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3

퀸즈제일교회 : 『 기독교와 전쟁 』

퀸즈제일교회 : 『 기독교와 전쟁 』
『 기독교와 전쟁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자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상상보훈에서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도 돌려대라’고 하신, 폭력에 폭력으로 대처하지 말라는 교훈의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강조하는 이들을 평화주의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평화주의입니다. 그러나 평화주의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닙니다. 평화주의는 개인의 태도로서는 옳고 정당합니다. 하지만 신앙 양심상 군 입대와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기에 공동체의 안전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이런 평화주의는 너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서 많은 약점이 있고 본의 아니게 악을 조장하고 악한 자를 돕는 결과를 낳습니다. 기독교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나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손해보고 참는 것이 가장 고상한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오른 뺨을 칠 때 왼 뺨을 돌려대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교훈입니다. 그러나 어떤 나쁜 사람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힘없고 약한 사람의 뺨을 친다면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약한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생명과 물질의 손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은 기독교인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평화주의가 개인적 차원에서는 가장 고상한 태도일지라도 공동체 안에서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물리적인 힘을 무조건 나쁘다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치자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군인들에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눅 3:14절)고 하였습니다. 암시적이지만 세례 요한은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공권력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통치자의 권력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고 하였습니다. 지도자는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는 일에 정당한 권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사용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국가의 권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국가가 악을 억제하기 위해 칼(권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안녕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웃 나라가 부당하게 침략을 한다면 국가는 국민에게 전쟁에 나아가 싸우라고 명령할 것이고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은 그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요구한다고 하여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일으킨 나치의 만행적 전쟁에 참가하도록 요구를 받는다면 기독교인은 신앙 양심을 따라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하고 그의 만행에 동조한 것은 참으로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국가가 요구해도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는 참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땅에 온전히 정의로운 국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이 온전히 정의로울 수는 없고 따라서 어떤 전쟁에 대한 명령도 온전히 정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전쟁이 조금이라도 정의롭지 못한 것이 그 전쟁에 참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된다고 하면 모든 전쟁은 거부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평화주의자들의 논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거부해야할 전쟁은 그 전쟁이 현저히 악할 때에만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저히 악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따라서 전쟁도 정의로운 전쟁이어야 합니다.‘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지만, 인류는 철학에서도 기독교에서도 정의로운 전쟁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원하지 않지만 피할 수 없이 직면하게 되는 전쟁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독교인도 나름대로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기독교계에서는 전쟁과 평화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의로운 전쟁론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주의입니다. 이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에서 주류는 정의로운 전쟁을, 비주류는 평화주의를 주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입장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정의로운 전쟁의 이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쟁의 원칙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 한 사람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입니다. 그가 주장한 정의로운 전쟁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쟁의 유일한 정당성은 국가의 명예와 안전을 수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전쟁은 모든 외교적 협상이 다 실패했을 때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셋째, 전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넷째, 전쟁의 목적은 정복이나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정의로운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전쟁 포로나 항복하는 자는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여섯째, 전쟁에는 군인만 관계시켜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어거스틴과 칼빈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과 신앙고백서에도 전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많은 논의를 통하여 기독교인이 참여해야 할 전쟁, 즉 이를테면 정의로운 전쟁이란 어떤 전쟁일까에 대한 지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을 기독교의 정의로운 전쟁, 혹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독교의 정의로운 전쟁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쟁이 불가피함을 결정할 수 있는 합법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전쟁을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셋째, 합당한 수단을 사용해야한다.
넷째, 전쟁은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한 후에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다섯째,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안에 끝내는 전쟁이어야 한다.
여섯째, 전쟁의 결과는 전쟁 이전의 상태보다 좋아야 한다

기독교의 전쟁의 원칙도 키케로의 원칙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전쟁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키케로는 나라의 명예와 안전을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키케로의 원칙에는 상대 나라의 안전과 명예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전쟁의 목적은 나라의 명예와 안전이 아닙니다. 악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차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키케로의 이론은 내 나라가 악해도 내 나라의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신은 자기 나라가 하는 전쟁이라도 악한 전쟁에는 참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독일 교회는 나치가 일으킨 전쟁에 참가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교회는 거의 나치를 지지했고 전쟁을 찬성하였습니다. 독일 교회가 그렇게 결정을 한데는 루터교의 이원론이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교회는 교회이고 정치는 정치로서 상호 별개의 것이라고 하는 이원론이 독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비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내 나라, 우리나라이기 때문이 무조건 편드는 것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1992년 백악관에 입성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신임 주한미국 대사직을 염두에 두고 워싱턴 주의 상원의원인 신효범씨를 인터뷰 했다고 합니다. 클린턴은 신효범 의원에게 “한국과 미국 간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어느 편에 서겠는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신 의원은 “그 질문은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구를 택할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대답은 정치인다운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답은 “옳은 편에 서겠습니다.”혹은 “정의의 편에 서겠습니다.”입니다. 미국 시민이라고 미국 편에 서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편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 편도 한국 편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의 편이고 평화의 편이고 사랑의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식이 이만큼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과 평화, 경제와 정치, 자연과 문명, 과학과 예술, 사상과 철학 등 온갖 것에 대해 성경적 이해와 안목을 갖도록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나는 거의 모든 나의 설교와 글의 초점을 이 방향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바른 성경적 관점을 갖지 못하면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기독교인들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Rudolph J. Rummel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1999년 Peace Magazine May-June호에 “Democracies Don't Fight Democracies”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이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합니다. 미국과 캐나다가 전쟁을 할 가능성 또한 희박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합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면 북한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쟁의 모든 원인은 비민주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흔히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다,”혹은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가 아니라 구원의 종교다.”라고 하는데 그런 말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한 말이고 또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편승하여 힘겨운 민주주의와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무의식적 편의주의(便宜主義)에 빠져 있음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평화는 좋은 것이지만 극악한 전쟁을 막기에는 너무 순수하고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바로 내 눈앞에 야비하고 비열하고 악한 사람이 힘없고 착한 내 가족의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려고 한다면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쳐야 합니다. 불의에 대하여 베드로처럼 칼을 뽑을 수도 있어야 하고, 적이 총을 쏘면 우리도 총을 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평도의 해병대처럼 공격을 받으면서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갓난아기로 축구를 하는 악마와 같은 나치였기에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히틀러 암살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죽었습니다. 그의 유품에서 종이쪽지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가혹한 고문 때문에‘수배 중인 다른 이들을 배신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자살이 어떤 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본회퍼 목사님은 히틀러 암살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만행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참고 견뎌야 할 사항이 아닙니다. 히틀러의 만행이 나만 공격한다면 하나님께 맡기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이런 것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이고 사랑에 역행하는 태도입니다. 국가가 불의한 전쟁을 수행할 때는 그리스도인과 양심적인 시민들 모두 그에 항거하고 반전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후에 독일 수상이 되어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가 좋은 사례인데, 그는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로 망명하여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의 패전을 위해 노력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감기 예방주사를 맞습니다. 감기 예방주사는 감기 바이러스를 조금 몸에 넣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금 넣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이 넣으면 예방이 안 되고 죽습니다. 전쟁도 그렇습니다. 더 큰 악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어야 합니다. 전쟁으로 제거해야 할 악보다 전쟁 자체가 더 악하면 안 됩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의 민주화와 개방을 유도해야 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민주주의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민주주의 국가와 비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보다 30% 정도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북한과 전쟁을 해야 한다면 북한이 저지르는 악이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전쟁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악하다는 증거가 있을 때 먼저 모든 외교적 노력을 통해 그 악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도록 하되 그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조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정신과 윤리적 행동이 전쟁을 예방하는 데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가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적 사랑과 신본주의는 어떤 경우에라도 기독교가 대전제로 삼는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독교가 민주주의의 실현과 윤리적 실천이 기독교의 사랑과 신본주의,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자! 회개하자!”는 것이 이러한 노력을 피해가려는 종교적 위선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고 지키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견해와 입장과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께서 판단하시고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삶이기에 평화를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무기를 겨누고 싸우지 않을 평화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능성이며 꿈이요 희망입입니다. 이러한 꿈과 노력은 국가 간의 전쟁만 막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불화와 싸움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갈등과 반목과 싸움을 막고 평화가 넘치게 하실 분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2:4절-

http://firstchurch.ohpy.com/ 황상하 목사

병역 거부 운동 10년과 평화의 기독교

복음으로 역사와 사회를 조명하는 복음과상황
병역 거부 운동 10년과 평화의 기독교
[254호] 2011년 11월 29일 (화) 15:42:41이종연  lmpid@goscon.co.kr
2011년에도 대한민국은 인권 후진국
사랑하는 아들에게
서너 명의 판결이 끝나고, 네가 재판정에 들어왔다. 쿵쾅이는 가슴을 양손으로 누르고 힘주어 붙잡고 있었다. 지금 기억나지 않는 어떤 말들이 잠시 오갔고, 네가 ‘최후진술입니까?’ 물으니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가 울컥 말 잇지 못했을 때, 그저 그 자리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는 ‘아버지’ 하기 싫었다. … ‘여기에 와 주신 아버지’ 그 말에,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내가 듣는 내 울음소리는 참혹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임재성 씨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기사를 준비하며 많이 참고한 임재성 씨의 책,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그린비)에서 이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무겁게 툭, 하고 떨어졌다. 이념이나 운동으로 무장한 저네들만의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가슴에 날선 금을 내는 감옥행을 바라보는 모든 평범한 이들의 아버지의 울음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오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감옥에 있는 이들이 800여 명, 한국전쟁 이후로 형사 처분을 받은 이들은 1만 6천 명이 넘었다. 그들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까지 더한다면, 두세 배 아니 열 배는 족히 넘을 이들이 아마 이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참혹함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내 아들이, 내 친구가 감옥에 갔다고 입 밖으로 꺼내놓고 슬퍼할 도리조차 없었을 테니 말이다.
특별히 2011년은 2001년, 그러니까 그간 여호와의 증인들만 하는 것으로 알았던 병역 거부를, 불교신자 오태양 씨가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병역 거부를 특정 이단의 ‘이상한 교리’쯤으로 치부하던 우리 사회에서 오 씨의 병역 거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보편적 인권 문제로 접근하게 하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그 다음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EU 회원국을 포함한 G20 회원국 32개국 중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구금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 있다. 또한 세계적 반전운동단체인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 War Resisters’ International, www.wri-irg.org)은 지난 10월, ‘이 달의 전쟁 수혜자’(무기 산업 등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을 지칭한다)를 한국의 제1 기업 ‘삼성’으로 선정했다. 이 뉴스는 또한, 스웨덴의 외교정책연구소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가 펴낸 2011 연감에서, 2009년 세계 100대 무기 생산 기업 중 삼성이 58위를 차지했다고 친절히 알려 주고 있다. 삼성이 전 세계에 수출하는 군수물자의 45%를 삼성의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이 생산하고 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업체 중 한 곳이 삼성이라고도 알려 준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대기업, 삼성이 이들에게는 전쟁 수혜자로 비춰진다는 점이 한탄스럽다.
개인적 희생에서 평화의 운동으로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의 역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은 1953년 신자 박종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만 3000명 이상이 병역 거부로 범법자가 되어 국가에 의해 처벌받아 왔다. 재림교회로 약칭되는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또한 1956년 세 명의 신자가 병역 거부를 한 것을 시작으로 20년간 ‘집총 거부’라는 교리를 지키며 처벌을 받았다. 박정희 군사 정권이 입영률 100% 달성을 위해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처벌 강화, 즉 반복 처벌과 가중 처벌로 탄압의 강도를 높이자 재림교회는 1976년 집총 거부에 대한 교리를 수정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재림교회 개혁파에서 양심적 집총 거부 행렬이 조금씩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로교 신자인 문기병, 함석헌의 영향을 받은 홍명순이 1950년대 말 집총 거부를 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병역거부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이다. 퀘이커의 사회단체인 미국친우봉사위원회(AFSC: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활동가 카린 리가 한국 평화활동가들에게 징병제에 대한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제안을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이 받아 시작된 것이다. 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던 최정민 활동가가 이 운동의 출발에 서서 병역 거부 현황 파악, 외국 자료 번역 등과 같은 기초적인 작업을 했고, 2001년 2월 <한겨레 21>의 ‘차마 총을 들 수 없어요’라는 기사가 나간 후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 1999년 김두식 교수가 <복음과상황> 7월호에 기고한 ‘여호와의 증인과 그 인권’이라는 글에서 병역 거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또 2002년부터 비공개로 만나 오던 병역 거부자들과 지지자들의 모임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 2003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계기로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 결성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병역 거부자들을 돕고,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병역 거부, 혼자 하지 않았다”
오태양 씨의 병역 거부 이후 비(非)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 거부는 10년 새 50명을 넘었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스스로 병역 거부자임을 밝힌 경우가 그렇다. (여호와의 증인은 연 600명 이상이 병역 거부를 하며, 개인적 신념으로 병역 거부를 하더라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지만 그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다.)
1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병역 거부를 공개적으로 해 온 이들이 병역 거부를 하는 시점부터 수감 생활 및 출소 이후까지, 주변에서 공동체적 지지와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을 주목하게 된다. 2006년 병역 거부를 한 박정경수 씨도 “나는 절대 혼자 병역 거부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병역 거부가 인권, 군사주의 등 뜨거운 이슈들이 중첩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주위의 도움이 실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영 당일, 훈련소로 가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는 일, 변호사를 선임하고,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준비하는 일, 재판을 준비하고 그 과정을 알리는 일 등을 할 때, 실제적 도움이 필요하다. 또, 병역 거부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고, 수감 생활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이나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데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끈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지난 9월말 1년 3개월의 수감 생활의 터널을 지나 출소한 김영배 씨는, “대학생학생연대와 사회당에서 활동하면서 단체가 집단적으로 고민하던 병역 거부를 행동에 옮겼고, 많은 이들의 지지와 후원 속에 재판장으로, 감옥으로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후배 김윤영 씨는 “평화를 만드는 것은 마음이라기보다 몸이고, 꿈이라기보다 실천이다. 김영배 선배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로서 그 몸을 철창 속에 가두며, 온몸으로 평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를 지지했다. 특히, 영배 씨는 “부모님이 내가 출소해서 사회적 낙인이 찍힐 것을 두려워하셨는데, 수감 생활 내내 면회 일정이 가득 차고, 영치후원금 등 물질적 지원까지 받는 것을 보시서 걱정을 더실 수 있었고,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09년, 불행히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무산돼, 병역 거부를 하는 것이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때, 개신교인으로서 네 번째로 병역 거부를 한 하동기 씨. 그는 특히 학교 친구들뿐 아니라 기독교권으로부터도 두루 지지를 얻었다.
“학교 후배들이 만든 후원회를 통해 재판 과정과 수감 기간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전쟁없는세상에서 기자회견 준비뿐 아니라 재판 과정이나 수감 생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셨다. 기자회견 당시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에서 지지 발언을 해 주셨다. 학교에서 활동했던 종교극예술연구회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퍼포먼스를 해 주었고, 기독교평화센터 오상열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몇몇 교회와 단체에 병역 거부를 소개하는 기회도 얻었다.”
하 씨는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수감되기 전까지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특히 후원회의 도움으로 수감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졸업 후 찾아뵙지 못했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후원회를 통해 면회를 오기도 했다. 당시 하 씨는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정종훈 교목은 “병역거부의 기독교적 뿌리는 ‘평화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개신교회가 평화주의를 소홀히 여겨 왔다. 평화주의에 근거하여 병역 거부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그를 지지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르침은 어디에…  
김두식 교수는 <평화의 얼굴>에서 기독교의 병역 거부는 로마 시대, 즉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부터 있어 왔다고 말한다. 170년까지는 기독교인이 로마 제국의 군대에 복무했다는 기록이 없고, 295년에 최초로 기독교인이 병역을 거부해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군대를 떠났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기초한 평화주의가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독교의 국교화 이후 ‘정의로운 전쟁론’의 등장, ‘거룩한 전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행된 십자군 전쟁 등 기독교는 평화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 간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001년, 병역 거부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자 즉각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대체복무제를 ‘이단을 위한 특혜입법’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출하려던 민주당 천정배, 장영달 의원조차 한기총의 거센 반발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단은 인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화인을 찍어 버린 사랑의 종교, ‘기독교’를 대표하는 이들의 행보가 이러했다.
한기총은 2004년, 명분도 결과도 참혹했던 미국발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데 찬성했고, 언제나 안보 논리를 앞세워 당장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교인들을 겁박하고 이 땅에 유일한 소망이 있는 듯,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마 18:12~14)는 말씀에 눈을 감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는 말씀에 귀를 닫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기총을 부끄러워하는 무수한 한국 교회, 또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이십대 초반의 남학생들이 활동하는 캠퍼스 선교단체에서조차 병역 거부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병역 거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우리나라에서 군대, 군대 문화가 내포하는 본의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한 적이 있을까. 우리 사회가 병역 거부 문제로 갑론을박할 때, 구원의 확신 없이 군대 가는 저학년생(혹은 멤버)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밑도 끝도 없이 군대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며, 지극히 개인적 신앙의 문제로 떠넘겨버린 이들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듯하다. 병역 거부를 직접적으로 다룬 내용을 한 번도 출판한 적 없는 기독교 출판계는?
김두식 교수가 잘 지적했듯, 아마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존경에 마지않는 존 스토트나, 누구나 한번쯤은 가 보고 싶어 하고, 가 보았을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가 병역 거부자라는 사실을 절반은 모른 척하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겁쟁이들의 연대’를 도울 공동체가 필요하다
전쟁없는세상 여옥 책임활동가는 최근 들어 병역 거부를 고민하거나 실제로 병역 거부를 하는 이들의 양태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요즘은 오히려 군대 못 가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런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병역 거부가 더 이상 생소한 개념이 아닌 거다. 논술 시험에도 나오고 다들 들어는 봤을 테니까.”
2009년 11월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지난 6월 출소한 현민 씨도 자신이 거창한 신념에 의해 혹은 평화주의자라서 병역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도리어 “군대에 간다고 하면 아무도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며, 상황의 비대칭성을 문제 삼는다. 병역 거부를 하기 위해 나의 신념을 증명받아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는 것이다. 군대에 가기도 전에, 식은땀을 흘리며 꿈을 꾸던 현민 씨에게 그런 고민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찌질함에 기반하면서도 궁상맞음을 경계하는 병역거부운동을 하고 싶다.” 
2010년 12월 병역 거부 선언 후, 현재 수감 중인 문명진 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내가 평화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당장 나의 삶이 불안정하고 갈피를 못 잡겠는데 군대든 감옥에서든 내 신체의 자유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정 기간 동안 구속되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싫은 것이다.”
병역거부 운동 10년의 역사는, 이렇듯 사람들에게 병역 거부가 거창한 대의를 가진 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심어 준 듯하다.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평화감수성이 커진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 병역 거부를 한다고 할 때, 그들이 군사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거나, 삶 전체가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서 주변에서 그들의 삶 전체를 지지해 줄 만한 그룹을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병역 거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옳다구나’ 하고 군대에 가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따지고 들 것이다. 그리고 거창한 이유가 아닐 바에야 얕잡아 보고 시시껄렁하다며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런 때에, 도미야마 이치로의 <폭력의 예감>이라는 책은, 문명진 씨에게 ‘겁쟁이들의 연대’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준 듯하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모든 사람은 겁쟁이’라고 말한다. 또 약세의 위치에서 폭력을 감지할 때, 그들은 방어 태세를 취하고 이런 상태가 이미 폭력을 암시한다고 한다. 명진 씨는 여기서,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 이외에는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학과 자기 환멸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새로운 저항의 상상력의 자원으로 삼고 새로운 언어를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겁쟁이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병역 거부의 내일, 그리고 한국교회
이제 한국교회가 답할 차례다. 이들이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흐름과 또 그 흐름을 언어화하는 작업을 하고, 결국 ‘겁쟁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때에, 10년 동안 편견에서 비롯한 차별과 무시로 ‘병역 거부’라는 주제 자체에 벽 세워 온 한국교회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 청년 누군가가 ‘군대 가기 싫다’라고 말할 때, 어떤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척자들’의 송강호 간사는 ‘군 복무’를 하는 청년들이 ‘평화 복무’를 하도록 요청한다. 세계 곳곳의 고통당하는 이들을 섬기며 봉사하는 활동을 최소 1년씩 하라는 것이다. 또 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하듯, 군대에 갈 때에도 문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NARPI: Northeast Asian Regional Peacebuilding Institute) 이재영 소장은, 평화교회라는 정체성을 표방하는 교회라면, 청년들이 ‘군대’를 고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고민한 결과가 병역 이행이든 거부든, 교회 공동체가 그와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병역 거부를 고민하는 청년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도전이며 성숙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박정경수 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사람은 기대받는 만큼 행동한다”고 말했는데, 교회가 개인의 고민과 결단에 늘 동행한다면, 청년들은 큰 힘과 용기를 얻어 평화의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교회는 대체복무제 도입에도 앞장서야 한다. ‘겁쟁이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사회적 고립’을 강요하는 감옥행으로 직결되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나. 군사력을 절대 선으로 간주하는 군사주의에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병역 거부가 걸어갈 앞으로의 10년에 한국 교회는 공동체적 평화의 바람을 들불처럼 퍼트릴 수 있을까.
글 이종연 기자 limpid@goscon.co.kr

참고 자료
강인철, ‘종교적 관점에서 본 양심적 병역 거부’, 임종인 국회의원실이 주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언제까지 감옥으로 보낼 것인가?” 토론회, 2006.12.22
신윤동욱, ‘군대를 거부한 용감한 겁쟁이들’, <한겨레 21> 862호
이정환, ‘병역 거부에 꼭 거창한 정치적 신념이 필요한가’, <미디어오늘> 2011.9.23
병역거부자들(오태양, 임재성, 박정경수, 하동기, 현민, 김영배, 문명진)의 병역 거부 소견서
김두식, <평화의 얼굴>, 교양인
임재성,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그린비 

자기 손발 결박한 남한 - 벼랑 끝 걷는 북한 - 오마이뉴스

자기 손발 결박한 남한 - 벼랑 끝 걷는 북한 - 오마이뉴스
기사 관련 사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2장에는 유명한 세이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통과할 뱃길 길목에 두 세이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 오디세우스는 밀랍을 손으로 이겨 뱃사람들의 귀를 막고, 자신의 손과 발을 돛대에 묶게 한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되지 않기 위해서다.

마침내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뱃사람들은 더 열심히 노를 젓는다. 오디세우스가 유혹에 넘어가려 하자 일행인 에우릴로코스와 페리메데스가 그를 더욱 세게 밧줄로 묶어서 일행은 결국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국제관계학에서 이른바 '결박 이론'이 나왔다. 자신의 손발을 묶어버림으로써 온건한 협상의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다는 뜻이다.

전쟁의 발발도 '결박 이론'으로 해석 가능하다. 무력충돌은 언제나 무력 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우리 쪽에서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암시를 해도 상대가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저 협박용 발언이거나 강경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정부의 강경대응 선언...점점 커지는 '청중 비용'

이때 우리 쪽에선 우리 의도가 그저 공허한 언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강경한 메시지를 발표하거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1차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결전 의지가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수차례 공개적으로 쿠웨이트 해방을 단언했고 실제로 50만 이상의 미군병력을 걸프지역에 배치했다.

이렇게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리는 행위엔 두가지 효과가 따른다. 우선 상대방에 대해 우리 쪽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도가 있음을 새삼 인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자기 쪽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호언장담 해놓고 막상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될 공신력의 추락은 충돌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청중 비용'이다. 국제적으로든 국내에 있어서든 자기가 한 말을 실제로 실천하지 않을 때 받게 될 타격을 뜻한다. 그러니 잠재적 '청중 비용'이 커질수록 공언이 공언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급격히 늘어난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이같은 전쟁 이론이 아주 잘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연평도 사태에 대해 대통령은 "북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결단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신임 국방장관은 북의 추가공격이 있다면 "항공기를 동원해 폭격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결박이었다면 장관의 발언은 군사적 결박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추가 공격이 있을 경우 공언해온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청중 비용'을 치러야 할 판이다. 다시 말해 군사 정면충돌의 위험이 연평도 사태 이전보다 더 높아진 셈이다. 항공기로 폭격하면 북은 북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이는 거의 자동적인 확전을 뜻할 수도 있다.

한반도 무력 충돌 가능성, 매우 크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본격적인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동북아시아에 몰려 있는 국제경제적 이해관계상 전쟁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북한에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물자·에너지·역량이 없다', '전쟁시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된다(그러니 전쟁을 상상할 수 없다)' 등등의 이유가 제시된다.

다른 하나는 남북간 긴장을 단순한 외교적 갈등 정도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적어도 제한된 국지전 정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제한된'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제한된' 피해(예컨대 수백명의 사망자?)만 발생하더라도 그것의 충격파는 엄청날 것이라고 본다. 네 사람이 죽어도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는데 수백명이 죽는다면 어떤 상황이 조성될까? 

기사 관련 사진
우리로서는 자연히 첫번째 시각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남북 대치상황에서 체득한 심리적인 부인(否認)기제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각도 모른 척할 순 없다. 얼마 전 발레리아노와 마린이라는 국제전문가들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쟁으로 가는 길목에는 다섯가지 선행조건이 있다고 한다.

①분쟁 당사자들의 한쪽 또는 양쪽에 정치·군사 동맹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
②상호간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가.
③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있는가.
④상호 갈등의 역사가 있는가.
⑤한쪽 또는 양쪽에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는가.

경험적으로 보아 이 가운데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전쟁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고 한다. 이 논리를 한반도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한전만 일어나더라도 전쟁은 전쟁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 토마스 머튼이 지적하듯 제한전이 제한전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머튼의 평화론>). 현대전에 있어 일단 충돌이 발생하면 그것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

적이 내게 가한 만큼만 정당하게 보복한다는 전쟁론, 즉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백보를 양보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단 1퍼센트만 된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현상의 성격상 그 1퍼센트를 방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사리에 맞다. 99퍼센트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대화와 협상 말고 과연 다른 방법 있을까

전쟁 발발의 '결박 이론' 외에도 우리가 잘 아는 '벼랑 끝 이론'이 있다.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위태위태한 도박을 벌인다는 위기협상 전략을 말한다. 그런데 '벼랑 끝'이라는 이미지는 한 번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끝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이론을 창안한 토머스 셸링에 따르면 '벼랑 끝'보다는 '진창의 가파른 길'이라는 비유가 더 정확하다고 한다.

한 발 한 발 더욱더 위험한 비탈길로 발을 내딛는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직까지는 괜찮겠지 하는 불확실한 요행을 바라는 기대심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니 벼랑 끝 전술은 한 번으로 끝나는 행동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의 행위도 이런 경우에 속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추가 공격까지 공언하고 있으니 더욱 위태로운 도박을 약속한 거나 다름없다.

요약하자면 현재 북한은 질퍽거리는 비탈길로 치닫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불장난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남한은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결의를 과시하고 있는 듯한데 이 또한 미숙하고 감정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군사도발을 통해 어떤 양보를 얻어내고자 했다면 그 목표는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남한이 정당한 보복 운운하면서 군사적으로 상황을 제압하겠다고 하면 그 목표 역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고전적인 전쟁이론이 한반도에서 이렇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아주 원론적인 말 같지만 이 시대에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우리의 실존에 얼마나 중핵적인 자리를 차지하는지 엄중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양쪽 모두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공존이든 번영이든 통일이든, 일단 전쟁 가능성의 불길을 끈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조효제 기자는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입니다.

2016-05-02

퀘이커란

퀘이커란

5. 퀘이커 평화증언
미국에서 친우회는 메노나이트(Mennonites)와 형제교회(the Church of the Brethren)라는 다른 두 평화주의자 교회와 더불어 3대 "역사적 평화교회(Historic Peace Churches)"중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세 종류의 교회는 폭력이 점점 늘어가는 우리의 시대 상황 속에서 그들의 평화증언을 다시 실험해보는 작업을 최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친우회의 모든 상이한 그룹들도 이 "평화 수립을 위한 새로운 부흥"에 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공통된 퀘이커 유산인 평화 증언의 활동을 강화시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1651년 죠지 폭스는 크롬웰의 군대에서 지휘관 자격의 수여를 거부하면서 첫 번째 평화주의자 선언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나는 모든 전쟁 행위를 몰아내는 생명과 권능의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하며 그 어떤 목적이나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해도 외적인 무기를 갖고 하는 모든 싸움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알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결코 외적인 무기를 가진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우거나 전쟁을 벌이는 일에 우리를 불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싸움이나 전쟁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함도 아니요, 세상의 왕국을 위함도 아닙니다."
친우회는 결코 타협없는 선언을 3세기 이상 지지해 오고 있습니다. 친우회의 평화주의자 증언은 하나의 종교적인 관심사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회원 각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그것은 회원들에게 "지켜야할 규범이나 규율이 아니라" 지침이나 안내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이 관심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일은 각 시대와 회원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일부 친우들은 징집법에 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 끝에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친우들은 징집의무 대신에 봉사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양심적인(징집)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s)로 등록하였습니다. 런던 친우회는 그들과 퀘이커 아닌 평화주의자들을 위하여 전쟁터 가까이에서 일하는 친우앰뷸런스부대(Friends Ambulance Unit)와 민간인들 가운데에서 일하는 친우구호봉사단(Friends Relief Service)을 조직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친우들은 민간인공공봉사단(Civilian Public Service)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다른 역사적 평화교회와 결합했는데 징집위원회는 이 대부분의 양심적 거부자들을 민간인공공봉사단에 배정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죠지 폭스가 1651년에 이룩했던 승리의 선언을 반복할 수는 없다고 깨달은 어떤 친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퀘이커들에게 보다 쉽게 인정되는 군사의 의무의 면제를 요구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친우회는 각각 특이한 비상사태에 대처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각종 평화 증언에 축복을 보냈습니다. 크리미야 전쟁의 전야에 죠셉 스터지(Joseph Sturge)가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를 방문한 일, 영국의 인도 지배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도화해그룹(Indian Conciliation Group)의 활동, 1967년에서 1970년 사이에 일어났던 나이제리아 내란에서 적대 세력들을 화해시키려는 시도, 베트남 전쟁에서 양편 모두에게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준 일, 짐바브웨(Zimbabwe)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어려운 협상을 벌인 사람들을 지원하고 격려해 준 일, 등등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친우회는 평화와 이해 증진을 위하여 보다 더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추진합니다. 친우회는 국제문제란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통설을 반박하기 위하여 문서와 구두 선언 및 대중적인 평화시위 등등의 광범위한 평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민들끼리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맺게 되면 그들 정부 사이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친우회는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국제회합과 국제 교류를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친우들은 여러 해 동안 이와 같은 신념으로 활동해 오면서 세계 각처에서 온 외교관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직업상 부딪히게 되는 국제적인 문제들을 아주 비공식적으로 함께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회담(Conferences)을 주선해 주고 있습니다.
친우들은 국제 기구가 평화를 수립하는데 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의 퀘이커 두 사람 즉 윌리암 펜과 죤 벨러스(John Bellers)는 각각 1694년과 1710년에 분쟁을 가라앉히는 수단으로 전쟁방지기구에 대한 제안을 공포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전쟁방지기구의 모델은 20세기에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을 탄생시키게 한 사상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친우들은 유엔이 평화주의자의 이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불완전한 인간의 기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국제적인 협동의 도구로서 유엔이 지닌 잠재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유엔을 지원합니다. 친우들은 '친우세계위원회'를 통하여 유엔에서 군축의 추진, 인권의 신장, 세계 자원의 올바른 분배들에 관한 그들의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자문역을 즐겨 맡습니다. 친우들은 이런 문제들을 제노바와 뉴욕에 있는 유엔 사무실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퀘이커 모임집"의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정부 대표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토의할 수 있습니다.
유엔에서 친우세계위원회를 대표하는 친우들이 국제적인 모임에서 퀘이커의 견해를 표시한 첫 번째 사람들은 아닙니다. 일찍이 1678년 로버트 버클리는 루이 14세와 화란인 사이의 평화 수립을 위하여 니즈메겐(Nijmegen)에 모인 대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과 우정어린 충고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버클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변호(Apology)"에서 약술한 기독교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평화를 추구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서 "변호"는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위의 "서한"을 덧붙였습니다. 오늘날 친우들은 (버클리가 한 것처럼) 대표단의 서류에 그렇게 많은 분량의 퀘이커 문서를 첨부해서 보내는 일은 망설이겠지만 세속적인 일과 영적인 통찰력을 관련시켜 볼 때 친우들은 버클리의 믿음에 공감할 것입니다. 만일 국가의 지도자들이 평화에 대한 추구가 (퀘이거들이 쓰는 말로) "관심사로 부과된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어떠한 인간의 기구도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친우들을 주장합니다.
일반 대중 곧 관계된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종교적 동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예전보다 더 널리 퍼져 있습니다. 많은 친우들은 이런 관심을 나타내려고 설립된 새로운 조직들(대부분 비종교적인 조직들임)과 함께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새로운 평화 운동에 우리 시대의 특수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리 마련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친우들은 300년 이상 평화 증언을 지탱해온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란 평화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고한 신념인데, 그들은 이 신념을 다른 역사적 평화교회와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주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평화주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평화주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평화주의(平和主義)는 종교적인 사랑이나 자비의 입장 또는 인문주의의 입장에서 전쟁과폭력에 반대하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전쟁에 양심적 병역거부, 반전운동, 대체복무제 등의 방법으로 반대하며, 무저항, 불복종운동 실천 등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인도의 사상가 간디 선생의 비폭력사상 등이 평화주의에 해당한다.
평화의 상징이자, 평화주의의 상징인 평화 기호
World-Day-of-Prayer-for-Peace Assisi 2011.jpg

평화주의의 종류[편집]

종교적인 평화주의[편집]

기독교[편집]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의 사상은 평화에 대한 신약성서의 가르침들에 근거한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오복음서 5장 9절/공동번역성서”
“14.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15.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18. 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14-19/공동번역성서)”
기독교의 평화주의 사상가들로는 퀘이커의 창시자 조지 폭스, 톨스토이,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등이 있는데, 이중 조지 폭스는 1651년 청교도 혁명 지휘관 제의를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모든 전쟁 행위를 몰아내는 생명과 권능의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하며 그 어떤 목적이나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해도 외적인 무기를 갖고 하는 모든 싸움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결코 외적인 무기를 가진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우거나 전쟁을 벌이는 일에 우리를 불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싸움이나 전쟁은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함도 아니요, 세상의 왕국을 위함도 아닙니다."

平和主義 - Wikipedia

平和主義 - Wikipedia

平和主義

原爆ドーム
World-Day-of-Prayer-for-Peace Assisi 2011.jpg
平和主義(へいわしゅぎ、Pacifism)とは、戦争や武力行使、暴力に反対し、個人や組織、国家の紛争の解決を求める手段として、例外を認めない絶対的な非暴力・非軍事力により、平和の追求や実現、維持を求める思想のことである[1][2][3][4][5][6][7][8][9]。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 에코뷰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 에코뷰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이라크 침공은 결과적으로 숱한 생목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도 어느덧 5년이 훌쩍 지났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그 5년은 비극과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 한숨의 세월이다. 2003년 3월 19일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에 대규모 공습을 벌이고, 20일 뒤인 4월 9일 바그다드가 함락된 뒤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의 상황은 줄곧 불바다나 다름없었다. 미군 대 반미 도시게릴라와의 싸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싸움, 이라크의 혼란이 이어지길 바라는 이웃나라들(이란, 이스라엘 등)의 은밀한 개입 등으로 말미암아 혼란은 계속됐다.
후세인의 독재로 고통 받는 이라크 민초들을 구해내겠다는 명분 아래(실제로는 세계 3위의 석유매장량을 지닌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석유의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욕심 아래) 일으킨 이라크 침공은 결과적으로 숱한 생목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럼에도  미국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테러분자들의 극렬한 준동’ 탓에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우리 미군은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벌인다.”고 우긴다. 침공을 합리화하고 석유야욕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다름 아닌 미국식 테러전쟁론이다.

미국식 테러전쟁론
생각이 깊은 미국인이나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필요한 숱한 희생을 낳고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부시행정부에 매우 비판적이다. 전사자 숫자와 전쟁비용만 따져도 “21세기의 미국이 1960년대의 베트남 수렁에 이어 또 다른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전쟁비용은 한 달에 120억 달러 정도 지출되며, 참전 미군 사망자는 침공 5주년을 맞은 지난 3월, 4천 명을 넘어섰다(부상자는 약 3만 명).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라크라는 끓는 가마솥 안에 갇힌 현지 이라크 민초들의 고통이다. 이라크 현지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후세인 독재정권 시절이 더 나았다.”라는 자조 섞인 말들을 입버릇처럼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숱한 이라크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집계하는 기관마다 달라서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긴 하지만 최소 9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에 이른다. 2003년 5월 부시대통령이 전투복 차림으로 항공모함에서 ‘이라크에서의 주요전투가 끝났다.’고 선언한 뒤 5년이 지나도록 이라크 국민들이 혼란과 죽음의 공포 속에 지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지난해 2월 시리아 현지취재중 이라크의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혼란에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에 벌어진 혼란상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후세인 정권을 대신하는 이라크의 현실적인 힘의 주체이자 점령자인 미국에 상당 부분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진 베스키 엘스테인(시카고대학)은 “점령국은 (패전국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은 전쟁윤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라크 국민들의 안전에 미국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석유이익이냐 인간안보냐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들을 취재하면서 품게 되는 생각은 “참된 의미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정복자 로마인들의 평화였고 로마에 복속 당한 약소민족들에게는 ‘노예의 평화’일 뿐이었다. 강자만을 위한 평화, 약자의 인간안보가 위협당하는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다.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민초들이 바라는 평화는 미국의 평화가 아니라 ‘이라크의 평화’다.
여기서 ‘인간안보’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안보란 흔히 국가안보를 떠올리지만, 인간안보란 국가안보에 머물지 않고 넓게는 인간공동체의 안보이자, 좁게는 인간 개개인의 안보를 가리킨다. 전쟁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가치행위의 으뜸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안보가 지켜지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고, 정의로운 평화는 더군다나 없다.
승전국(점령국)은 패전국 국민들의 인간안보를 책임져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평화도 챙겨야겠지만 ‘이라크 민초들의 평화’도 챙겨야 한다.
지금 이라크에는 16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주둔중이다.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극심한 긴장과 피로감에 시달리는 많은 병사들은 하루빨리 본국으로 되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 워싱턴 당국자들도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전략(이른바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탁상 위의 계획처럼 쉽지 않다.
이라크 정부군이 오는 2012년까지 국내치안을 떠맡길 바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침략군인 미군의 허수아비 용병’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이라크 정부군이 제 역할을 잘하길 바라기는 어렵다. 미군 지휘부는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이름 아래 이라크군과의 공조를 애원하지만, 낮에 미군과 함께 수색활동을 펴던 이라크 정부군이 밤이면 오히려 총부리를 미군에게 겨누는 일마저 벌어지는 상황이다.

한국, 하루 빨리 이라크에서 발 빼야
전쟁이 끝난 지 5년이 넘도록 이라크가 혼란상황을 거듭하는 현실은 어느 나라든 함부로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해준다. 구체적인 이라크 재건 청사진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 탱크에 장미꽃을 던지리라.”는 미국인들 나름의 편리한 낙관론 아래 석유를 노리고 밀어붙인 이라크 침공과 그 뒤의 혼란, 이를 가리켜 훗날의 역사가들은 무엇이라 기록할까.
‘21세기의 야만과 패권적 야욕에서 비롯된 참극’이란 혹독한 비판기록을 남길 게 틀림없다. 독일 지식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을 함부로 벌여선 안 된다고 규정한) 국제법을 패권주의 정치학으로 갈음하는 뚜렷한 일탈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석유를 노린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란 비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이라크 석유를 노리고 미국이 벌인 그 ‘더러운 전쟁’에 노무현 정부가 끌려들어가 자이툰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이른바 ‘혈맹관계’인 한미동맹, 한국기업들의 재건사업 참여, 유전개발 참여라는 명분 아래 계속해서 철군을 늦춰왔다. 자이툰부대 철군은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그럼 이명박 정부는 과연 그런 염원을 들어줄 태세가 돼 있을까. 이 대답 역시 부정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 “(지난 10년 동안 훼손됐던)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 만큼, 자이툰부대의 조기철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하루빨리 이라크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글·사진  / 김재명 kimsphoto@hanmail.net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