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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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제식민사학비판총서> 8권을 비로소 모두 갖추었습니다. 4권은 제가 산 것이고, 4권은 저자이신 이태진 교수님, 허영란 교수님, 서영희 교수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식민사학이라고 해서 주로 조선사 연구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일제시기의 동양사, 동방학, 남양학 등 그 폭이 대단히 넓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토대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들이라고 생각됩니다.
1. 이태진,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2. 오영찬,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3. 정상우,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4. 박준형,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 -권력 공간 학문의 삼중주>
5. 서영희,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6. 정준영,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연구>
7. 허영란, <남양과 식민주의-일본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
8. 이태진, <일본제국의 대외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 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식민사학 내지는 사학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두어야 할 책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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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 완간
고현석 기자
승인 2022.06.19 09:27
[화제의 신간]
-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는?
-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구축 조직 다룬 5∼8권 출간
- 한일 넘어 동아시아로 확장·분석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조선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내부적으로는 당파적인 민족성으로 정쟁을 일삼다가 결국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조선에게 일제강점기는 필연적 사건이었다. 전근대적 세계관를 신봉하고 그것이 만들어 낸 질서에 안주했던 국가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응하지 못했다. 외교뿐만 아니라 내치에서도 자주성을 잃었다. 근대의 흐름에서 낙오된 국가는 우월한 국가의 침략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은 식민사관이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설명하는 이러한 주장은 오랫동안 학술적 근거를 갖춘 ‘통설’로 여겨졌다. 일제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었다.
한국 역사학계는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으로 통칭되는 한국사 인식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식민사관 극복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한민족과 일본 민족은 하나의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이나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와 조선의 역사는 하나라는 ‘만선사관’, 왜(倭)가 4세기 중엽 가야 지역을 정벌해 통치기관을 설립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의 역사는 외세에 좌우됐다는 ‘타율성론’ 등은 이제 많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대일본 관계 설정이 진영논리에 휘말린 가운데 연구의 확장성도 주춤한 실정이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여론이 들끓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성장 등 근대화 토대를 마련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1980년대 민중사관이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토착 왜구” “죽창가” 등 광복 이후에나 쓰였던 구호들을 남발하고 있다. 일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폐쇄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반일 선동은 오히려 식민사관 극복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의 밑바탕이 된 식민사관을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국내 역사학자 7명이 참여해 최근 내놓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 8권)’는 그 점을 파고든다.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는 일제강점기 이후 형성된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를 한국은 물론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로 확장해 파헤치고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은 지난 2월 먼저 발간됐다.
앞서 출간된 책은 1권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2권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3권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4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이다.
대표 저자인 이태진 교수는 ‘동양(東洋)’과 ‘동양사(東洋史)’의 개념이 19세기 중·후반 일본의 ‘특별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전까지 유럽인들이 일컫던 동양, 즉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의 중동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며, ‘동양’의 지도를 새로 쓴 것은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를 선점”하는 것을 목표 삼은 일본 메이지 정권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동양’은 “일본이 새롭게 제패할 지역 세계”로, ‘동양사’는 “이 세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역사연구와 교육”으로 새로이 설정, 개발됐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동양사’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한 대학들은 현재까지도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 도쿄대학·교토대학은 여전히 “‘동양사’가 곧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 창출을 위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그는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이번 총서는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의 시야를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으로 확장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집필진은 “일제 침략주의의 실체를 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져본다”는 심정으로 5년간의 작업 끝에 이번 총서를 내놓았다.
조선총독부 박물관 전경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5) | 서영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20쪽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가 쓴 5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은 일제의 ‘조선반도사’ ‘조선사’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이라는 틀안에서 고찰한 책이다.
일제시기 조선총독부는 방대한 조선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식민지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했다. 총독부가 조선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진행된 역사편찬사업의 추진 배경뿐 아니라 식민지 기초조사사업으로 시행된 구관조사와 규장각 자료 정리사업의 진행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들의 결과물이 어떻게 식민지 역사편찬사업에 반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특히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선반도사』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 이왕직의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분절적인 별개의 사업으로 인식하지 않고 상호 계승성과 연계성에 유의해 살폈을 뿐 아니라 이 사업의 주요 참여세력인 오다 쇼고, 구로이타 가쓰미 등 일본인의 역할 분담과 정만조, 이능화 등 조선인 지식인의 역할에도 주목하였다. 또한, 오늘날에도 근대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고종순종실록』의 편찬 과정과 편찬 자료 분석을 통해 아직도 망국사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고종시대사 인식에 드리워져 있는 식민사학의 기원과 궤적을 추적한다.
서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료 편찬을 표방했지만, 최남선을 비롯한 조선인 위원들의 의견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실증주의와 학술적 권위라는 방패 아래 식민사학의 의도를 표출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고종순종실록’에 대해 “변화된 사회상과 일제의 국권 침탈사는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형식적인 왕실 의례를 부각시켰다”면서 기초 사료로 활용하기 이전에 엄정한 사료 비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모습.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6) | 정준영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3 | 288쪽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집필한 6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학부였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재직했던 일본인 교수들의 ‘조선 연구’ 경향을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경성제국대학은 식민지 조선의 최고학부로서 교육과 학술생산의 정점에 섰던 ‘조선총독부 기관’이었으며, 일본의 제국대학 중 처음으로 식민지에 세워진 대학이었다. 학문의 전당을 표방하면서도, 대륙 진출이라는 제국적 과제와 식민통치의 안정화라는 식민지적 과제가 중첩되는 식민지 조선이란 공간에서 경성제대는 ‘국책(國策)과 학문 사이의 균열’이라는 모순된 운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균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성제대 초대 총장 핫토리 우노키치가 제시한 해답은 바로 ‘조선 연구’였다. 그는 조선 연구가 조선 그 자체만 다루어서는 안 되며, 조선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중국과 일본 속에서도 조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조선 연구는 조선을 지양(止揚)함으로써 비로소 ‘동양 문화의 권위’를 지향(志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본의 다른 어떤 제국대학도 넘보지 못한 독보적인 영역이었던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조선 연구, 그중에서도 법문학부를 중심으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적한다. 근대적인 것, 제국적인 것, 식민지적인 것 사이에서 법문학부의 다섯 학자, 즉 오다 쇼고(小田省吾), 이마니시 류(今西龍),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아베 요시오, 이즈미 아키라(泉哲)를 통해 이들이 추구한 ‘조선 연구’는 무엇이며, 이 연구가 어떻게 변화하고 변주되었는지 그 실체를 밝힌다.
정 교수는 식민지 통치 시기 이루어진 조선 연구가 순수한 지식 추구일 리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이들의 연구 생산물이 오로지 식민주의적일 것이라는 단정 또한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선사학을 제도화했던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는 후대에 관료형 학자와 엄밀성을 견지한 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데, 특히 이마니시 류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비되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양가적이고 분열적인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 상반된 평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확장, 변용, 역류해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음을 들려줌으로써, 식민사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식민사학의 비판과 극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확장된 질문을 던진다.
정 교수는 "경성제대의 조선 연구가 학문적 자율성과 과학적 엄밀성, 제국적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했다"며 "그 배후에 식민지배의 폭력적 현실이 최종심급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라고 짚는다.
■ 남양과 식민주의 일본 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7) | 허영란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04쪽
7권 ‘남양과 식민주의’는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대동아공영권’의 또 다른 공간이었던 ‘남양(南洋)’을 다룬 책이다. 기존 연구가 한반도나 만주에 집중된 반면 이 책은 타이완과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전역을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의 또 다른 침략인 남진과 대동아공영권을 주요하게 다룬다. 메이지유신 전후와 1910년대 남양군도 점령 시기 남양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관심이 경제적 세력 확장에서 점차 군사적 세력 확장의 공간으로 변화해간 것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북진론에 이어 남진론이 대두하고 ‘대동아공영권’이 이데올로기로서 구성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일본 제국의 침략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결국 남양군도와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남양 연구 또는 남방 연구가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내용을 채워나간 것에 다름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일본의 식민주의에서 남양 또는 남방 연구가 일본 제국주의의 동남아시아 ‘진출’ 혹은 ‘침공’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이 책은 대부분의 일제 식민사학 연구가 한반도와 일본, 더 나아가 만주와 중국 대륙에서 머무는 것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동남아시아까지 시야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주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매우 의미 있는 연구서라 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적도 주변에 산재한 섬들과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포괄하는 남양은 '동양-서양'이라는 개념과 구별되는 제3의 일본식 지역 개념이었다"며 "동양과 남양의 관계는 일본제국의 거시적 식민주의가 시기별로 확산하고 변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남양이나 남방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팽창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에 의해 구성된 곳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동양이 메이지 시기 이래 북진의 공간이었다면 남양은 태평양전쟁에 의해 확장된 남진의 공간이었다”며 “일본은 ‘아시아와의 연대’를 내세웠지만 침략의 수단으로 하는 자가당착적 연대”였다고 비판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에 주둔 중인 일본군./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8) |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452쪽
총서 마지막 책인 8권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1권의 저자이기도 한 이태진 교수가 썼다.
이 책은 일본의 쇼와 시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1929)에서부터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1939)와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1941)까지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친 연구서이다. 각각의 기관이 세워진 과정을 통해 일본제국의 주도하에 학자들이 대외 침략을 위한 논리 개발에 열중한 사실을 살폈다.
특히 각 기관의 인력이 「교육칙어」(1899)를 교육받은 세대로부터 시작해 ‘쇼와 유신’ 세대까지 이어졌음을 각 기관의 주요 인물 사례를 통해 새롭게 드러냈으며, 잘못된 역사연구가 제국 일본의 여섯 차례나 되는 대외 침략전쟁에 끼친 영향을 실체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오늘의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시대 역사학의 잘못을 직시하여 성찰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지금이라도 일본의 역사교육이 패권주의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 확립에 이바지하기를 촉구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제국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을 뒷받침한 천황제 국가주의는 신성불가침으로 강고했다"며 "쇼와(昭和·재위 1926∼1989) 천황은 선대와 달리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며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을 반복하게 했다"며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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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역사 왜곡의 뿌리를 찾아서…'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출간
고현석 기자
승인 2022.03.20 2
[출간 화제]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여론이 들끓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의 밑바탕이 된 식민사관을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메이지 유신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던 일본에서는 유신을 전후해 많은 사상가가 출현했다. 그중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라는 인물이 있다.
요시다는 나라를 지키려면 없던 것을 차지해 늘려야 한다면서 제국주의자처럼 영토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물론 한반도, 만주 북쪽, 대만, 필리핀까지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장은 한 세기 뒤쯤 현실이 됐다. 일제는 대한제국으로부터 국권을 빼앗은 뒤 거침없이 침략에 나섰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도 제시했다. 서양에 대응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일본을 중심으로 공존해 나가자는 개념이었다.
당시 일본 학계는 자국의 야욕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 틀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설명하는 주장은 오랫동안 학술적 근거를 갖춘 ‘통설’로 여겨졌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그러한 '식민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인식했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반박하고 한국사를 새롭게 쓰는 작업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하지만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국내 역사학자 7명이 참여해 사회평론아카데미가 최근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 8권)는 그 점을 파고든다.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총서는 대학과 언론, 조선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를 비롯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조사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일본에서 식민사관 세우기에 어떠한 조직들이 참여했고, 무슨 역할을 했는지 추적한다.
대표 저자인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이 최근 먼저 발간됐으며, 5∼8권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이다.
“일본은 왜 잘못된 역사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1) |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92쪽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첫째 권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제국이 ‘동양’, ‘동양사’를 새롭게 개발한 것과 천황제 파시즘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역사서이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일본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생산의 주요 조직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동양’과 ‘동양사’ 개발과 황도주의 파시즘을 선전 보급한 대학과 언론계를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 ‘동양’과 ‘동양사’는 지역 또는 역사연구 분야나 교과목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 용어는 19세기 중·후반 동서가 새롭게 만난 시기 서양 문명 수용에 가장 앞선 일본이 주변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특별한’ 의도로 새로 만들어낸 단어였다. 메이지 정권은 천황제 ‘왕정복고’ 당시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를 선점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세우고 있었으며, 입헌군주국으로서 정치체제가 자리 잡는 시점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신교육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서양 열강에 앞서 일본제국이 주변국을 선점한 세계는 곧 일본제국의 천황이 다스리는 세계로서, 이를 ‘동양’이라고 일컬으며, 이 세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역사연구와 교육을 위해 ‘동양사’란 영역을 새로이 설정, 개발한 것이다.
이 책은 동양사 용어의 유래와 이를 빠르게 받아들인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의 동양사 인식 현황을 비롯해 메이지 정부의 대외 침략주의를 다룬다. 특히 일본의 ‘동양사’ 개발에 주목한 저자는, 1894년 나카 미치요의 3분과 제안으로부터 8년이 지난 1902년, 러일전쟁 발발 2년 전 문부성에서 만든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의 3분과 교과서를 직접 조사하기 시작한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 역사가 동양사로 배치되었으니 한국사 또한 동양사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 여긴 것과 달리 충격적이게도 한국사는 일본사 교과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강제병합 8년 전부터 일본은 이미 ‘역사합병’을 저지른 것이었다.
또한 ‘동양사’는 중국 북방인 만주, 몽골의 땅에서 여러 유목민족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는 일본제국의 중국 본토 침략을 정당화할 역사적 근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것에 불과한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이어 저자는 요시다 쇼인의 평전을 쓴 도쿠토미 소호의 여러 신문 논설과 저서를 황도주의 개발의 관점에서 다시금 살폈으며,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대동아전쟁이 벌어질 때 도쿠토미 소호가 개발한 황도 파시즘이 어떻게 국민독본 성격의 저서들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를 살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본의 대한제국의 국권을 탈취한 일이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넘어 19세기 중반 이래의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성찰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음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일본이 근대화에 유일하게 성공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메이지유신’의 ‘신화’가 실상은 천황제 국가주의로 동아시아 세계를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직시하는 것이 곧 일제 식민사학을 제대로 비판하는 길임을 설파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일본의 침략적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인지와 비판이 없었다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학이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며,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열패한 식민지 문화의 전파 위해 탄생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실체와 흥망성쇠
■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76쪽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두 번째 권으로,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온 주요 조직 중 하나인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 침탈 과정에서 원활한 식민지배를 위한 문화적 도구로 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학술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식민지에 설립된 박물관은 서구의 문명적 과업을 식민지인들에게 과시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제시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근대 일본의 문화시설은 이러한 서구의 선행 사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제국 일본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타이완과 조선, 만주 등의 식민지에 이식해나갔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15년 12월 1일 경복궁 내에 개관했는데, 박물관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였다. 그는 원활한 식민지 통치를 위해 문화 침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의 박물관과 문화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식민지 박물관으로서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재정책에 부응하여 발굴품과 미술공예품을 통해 시대적 특질을 문화사적으로 조망하는 박물관을 지향하였다. 또한 실물 자료의 전시를 통해 조선의 문화를 재현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 구미와의 비교를 겸하여 식민지 조선의 문화가 얼마나 열등한지를 스스로 자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아울러 조선에서 문화재 조사와 보호, 보전을 위한 행정 업무를 총괄한 식민지 문화행정기관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1915년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당시 미술관으로 경복궁 안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됐다. 해방 이후 1954년까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철거됐다. 사회평론아카데미 제공
이러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건물과 소장품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책은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과 전시, 조사연구의 연원이기도 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열패한 식민지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조직과 인력, 소장품의 출처와 상설전시를 통해 식민지 박물관의 토대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폈다. 더불어 일제시기 변동과 파행을 거친 고적조사 과정과 전시체제 아래 균열과 퇴락의 길을 걸어온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역사를 상세히 들여다본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실체를 파악하는 이러한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사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뿐 아니라 제국의 식민지 박물관의 특징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만선사(滿鮮史)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3) | 정상우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288쪽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비판받고 있는 ‘만선사’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만주와 조선을 아울러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만선’이란 용어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선사’라는 학술적 용어로 탈바꿈했다고 여겨왔는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시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만선사는 한국사에 드리워진 대륙의 영향력을 강조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지목되면서 한일 양측에서 모두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만선사를 다룰 때 만주와 조선에만 집중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만선사가 일본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등장하고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일본사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 및 대륙의 역사를 재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침략의 주체이자 새로운 역사 판도의 중심인 일본사를 함께 사고해야 일본의 팽창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 재편 과정으로서 만선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를 살펴본다. 만주사에서 조선사와 만선사로, 다시 만주사로 중심축을 이동해온 이나바의 연구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제국 일본의 팽창 과정에서 탄생한 만선사의 논지를 선명히 하고 동아시아 역사를 재편하고자 한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철조사부는 제국 일본의 판도 확대와 그 정당화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 권력·공간·학문의 삼중주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4) | 박준형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00쪽
이 책은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온 주요 조직을 살펴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네 번째 권으로, 그중에서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조사부를 중심으로 해당 조직에서 누가, 어떻게 제국 일본의 공간 재편을 위한 시도를 위해 나섰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폈다.
제국 일본의 대외팽창과 공간 확장은 제국이 패망하는 날까지 반복되었다. 일본은 침략을 통해 새로 확보하게 된 공간을 ‘통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주권선’과 ‘이익선’을 설정하고, ‘내지’와 ‘외지’로 구분해 지속적으로 공간을 확장, 재편해나갔다. 일본의 대륙 침략 경로는 한반도에서 시작해 간도와 만주를 거쳐 화북으로 향했으며, 이 침략 과정의 중심에는 러일전쟁 이후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즉 만철이 있었다. 만철은 만주 지역의 주요 산업을 지배했을 뿐 아니라 철도부속지를 통한 영역 지배까지 실현했다. 그중에서도 만철조사부는 일본의 지배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초 조사는 물론 정책 입안까지 관여한 제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만주를 배경으로 무기 대신 붓을 들고 싸운 만철조사부 활동을 중심으로 제국 일본의 공간 재편 과정을 세밀히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추동해간 권력의 의지를 확인하고, 동양사학, 법사회학 같은 근대 학문이 어떤 논리를 통해 이러한 권력의 의지에 부합해갔는가를 살펴보았다. 특히 만철조사부의 일원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사 연구자이기도 했던 하타다 다카시의 ‘중국 현지조사’ 활동과 ‘전후 조선사학’ 연구를 통해 과연 학문이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거시적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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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8
이태진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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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남양과 식민주의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7
허영란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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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5
서영희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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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6
정준영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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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4
박준형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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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3
정상우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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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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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1
이태진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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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 완간
고현석 기자
승인 2022.06.19 09:27
[화제의 신간]
-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는?
-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구축 조직 다룬 5∼8권 출간
- 한일 넘어 동아시아로 확장·분석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조선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내부적으로는 당파적인 민족성으로 정쟁을 일삼다가 결국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조선에게 일제강점기는 필연적 사건이었다. 전근대적 세계관를 신봉하고 그것이 만들어 낸 질서에 안주했던 국가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응하지 못했다. 외교뿐만 아니라 내치에서도 자주성을 잃었다. 근대의 흐름에서 낙오된 국가는 우월한 국가의 침략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은 식민사관이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설명하는 이러한 주장은 오랫동안 학술적 근거를 갖춘 ‘통설’로 여겨졌다. 일제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었다.
한국 역사학계는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으로 통칭되는 한국사 인식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식민사관 극복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한민족과 일본 민족은 하나의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이나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와 조선의 역사는 하나라는 ‘만선사관’, 왜(倭)가 4세기 중엽 가야 지역을 정벌해 통치기관을 설립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의 역사는 외세에 좌우됐다는 ‘타율성론’ 등은 이제 많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대일본 관계 설정이 진영논리에 휘말린 가운데 연구의 확장성도 주춤한 실정이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여론이 들끓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성장 등 근대화 토대를 마련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1980년대 민중사관이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토착 왜구” “죽창가” 등 광복 이후에나 쓰였던 구호들을 남발하고 있다. 일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폐쇄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반일 선동은 오히려 식민사관 극복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의 밑바탕이 된 식민사관을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국내 역사학자 7명이 참여해 최근 내놓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 8권)’는 그 점을 파고든다.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는 일제강점기 이후 형성된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를 한국은 물론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로 확장해 파헤치고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은 지난 2월 먼저 발간됐다.
앞서 출간된 책은 1권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2권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3권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4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이다.
대표 저자인 이태진 교수는 ‘동양(東洋)’과 ‘동양사(東洋史)’의 개념이 19세기 중·후반 일본의 ‘특별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전까지 유럽인들이 일컫던 동양, 즉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의 중동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며, ‘동양’의 지도를 새로 쓴 것은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를 선점”하는 것을 목표 삼은 일본 메이지 정권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동양’은 “일본이 새롭게 제패할 지역 세계”로, ‘동양사’는 “이 세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역사연구와 교육”으로 새로이 설정, 개발됐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동양사’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한 대학들은 현재까지도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 도쿄대학·교토대학은 여전히 “‘동양사’가 곧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 창출을 위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그는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이번 총서는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의 시야를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으로 확장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집필진은 “일제 침략주의의 실체를 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져본다”는 심정으로 5년간의 작업 끝에 이번 총서를 내놓았다.
조선총독부 박물관 전경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5) | 서영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20쪽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가 쓴 5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은 일제의 ‘조선반도사’ ‘조선사’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이라는 틀안에서 고찰한 책이다.
일제시기 조선총독부는 방대한 조선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식민지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했다. 총독부가 조선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진행된 역사편찬사업의 추진 배경뿐 아니라 식민지 기초조사사업으로 시행된 구관조사와 규장각 자료 정리사업의 진행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들의 결과물이 어떻게 식민지 역사편찬사업에 반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특히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선반도사』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 이왕직의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분절적인 별개의 사업으로 인식하지 않고 상호 계승성과 연계성에 유의해 살폈을 뿐 아니라 이 사업의 주요 참여세력인 오다 쇼고, 구로이타 가쓰미 등 일본인의 역할 분담과 정만조, 이능화 등 조선인 지식인의 역할에도 주목하였다. 또한, 오늘날에도 근대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고종순종실록』의 편찬 과정과 편찬 자료 분석을 통해 아직도 망국사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고종시대사 인식에 드리워져 있는 식민사학의 기원과 궤적을 추적한다.
서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료 편찬을 표방했지만, 최남선을 비롯한 조선인 위원들의 의견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실증주의와 학술적 권위라는 방패 아래 식민사학의 의도를 표출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고종순종실록’에 대해 “변화된 사회상과 일제의 국권 침탈사는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형식적인 왕실 의례를 부각시켰다”면서 기초 사료로 활용하기 이전에 엄정한 사료 비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모습.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6) | 정준영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3 | 288쪽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집필한 6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학부였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재직했던 일본인 교수들의 ‘조선 연구’ 경향을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경성제국대학은 식민지 조선의 최고학부로서 교육과 학술생산의 정점에 섰던 ‘조선총독부 기관’이었으며, 일본의 제국대학 중 처음으로 식민지에 세워진 대학이었다. 학문의 전당을 표방하면서도, 대륙 진출이라는 제국적 과제와 식민통치의 안정화라는 식민지적 과제가 중첩되는 식민지 조선이란 공간에서 경성제대는 ‘국책(國策)과 학문 사이의 균열’이라는 모순된 운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균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성제대 초대 총장 핫토리 우노키치가 제시한 해답은 바로 ‘조선 연구’였다. 그는 조선 연구가 조선 그 자체만 다루어서는 안 되며, 조선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중국과 일본 속에서도 조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조선 연구는 조선을 지양(止揚)함으로써 비로소 ‘동양 문화의 권위’를 지향(志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본의 다른 어떤 제국대학도 넘보지 못한 독보적인 영역이었던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조선 연구, 그중에서도 법문학부를 중심으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적한다. 근대적인 것, 제국적인 것, 식민지적인 것 사이에서 법문학부의 다섯 학자, 즉 오다 쇼고(小田省吾), 이마니시 류(今西龍),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아베 요시오, 이즈미 아키라(泉哲)를 통해 이들이 추구한 ‘조선 연구’는 무엇이며, 이 연구가 어떻게 변화하고 변주되었는지 그 실체를 밝힌다.
정 교수는 식민지 통치 시기 이루어진 조선 연구가 순수한 지식 추구일 리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이들의 연구 생산물이 오로지 식민주의적일 것이라는 단정 또한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선사학을 제도화했던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는 후대에 관료형 학자와 엄밀성을 견지한 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데, 특히 이마니시 류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비되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양가적이고 분열적인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 상반된 평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확장, 변용, 역류해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음을 들려줌으로써, 식민사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식민사학의 비판과 극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확장된 질문을 던진다.
정 교수는 "경성제대의 조선 연구가 학문적 자율성과 과학적 엄밀성, 제국적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했다"며 "그 배후에 식민지배의 폭력적 현실이 최종심급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라고 짚는다.
■ 남양과 식민주의 일본 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7) | 허영란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04쪽
7권 ‘남양과 식민주의’는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대동아공영권’의 또 다른 공간이었던 ‘남양(南洋)’을 다룬 책이다. 기존 연구가 한반도나 만주에 집중된 반면 이 책은 타이완과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전역을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의 또 다른 침략인 남진과 대동아공영권을 주요하게 다룬다. 메이지유신 전후와 1910년대 남양군도 점령 시기 남양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관심이 경제적 세력 확장에서 점차 군사적 세력 확장의 공간으로 변화해간 것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북진론에 이어 남진론이 대두하고 ‘대동아공영권’이 이데올로기로서 구성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일본 제국의 침략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결국 남양군도와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남양 연구 또는 남방 연구가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내용을 채워나간 것에 다름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일본의 식민주의에서 남양 또는 남방 연구가 일본 제국주의의 동남아시아 ‘진출’ 혹은 ‘침공’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이 책은 대부분의 일제 식민사학 연구가 한반도와 일본, 더 나아가 만주와 중국 대륙에서 머무는 것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동남아시아까지 시야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주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매우 의미 있는 연구서라 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적도 주변에 산재한 섬들과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포괄하는 남양은 '동양-서양'이라는 개념과 구별되는 제3의 일본식 지역 개념이었다"며 "동양과 남양의 관계는 일본제국의 거시적 식민주의가 시기별로 확산하고 변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남양이나 남방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팽창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에 의해 구성된 곳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동양이 메이지 시기 이래 북진의 공간이었다면 남양은 태평양전쟁에 의해 확장된 남진의 공간이었다”며 “일본은 ‘아시아와의 연대’를 내세웠지만 침략의 수단으로 하는 자가당착적 연대”였다고 비판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에 주둔 중인 일본군./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8) |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452쪽
총서 마지막 책인 8권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1권의 저자이기도 한 이태진 교수가 썼다.
이 책은 일본의 쇼와 시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1929)에서부터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1939)와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1941)까지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친 연구서이다. 각각의 기관이 세워진 과정을 통해 일본제국의 주도하에 학자들이 대외 침략을 위한 논리 개발에 열중한 사실을 살폈다.
특히 각 기관의 인력이 「교육칙어」(1899)를 교육받은 세대로부터 시작해 ‘쇼와 유신’ 세대까지 이어졌음을 각 기관의 주요 인물 사례를 통해 새롭게 드러냈으며, 잘못된 역사연구가 제국 일본의 여섯 차례나 되는 대외 침략전쟁에 끼친 영향을 실체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오늘의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시대 역사학의 잘못을 직시하여 성찰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지금이라도 일본의 역사교육이 패권주의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 확립에 이바지하기를 촉구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제국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을 뒷받침한 천황제 국가주의는 신성불가침으로 강고했다"며 "쇼와(昭和·재위 1926∼1989) 천황은 선대와 달리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며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을 반복하게 했다"며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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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역사 왜곡의 뿌리를 찾아서…'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출간
고현석 기자
승인 2022.03.20 2
[출간 화제]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여론이 들끓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의 밑바탕이 된 식민사관을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메이지 유신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던 일본에서는 유신을 전후해 많은 사상가가 출현했다. 그중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라는 인물이 있다.
요시다는 나라를 지키려면 없던 것을 차지해 늘려야 한다면서 제국주의자처럼 영토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물론 한반도, 만주 북쪽, 대만, 필리핀까지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장은 한 세기 뒤쯤 현실이 됐다. 일제는 대한제국으로부터 국권을 빼앗은 뒤 거침없이 침략에 나섰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도 제시했다. 서양에 대응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일본을 중심으로 공존해 나가자는 개념이었다.
당시 일본 학계는 자국의 야욕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 틀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설명하는 주장은 오랫동안 학술적 근거를 갖춘 ‘통설’로 여겨졌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그러한 '식민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인식했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반박하고 한국사를 새롭게 쓰는 작업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하지만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국내 역사학자 7명이 참여해 사회평론아카데미가 최근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 8권)는 그 점을 파고든다.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총서는 대학과 언론, 조선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를 비롯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조사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일본에서 식민사관 세우기에 어떠한 조직들이 참여했고, 무슨 역할을 했는지 추적한다.
대표 저자인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이 최근 먼저 발간됐으며, 5∼8권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이다.
“일본은 왜 잘못된 역사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1) |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92쪽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첫째 권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제국이 ‘동양’, ‘동양사’를 새롭게 개발한 것과 천황제 파시즘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역사서이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일본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생산의 주요 조직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동양’과 ‘동양사’ 개발과 황도주의 파시즘을 선전 보급한 대학과 언론계를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 ‘동양’과 ‘동양사’는 지역 또는 역사연구 분야나 교과목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 용어는 19세기 중·후반 동서가 새롭게 만난 시기 서양 문명 수용에 가장 앞선 일본이 주변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특별한’ 의도로 새로 만들어낸 단어였다. 메이지 정권은 천황제 ‘왕정복고’ 당시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를 선점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세우고 있었으며, 입헌군주국으로서 정치체제가 자리 잡는 시점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신교육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서양 열강에 앞서 일본제국이 주변국을 선점한 세계는 곧 일본제국의 천황이 다스리는 세계로서, 이를 ‘동양’이라고 일컬으며, 이 세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역사연구와 교육을 위해 ‘동양사’란 영역을 새로이 설정, 개발한 것이다.
이 책은 동양사 용어의 유래와 이를 빠르게 받아들인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의 동양사 인식 현황을 비롯해 메이지 정부의 대외 침략주의를 다룬다. 특히 일본의 ‘동양사’ 개발에 주목한 저자는, 1894년 나카 미치요의 3분과 제안으로부터 8년이 지난 1902년, 러일전쟁 발발 2년 전 문부성에서 만든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의 3분과 교과서를 직접 조사하기 시작한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 역사가 동양사로 배치되었으니 한국사 또한 동양사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 여긴 것과 달리 충격적이게도 한국사는 일본사 교과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강제병합 8년 전부터 일본은 이미 ‘역사합병’을 저지른 것이었다.
또한 ‘동양사’는 중국 북방인 만주, 몽골의 땅에서 여러 유목민족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는 일본제국의 중국 본토 침략을 정당화할 역사적 근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것에 불과한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이어 저자는 요시다 쇼인의 평전을 쓴 도쿠토미 소호의 여러 신문 논설과 저서를 황도주의 개발의 관점에서 다시금 살폈으며,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대동아전쟁이 벌어질 때 도쿠토미 소호가 개발한 황도 파시즘이 어떻게 국민독본 성격의 저서들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를 살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본의 대한제국의 국권을 탈취한 일이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넘어 19세기 중반 이래의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성찰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음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일본이 근대화에 유일하게 성공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메이지유신’의 ‘신화’가 실상은 천황제 국가주의로 동아시아 세계를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직시하는 것이 곧 일제 식민사학을 제대로 비판하는 길임을 설파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일본의 침략적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인지와 비판이 없었다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학이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며,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열패한 식민지 문화의 전파 위해 탄생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실체와 흥망성쇠
■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76쪽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두 번째 권으로,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온 주요 조직 중 하나인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 침탈 과정에서 원활한 식민지배를 위한 문화적 도구로 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학술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식민지에 설립된 박물관은 서구의 문명적 과업을 식민지인들에게 과시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제시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근대 일본의 문화시설은 이러한 서구의 선행 사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제국 일본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타이완과 조선, 만주 등의 식민지에 이식해나갔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15년 12월 1일 경복궁 내에 개관했는데, 박물관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였다. 그는 원활한 식민지 통치를 위해 문화 침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의 박물관과 문화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식민지 박물관으로서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재정책에 부응하여 발굴품과 미술공예품을 통해 시대적 특질을 문화사적으로 조망하는 박물관을 지향하였다. 또한 실물 자료의 전시를 통해 조선의 문화를 재현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 구미와의 비교를 겸하여 식민지 조선의 문화가 얼마나 열등한지를 스스로 자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아울러 조선에서 문화재 조사와 보호, 보전을 위한 행정 업무를 총괄한 식민지 문화행정기관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1915년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당시 미술관으로 경복궁 안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됐다. 해방 이후 1954년까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철거됐다. 사회평론아카데미 제공
이러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건물과 소장품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책은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과 전시, 조사연구의 연원이기도 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열패한 식민지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조직과 인력, 소장품의 출처와 상설전시를 통해 식민지 박물관의 토대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폈다. 더불어 일제시기 변동과 파행을 거친 고적조사 과정과 전시체제 아래 균열과 퇴락의 길을 걸어온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역사를 상세히 들여다본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실체를 파악하는 이러한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사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뿐 아니라 제국의 식민지 박물관의 특징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만선사(滿鮮史)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3) | 정상우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288쪽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비판받고 있는 ‘만선사’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만주와 조선을 아울러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만선’이란 용어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선사’라는 학술적 용어로 탈바꿈했다고 여겨왔는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시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만선사는 한국사에 드리워진 대륙의 영향력을 강조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지목되면서 한일 양측에서 모두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만선사를 다룰 때 만주와 조선에만 집중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만선사가 일본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등장하고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일본사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 및 대륙의 역사를 재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침략의 주체이자 새로운 역사 판도의 중심인 일본사를 함께 사고해야 일본의 팽창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 재편 과정으로서 만선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를 살펴본다. 만주사에서 조선사와 만선사로, 다시 만주사로 중심축을 이동해온 이나바의 연구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제국 일본의 팽창 과정에서 탄생한 만선사의 논지를 선명히 하고 동아시아 역사를 재편하고자 한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철조사부는 제국 일본의 판도 확대와 그 정당화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 권력·공간·학문의 삼중주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4) | 박준형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2 | 300쪽
이 책은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온 주요 조직을 살펴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네 번째 권으로, 그중에서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조사부를 중심으로 해당 조직에서 누가, 어떻게 제국 일본의 공간 재편을 위한 시도를 위해 나섰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폈다.
제국 일본의 대외팽창과 공간 확장은 제국이 패망하는 날까지 반복되었다. 일본은 침략을 통해 새로 확보하게 된 공간을 ‘통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주권선’과 ‘이익선’을 설정하고, ‘내지’와 ‘외지’로 구분해 지속적으로 공간을 확장, 재편해나갔다. 일본의 대륙 침략 경로는 한반도에서 시작해 간도와 만주를 거쳐 화북으로 향했으며, 이 침략 과정의 중심에는 러일전쟁 이후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즉 만철이 있었다. 만철은 만주 지역의 주요 산업을 지배했을 뿐 아니라 철도부속지를 통한 영역 지배까지 실현했다. 그중에서도 만철조사부는 일본의 지배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초 조사는 물론 정책 입안까지 관여한 제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만주를 배경으로 무기 대신 붓을 들고 싸운 만철조사부 활동을 중심으로 제국 일본의 공간 재편 과정을 세밀히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추동해간 권력의 의지를 확인하고, 동양사학, 법사회학 같은 근대 학문이 어떤 논리를 통해 이러한 권력의 의지에 부합해갔는가를 살펴보았다. 특히 만철조사부의 일원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사 연구자이기도 했던 하타다 다카시의 ‘중국 현지조사’ 활동과 ‘전후 조선사학’ 연구를 통해 과연 학문이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거시적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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