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

손민석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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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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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본주의 발전에서 1945년 이전과 이후의 변화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농업 등의 1차 산업의 상대적인 비중 축소이다. 19세기의 세계시장은 유럽 역내 무역 및 유럽과 유럽의 이주민 식민지 사이의 무역이 70% 이상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미국 및 유럽 시장과 그밖의 아시아 등의 비서구 시장 간의 관계는 서구시장이 공업제품을 수출하고 비서구 시장이 판매시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원료, 식량 등의 1차 생산물을 수출하는 패턴이었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서구가 비서구 지역에 강요하는 근대국가적 국제법 관계가 유지되었다. 비서구 지역은 유럽적 공법 질서 속에서 피식민화되거나 주권이 제한되는 정치적 불평등 관계를 겪었고, 사실상 이러한 정치적 불평등 관계가 경제적 불평등 관계를 뒷받침했다.
 이런 19세기형 세계시장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점차 20세기형 세계시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월러스틴의 설명대로 레닌적 기획과 윌슨적 기획은 비록 그 정치적 배경은 달랐을지라도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각 민족공동체에 평등한 정치적 관계를 약속했고 그에 따라 형성된 각각의 주권국가들 간의 상품의 무제한적인 교류를 보장해주는 자유무역질서 혹은 민족적 구별마저 사라진 사회주의적 국제질서 중 어느 것을 지향할 것인지를 놓고 경쟁했다.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은 공산주의와의 경쟁 속에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더욱더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그것을 뒷받침할 경제적 혁신 또한 이뤄졌다. 포드 시스템, 대기업 체제 등의 경영에서의 혁신이 도입되면서 자본주의는 더 깊게 사회로 파고 들었고, 상품뿐만 아니라 자본, 노동력, 산업 자체가 통째로 전세계로 이동하면서 전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어갔다. 
 기존의 19세기적 국제질서 속에서 후발자본주의는 원료, 식량 등의 1차 산업의 생산물을 미국 및 유럽의 시장에 판매하며 자본축적을 이루고, 그것에 기초한 수입대체적 공업화를 추진하여 만들어낸 공업제품을 주변의 저개발 지역에 판매하며 자본을 축적했다. 이 과정은 서구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주변 저개발지역에 불평등한 정치질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일본제국의 발흥이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공업화는 아예 선진국들 간의 분업관계에 후발주자가 편입되면서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든 외자유치를 통한 간접투자든 그 형태와 관계없이 선진국의 공업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공업제품의 판매 시장이 주변지역이 아니라 선진국 시장이었다는 점이 큰 변화 요소였다. 19세기적 세계시장 내에서의 독자적인 국민경제권을 형성하려던 제국주의적 시도는 20세기적 세계시장에서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20세기적 세계시장 내에서의 공업화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분업관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적 세계시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블록 경제권까지 진행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지만, 19세기적 질서 속에서 선진자본주의는 독자적인 국민경제권의 존속을 위해 후발주자의 공업제품의 성공을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독일제국과 대영제국의 경쟁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적 세계시장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었던 원료, 식량 등의 수출길이 아예 막혀버렸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 자본주의는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 수입 제한, 농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 지급, 농민의 이윤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적인 농산물 구입 등을 꾀했다. 게다가 식량생산에 필요한 비료가 화학비료로 대체되면서 1차 산물은 더욱 비중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후발주자들이 1차 산업을 통한 자본축적을 해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몰락이 대표적인 사례라 생각한다. 박일환 등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전세계 곡물 재고율은 그 이전보다 크게 증가하여 대체로 1960~70년대 초반까지를 식량 부족의 시대라 한다면 그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를 식량 잉여의 시대라 표현하고 있다. 
 국가의 지원 속에서 미국의 기계화된 가족농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생산성은 제3세계 농민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 농민들까지 몰락시킬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경제개발은 농산물 등의 1차산업 생산물의 수출보다 선진국 분업체계에 편입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었다.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이후 미중수교, 인도의 세계시장으로의 편입, 소련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종말 등을 통해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적인 자본, 노동력, 산업 등의 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2000년대까지 여전히 농산물은 남아돌았고 자본, 노동력 등은 전세계적 규모로 이동하면서 중국, 인도의 값싼 노동력과 유럽 및 미국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러시아 등의 값싸고 질좋은 원료가 전세계에 공급되면서 1990년대 이후 제2의 자본주의 호황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고려해야 할 점은 이 20세기형 세계시장과 그에 맞는 질서가 점차 형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걸 잘 봐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사적 사건이 된다면, 나는 아직까지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20세기형 세계시장이 만들어놓은 자본, 노동력, 상품, 그리고 산업의 무제한적인 이동이 끝난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러시아의 국력신장 자체에서 이미 그러한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던 식량부족의 시대가, 1960~70년대 식량 잉여의 시대로 전환되어 2000년대까지 이어져 왔는데 2000년대를 기점으로 다시 식량부족의 시대로 전환되어갔다. 2010년대 들어서는 아예 농산물 가격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러시아 밀 수출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러시아 경제성장의 절반 이상을 농업이 선도하였다. 여기에 러시아의 천연가스 등의 값싼 에너지 공급 또한 상당한 정도로 작용하면서 러시아가 전세계에 곡물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한 지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힘이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독자적인 G3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면서.
 세계자본주의가 21세기형 세계시장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농업과 같은 1차산업이 다시금 자본축적의 주요한 요소로 재편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블록화가 진행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임금노예제의 임금농노제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론화해서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 부족하고 함께 논의할 사람도 많지 않아서 혼자 고민만 하고 있지만, 지금 이 변화를 봐야 한다. 앞으로 한동안 세계는 크게 재편될 것이다. 안보적으로 믿을 수 있는 국가들끼리 공급망을 새롭게 재편하고 그에 따라 지역적인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다시금 재편될 것이다. 
 19세기형 세계시장이 그 마지막에 이르러 제국주의로 변모하며 독자적인 국민경제의 재생산을 위한 지역적 규모의 블록화 경제를 지향했던 것이 21세기형 세계시장에서 지역 국가들 간의 “자발적인” 결합을 통해 재현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며 논의해야 할 지점은 이것이다. 19세기 농업은 후발주자가 자본축적을 위해 선발주자에게 공급하는 제품이었다면, 21세기 농업은 선발주자들이 안정적인 공급망 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산업혁신을 위해 새롭게 수출해야 할 상품이 되었다. 이 흐름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국가만이 21세기형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으리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혁명을 꾀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제도의 혁신, 사회적 공화정의 등장 등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나는 아직도 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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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 Hui Kim
휴… 아마도 기후위기가 이런 현상을 더 심화시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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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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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참 궁금해하던 것인데 멀쩡한 사람들이 도대체 왜 특정한 사건, 특정인 등에 목숨을 거는 걸까? 지식인이 자신의 사상체계를 굳이, 정말 굳이 특정인과 특정한 사건 따위 하나에 날려버리려고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 러시아의 부차 학살 사건의 진실 여부에 왜 그렇게까지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러시아가 학살을 범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 상황에서 선이 되는가? 전쟁에서 선악을 구별하는게 별 의미없다고 보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미 전쟁을 일으킨 악이다. 더 악하든 덜 악하든 악은 악이다. 반대로 학살을 저질렀다고 해서 상황이 딱히 크게 변할 게 없다. 어찌됐든 전쟁은 끝나겠지만 러시아의 공세적인 태도는 한동안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다. 푸틴을 참수하더라도 러시아의 태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따져야 할 문제는 러시아는 배제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국가이며, 세계시장 내에서 곡물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가 전세계 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30%나 된다. 과거 19세기 제정 러시아가 차지했던 25~30% 비중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군사적으로도 러시아는 여전히 강대국이다. 군사적으로는 강대국이지만 산업구조적으로는 후진적인 국가, 그렇지만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푸티니즘의 러시아는 19세기 제정 러시아와 비슷하다. 그때 어떻게 했는지 찾아보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자꾸 멍청한 인간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어버려야 하네 어쩌네 흰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렇게 끊을 수가 없다. 러시아의 곡물, 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정권 넘어갈 지역 많다. 미국도 정권교체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무슨 어린애 절교하듯이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발 좀 정신들 차리고 말을 해라. 애새끼들도 아니고.. 이런 애새끼들과 러시아의 부차 학살을 부정하는 것에 목숨 거는 애새끼들 사이에서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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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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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SNS, 아니 그냥 트위터에서 미제국주의 운운하면서 싸우는 자타칭 트로츠키주의자, 맑스레닌주의자 등을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다. 한국어판 번역본만 제대로 읽었어도 할 수 없는 소리들을 해대기 때문이다. 사실 소련사 전공자들조차도 그러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제발, 한국어판본이라도 제대로 읽자.
 예를 들어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선진자본주의가 후진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하며 착취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식이면 프랑스의 자본수출의 상당부분이 러시아로 이뤄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러시아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나? 레닌은 프랑스를 고리대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설명하지만, 러시아가 프랑스의 식민지라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자본수출이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는가?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인용하는 자본수출 통계들은 전혀 다른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레닌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자본수출은 자본수출을 통해 이윤을 안겨줄 수 있는 조건을 지닌 지역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민지배를 통해 초과이윤을 얻는다는 식의 발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비非자본주의 지역의 병합을 통해 발전한다는 언술은 오히려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의 내용에 더 가깝다.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아야 차라리 논점이 형성되는 것이지, 전혀 관련 없는 걸 무슨.. 그리고 제국주의가 금융자본가 등의 특정한 계급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발화는 이미 마르크스의 인도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론의 핵심 논지 중 하나가 영국인 관료, 귀족, 상업자본 등이 인도의 생산력 발전에는 도움 안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다는 것이었다. 계급론적 관점이 마르크스, 레닌 등에 걸쳐 존재하는 것인데.. 그런 논의는 하나도 없고.. 아무튼 정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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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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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방송 끝난 다음에 수정주의 방송하려고 했던 게 수정주의를 깊게 다뤄야 비로소 레닌(주의와 스탈린)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 수정주의"만" 다룬 저작이 거의 없다보니 그냥 레닌 읽으면 솔직히 이해 안된다. 레닌이 혼자 난리치는 걸로 보일 가능성이 100%.. 수정주의를 다뤄야 레닌이 왜 이런 말들을 하는지가 이해가 된다.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왜 말이 안 통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레닌과 룩셈부르크 간의 논쟁을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게 용어만 같지, 맥락도 내용도 다 다르다. 기회주의에 대해 레닌은 러시아 차리즘에 어떠한 형태로든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기회주의라 정의한다. 경제주의가 기회주의가 되는 게 바로 그런 이유이다. 무장봉기 할 정도로 세력 키워서 차르 죽여야 하는데 노조활동으로 임금 올리자고 하니 레닌이 미친다. 그런데 룩셈부르크가 보기에 기회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부르주아 정치세력, 자유주의자들에게 유화적이면 기회주의가 된다. 룩셈부르크가 보기에 경제주의는 노동조합 훈련시키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된다. 이러니까 둘이 막 싸우는데 내용상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룩셈부르크가 기회주의를 이렇게 정의한 게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자들이 독일에서 하고 다닌 게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였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이 보기에 '의회 내에서' 자유주의자들과 연대 안하면 도대체 어떻게 독일 카이저 체제에 대항할 수 있겠나? 오히려 자유주의자들한테 노동자 계급이 배울 점도 많다. 노동자 계급의 부족한 교양 등을 자유주의자들한테 배우면서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흡수해야 한다. 노동계급을 성숙하게 만드는데 자유주의자들을 이용해먹을 수 있는 것이다. 베른슈타인한테는 오히려 룩셈부르크 같은 혁명을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기회주의자였다. 할 수도 없는 일을 한다고 사기치면서 세를 모으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 -> 룩셈부르크 -> 레닌 등을 경유해서 기회주의라는 용어가 제각기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데 서로 그냥 말한다. 네가 기회주의로구나! 이걸 정리를 해주고 어쩌고 해야 말이 통하는데 서로 그냥 다른 얘기하다가 아, 저새끼 말 안 통하네.. 하고 만다. 
 그런데 지금 레닌 연재 하면서 수정주의 파트를 생략해버리니 말이 갑자기 붕 뜬다. 이러면 이제.. 일반적인 레닌에 관해 글쓰는 사람들처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말을 하게 된다.. 이걸 안 하려고 머리 싸매고 있는데 모르겠네.. 모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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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Yhtesaotler06doay crea3t 0l1:31g  ·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 농업에서의 혁신을 몰랐던 이들이 많아 보인다. 러시아 농촌의 황폐화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농업분야의 혁신은 놀라울 정도이다. 스탈린이 집단농장화를 통해 농민 계급을 "분쇄"한 뒤로 소련이 존재한 내내 농업분야는 국가재정을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분야였다. 물론 스탈린만의 잘못은 아니다. 길게는 18세기 후반, 짧게는 1880년대 이후 러시아는 주요한 곡물수출국가였지만 농업생산성의 향상에 따른 잉여생산물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업화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농민공동체인 미르를 통해 농민을 궁핍화시키는 '기아수출'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이 없었더라도 러시아의 농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소련의 집단농장체제 하에서 러시아 농업은 애물단지였고 그것은 소련 패망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갑작스럽게 집단농장체제에서 자영농체제로 이행하려던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은 실패했고 국가안보상의 위기까지 일어날 만큼 러시아 농업은 쇠퇴했다.
 그러던 러시아 농업이 최근에 이르러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크게 성장했다 2007~2016년까지 러시아 농업은 35%라는, 이전에 비하면 경이로운 성장을 보여줬고 러시아 경제성장의 거의 절반을 농업분야가 선도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크게 보면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기후위기와 루블화의 저평가이다. 기후위기 속에서 유럽의 농업생산은 기록적인 폭우, 가뭄 등의 요인으로 흔들렸고 그 틈을 러시아가 메웠다. 루블화가 저평가 된 것도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도움을 줬다. 마지막으로 농산물 가격이 국제적으로 높게 유지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2016년 세계 최대의 밀수출 국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농업에서의 혁신이 중요하다.
 경영주체를 보면 역시나 농기업의 비중이 크다. 대규모의, 기계화된 영농체제인 농기업이 부업농, 자영농 등을 압도하며 생산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정부의 적절한 농업 지원과 함께 서방의 대러 제재에 대응하여 EU, 미국, 노르웨이, 캐나다, 호주 등의 식품에 대한 수입제한조치를 펼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수입은 줄이고 수출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적절하게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투자효율성의 증대가 놀라운 수준이라 전체 투자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상승 등의 혁신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20% 이상의 투자 효율성 증대가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생산성 향상과 적절한 투자, 대규모의 기계화, 아직도 많이 남은 휴경지 등의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과 상대적으로 좋은 대외조건이 겹치면서 러시아 농업은 고도성장을 이어갔고 수출이 잘 됐다. 아직도 성장할 여력이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중국의 곡물수입제한이 풀릴 것을 기대해볼 수 있었다. 중국은 1976년 이후 곡물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2022년 2월 결국 러시아의 밀수입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미 2021년부터 중국의 농업기업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투자하기도 했고 밀수입을 하기도 했다. 전체 러시아 농산물 수출에서 10%정도의 비중을 기록하는 규모라 한다. 이 밀수입 결제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한다고 하니 위안화의 사용도 더 늘어날 것이다. 알타이,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지역 등이 대對중국 수출을 두고 크게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안한 요소가 있다.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유출에 따른 인력 부족이다. 특히 대중국 수출을 담당할 시베리아 등의 극동지역에서의 인구부족과 인구유출은 러시아 농업분야의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밀 등의 주요한 농산물은 자급자족이 가능하겠지만 소, 돼지 등의 육류, 유제품 등의 낮은 자급률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계속해서 상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앞으로 러시아의 밀 수출은 더욱더 세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의 생산능력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가 문제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에서 주요하게 참고해야 할 또다른 포인트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러시아의 대중국 밀수출 루트가 뚫렸다는 것. 이것만 정확하게 알아도 사태를 가늠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밀과 에너지로 러시아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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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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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티니즘 2'라는 제목으로 푸티니즘 관련 주제글을 하나 더 쓰려고 계속 자료들을 모으고 보고 있는데 참 얼마나 황당한지. 전문가들조차도 계속해서 당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도 길어봐야 3일이면 전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길어질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지금 러시아의 침공루트가 과거 나치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던 방향의 반대 방향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계속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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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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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에서 현실의 노동자와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는 분리되어 있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계급과 현실의 집단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그렇다. 경우에 따라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경우가 없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마치 상품의 생산이 가치와 가격 간의 괴리 속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근대 정치는 계급과 현실의 정치세력 간의 괴리 속에서 운동한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대변하려고 한 것은 계급이지, 현실의 집단이 아니다. 그래서 레닌은 현실의 농민을 학살하면서도 태연하게 농민 "계급"과 "동맹"을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얼치기 민중주의자들이나 현실의 민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 한다. 이 분리가 근대적 "대의제"를 기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대의제를 망하게 한다. 트로츠키가 신랄하게 스탈린을 비판한 지점이 이 부분이었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스탈린은 계급을 대표하는 "정당"과 동맹한 것을 "계급 그 자체"와 동맹한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며 독일에서 나치즘의 성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특정 계급에 속하는 현실의 분자들과 대의제 내에서 재현된representative 계급을 엄밀하게 구별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내가 근대사회론을 논하면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은 그 계급이 허상이 아니라 자본제 3대 시장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계급을 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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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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