 일생을 이것에 매여 살아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서 겪은 4·3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말더듬이 증세가 나타났어요. 억압된 내면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소설로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4·3에 관한 이야기가 금기였기 때문에 조금 두렵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장치도 마련했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요. 소설에 양심적인 서북청년단을 등장시켰거든요. 그래도 소용이 없더군요.”





소설가 현기영이 21일 저녁 서울 망원동 창비 지하 행사장에서 자신의 소설집 <순이 삼촌> 발간 40주년을 기념해 후배 작가들이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현기영 소설집 <순이 삼촌> 역대 판본들. 최재봉 선임기자

그는 2박 3일에 걸쳐 겪은 고문을 회고하면서 거듭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고문이란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후배 작가들이 현기영과 <순이 삼촌>에 관한 회고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순이 삼촌>은 소설이 억압과 주눅들림, 왜곡, 거짓으로부터 어떻게 힘차게 역사적 진실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를 증거해 준 작품”이라며 “선배 작가가 개척해 놓은 길이 등대 불빛처럼 후배들을 이끌고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시인 강형철은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는 김수영의 시 ‘폭포’ 첫 구절을 인용하며 “현기영 선생은 금기로 묶인 진실을 용감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한기욱 <창작과비평> 주간은 “<순이 삼촌>은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현기영은 “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이 개인과 일상에 치우쳐서 아쉬움을 주었는데 최근에는 공동체와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작품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문학에서 개인과 사회, 일상과 역사는 같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소설가 김서령과 문학평론가 홍기돈이 ‘순이 삼촌’ 일부를 낭독했으며, 후배 문인들은 자신이 읽은 <순이 삼촌> 단행본을 가지고 와서 선배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는 시인 김정환·박남준·박철·김해자·정우영·안현미 등과 소설가 유시춘·한창훈·오수연·전성태·심윤경 등이 참가했다. 행사를 마련한 원종국 위원장은 “2029년 11월, <순이 삼촌> 발간 50주년 축하 모임에서 다들 다시 만납시다”라는 발언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18245.html#csidx6a6dfbea6df447a851b94b248ecc6f9


순이 삼촌

최근 수정 시각: 2021-06-22 22:59:38


분류
한국 소설
제주특별자치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1. 개요[편집]
현기영의 1978년 작인 단편소설로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화자인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당시에 있었던 일을 겪은 인물들과 중심 인물인 순이 삼촌[1]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담고 있다.

2. 등장인물[편집]

나(화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 30대 중후반. 제주도 태생이나 서울로 상경하여 현재는 자녀를 둔 대기업의 중역. 7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역시 일본으로 도망가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어 큰댁 식구들 밑에서 성장했다.
성인이 되어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상경한 뒤 아픈 상처만이 가득한 제주도를 잊고자 노력하다가 할아버지의 제사로 인해 8년 만에 제주도로 돌아오나 자신을 어린시절부터 돌봐준 순이 삼촌[2]이란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아 친척들에게 얘기하자 순이 삼촌이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다.
순이 삼촌: 이야기의 중심인물. 향년 56세. 옴팡밭을 일구며 살아온 중년 여성으로 슬하에는 결혼한 딸 내외가 있다. 몇 달동안 주인공의 집에 지내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었지만 PTSD를 심하게 앓고 있어서 가끔씩 심한 피해망상과 환청에 시달렸다. 30년 전 북촌마을에 있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이 상처가 되어 작중 시점 얼마 전에 음독 자살을 했다.
길수: 주인공의 큰댁 사촌형. 주인공과 1살 차이이고 중학교 교사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나 부업으로 귤밭을 일구는 중이다. 고모부의 책임회피에 하루빨리 사건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흥분한다.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이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사촌으로 주인공을 여러번 도와주었다.
고모부: 서북출신으로 당시 청년단 소속. 돌아가신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화를 피하기 위해 황급하게 고모와 결혼시켰다.[3] 그 당시 사건에서 정부와 군경을 많이 옹호하여 친척간 말다툼이 일어난다.
순이 삼촌의 딸 내외: 주인공이 서울에 있었을 때 만난 순이 삼촌의 딸과 사위. 이 딸은 순이 삼촌이 남편을 잃은 후 낳은 유복녀이다.

3. 줄거리[편집]
주인공은 현재 서울에 지내면서 대기업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며 큰댁 식구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제사차 고향으로 내려오란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까지 일본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오지 않아 고아로 지내다시피 한 주인공에게 제주도는 상처만이 남은 곳이다.

제주도에 온 뒤 고향인 북촌마을에 도착하여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순이 삼촌이란 여성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 주인공.
순이 삼촌은 몇 달 동안 서울의 주인공의 집안일을 도와준 먼 친척 아주머니로 잦은 환청과 불안증세로 인해 사회생활이 어려워 그녀의 딸과 사위도 그녀의 병을 걱정하고 있다. 주인공 역시 그들에게 얘기를 들어 삼촌의 증세가 파출소 사건 이후로 생긴 걸로 생각중이지만...

길수 형에게 순이 삼촌이 보이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삼촌 얘기를 하는데 주인공이 순이 삼촌 얘기를 하자 얼굴이 어두워진 길수 형은 실은 주인공이 오기 며칠 전 순이 삼촌이 옴팡밭에서 음독자살을 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어른들 모두 30년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30년 전인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갑자기 군경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그 뒤 안내방송을 듣고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군경들이 전부 친척 중에 군인이 있는 가족들은 나오라 명한 뒤 가족이 없는 이들을 전부 교문 밖의 공터로 끌고 가 마구잡이로 총살했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는 순이 삼촌 뿐이었으며 그녀 역시 뱃속의 딸을 제외하고 그 총격에서 남편과 쌍둥이 남매를 잃는 참변을 겪었다. 그 뒤 아이를 낳은 다음 옴팡밭을 일구면서 그날 그날 생활을 영위하던 그녀는 그 상처를 잊기 위해서 서울로도 올라왔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야기를 한 다음 주인공은 밖으로 나가서 한숨을 쉰 뒤 그 죽음은 이미 30년 동안 해를 묵힌 운명이었고 삼촌은 이미 그 때 숨졌던 인물이며 그 상처가 30년의 기나긴 시간을 보낸 뒤 비로소 가슴 한복판을 꿰뚫어 당신을 죽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집안에서 길수 형은 이 사단은 국가 전체에서 조사하고 배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고 고모부는 그냥 덮어두자고 하여 잠시 심한 언쟁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 농사일로 대화 주제가 바뀐다.


[1] '삼촌'이라는 호칭 때문에 남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인물은 여성이다. 옛 제주 방언에서는 연장자를 성별 상관 없이 '삼춘(삼촌)'이라 부르고, 연하자를 '조캐(조카)'라고 불렀다. 해당 문서의 표제어는 표준어인 삼촌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제주에서는 삼춘이라고 발음한다.[2] 제주어에서는 여성도 삼촌이라 부른다.[3]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서도 고모의 행복을 위해 괜찮은 사람을 찾아다가 데려왔다. 고모부는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건이 끝나고 육지로 복귀한 다음에도 제주로 돌아와 고모를 찾아왔고 결국 제주에 정착하여 가정을 꾸려 오래오래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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