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 새로운 한국사의 이해를 찾아서
| 너머의 역사담론 2
미야지마 히로시 (지은이)너머북스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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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세트 - 전3권 - 너머의 해외 석학 3부작
책소개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 '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중국의 사대부, 일본의 사무라이, 그리고 한국의 양반을 비교하고, 명.청대의 어린도책,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 조선의 양안을 비교하는 등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중.일 역사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는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은 명대에, 한국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사 연구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자학'을 다시 보자고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학습에 따라 인간을 차별화하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적어도 18세기 말까지는 가장 개명된 합리적 사상이었다. 그에 입각한 국가 사회체제도 무척 선진적인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주자학 수용 노력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전된 중국 모델의 수용 과정, 요즘 말로 하자면 '세계화'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시야에서 주자학적 국가체제를 확립해가는 한국사의 과정을, 이를 주도한 양반들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 있다.
목차
1부 동아시아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 ‘소농사회론’
1장 ‘소농사회론’을 구상하기까지
나의 연구 이력, ‘도쿄에서 서울로’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뜻밖의 오해
‘소농사회론’이라는 가설
2장 동아시아 소농사회의 형성
주자학과 소농사회
소농사회의 형성과정
소농사회,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
3장 ‘소농사회론’그 이후의 공부
호적대장과 역사인구학
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일본
나의 연구 정리
2부 동아시아에서 본 조선시대
4장 사대부와 양반은 왜 토지귀족이 아닌가
양안, 검지장, 어린도책 비교
한ㆍ중ㆍ일 토지대장의 공통성
특권적 토지 지배의 소멸
5장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
왜 신분인가?
중국과 일본의 신분제 유형
양반은 신분인가?
6장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배계층의 정의
과거시험, 양반으로의 도약대
문과급제자, 특정의 소수가문이 독점했을까?
문중별 문과합격자 분석
조선시대 지배계층 재생산 메커니즘
7장 한국의 역사인구학은 가능한가?
인구사와 역사인구학
외국의 역사인구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 역사인구학의 과제
8장 사회적 결합에서 본 동아시아
사회적 결합을 비교하는 의미
가족, 친족 결합의 비교
조선시대 ‘계’와 사회적 결합의 특징
3부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9장 민족주의와 문명주의, 3ㆍ1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독립선언서'
조선민족대동단의 '일본국민에게 고함'
일본의 태도
10장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의 재고
『미구회람실기』와 ‘항해술기’에 대해
일본, 중국과 구미의 만남 그리고 그 비교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에서 ‘동도서기’로
11장 유교적 근대로서의 동아시아 근세
‘동아시아 근세론’의 문제점
주희와 중국적 근대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12장 역사학자의 소설읽기, 황석영의 소설 『심청』
화폐와 여성
19세기 후반이라는 시기 설정
동아시아에서 구미의 존재를 어떻게 자리매길 것인가
왜 심청인가?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4부 21세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을 위한 제안
13장 동아시아세계 속의 한국학
‘지역연구’ 비판
동아시아사 연구에서의 유럽 중심주의
동아시아사 속의 한국사를 위하여
14장 21세기 동아시아 연구와 대학의 역할
동아시아 각국의 대학 편성, 그 문제점
전통과의 단절을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넘어서
참고문헌
미주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81동아시아에서 소농사회가 성립함과 더불어 형성된 사회구조의 여러 특징은 종래 ‘전통’이라는 말로 일괄적으로 통칭되어왔다. 그리하여 전통과 근대,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에 좀 더 높은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지의 구별은 있더라도,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전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 번째로, 전통이란 것은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본다면 지극히 새로운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결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14~17세기에 걸쳐 일제히 형성된 것이며 세계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 전통은 근대에 의해 해소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며 전통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근대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때로는 강화되기도 했다. 원래 전통이라는 것이 의식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의미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변동을 거시적으로 볼 때, 그 최대의 분수령은 전근대와 근대의 사이가 아닌 소농사회 성립의 전후에, 달리 말해서 전통의 형성 이전과 그 이후 사이에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엽이라는 현재의 시점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소농사회 성립기에 필적하는 제2의 대전환기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접기
P. 186-187매년 29.2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되어 평균적으로 30년 생존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시점에서든 867명의 문과급제자가, 그래서 대략 계산하면 약 900명 정도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900명의 자리를 둘러싸고 양반들이 경쟁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을까?
양반의 전체의 수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전체 인구수를 1천만 명, 인구의 5~10%가 양반 가문에 속했다고 가정하면, 50만~1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과거 수험 자격이 없는 여성과 실질적으로 수험이 불가능한 어린 남자(17세로 문과에 급제한 것이 최연소 기록이다.)를 제외하면, 20만~40만 명 정도가 문과 수험 유자격자였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들이 900명 중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경쟁한 셈이다. 얼마나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을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에 비유하면, 900명이라고 하는 최상층의 무사-300명 정도의 다이묘와 가장 유력한 하타모토의 수를 합치면 비슷한 인원수가 될 것이다-의 지위를 둘러싸고 수십만 명의 무사들이 경쟁을 펼쳤다고 상상해 보면, 조금은 실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일본에서 최상층 무사의 지위는 세습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의해서 관료가 선발되는 조선사회의 양반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격렬한 경쟁이 장기간에 걸쳐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의 전국시대와 같은 ‘무’가 아니라 ‘문’에 의한 경쟁이었기 때문이다. 접기
『심청』을 읽기 시작할 때 필자는 막연하게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6세기나 17세기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심청을 쓴다고 할 때 16~17세기가 가장 알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탓일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작가가 왜 19세기로 그 시기를 설정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심청이 편력을 가능케 한 것은 당시 국제적인 화폐의 흐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화폐들은 거의가 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은의 폭발적인 유통이 시작된 시기는 16세기였다. 당시 은의 유통은 아메리카 대륙과 일본 열도에서 은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가능해졌는데 그 은은 아시아, 특히 중국의 상품인 차, 생사, 비단, 도자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연(垂涎)의 대상이었던, 이 세계적인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세계 화폐로서의 은이 지구를 돌아다녔던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세계 경제의 탄생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중략)
작가가 이 소설의 무대를 19세기 중엽으로 설정한 이유는, 구미의 존재를 중시하고 그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많은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19세기 이후의 동아시아는 그 이전부터의 연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가 전통과의 단절을 강조하고 더욱이 서양의 충격 이전의 시기를 심청으로 하여금 그립게 회상할 수 있는 시대로 묘사하는 시대 파악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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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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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교토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쿄도립대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와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사상사를 연구하여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국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한일 역사학의 교류와 소통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1991),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 2013), 『미야지마 히 로시의 양반』(너머북스, 2014),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너머북스, 2014 공저)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 공편) 외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세계사 속의 다산학>,<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한중일 비교 통사> … 총 30종 (모두보기)
미야지마 히로시(지은이)의 말
‘소농사회론’은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재적 발전론도 전전(戰前)의 일본 봉건제론과 같이 유럽모델을 한국사에 적용한 것이고, 일본 봉건제론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재적 발전론도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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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제국과 의로운 민족>,<죽은 역학자들>,<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등 총 62종
대표분야 : 역사 22위 (브랜드 지수 67,48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소농사회론’과 40년 한국사 공부의 집대성
“한ㆍ중ㆍ일 역사 비교를 통해 찾은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宮嶋博史)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이 책은 중국의 사대부, 일본의 사무라이, 그리고 한국의 양반을 비교하고, 명·청대의 어린도책,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 조선의 양안을 비교하는 등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중·일 역사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는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은 명대에, 한국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사 연구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자학’을 다시 보자고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학습에 따라 인간을 차별화하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적어도 18세기 말까지는 가장 개명된 합리적 사상이었다. 그에 입각한 국가 사회체제도 무척 선진적인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주자학 수용 노력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전된 중국 모델의 수용 과정, 요즘 말로 하자면 ‘세계화’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시야에서 주자학적 국가체제를 확립해가는 한국사의 과정을, 이를 주도한 양반들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야지마 교수의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은 현재와 직결되는 시대라는 의미가 근대라고 할 때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중국과 일본, 한국까지 동아시아의 역사 이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단초이다. 서구적 근대화가 상대화되고 다양한 근대 개념이 병존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근대 새로운 이념과 이에 기초한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지 여부에 어쩌면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식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40년이라는 연구의 시간만큼이나 묵직하게 담겨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나의 한국사 공부?는 한국사의 근대이행과정과 역사적 경험을 오로지 자본주의로의 귀결로 상정한 채, 조선후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봉건제 해체기로 인식하는 한국의 역사학계와 지식인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식민지근대화론자인가? - ‘도쿄에서 서울로’ 그의 앎을 향한 이력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도쿄대학 교수를 박차고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된 바 있는 것처럼 미야지마 히로시는 한국사와의 인연이 남다른 역사학자이다. 이 책의 1부는 ‘소농사회론’이란 담론을 전후한 문제의식의 변화과정에 관한 경위, 즉 역사학자로서 그의 연구이력서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원분쟁’(6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크게 일어난 학생운동)이 휩쓸 당시 교토대학을 다닌 그가 한국사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락문제연구회’라는 서클활동에서 만난 재일한국인(조선인)과 그에 대한 차별문제였다고 한다. 대학원을 진학하자 그의 주임교수는 “미야지마 군,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대학에 취직할 것은 단념하게.”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억에서부터 한국어 문법과 발음을 배우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첫 성과이자 저작인 『조선토지조사사업사의 연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1991년)가 나오기까지 교토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다시 서울로 이어진 그의 앎을 향한 이력이 마치 지도에 그린 듯이 선명히 다가온다.
“당시 규장각은 서울대 도서관 1층에 있었는데 양안을 보려면 마이크로필름을 빌려가지고 4층으로 가서 봐야 했다. 내가 한국에 온 그 무렵에는 학생운동이 활발해서 도서관 앞 광장에서는 매일같이 집회가 있었다. ‘아침이슬’ 노래가 끝나면 곧 데모가 시작되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그런 나날이었다. 도서관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가를 반복해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응원, 촛불시위가 있을 때면 1987년 6월의 그 열기가 다시 떠오른다.”
첫 책이 출판된 직후인 1991년 4월 그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흥미롭게도 국내학계는 그를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각인한다. “오자마자 내 책에 대해 한국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주된 내용은 토지조사사업을 근대화를 위한 사업으로 평가한 내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나에게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미야지마 교수에게 덧씌워진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간단히 말해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다는 일제미화론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반론은 이렇다.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의 토지제도를 근대화시켰지만 그것은 일제의 혜택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이미 수조권적 토지 지배가 해체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한국사학계의 주류적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토지조사사업을 토지수탈을 위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 꼬집는다. 왜냐하면 조선후기 부농형의 토지소유가 발전했다면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되었던들 쉽게 토지를 약탈당했을 리 없을 것이고, 사업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농민들이 토지를 대량으로 상실했다는 견해만큼 당시의 농민을 우습게 보는 시각도 없다. 이러한 견해가 일제를 미화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지금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고, 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입장을 정리하면,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토지제도를 근대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토대는 조선시대 토지제도 자체가 근대화에 도달할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농사회론’의 결정판,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질을 밝히는 것”
과연 그는 ‘일제미화론자’인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에는 그를 향한 각종 비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며, 역사학자로서 구축하려는 역사상이 무엇인지를 잘 집약하고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동아시아 소농(小農)사회론’이다.
1994년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의 형성」이란 논문으로 처음 제기한 이 담론의 목적이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미야지마 교수는 “얼핏 보면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소농사회는 극히 보편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17~18세기의 동아시아에서처럼 소농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는 오히려 예외적”이라 한다. 소규모 자급자족농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동아시아는 대규모 부농 중심의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였으며, 그래서 근대화의 길도 달랐다. 중국에서는 명대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경에 성립한 동아시아 소농사회는 단순히 농업 기술상의 변혁이나 농촌 구조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특질은 이 소농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소농사회의 성립 전후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였기 때문이다. 소농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저자가 2002년 도쿄대학에서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지난 10년 동안,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양상, 그리고 이와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양반의 존재양식, 나아가서 신분제의 독특한 양상, 토지소유와 신분과의 분리, 인구사와 가족사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의 특성을 규명한 책이다. 다시 말해 ‘소농사회론’의 각론까지 집대성하여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3개국의 근대는 ‘소농’을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영주계층이나 무굴제국 시기 인도의 자민다르(페르시아어로 ‘토지소유자’라는 뜻)와는 달리 소농에 대비되는 거대 토지귀족이 없다는 점을 동아시아 근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둘째, 따라서 소농사회론은 ‘고대-중세-근대’라는 시대구분을 무너뜨린다. 자연히 서구사회에서 근대의 이행 전단계인 봉건제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봉건제 부재론’으로 연결된다. 3분법은 철저히 서구적 기준인데, 그동안 동아시아 근대의 기준으로 고민 없이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주희의 사상, 즉 주자학을 동아시아 근대의 수은지로 본다는 점이다. 사회의 토대인 ‘소농’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볼 때 주자학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로 종래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이 역사적 경험을 재평가하자고 한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히는 핵심”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동아시아라는 세계사에서 본 조선시대와 한국사의 특징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한국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경영형 부농의 출현과 신분제 해체를 골간으로 한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지배층으로서 양반을 서구의 귀족과 동일시 한 논리로 조선시대의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서 찾으려 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서유럽의 경우처럼 토지귀족이자 특권신분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안(量案), 명ㆍ청시대의 어린도책(魚鱗圖冊),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檢地帳) 등 한중일 3국의 토지대장을 비교 검토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조선후기 양안(量案)과 호적대장에 양반과 평민이 나란히 토지소유자로 기재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토지귀족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사정은, 다시 말해 토지귀족 부재 현상은 세부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혀내는 핵심이라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양반’을 과연 신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양반이란 지위는 국가의 법제적 규정도 아니고, 양반으로서의 근거나 양반들끼리의 격(格)의 상하를 결정하는 기준도 없었기에, 양반계층 내부의 경쟁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과 함께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의 논문을 통해 중국의 사대부와는 다른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특수한 성립과정을 살피는 가운데 조선왕조가 50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양반의 존재 양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경제사연구에 중점을 두고 사상사까지 연구를 확장해온 역사학자로서 미야지마 교수의 연구이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한국의 가족, 친족 결합의 특징을 동아시아 3국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자리매김 해보면, 일본의 명사적 관계 그리고 중국의 형용사적 관계의 중간적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남자의 균분 상속이라는 형용사적 관계를 한편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장남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명사적 관계를 중시한 독특한 가족, 친족 결합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30쪽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이 책의 후반부는 주로 근대 개항기를 대상으로, 소농사회로서의 동아시아가 서구의 근대와 만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특히 이 책 11장의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은 근대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소농사회론 이후 도달한 현 단계의 획기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첫째, 근대라는 개념은 본래 현재와 직결되는 시대라는 의미이며, 시대구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근대 이전과 근대의 구분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 의거하여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유교적 근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다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유교적 근대의 핵심에 있는 중국적 근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주희의 사상이 지닌 근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고, 넷째, 중국적 근대는 명대에 확립되었지만, 그 기본구조는 19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중국적 근대의 영향을 깊이 받은 동아시아 지역들의 역사도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가 상대화되고,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적 근대, 나아가 인도적 근대 등 다양한 근대 개념이 병존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그로부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그 이념에 기초한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명대 이후를 근대로 보고, 서구의 근대와 대등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근대 중국에 관해서도 완전히 다른 상을 그려낼 수 있다. 중국에서 서구적 근대의 수용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은 결코 중국이 뒤쳐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국에는 별도의 근대가 이미 존재해 있어서, 공동체 등 중간단계의 존재를 부정한 중국의 근대가 공동체를 기초로 한 서구의 근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적 근대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이념 아래 모든 중간단체, 나아가서는 국민국가마저도 부정하는 방향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벌거벗은 개인을 기초로 하여 사회질서를 어떻게 형성해나갈지의 문제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중국이 천년 이상 씨름해 왔던 과제였다.”- 343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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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교수님의 ‘양반‘을 읽고 그 치밀한 연구에 감명받아 구입. 자꾸 이런 새로운 시각의 책이 나와야한다.

winwin 2018-03-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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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신분이 아니었던 양반
어려울 줄 알았는데 논문과 에세이 등이 섞여 있어 생각보다는 쉽게 읽었다.
전에 이 분이 쓴 <양반>과 <조선과 중국 근세 500년을 가다> 도 인상깊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 읽은 거라 이 책들도 다시 들여다 볼 생각.
내재적 발전론의 비판에 동의하는 바다.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것 자체가 서구 중심주의로 역사를 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역사 발전의 틀을, 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주의-근대 자본주의로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정약용을 한국의 루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서구주의 관점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의함.
한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소농 사회라고 본 점, 그리고 양반이 법률에 나오는 세습적 통지 계급이 아니고 토지 귀족도 아니기 때문에 족보 등을 통해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 등은,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에서도 나온 바다.
중국은 이미 오대 십국 시대 등의 동란을 거치면서 귀족 계급이 소멸했고, 송나라부터는 도시 상공업이 발달해 신분제가 해체되고 관료를 역임한 사람들만 사대부가 됐지만, 한국의 경우 전적으로 소농에 의존하는 농경 사회였고 조상 중에 관료가 있으면 관습적으로 양반이라는 지위를 인정했고, 서얼 차별이나 노비제가 20세기까지 지속됐을 정도로 중국 보다는 폐쇄적 사회였다고 본다.
심지어 조선 왕조를 노예제 사회로 본다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양반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족보가 필수이고 지역 사회에 오랫동안 세거하여 향안에 등록이 돼야 함을 다른 책에서도 읽은 바 있다.
과거제가 능력 본위의 선발 제도였기 때문에 특정 가문에 집중되는 폐쇄성이 없지 않으나 급제자의 가문을 분석해 보면 한 문중에서만 전적으로 독점하지는 못했고 내부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관직에 대한 격렬한 경쟁이 붕당이나 세도 정치를 불러 왔다고 본다.
중앙 집권적 관료제 사회였던 만큼 양반들은 토지 귀족으로서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왕의 대항 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처럼 의회제가 힘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조선이 20세기까지 전제주의 왕조 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다.
일본인이라는 저자의 특성상 일본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시각도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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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3-06-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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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추론의 역사서

일본 책들을 읽다 보면, 하나의 진술을 위해서 많은 근거들을 차분하게 제시하는 것에 신뢰가 간다. 이 책 또한 일본 학자로서의 엄밀한 추론과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책이랄까. 역사에서 일본 학자들의 망언이 매번 화를 돋우지만, 일본에는 실증적인 학자들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도 천차만별의 학자들이 있듯이...
모네 2017-12-2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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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 새로운 한국사의 이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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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 2014-07-22
2013년 1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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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블르스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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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차섭-지젝-미야지마 히로시
따로 다룰 시간이 없어서 묶었다. 이주의 저자처럼. 일단 손꼽히는 마키아벨리 전공학자 곽차섭 교수 의 논문집과 에세이집이 한꺼번에 나왔다. <마키아벨리의 꿈>과 <갈릴레오의 망각, 혹은 책에 관한 기억>(길). <마키아벨리의 꿈>은 저자가 그간에 발표한 12편의 논문을 정돈한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마키아벨리를 중심으로 근대 정치사상사를 전공해온 곽차섭 교수(부산대, 서양사)가 발표한 논문 12편을 체계적으로 묶어 펴냄으로써, 우리에게 지금 마키아벨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종합적인 안목을 제공해주고 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한쪽에서는 권모술수가, 냉혹한 정략가, ‘권력국가’의 선구자, 심지어는 악마의 사도라고까지 폄하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근대 정치 관념의 창시자이자 세속적 역사관의 선각자라고 칭송한다. 또한 그를 공화주의자라고 하는가 하면 군주제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평가를 일단 제쳐두고 그의 현실 인식의 원리, 즉 그의 사상의 근본적 토대가 되는 아래와 같은 글을 통해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다른 업적으로 꼽을 만한 것은 번역이다.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나 <마키아벨리 평전> 등이 대표적. 저자가 한국 마키아벨리학에서 갖는 지분을 어림하게 해준다.



우리시대의 철학자로 불러야 할 슬라보예 지젝의 책도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천하대혼돈>(경희대출판문화원)과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비전C&F)로 모두 한국어판이 유일본이다. <천하대혼돈>은 코로나 시국에 발표한 글들을 묶은 것이고(<팬데믹 패닉>의 서플먼트로 읽을 수 있겠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은 이택광 교수와의 대담을 엮은 것이다. <팬데믹 패닉>의 독자라면, 코로나시대와 다가올 포스트코로 시대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필독서.



일본의 대표적 한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의 신간이 나왔다. <한중일 비교통사>(너머북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인상깊게 읽은 뒤로는 그의 책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모처럼 단독 저작이 나왔다. <나의 한국사 공부>의 속편으로 읽을 수 있겠다. 더불어 편자로 참여한 동아시아사 관련서들도 이 참에 챙겨놓아야겠다.
사실 나의 관심은 19세기 말 이후 한국 근대사와 동아시아 근대사 쪽에 더 가 있는데(19-20세기), 미야지마 교수의 관심분야는 주로 그 직전의 동아시아사다. 이번 책에서도 14세기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의 한중일 역사를 비교하고 있다. 그 비교가 근현대사에도 얼마만큼 유효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어림으로는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는 분명한 단절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여러 견해와 통찰은 충분히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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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12-13 공감 (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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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주도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 2,3권이 출간되었다. 1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의 뒤를 잇는 2권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과 3권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너머북스, 2017)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일단 3권을 손에 들었는데, 도쿄대 명예교수이면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인 미야지마 히로시를 제외하면 모두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이다. 자연스레 국내 한국사와 동양사 연구성과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기획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 는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다른 지역의 근대를 파악하는 방법을 넘어서 각 지역의 개성적인 근대를 파악한 다음 보편적 근대의 문제를 생각하는 작업이 요청된다"면서 동아시아 세계가 이 문제를 검토하는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한다. 따라서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은 다만 서구적 근대를 향해 달려나가는 종래의 19세기 묘사나 연구들과 매우 다르고, 나아가 시각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와 트랜스내셔널한 시점의 접근, 문화와 사유, 삶의 방식을 유교와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동아시아 역사상을 그려낸다."



기억에 내가 미야지마 히로시에 매료된 것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읽은 다음부터인 듯하다. 외부자적 시각에서 한국과 한국사를 바라본 사례로 미국의 제임스 팔레와 함께 귀감이 될 만한 학자가 미야지마 히로시다. 그에 대한 신뢰 덕분에 그가 관연한 책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갖게 된다.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의 교양학술서도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면 좋겠다. 그래야 책이 또 나오기에 그렇다.





한편, 동아시아 담론의 또다른 출처는 최원식, 백영서 교수를 중심으로 한 창비다. 한눈에 조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은 '최원식 정년기념논총'으로 나온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창비, 2015)다. 출간 당시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데, '동아시아론' 관련서들과 함께 폭넓게 읽을 만하다. 더불어, 미야지마 히로시 사단의 동아시아관과 비교해봄직하다...
17.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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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7-06-25 공감 (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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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각으로 본 소농사회의 유산
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다뤘는데, 여러 모로 조선 후기의 역사를 다시 보도록 자극하는 책이었다. 덕분에 조선사 관련서 몇 권을 새로 구입했고, 저자의 <양반>(강, 1996)도 다시 구입했다.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역사비평사, 2003)도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의 책이 몇권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조선사회의 기본 성격에 관한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주간경향(13. 02. 05) 동아시아 시각으로 본 소농사회의 유산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제목대로 일본의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40년에 걸친 한국사 공부를 정리한 책이다.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연구 이력과 여정에 대한 술회를 포함하고 있어서 ‘공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란 부제가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국사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역사인식에 있어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군림했던 서구 중심적 인식을 비판하는 데 놓인다. 가령 그가 보기에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적 입장으로서 내재적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여전히 서구식 역사발전 도식을 적용한 것으로, 조선사회의 독자적인 성격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미흡하다. 동시에 일본사 연구에서 일본과 유럽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탈아(脫亞)적 경향도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의 주류 역사학이 놓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근대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서구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소농사회론’이다. 소농사회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빌리거나간에 기본적으로 자신과 그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독립적인 농업 경영을 행하는” 소농이 지배적인 농업사회를 지칭한다. 저자는 17∼18세기의 동아시아 사회를 그러한 소농사회로 파악한다. 그가 ‘가설’이라고 부르는 소농사회론은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가.
동아시아에서는 1000년부터 1750년까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급속한 인구 증가가 일어났다. 인구 조밀지역으로 전환된 것인데, 이 시기에 농업에서 일대 변혁이 이루어졌다. 변혁의 요체는 농업의 중심이 밭농사에서 논농사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농업의 중심이 화북 밭농사에서 강남 논농사로 이동했고, 시기와 규모는 다르지만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조선에서는 15∼16세기에 활발한 농지 개발이 이루어져서 국토가 일본의 약 4분의 3밖에 되지 않음에도 근대 초기의 일본과 거의 같은 경지면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지 개발을 추진한 주요 계층이 중국 사대부, 한국 양반, 일본 무사 계층이었다.
농지 개발과 농업기술의 변혁을 통해서 집약적인 수도작이 이루어지자 지배계층의 존재양식도 변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 17세기에 들어서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하게 감소하는데, 이유는 노비를 이용한 농업 경영이 대단히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독립적인 농민계층이 점차 소멸하고 소농사회가 성립하는데, 이는 농업 형태와 촌락 구조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국가의 지배형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적 지배와 토지 소유의 분리 및 민중의 균질화가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저자에 따르면, 양반계층이 일반 농민보다 훨씬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더라도 그 소유권은 일반 농민이 소유지에 대해 갖는 권리와 질적으로 동등했으며 지배층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소경영 농민의 보편적 존재로 인한 민중의 균질화는 주자학의 통치이념인 일군만민(一君萬民)체제를 뒷받침했다. 소농사회라는 사회구조가 비로소 주자학의 본격적인 수용과 유교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견주면 동아시아에서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이라는 폭넓은 연구 시야와 농업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한국사 이해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13. 01. 30.



P.S. 조선사회의 성격에 관한 논쟁에서 핵심은 농업경제의 구조다. 김용섭 교수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1,2>(지식산업사)가 문제제기적 저작인데, 방대한 분량의 전문학술서라서 일반 독자로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회고록만을 구해놓고 있는데, 좀더 평이하게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린 책이 나왔으면 싶다. 김용섭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는 이영훈 교수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출판부, 2004)도 참고할 수 있는데, 아직 장바구니에만 넣어둔 책이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김건태 교수의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역사비평사, 2004)도 구입했다. 흠, 농업경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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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3-01-30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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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의 결산
소설을 전혀 읽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만을 읽는 일이 물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비문학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해서 이제는 다시 소설을 떠나보낸 지 6개월쯤 되었다. 지난 반년 동안 읽을 책들을 정리해본다. 이 번잡한 독서에서 굳이 하나의 키워드를 찾자면 ‘공공성’이 적당할 것이다. 전에는 공동체, 가치, 윤리와 같은 문제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나는 요즘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혹시 진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1. ‘나’라는 괴물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이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킬레우스의 성장과 변화가 프리아모스 왕과의 대면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성장과 변화는 고립에서 벗어나 관계와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 작품 중반까지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아킬레우스는 골방에서 책만 읽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만난 괴물 퀴클롭스의 정체(?)가 흥미롭다. 그는 같은 종족들과 어울려 살지 않고, 동굴 속에서 혼자 사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라는 말에 ‘나는 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대꾸한다. 공동체, 가치, 윤리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골방에 들어앉아 혼자서 책만 읽는 내가 바로 외눈의 괴물이 아니었던가? 외눈으로 책을 보니 제대로 읽지 못할 수밖에 없다.
2. 가치의 문제




한참 전에 유행했던 샌델의 책들을 이제야 읽었다. 본인은 공동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뒤늦게 샌델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하는 문제, 즉 가치의 문제에 눈을 떴다. 샌델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와 권리 차원의 문제접근을 지양하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동성 결혼은 당사자들의 문제이니 국가가 허용 여부를 정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내 입장이기도 한데, 샌델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동성 결혼 허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이성 간의 결합을 신성하게 여겨 보호하는 것처럼 동성 간의 결합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 정치인의 페미니즘과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발언을 들었다. 당연히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보도가 된 것이겠지만, 페미니즘과 채식의 공동체 차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우며 강요하지 말라는 정치인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정치란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 아닌가? 그 정치인이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하니 다시 한번 그의 발언과 가치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의 발언을 비판했던 화살은 나에게 되돌아왔다.
3. 나의 조선사 공부





미야지마 히로시와 계승범이라는 역사학자를 새로 알게 되어오랜만에 조선사 책을 몇 권 읽었다. 조선사는 사극을 즐겨 보던 어린 시절부터 나의 오랜 관심 분야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논점은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이라 할 것인데, 나는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적 특징에 대한 논의에 눈길이 갔다. 집약적 도작으로 인해 토지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 양반층이 토지에 대한 특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과거 합격자의 소수 가문의 집중 등 폐쇄적 특권을 지닌 신분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조선사 전반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주자학의 확산과 보급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부가 더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대한 이미지, 즉 충효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질서, 사대와 소중화 의식은 주로 조선 후기의 모습인데,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으로 계승범은 중종 대를 주목한다. 외교, 정치, 학문 등 전방위적으로 조선의 유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정으로 왕위에 앉혀져 재위 초반 실권이 없었던 중종과 명 황제 가정제와의 특별한 관계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한편 나로서는 16세기까지 한반도의 남성들이 귀걸이를 했다는 뉴스(?)는 의외이면서도 재미있는 소식이었다. 마침 계승범의 신간 <모후의 반역>이 나왔다기에 읽어볼 생각인데, 아마도 조선의 효치와 광해군 대의 정치사를 다룬 책일 터이다.
4. 미국이라는 나라와 한반도





<반지성주의>는 현상을 분석하기보다 그 배후를 추적한 책인데, 미국의 종교사가 거론되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미국 대외정책 실패의 역사를 현지의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틀로 살피는 책이다. 이 두 책은 ‘어떻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답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불평등과 특권층에 대한 반감이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우려스럽다.
나머지 세 권의 책을 거창하게 소개한다면 한반도의 과거를 읽고, 비극을 반성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사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책은 추천할 만하다. 전쟁의 기원을 일제에 의한 병탄과 해방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면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전쟁 발발 직전과 도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 범죄의 참상은 한국인이라면 꼭 대면해야 할 과거사인데, 이는 아직도 풀지 못한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5. 정치의 발견과 불평등 문제











어떤 책을 읽어도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불평등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상훈의 책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냉소와 좌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문제를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놓는 것으로 정리를 대신한다.
빈곤 인구의 비율이 낮고 계층 간 불평등 정도도 낮으며 비정규직의 규모도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 투표율은 높고 인권 및 자유화 지표도 좋으며 소수자 및 이주민에 대한 권리 부여 정도가 높고 여성 장관 비율도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기대 수명도 높고, 불법 약물 복용, 10대 임신, 10대 자살, 저체중아 출산율, 정신 질환 발병률, 영양실조, 비만율이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 후천적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한 사회적 유동성이 높은 나라, 즉 기회의 평등이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강력 범죄율과 재소자 비율이 낮은 안전한 나라는 어디일까? 요컨대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국가 간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성과들이 몇 개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진보 정당의 경쟁력(집권 기간, 득표 경쟁력 등)이 큰 나라일수록, 다른 하나는 (보통 노조 조직률, 노사 협약 적용률, 노조의 중앙 집중화 정도로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록 좋은 지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노동을 배제하는 정도가 덜할수록 그리고 진보적인 정당들도 상당한 득표를 하고 집권의 전망도 있는 나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6. 우리, 인간들






이런 과학책들은 아무리 쉽게 씌었어도 나로서는 어렵고 낯설기만 하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는 책들인데,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윌슨의 책은 인간의 창의성과 인문학의 기원으로 우리의 먼 조상들이 밤에 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장회익은 물리학의 법칙으로 생명을 정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뜻밖에도 ‘온생명’이라는 관계론적 결론에 이르고 있다. 철학자 김동규와 생물학자 김응빈의 책 역시 공생과 관계의 철학을 역설하고 있어 흥미롭다. 장대익의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리 인간사를 설명하는 책이고, 김대식의 책은 그나마 쉽게 읽을 수 있는 뇌과학과 인공지능 입문서 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7. ‘나’라는 사람

연암은 물이고, 다산은 불이다. 두 사람의 사주와 살아간 내력, 두 사람이 남긴 저서에 드러난 학문과 글쓰기 방법론, 인간관계와 당대의 정치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둘은 서로 대비된다.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읽은 책인데, 오히려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불이면서도 불인 줄을 모르고 사십 년을 살았다. 심지어 나는 내가 물이거나 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 사주에 (큰) 불이 들어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혔고, 읽는 동안 내 문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숙제처럼 읽었는데, 새로운 숙제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 대한 내 생각은 얼마나 정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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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속밖 2021-06-19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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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알, 감자 두 알, 토마토 한 알
어머니가 이것저것 반찬을 해 주지 못하는 관계로다가 내가 주로 먹는 밥은 볶음밥,이 되겠다. 온갖 야채를 썰어서 김치볶음밥, 카레 볶음밥에 달걀 프라이 하나 얹어 먹거나 오징어포조림이나 미역초무침 같은 기본 반찬과 김치. 그것도 날마다 해 먹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밥 두공기를 넣고 볶아서 세끼니를 먹는다. 그러다보면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3일 내리 먹게 되기도. 이번주가 그랬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밥 볶아 먹고 나니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가 마침 감자가 보이길래 그냥 감자를 쪄서 먹기로. 달걀도 삶고. 건강을 위해 토마토도 하나. 그렇게 해서 먹으니 한끼니가 완전 넉넉하다. 그런데 오늘은 오랫만에 상여금도 받는 월급날. 뭔가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지만 점심을 혼자 먹으니 그 맛있는 걸 먹을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대신 책을 먹어보기로 했다. 음... 맛난 책들.
마침 오늘 받은 시사인에 '여름의 책꽂이' 특집이 실려있다.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가만히 책 소개를 읽고 있으면 마구 읽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해야하나. 이건 꼭 맛있는 음식을 마구 늘어놓고 다 먹어보고 싶은데 능력(!?)이 안되는 내 몸뚱아리를 마주하고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영양식으로, 특히나 요즘은 나날이 찌고 있는 살을 빼야 한다는 걱정까지 더해서 음식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어떤 책을 먼저 골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그만큼 심각한거 아니겠는가.








아직 64도 못읽었고 미소짓는 사람도 못읽었는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간이 나와버렸다. 제노사이드 이후의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되는데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사실 솔로몬의 위증도. 하긴 그건 3권까지 출간되어야 읽기 시작할 생각이니 미미여사 노트 때문에 래핑을 뜯었을 뿐.








타샤의 나의 정원 말고 다른 책들은 어디 박혀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새 책이 탐 나지만.
북유럽은 최근들어 소설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집... 이것도 유행인걸까?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기 힘들어 집에 쌓아두고 있었는데 나날이 밑으로 깔리다가 엊그제 겨우 꺼내어 읽기 시작한 레드브레스트도 그렇고.








책구경만 하고 구입은 못하고 있네. 벌써 시간이... 일단 명탐정 코난이 몇권까지 집에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어. 살때마다 헷갈려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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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3-06-2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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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 (지은이)너머북스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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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쪽
책소개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 '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중국의 사대부, 일본의 사무라이, 그리고 한국의 양반을 비교하고, 명.청대의 어린도책,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 조선의 양안을 비교하는 등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중.일 역사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는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은 명대에, 한국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사 연구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자학'을 다시 보자고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학습에 따라 인간을 차별화하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적어도 18세기 말까지는 가장 개명된 합리적 사상이었다. 그에 입각한 국가 사회체제도 무척 선진적인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주자학 수용 노력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전된 중국 모델의 수용 과정, 요즘 말로 하자면 '세계화'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시야에서 주자학적 국가체제를 확립해가는 한국사의 과정을, 이를 주도한 양반들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 있다.
목차
1부 동아시아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 ‘소농사회론’
1장 ‘소농사회론’을 구상하기까지
나의 연구 이력, ‘도쿄에서 서울로’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뜻밖의 오해
‘소농사회론’이라는 가설
2장 동아시아 소농사회의 형성
주자학과 소농사회
소농사회의 형성과정
소농사회,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
3장 ‘소농사회론’그 이후의 공부
호적대장과 역사인구학
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일본
나의 연구 정리
2부 동아시아에서 본 조선시대
4장 사대부와 양반은 왜 토지귀족이 아닌가
양안, 검지장, 어린도책 비교
한ㆍ중ㆍ일 토지대장의 공통성
특권적 토지 지배의 소멸
5장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
왜 신분인가?
중국과 일본의 신분제 유형
양반은 신분인가?
6장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배계층의 정의
과거시험, 양반으로의 도약대
문과급제자, 특정의 소수가문이 독점했을까?
문중별 문과합격자 분석
조선시대 지배계층 재생산 메커니즘
7장 한국의 역사인구학은 가능한가?
인구사와 역사인구학
외국의 역사인구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 역사인구학의 과제
8장 사회적 결합에서 본 동아시아
사회적 결합을 비교하는 의미
가족, 친족 결합의 비교
조선시대 ‘계’와 사회적 결합의 특징
3부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9장 민족주의와 문명주의, 3ㆍ1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독립선언서'
조선민족대동단의 '일본국민에게 고함'
일본의 태도
10장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의 재고
『미구회람실기』와 ‘항해술기’에 대해
일본, 중국과 구미의 만남 그리고 그 비교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에서 ‘동도서기’로
11장 유교적 근대로서의 동아시아 근세
‘동아시아 근세론’의 문제점
주희와 중국적 근대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12장 역사학자의 소설읽기, 황석영의 소설 『심청』
화폐와 여성
19세기 후반이라는 시기 설정
동아시아에서 구미의 존재를 어떻게 자리매길 것인가
왜 심청인가?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4부 21세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을 위한 제안
13장 동아시아세계 속의 한국학
‘지역연구’ 비판
동아시아사 연구에서의 유럽 중심주의
동아시아사 속의 한국사를 위하여
14장 21세기 동아시아 연구와 대학의 역할
동아시아 각국의 대학 편성, 그 문제점
전통과의 단절을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넘어서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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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81동아시아에서 소농사회가 성립함과 더불어 형성된 사회구조의 여러 특징은 종래 ‘전통’이라는 말로 일괄적으로 통칭되어왔다. 그리하여 전통과 근대,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에 좀 더 높은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지의 구별은 있더라도,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전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 번째로, 전통이란 것은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본다면 지극히 새로운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결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14~17세기에 걸쳐 일제히 형성된 것이며 세계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 전통은 근대에 의해 해소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며 전통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근대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때로는 강화되기도 했다. 원래 전통이라는 것이 의식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의미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변동을 거시적으로 볼 때, 그 최대의 분수령은 전근대와 근대의 사이가 아닌 소농사회 성립의 전후에, 달리 말해서 전통의 형성 이전과 그 이후 사이에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엽이라는 현재의 시점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소농사회 성립기에 필적하는 제2의 대전환기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접기
P. 186-187매년 29.2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되어 평균적으로 30년 생존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시점에서든 867명의 문과급제자가, 그래서 대략 계산하면 약 900명 정도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900명의 자리를 둘러싸고 양반들이 경쟁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을까?
양반의 전체의 수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전체 인구수를 1천만 명, 인구의 5~10%가 양반 가문에 속했다고 가정하면, 50만~1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과거 수험 자격이 없는 여성과 실질적으로 수험이 불가능한 어린 남자(17세로 문과에 급제한 것이 최연소 기록이다.)를 제외하면, 20만~40만 명 정도가 문과 수험 유자격자였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들이 900명 중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경쟁한 셈이다. 얼마나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을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에 비유하면, 900명이라고 하는 최상층의 무사-300명 정도의 다이묘와 가장 유력한 하타모토의 수를 합치면 비슷한 인원수가 될 것이다-의 지위를 둘러싸고 수십만 명의 무사들이 경쟁을 펼쳤다고 상상해 보면, 조금은 실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일본에서 최상층 무사의 지위는 세습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의해서 관료가 선발되는 조선사회의 양반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격렬한 경쟁이 장기간에 걸쳐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의 전국시대와 같은 ‘무’가 아니라 ‘문’에 의한 경쟁이었기 때문이다. 접기
『심청』을 읽기 시작할 때 필자는 막연하게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6세기나 17세기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심청을 쓴다고 할 때 16~17세기가 가장 알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탓일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작가가 왜 19세기로 그 시기를 설정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심청이 편력을 가능케 한 것은 당시 국제적인 화폐의 흐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화폐들은 거의가 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은의 폭발적인 유통이 시작된 시기는 16세기였다. 당시 은의 유통은 아메리카 대륙과 일본 열도에서 은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가능해졌는데 그 은은 아시아, 특히 중국의 상품인 차, 생사, 비단, 도자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연(垂涎)의 대상이었던, 이 세계적인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세계 화폐로서의 은이 지구를 돌아다녔던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세계 경제의 탄생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중략)
작가가 이 소설의 무대를 19세기 중엽으로 설정한 이유는, 구미의 존재를 중시하고 그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많은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19세기 이후의 동아시아는 그 이전부터의 연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가 전통과의 단절을 강조하고 더욱이 서양의 충격 이전의 시기를 심청으로 하여금 그립게 회상할 수 있는 시대로 묘사하는 시대 파악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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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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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교토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쿄도립대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와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사상사를 연구하여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국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한일 역사학의 교류와 소통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1991),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 2013), 『미야지마 히 로시의 양반』(너머북스, 2014),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너머북스, 2014 공저)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 공편) 외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세계사 속의 다산학>,<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한중일 비교 통사> … 총 30종 (모두보기)
미야지마 히로시(지은이)의 말
‘소농사회론’은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재적 발전론도 전전(戰前)의 일본 봉건제론과 같이 유럽모델을 한국사에 적용한 것이고, 일본 봉건제론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재적 발전론도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소개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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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제국과 의로운 민족>,<죽은 역학자들>,<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등 총 62종
대표분야 : 역사 22위 (브랜드 지수 67,48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소농사회론’과 40년 한국사 공부의 집대성
“한ㆍ중ㆍ일 역사 비교를 통해 찾은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宮嶋博史)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이 책은 중국의 사대부, 일본의 사무라이, 그리고 한국의 양반을 비교하고, 명·청대의 어린도책,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 조선의 양안을 비교하는 등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중·일 역사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는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은 명대에, 한국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사 연구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자학’을 다시 보자고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학습에 따라 인간을 차별화하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적어도 18세기 말까지는 가장 개명된 합리적 사상이었다. 그에 입각한 국가 사회체제도 무척 선진적인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주자학 수용 노력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전된 중국 모델의 수용 과정, 요즘 말로 하자면 ‘세계화’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시야에서 주자학적 국가체제를 확립해가는 한국사의 과정을, 이를 주도한 양반들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야지마 교수의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은 현재와 직결되는 시대라는 의미가 근대라고 할 때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중국과 일본, 한국까지 동아시아의 역사 이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단초이다. 서구적 근대화가 상대화되고 다양한 근대 개념이 병존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근대 새로운 이념과 이에 기초한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지 여부에 어쩌면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식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40년이라는 연구의 시간만큼이나 묵직하게 담겨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나의 한국사 공부?는 한국사의 근대이행과정과 역사적 경험을 오로지 자본주의로의 귀결로 상정한 채, 조선후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봉건제 해체기로 인식하는 한국의 역사학계와 지식인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식민지근대화론자인가? - ‘도쿄에서 서울로’ 그의 앎을 향한 이력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도쿄대학 교수를 박차고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된 바 있는 것처럼 미야지마 히로시는 한국사와의 인연이 남다른 역사학자이다. 이 책의 1부는 ‘소농사회론’이란 담론을 전후한 문제의식의 변화과정에 관한 경위, 즉 역사학자로서 그의 연구이력서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원분쟁’(6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크게 일어난 학생운동)이 휩쓸 당시 교토대학을 다닌 그가 한국사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락문제연구회’라는 서클활동에서 만난 재일한국인(조선인)과 그에 대한 차별문제였다고 한다. 대학원을 진학하자 그의 주임교수는 “미야지마 군,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대학에 취직할 것은 단념하게.”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억에서부터 한국어 문법과 발음을 배우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첫 성과이자 저작인 『조선토지조사사업사의 연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1991년)가 나오기까지 교토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다시 서울로 이어진 그의 앎을 향한 이력이 마치 지도에 그린 듯이 선명히 다가온다.
“당시 규장각은 서울대 도서관 1층에 있었는데 양안을 보려면 마이크로필름을 빌려가지고 4층으로 가서 봐야 했다. 내가 한국에 온 그 무렵에는 학생운동이 활발해서 도서관 앞 광장에서는 매일같이 집회가 있었다. ‘아침이슬’ 노래가 끝나면 곧 데모가 시작되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그런 나날이었다. 도서관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가를 반복해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응원, 촛불시위가 있을 때면 1987년 6월의 그 열기가 다시 떠오른다.”
첫 책이 출판된 직후인 1991년 4월 그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흥미롭게도 국내학계는 그를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각인한다. “오자마자 내 책에 대해 한국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주된 내용은 토지조사사업을 근대화를 위한 사업으로 평가한 내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나에게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미야지마 교수에게 덧씌워진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간단히 말해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다는 일제미화론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반론은 이렇다.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의 토지제도를 근대화시켰지만 그것은 일제의 혜택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이미 수조권적 토지 지배가 해체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한국사학계의 주류적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토지조사사업을 토지수탈을 위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 꼬집는다. 왜냐하면 조선후기 부농형의 토지소유가 발전했다면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되었던들 쉽게 토지를 약탈당했을 리 없을 것이고, 사업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농민들이 토지를 대량으로 상실했다는 견해만큼 당시의 농민을 우습게 보는 시각도 없다. 이러한 견해가 일제를 미화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지금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고, 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입장을 정리하면,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토지제도를 근대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토대는 조선시대 토지제도 자체가 근대화에 도달할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농사회론’의 결정판,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질을 밝히는 것”
과연 그는 ‘일제미화론자’인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에는 그를 향한 각종 비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며, 역사학자로서 구축하려는 역사상이 무엇인지를 잘 집약하고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동아시아 소농(小農)사회론’이다.
1994년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의 형성」이란 논문으로 처음 제기한 이 담론의 목적이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미야지마 교수는 “얼핏 보면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소농사회는 극히 보편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17~18세기의 동아시아에서처럼 소농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는 오히려 예외적”이라 한다. 소규모 자급자족농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동아시아는 대규모 부농 중심의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였으며, 그래서 근대화의 길도 달랐다. 중국에서는 명대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경에 성립한 동아시아 소농사회는 단순히 농업 기술상의 변혁이나 농촌 구조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특질은 이 소농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소농사회의 성립 전후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였기 때문이다. 소농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저자가 2002년 도쿄대학에서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지난 10년 동안,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양상, 그리고 이와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양반의 존재양식, 나아가서 신분제의 독특한 양상, 토지소유와 신분과의 분리, 인구사와 가족사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의 특성을 규명한 책이다. 다시 말해 ‘소농사회론’의 각론까지 집대성하여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3개국의 근대는 ‘소농’을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영주계층이나 무굴제국 시기 인도의 자민다르(페르시아어로 ‘토지소유자’라는 뜻)와는 달리 소농에 대비되는 거대 토지귀족이 없다는 점을 동아시아 근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둘째, 따라서 소농사회론은 ‘고대-중세-근대’라는 시대구분을 무너뜨린다. 자연히 서구사회에서 근대의 이행 전단계인 봉건제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봉건제 부재론’으로 연결된다. 3분법은 철저히 서구적 기준인데, 그동안 동아시아 근대의 기준으로 고민 없이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주희의 사상, 즉 주자학을 동아시아 근대의 수은지로 본다는 점이다. 사회의 토대인 ‘소농’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볼 때 주자학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로 종래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이 역사적 경험을 재평가하자고 한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히는 핵심”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동아시아라는 세계사에서 본 조선시대와 한국사의 특징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한국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경영형 부농의 출현과 신분제 해체를 골간으로 한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지배층으로서 양반을 서구의 귀족과 동일시 한 논리로 조선시대의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서 찾으려 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서유럽의 경우처럼 토지귀족이자 특권신분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안(量案), 명ㆍ청시대의 어린도책(魚鱗圖冊),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檢地帳) 등 한중일 3국의 토지대장을 비교 검토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조선후기 양안(量案)과 호적대장에 양반과 평민이 나란히 토지소유자로 기재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토지귀족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사정은, 다시 말해 토지귀족 부재 현상은 세부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혀내는 핵심이라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양반’을 과연 신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양반이란 지위는 국가의 법제적 규정도 아니고, 양반으로서의 근거나 양반들끼리의 격(格)의 상하를 결정하는 기준도 없었기에, 양반계층 내부의 경쟁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과 함께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의 논문을 통해 중국의 사대부와는 다른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특수한 성립과정을 살피는 가운데 조선왕조가 50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양반의 존재 양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경제사연구에 중점을 두고 사상사까지 연구를 확장해온 역사학자로서 미야지마 교수의 연구이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한국의 가족, 친족 결합의 특징을 동아시아 3국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자리매김 해보면, 일본의 명사적 관계 그리고 중국의 형용사적 관계의 중간적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남자의 균분 상속이라는 형용사적 관계를 한편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장남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명사적 관계를 중시한 독특한 가족, 친족 결합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30쪽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이 책의 후반부는 주로 근대 개항기를 대상으로, 소농사회로서의 동아시아가 서구의 근대와 만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특히 이 책 11장의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은 근대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소농사회론 이후 도달한 현 단계의 획기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첫째, 근대라는 개념은 본래 현재와 직결되는 시대라는 의미이며, 시대구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근대 이전과 근대의 구분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 의거하여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유교적 근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다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유교적 근대의 핵심에 있는 중국적 근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주희의 사상이 지닌 근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고, 넷째, 중국적 근대는 명대에 확립되었지만, 그 기본구조는 19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중국적 근대의 영향을 깊이 받은 동아시아 지역들의 역사도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가 상대화되고,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적 근대, 나아가 인도적 근대 등 다양한 근대 개념이 병존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그로부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그 이념에 기초한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명대 이후를 근대로 보고, 서구의 근대와 대등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근대 중국에 관해서도 완전히 다른 상을 그려낼 수 있다. 중국에서 서구적 근대의 수용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은 결코 중국이 뒤쳐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국에는 별도의 근대가 이미 존재해 있어서, 공동체 등 중간단계의 존재를 부정한 중국의 근대가 공동체를 기초로 한 서구의 근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적 근대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이념 아래 모든 중간단체, 나아가서는 국민국가마저도 부정하는 방향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벌거벗은 개인을 기초로 하여 사회질서를 어떻게 형성해나갈지의 문제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중국이 천년 이상 씨름해 왔던 과제였다.”- 343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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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교수님의 ‘양반‘을 읽고 그 치밀한 연구에 감명받아 구입. 자꾸 이런 새로운 시각의 책이 나와야한다.
winwin 2018-03-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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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신분이 아니었던 양반
어려울 줄 알았는데 논문과 에세이 등이 섞여 있어 생각보다는 쉽게 읽었다.
전에 이 분이 쓴 <양반>과 <조선과 중국 근세 500년을 가다> 도 인상깊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 읽은 거라 이 책들도 다시 들여다 볼 생각.
내재적 발전론의 비판에 동의하는 바다.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것 자체가 서구 중심주의로 역사를 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역사 발전의 틀을, 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주의-근대 자본주의로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정약용을 한국의 루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서구주의 관점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의함.
한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소농 사회라고 본 점, 그리고 양반이 법률에 나오는 세습적 통지 계급이 아니고 토지 귀족도 아니기 때문에 족보 등을 통해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 등은,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에서도 나온 바다.
중국은 이미 오대 십국 시대 등의 동란을 거치면서 귀족 계급이 소멸했고, 송나라부터는 도시 상공업이 발달해 신분제가 해체되고 관료를 역임한 사람들만 사대부가 됐지만, 한국의 경우 전적으로 소농에 의존하는 농경 사회였고 조상 중에 관료가 있으면 관습적으로 양반이라는 지위를 인정했고, 서얼 차별이나 노비제가 20세기까지 지속됐을 정도로 중국 보다는 폐쇄적 사회였다고 본다.
심지어 조선 왕조를 노예제 사회로 본다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양반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족보가 필수이고 지역 사회에 오랫동안 세거하여 향안에 등록이 돼야 함을 다른 책에서도 읽은 바 있다.
과거제가 능력 본위의 선발 제도였기 때문에 특정 가문에 집중되는 폐쇄성이 없지 않으나 급제자의 가문을 분석해 보면 한 문중에서만 전적으로 독점하지는 못했고 내부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관직에 대한 격렬한 경쟁이 붕당이나 세도 정치를 불러 왔다고 본다.
중앙 집권적 관료제 사회였던 만큼 양반들은 토지 귀족으로서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왕의 대항 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처럼 의회제가 힘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조선이 20세기까지 전제주의 왕조 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다.
일본인이라는 저자의 특성상 일본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시각도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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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3-06-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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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추론의 역사서
일본 책들을 읽다 보면, 하나의 진술을 위해서 많은 근거들을 차분하게 제시하는 것에 신뢰가 간다. 이 책 또한 일본 학자로서의 엄밀한 추론과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책이랄까. 역사에서 일본 학자들의 망언이 매번 화를 돋우지만, 일본에는 실증적인 학자들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도 천차만별의 학자들이 있듯이...
모네 2017-12-2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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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 새로운 한국사의 이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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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 2014-07-22
2013년 1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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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블르스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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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차섭-지젝-미야지마 히로시
따로 다룰 시간이 없어서 묶었다. 이주의 저자처럼. 일단 손꼽히는 마키아벨리 전공학자 곽차섭 교수 의 논문집과 에세이집이 한꺼번에 나왔다. <마키아벨리의 꿈>과 <갈릴레오의 망각, 혹은 책에 관한 기억>(길). <마키아벨리의 꿈>은 저자가 그간에 발표한 12편의 논문을 정돈한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마키아벨리를 중심으로 근대 정치사상사를 전공해온 곽차섭 교수(부산대, 서양사)가 발표한 논문 12편을 체계적으로 묶어 펴냄으로써, 우리에게 지금 마키아벨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종합적인 안목을 제공해주고 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한쪽에서는 권모술수가, 냉혹한 정략가, ‘권력국가’의 선구자, 심지어는 악마의 사도라고까지 폄하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근대 정치 관념의 창시자이자 세속적 역사관의 선각자라고 칭송한다. 또한 그를 공화주의자라고 하는가 하면 군주제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평가를 일단 제쳐두고 그의 현실 인식의 원리, 즉 그의 사상의 근본적 토대가 되는 아래와 같은 글을 통해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다른 업적으로 꼽을 만한 것은 번역이다.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나 <마키아벨리 평전> 등이 대표적. 저자가 한국 마키아벨리학에서 갖는 지분을 어림하게 해준다.



우리시대의 철학자로 불러야 할 슬라보예 지젝의 책도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천하대혼돈>(경희대출판문화원)과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비전C&F)로 모두 한국어판이 유일본이다. <천하대혼돈>은 코로나 시국에 발표한 글들을 묶은 것이고(<팬데믹 패닉>의 서플먼트로 읽을 수 있겠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은 이택광 교수와의 대담을 엮은 것이다. <팬데믹 패닉>의 독자라면, 코로나시대와 다가올 포스트코로 시대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필독서.



일본의 대표적 한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의 신간이 나왔다. <한중일 비교통사>(너머북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인상깊게 읽은 뒤로는 그의 책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모처럼 단독 저작이 나왔다. <나의 한국사 공부>의 속편으로 읽을 수 있겠다. 더불어 편자로 참여한 동아시아사 관련서들도 이 참에 챙겨놓아야겠다.
사실 나의 관심은 19세기 말 이후 한국 근대사와 동아시아 근대사 쪽에 더 가 있는데(19-20세기), 미야지마 교수의 관심분야는 주로 그 직전의 동아시아사다. 이번 책에서도 14세기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의 한중일 역사를 비교하고 있다. 그 비교가 근현대사에도 얼마만큼 유효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어림으로는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는 분명한 단절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여러 견해와 통찰은 충분히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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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12-13 공감 (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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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주도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 2,3권이 출간되었다. 1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의 뒤를 잇는 2권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과 3권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너머북스, 2017)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일단 3권을 손에 들었는데, 도쿄대 명예교수이면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인 미야지마 히로시를 제외하면 모두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이다. 자연스레 국내 한국사와 동양사 연구성과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기획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 는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다른 지역의 근대를 파악하는 방법을 넘어서 각 지역의 개성적인 근대를 파악한 다음 보편적 근대의 문제를 생각하는 작업이 요청된다"면서 동아시아 세계가 이 문제를 검토하는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한다. 따라서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은 다만 서구적 근대를 향해 달려나가는 종래의 19세기 묘사나 연구들과 매우 다르고, 나아가 시각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와 트랜스내셔널한 시점의 접근, 문화와 사유, 삶의 방식을 유교와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동아시아 역사상을 그려낸다."
기억에 내가 미야지마 히로시에 매료된 것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읽은 다음부터인 듯하다. 외부자적 시각에서 한국과 한국사를 바라본 사례로 미국의 제임스 팔레와 함께 귀감이 될 만한 학자가 미야지마 히로시다. 그에 대한 신뢰 덕분에 그가 관연한 책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갖게 된다.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의 교양학술서도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면 좋겠다. 그래야 책이 또 나오기에 그렇다.
한편, 동아시아 담론의 또다른 출처는 최원식, 백영서 교수를 중심으로 한 창비다. 한눈에 조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은 '최원식 정년기념논총'으로 나온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창비, 2015)다. 출간 당시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데, '동아시아론' 관련서들과 함께 폭넓게 읽을 만하다. 더불어, 미야지마 히로시 사단의 동아시아관과 비교해봄직하다...
17.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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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7-06-25 공감 (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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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각으로 본 소농사회의 유산
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다뤘는데, 여러 모로 조선 후기의 역사를 다시 보도록 자극하는 책이었다. 덕분에 조선사 관련서 몇 권을 새로 구입했고, 저자의 <양반>(강, 1996)도 다시 구입했다.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역사비평사, 2003)도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의 책이 몇권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조선사회의 기본 성격에 관한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주간경향(13. 02. 05) 동아시아 시각으로 본 소농사회의 유산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제목대로 일본의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40년에 걸친 한국사 공부를 정리한 책이다.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연구 이력과 여정에 대한 술회를 포함하고 있어서 ‘공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란 부제가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국사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역사인식에 있어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군림했던 서구 중심적 인식을 비판하는 데 놓인다. 가령 그가 보기에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적 입장으로서 내재적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여전히 서구식 역사발전 도식을 적용한 것으로, 조선사회의 독자적인 성격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미흡하다. 동시에 일본사 연구에서 일본과 유럽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탈아(脫亞)적 경향도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의 주류 역사학이 놓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근대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서구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소농사회론’이다. 소농사회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빌리거나간에 기본적으로 자신과 그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독립적인 농업 경영을 행하는” 소농이 지배적인 농업사회를 지칭한다. 저자는 17∼18세기의 동아시아 사회를 그러한 소농사회로 파악한다. 그가 ‘가설’이라고 부르는 소농사회론은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가.
동아시아에서는 1000년부터 1750년까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급속한 인구 증가가 일어났다. 인구 조밀지역으로 전환된 것인데, 이 시기에 농업에서 일대 변혁이 이루어졌다. 변혁의 요체는 농업의 중심이 밭농사에서 논농사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농업의 중심이 화북 밭농사에서 강남 논농사로 이동했고, 시기와 규모는 다르지만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조선에서는 15∼16세기에 활발한 농지 개발이 이루어져서 국토가 일본의 약 4분의 3밖에 되지 않음에도 근대 초기의 일본과 거의 같은 경지면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지 개발을 추진한 주요 계층이 중국 사대부, 한국 양반, 일본 무사 계층이었다.
농지 개발과 농업기술의 변혁을 통해서 집약적인 수도작이 이루어지자 지배계층의 존재양식도 변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 17세기에 들어서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하게 감소하는데, 이유는 노비를 이용한 농업 경영이 대단히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독립적인 농민계층이 점차 소멸하고 소농사회가 성립하는데, 이는 농업 형태와 촌락 구조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국가의 지배형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적 지배와 토지 소유의 분리 및 민중의 균질화가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저자에 따르면, 양반계층이 일반 농민보다 훨씬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더라도 그 소유권은 일반 농민이 소유지에 대해 갖는 권리와 질적으로 동등했으며 지배층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소경영 농민의 보편적 존재로 인한 민중의 균질화는 주자학의 통치이념인 일군만민(一君萬民)체제를 뒷받침했다. 소농사회라는 사회구조가 비로소 주자학의 본격적인 수용과 유교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견주면 동아시아에서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이라는 폭넓은 연구 시야와 농업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한국사 이해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13. 01. 30.
P.S. 조선사회의 성격에 관한 논쟁에서 핵심은 농업경제의 구조다. 김용섭 교수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1,2>(지식산업사)가 문제제기적 저작인데, 방대한 분량의 전문학술서라서 일반 독자로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회고록만을 구해놓고 있는데, 좀더 평이하게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린 책이 나왔으면 싶다. 김용섭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는 이영훈 교수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출판부, 2004)도 참고할 수 있는데, 아직 장바구니에만 넣어둔 책이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김건태 교수의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역사비평사, 2004)도 구입했다. 흠, 농업경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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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3-01-30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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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의 결산
소설을 전혀 읽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만을 읽는 일이 물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비문학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해서 이제는 다시 소설을 떠나보낸 지 6개월쯤 되었다. 지난 반년 동안 읽을 책들을 정리해본다. 이 번잡한 독서에서 굳이 하나의 키워드를 찾자면 ‘공공성’이 적당할 것이다. 전에는 공동체, 가치, 윤리와 같은 문제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나는 요즘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혹시 진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1. ‘나’라는 괴물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이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킬레우스의 성장과 변화가 프리아모스 왕과의 대면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성장과 변화는 고립에서 벗어나 관계와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 작품 중반까지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아킬레우스는 골방에서 책만 읽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만난 괴물 퀴클롭스의 정체(?)가 흥미롭다. 그는 같은 종족들과 어울려 살지 않고, 동굴 속에서 혼자 사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라는 말에 ‘나는 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대꾸한다. 공동체, 가치, 윤리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골방에 들어앉아 혼자서 책만 읽는 내가 바로 외눈의 괴물이 아니었던가? 외눈으로 책을 보니 제대로 읽지 못할 수밖에 없다.
2. 가치의 문제




한참 전에 유행했던 샌델의 책들을 이제야 읽었다. 본인은 공동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뒤늦게 샌델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하는 문제, 즉 가치의 문제에 눈을 떴다. 샌델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와 권리 차원의 문제접근을 지양하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동성 결혼은 당사자들의 문제이니 국가가 허용 여부를 정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내 입장이기도 한데, 샌델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동성 결혼 허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이성 간의 결합을 신성하게 여겨 보호하는 것처럼 동성 간의 결합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 정치인의 페미니즘과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발언을 들었다. 당연히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보도가 된 것이겠지만, 페미니즘과 채식의 공동체 차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우며 강요하지 말라는 정치인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정치란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 아닌가? 그 정치인이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하니 다시 한번 그의 발언과 가치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의 발언을 비판했던 화살은 나에게 되돌아왔다.
3. 나의 조선사 공부





미야지마 히로시와 계승범이라는 역사학자를 새로 알게 되어오랜만에 조선사 책을 몇 권 읽었다. 조선사는 사극을 즐겨 보던 어린 시절부터 나의 오랜 관심 분야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논점은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이라 할 것인데, 나는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적 특징에 대한 논의에 눈길이 갔다. 집약적 도작으로 인해 토지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 양반층이 토지에 대한 특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과거 합격자의 소수 가문의 집중 등 폐쇄적 특권을 지닌 신분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조선사 전반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주자학의 확산과 보급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부가 더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대한 이미지, 즉 충효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질서, 사대와 소중화 의식은 주로 조선 후기의 모습인데,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으로 계승범은 중종 대를 주목한다. 외교, 정치, 학문 등 전방위적으로 조선의 유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정으로 왕위에 앉혀져 재위 초반 실권이 없었던 중종과 명 황제 가정제와의 특별한 관계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한편 나로서는 16세기까지 한반도의 남성들이 귀걸이를 했다는 뉴스(?)는 의외이면서도 재미있는 소식이었다. 마침 계승범의 신간 <모후의 반역>이 나왔다기에 읽어볼 생각인데, 아마도 조선의 효치와 광해군 대의 정치사를 다룬 책일 터이다.
4. 미국이라는 나라와 한반도





<반지성주의>는 현상을 분석하기보다 그 배후를 추적한 책인데, 미국의 종교사가 거론되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미국 대외정책 실패의 역사를 현지의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틀로 살피는 책이다. 이 두 책은 ‘어떻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답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불평등과 특권층에 대한 반감이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우려스럽다.
나머지 세 권의 책을 거창하게 소개한다면 한반도의 과거를 읽고, 비극을 반성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사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책은 추천할 만하다. 전쟁의 기원을 일제에 의한 병탄과 해방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면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전쟁 발발 직전과 도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 범죄의 참상은 한국인이라면 꼭 대면해야 할 과거사인데, 이는 아직도 풀지 못한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5. 정치의 발견과 불평등 문제











어떤 책을 읽어도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불평등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상훈의 책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냉소와 좌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문제를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놓는 것으로 정리를 대신한다.
빈곤 인구의 비율이 낮고 계층 간 불평등 정도도 낮으며 비정규직의 규모도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 투표율은 높고 인권 및 자유화 지표도 좋으며 소수자 및 이주민에 대한 권리 부여 정도가 높고 여성 장관 비율도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기대 수명도 높고, 불법 약물 복용, 10대 임신, 10대 자살, 저체중아 출산율, 정신 질환 발병률, 영양실조, 비만율이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 후천적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한 사회적 유동성이 높은 나라, 즉 기회의 평등이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강력 범죄율과 재소자 비율이 낮은 안전한 나라는 어디일까? 요컨대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국가 간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성과들이 몇 개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진보 정당의 경쟁력(집권 기간, 득표 경쟁력 등)이 큰 나라일수록, 다른 하나는 (보통 노조 조직률, 노사 협약 적용률, 노조의 중앙 집중화 정도로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록 좋은 지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노동을 배제하는 정도가 덜할수록 그리고 진보적인 정당들도 상당한 득표를 하고 집권의 전망도 있는 나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6. 우리, 인간들






이런 과학책들은 아무리 쉽게 씌었어도 나로서는 어렵고 낯설기만 하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는 책들인데,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윌슨의 책은 인간의 창의성과 인문학의 기원으로 우리의 먼 조상들이 밤에 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장회익은 물리학의 법칙으로 생명을 정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뜻밖에도 ‘온생명’이라는 관계론적 결론에 이르고 있다. 철학자 김동규와 생물학자 김응빈의 책 역시 공생과 관계의 철학을 역설하고 있어 흥미롭다. 장대익의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리 인간사를 설명하는 책이고, 김대식의 책은 그나마 쉽게 읽을 수 있는 뇌과학과 인공지능 입문서 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7. ‘나’라는 사람

연암은 물이고, 다산은 불이다. 두 사람의 사주와 살아간 내력, 두 사람이 남긴 저서에 드러난 학문과 글쓰기 방법론, 인간관계와 당대의 정치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둘은 서로 대비된다.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읽은 책인데, 오히려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불이면서도 불인 줄을 모르고 사십 년을 살았다. 심지어 나는 내가 물이거나 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 사주에 (큰) 불이 들어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혔고, 읽는 동안 내 문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숙제처럼 읽었는데, 새로운 숙제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 대한 내 생각은 얼마나 정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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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속밖 2021-06-19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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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알, 감자 두 알, 토마토 한 알
어머니가 이것저것 반찬을 해 주지 못하는 관계로다가 내가 주로 먹는 밥은 볶음밥,이 되겠다. 온갖 야채를 썰어서 김치볶음밥, 카레 볶음밥에 달걀 프라이 하나 얹어 먹거나 오징어포조림이나 미역초무침 같은 기본 반찬과 김치. 그것도 날마다 해 먹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밥 두공기를 넣고 볶아서 세끼니를 먹는다. 그러다보면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3일 내리 먹게 되기도. 이번주가 그랬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밥 볶아 먹고 나니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가 마침 감자가 보이길래 그냥 감자를 쪄서 먹기로. 달걀도 삶고. 건강을 위해 토마토도 하나. 그렇게 해서 먹으니 한끼니가 완전 넉넉하다. 그런데 오늘은 오랫만에 상여금도 받는 월급날. 뭔가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지만 점심을 혼자 먹으니 그 맛있는 걸 먹을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대신 책을 먹어보기로 했다. 음... 맛난 책들.
마침 오늘 받은 시사인에 '여름의 책꽂이' 특집이 실려있다.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가만히 책 소개를 읽고 있으면 마구 읽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해야하나. 이건 꼭 맛있는 음식을 마구 늘어놓고 다 먹어보고 싶은데 능력(!?)이 안되는 내 몸뚱아리를 마주하고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영양식으로, 특히나 요즘은 나날이 찌고 있는 살을 빼야 한다는 걱정까지 더해서 음식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어떤 책을 먼저 골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그만큼 심각한거 아니겠는가.
아직 64도 못읽었고 미소짓는 사람도 못읽었는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간이 나와버렸다. 제노사이드 이후의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되는데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사실 솔로몬의 위증도. 하긴 그건 3권까지 출간되어야 읽기 시작할 생각이니 미미여사 노트 때문에 래핑을 뜯었을 뿐.
타샤의 나의 정원 말고 다른 책들은 어디 박혀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새 책이 탐 나지만.
북유럽은 최근들어 소설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집... 이것도 유행인걸까?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기 힘들어 집에 쌓아두고 있었는데 나날이 밑으로 깔리다가 엊그제 겨우 꺼내어 읽기 시작한 레드브레스트도 그렇고.
책구경만 하고 구입은 못하고 있네. 벌써 시간이... 일단 명탐정 코난이 몇권까지 집에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어. 살때마다 헷갈려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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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3-06-2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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