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Emma Jeong - 서울의 봄 영화 후기.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이상했다. 전두광, 이태신...명확한 인물들의... | Facebook

(3) Emma Jeong - 서울의 봄 영화 후기.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이상했다. 전두광, 이태신...명확한 인물들의... | Facebook

서울의 봄 영화 후기.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이상했다. 전두광, 이태신...명확한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어놓은 게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나올 때마다 실존했던 인물과 맞추어보느라 집중이 잘 안되기도 했다. 퍼뜩 실명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당황스러웠고.
이태신과 전두광을 우두머리로 하는 양쪽 진영의 물리적 격돌로 접어드는 장면에서부터,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감독이 무얼 그리고자 했는지. 그리고 영화에 쑥 빨려들어가 인물에 이입됐다. 아, 이 감독은 두 사람을 각각 다른 내면을 지닌 인간으로 부각시키고 싶었구나. 역사적 상황, 정치적 상황,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치와 의미, 당시 사회가 처해 있던 사회문화적 배경, 이런 것보다 사람 vs. 사람 의 구도로 가고 싶었구나.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다. 모든 요소를 아우를 수 없다. 책이라면 “그렇게 총격전이 있었다”는 한 마디로 치고 지나가면 끝이지만, 영화는 그게 안 된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총과 탱크를 동원해 화면으로 주조해내야 한다. 당연히, 감독이 내보내고자 하는 메인 메시지 외의 다른 것들을 희생시켜야 했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을 테고, 김성수 감독에게는 두 남자의 캐릭터가 어떻게 부딪히고 승부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최종 선택지였을 것이다.
같은 사건을 소재로 책을 썼던 자로써, 너무나 흥미롭게 보았다. 내가 수많은 지면과 낡은 스틸컷들로만 접했던 정보들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나와 드라마로 전개되는 걸 보고 있으니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번뜩번뜩 번져갔다.
나는 영화를 잘 몰라서 이것이 잘 만든 영화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동행했던 이는 ‘완전히 상업영화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각하게 화두를 붙들고 늘어지는 주제 영화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선 영화라 표현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긴 한 영화다. 그러나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두 인물, 전두환과 장태완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해내 관객이 이입하게 했다는 면에서, 압도적인 영화였다.
외모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닮지 않은 얼굴과 몸피(황정민은 골격이 전두환과 너무 다르다)의 배우를 쓴 것은, 초반에는 좀 ‘좀 아닌데’ 싶어 보였다. 안경을 씌우지 않은 것도 이상했고. 강력한 실존 인물의 외관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인물을 보며 자꾸 차이점과 유사점을 찾아내려 하는 ‘산만한’ 정신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초반 십오분 혹은 이십분을 넘겼을 때즈음부터, 황정민이 전두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인물인 전두환의 성정을 배우가 탁월하게 캐치해 이입했기에, 안경도 쓰지 않고 몸피도 실존인물에 비해 너무 호리호리한 ‘하나도 안 닮은’ 황정민을 매우 전두환으로 여기며 보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특별한 가벼움’이라 표현했던 특성이 화면에서 유감없이 인물의 형상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이쯤부터였다. 감독이 가명을 쓴 것, 황정민이라는 안 닮은 배우를 쓴 것, 모두 이해하고 수긍하게 된 것은. 실화에 바탕했지만 상당 부분 상상력에 바탕해 쓴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가명을 계속 강조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안 닮았을지라도 황정민을 기용한 것은 전두환과의 외적 동일함보다는 내면의 싱크로율을 만들어낼 배우로 황정민만한 사람이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었겠지?
예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 영화가 광주를 너무 ‘천재지변’처럼 그려놓아 맥락을 놓친 느낌이었다는 평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이 영화도 그런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1212는 철저히 두 가지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고 성사된 사건이었다. 북한과 미국이라는, 대한민국을 단단히 포박하고 있는 커다란 경고성 존재들의 숨소리를 인식하는 이들이 벌인 거대한 심리전이었다. 당시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던 지휘부를 압박한 것은 “내전이 일어나고 그 틈을 타 북한이 쳐들어오면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는데 마지막 도장을 찍은 이가 내가 되면 큰일난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기대심리 혹은 눈치 보기도 있었을 테고.
전두환은 이미 낙장불입이고 실패하면 죽은 목숨이기 때문에 모든 걸 걸었을 테고, 카운터파트였던 육군 지휘부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거대상수 앞에서 제 앞길 지키기 운동에 돌입한 것이었겠지. 이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나면 전두환과 장태완이라는 두 인물의 캐릭터와 고위 공직자들(국방부장관 등)의 개인적 비겁함에 이상한 타이밍의 ‘운빨’이 개입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즉, 한 사람의 선하거나 악한 경향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부분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며 아, 이 영화는 역사적 맥락을, 아님 국제정치의 역학을 너무 소거시켰어! 그걸 짚어서 좀 더 복합적으로 드러냈어야 해! 하고 멋들어지게 비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대신 이 영화를 선택과 집중으로 잘 만든 영화라 평하게 된 것은, 내가 같은 사건을 다른 질료로 써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수많은 디테일을 손에 들고 주물거려 만들어본 자이기에, 다른 질료를 써서 특정한 면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고, 그 부분적이고 집중적인 작업에 감사하고 쾌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지면과 화면의 차이. 지면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화면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것을 생생히 실감했던 관람이었다. 중간에 전화 받느라 영화관 바깥으로 나와 상당부분을 놓쳤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한 번, 아니 두 번 정도는 더 봐야겠다. 이 체험으로, 앞으로 영화를 볼 때 좀 더 구체적인 눈으로 그 영화만이 가진 미학을 캐치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비주얼적 질료를 주물거려야 하는 감독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선택한 바를 어떻게 집중적으로 그려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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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미, Paul Ma and 25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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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식
저는 제일 마지막 부분이 전직 군인의 입장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33년도 머지않아 영상으로 만날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Emma Jeong
보셨군요! 감독이 대단히 집중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부각시켰다고 느꼈습니다. 황정민처럼 안 닮은 배우가 그렇게 인물에 이입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도 놀랐고요. 마지막 부분은 바리케이트를 타고 넘어가는 이태신 씬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님 고문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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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식
정아은 노래요. 군인들이 젤 좋아하는 군가. 군인들이 뭘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저는 그게 결론 메시지로 인식. 지금의 군인들에게도 전하고싶은
엄효식
전선을 간다. 군대다녀온 사람들이 누구나알고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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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Jeong
엄효식 아, 노래요! 다시 볼 때 노래를 집중해서 들어야겠네요. 군인 경력이 없는 저는 노래를 듣긴 했는데 선생님 정도로 인식해 듣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포인트도 생각나심 알려주세요. 알고 보면 재미가 두 배~~~
Emma Jeong
엄효식 아, 그게 그런 노래군요. 유투브에 찾으러 갑니다. 전선을 간다.
Seokhee Kim
샘의 리뷰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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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Jeong
Seokhee Kim 올리신 리뷰 입맛 다시며 세 번 정독했습니다! 어찌나 재미있게 쓰셨던지~~~밑에 달린 댓글과 대화도 실시간으로 탐독하고 있어요 선생님~~탁월한 의제 생산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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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hee Kim
정아은 아은샘 책 안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3
Kyung Hee Rho
샘이랑 같이 이 영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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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Jeong
노경희 저 또 보고 싶어요~~~혹시 상영기간 중 서울 오심 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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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Jeongwoo
볼까요, 말까요? 😅
Emma Jeong
Baek Jeongwoo 보시고 어떤 감상이실지 매우 궁금합니다.
Emma Jeong
Baek Jeongwoo 백샘 감상 궁금해할 구름처럼 많은 중생을 위해 관람하심이~~~
Baek Jeongwoo
정아은 역사는 모르니 영화에 대해 쓰겠죠 ^^
Emma Jeong
Baek Jeongwoo 아, 샘이야말로 영화평스러운? 영화평을 쓰실듯. 얼른 보고 써주시라! 써주시라! 영화평론 쓰는 법 배우고싶다!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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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Jeongwoo
정아은 제가 페북에 영화글 쓰는 거 보셨슴까?😅 고다르클럽 페북 그룹에나 코멘트 할 뿐. 일단 보겠습니다^^ 그룹에 멤버 아니시죠? 😭
Emma Jeong
Baek Jeongwoo 멤버가 워찌 되는건감유? 찾아봐야쓰겄구먼유~~
Baek Jeongwoo
정아은 분명 초대했을 텐데 안 받으신 듯 ㅋㅋ
Emma Jeong
Baek Jeongwoo 찾아봤는디 멤버 맞구만요! (큰소리 뻥뻥~~) 방금 떡하니 웃겨요도 눌렀구만유~~~~~~
이종일
김성수 감독이 정샘의 세종대 영문과 선배(81학번)예요. 유하, 안판석처럼. 유하는 시인으로서도 빼어났고요.
Emma Jeong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닷~~~뵈면 인사드려야겠어유~~~
지윤성
어제 보려다가 피곤해서 패스 했는데, 조만간 봐야겠슴다. 사람 모아서 상영회 함 하시죠! ㅎㅎㅎ
Emma Jeong
가윤성 샘 평도 궁금하구먼유! 어떻게 보실지~~~
황현호
영화 리뷰가 찰지네요^^
Kiho Han
영화같은 리뷰를 보니 <전두환의 마지막33년> 독자로서 안볼수가 없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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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hyun Kim
너무 잘읽었습니다 👍
안지숙
잘 읽었습니다!
권성우
<서울의 봄>을 본 김에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지금에야 읽은 게 아쉽더군요. 너무나 훌륭한 책이네요. 전두환과 한국 정치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게 될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꼭 기억해야 할 책 중의 한권이라고 봅니다.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적습니다. 정작가님. 얼마남지 않은 올 한해 기분 좋고 뜻깊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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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Jeong
권성우 교수님께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읽어주셨다니 너무 기쁩니다. 과장하자면...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부모에게 소식을 들은 느낌이네요^^. 최근에 좀 무기력에 빠져 있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교수님께 읽힐 만한 뭔가를 또 쓰고 싶다는 욕심도 막 생기고요. 저도 <서울의 봄>을 한 번 더 봐야겠다 싶습니다. 주위에서 영화도 많이 보고, 저에게 전두환에 대해 물어오는 이도 있고...영화라는 매체의 파급효과를 강하게 느끼네요. 추위 조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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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벌써 10년의 세월이 더 지났네요. 정아은 작가의 여정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May be an image of 5 people and text that says "한겨레문학상시상 정 은 <모단하트 201 주 한겨 시"
Emma Jeong
아.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군요 교수님. 그때 해주셨던 말씀, 분위기, 들떠 있던 제 마음...모두 기억납니다.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어쩜 육신은 이리도 성실하고 빠르게 변해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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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병관
가소로운 영화.
내가 만나 본 인간중에 가장 무식하고,교활하고,이기적인 인간이 장태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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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a Lucia Kwon
공유 합니다 정작가님 ❤️
Jennie Choi
작가님의 책도 너무너무 잘 보았었는데
이곳에도 하트를 다섯개는 달고 싶은만큼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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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Young Kim
오늘 일요일이라 그른가 서울의봄 영화 봤다는 페친 피드가 우수수~~ 가을낙엽 떨어지듯
천만 갈 기세
Stephen Rhee
📜✡️"제이권은 출애굽기", 이번에는 전인류에게 주체광명으로 천지개벽을 허락하실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Summy Huang
작가님 후기가 궁금했는데 왜 지금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한 문단 한 문단 꼭꼭 눌러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김영숙
제가 사실 샘 책, 전두환 안 읽었던 이유가. 영화를 보고싶지 않다는 이유랑 비슷할 거에요. 저 인간에 대해 알고 싶지 않고, 저 인간이 결국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그 허무한 시대를 다시 알고 싶지 않아서죠. 근데 사실은 가장 열심으로 읽어야할 책이고, 가장 열렬한 눈으로 봐야하는 사건인데 말이에요. 알고 싶지 않지만, 꼭 알아야할 것들이 가득한 방 문 앞에 지금 저는 서성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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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Bok Jeong
같은 소재로 책을 쓴 선생님은 또 다른 감회로 보셨을 듯요. 영화보러가야겠어요.
차현정
이 영화 때문에 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길😊
JaeYeon Park
선생님 gv 함 하셔야 할 듯요^^
Jen Nam
정작가님 덕분에 이 책 읽었으니 영화가 더 잘 들어올 듯요.
이인태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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