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날의 악몽 생생… 예술 통해 원전위험성 알리죠”
입력 : 2015-03-09 21:22:56 수정 : 2015-03-10 00: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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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후쿠시마 원전 사고 4년] 탈원전 운동 펼치는 ‘후쿠시마 지원…’ 간다 가오리 이사장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震災)과 이에 따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만 4년이 됐다.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가공할 쓰나미(지진해일)와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를 촉발시켰다. 1만8483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지금도 22만9000여명이 피난 중이고 8만여명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피해 복구는 상당히 진척됐지만 원전 사고 피해 지역의 복구는 요원하다. 후쿠시마현 주민의 70% 이상은 여전히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안전한 나라’ 건설을 다짐했다. 모든 원전의 운영을 중단했다. 하지만 에너지 수입으로 무역적자가 늘어나자 하나 둘 재가동 절차를 밟고있다. 또다시 방사능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화두를 풀기 위한 일본인들의 논쟁은 열기를 더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시민단체를 만들고 전통 예술 ‘고단(講談)’을 통해 원전 및 방사능 문제 등을 이야기해온 간다 가오리(神田香織) ‘후쿠시마지원-사람과 문화 네트워크’ 이사장을 만나 고견을 들어봤다.
고단은 우리의 판소리와 비슷하지만 창(唱)이 아닌 이야기가 중심인 예술로, 무로마치 시대(1338~1573) 불교 설교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바꾼 것에서 유래했다.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장려하면서 현재의 양식이 정착됐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사이타마(埼玉)시에서 이뤄졌다. 후쿠시마의 현재를 진단하고 원전과 방사능, 탈원전, 한국의 원전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간다 이사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에 의한 방사능 영향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원전이 2년 이상 중단됐지만 충분히 생활하고 있다”며 “지진이 활발하고 (화산)분화도 있는 일본에서 자자손손 폐를 끼치는 원전은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다 이사장은 1986년 반전반핵 메시지를 담은 만화 ‘맨발의 겐’을 고단으로 발표한 이래 일본의 고단사 80명 중 유일하게 ‘체르노빌의 기도’ 등 평화와 탈원전을 주제로 한 고단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후쿠시마지원-사람과 문화 네트워크’는 어떤 단체인가.
“2011년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후쿠시마를 계속 지원하자는 차원에서 후쿠시마현 이와키 출신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비영리 시민단체(NPO)이다. 사고를 빨리 수습하고 후쿠시마의 현재를 도시인들에게 알리며 그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 큰 단체도 아닌 자원봉사자 모임이고 돈은 넉넉하지 않지만 피난민 가설주택 등을 찾아 고단을 비롯한 문화를 중심으로 연 2회 이벤트와 어린이 지원활동을 전개 중이다. 이벤트는 다양한 게스트가 참여하기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곤 한다.”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2011년 10월 180여명의 참여로 결성됐고 주요 활동은 ▲후쿠시마 사람들과 네트워크 만들기 ▲연극, 고단 등을 통한 문화계몽활동 ▲탈원전을 목표로 한 재생 에너지 추진 등이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 안에는 베테랑 작업원들의 피폭량이 높아져 초심자들이 대거 대신 들어와 작업 중이다. 사고 직후 매일 3000여명이 작업했지만 지금은 매일 5000∼6000명이 들어온다. 사태 수습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수도 해양으로 유출됐다고 보도됐는데, 앞으로 더 흘러갈 것이다. 정부는 후쿠시마 내에 폐기물 중간 저장시설 건설도 추진 중이다. 매일 트럭 1000대분의 후쿠시마 오염토를 10년에 걸쳐 들여온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2차 피폭이 우려되는데도, 지역 주민들에게 중간 저장시설 주위로 귀환하라고 한다. 결정한 사람들은 안전한 곳에 살면서 말이다.” 그는 홈페이지에서 당시 유출된 세슘량이 총 85만테라베크럴(TBq, 1TBq=1조Bq), 히로시마 원폭의 168개분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삶은 어떤 상태인가.
“개인 및 가족마다 다르다. 후쿠시마 밖에서 새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후쿠시마 내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 갈라진 경우도 적지 않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사망자도 매년 늘고 있다. 어린이 갑상선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사고 후 주민들은 2년 계약으로 가설주택에 살게 됐지만, 벌써 4년이 지났다. 가설 주택에선 이웃의 화장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인권침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 4년 전 그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할 텐데.
“다음 날(12일) 도쿄 한 회관에서 제자의 신우치(眞打, 최상급 고단사) 파티가 예정돼 있어 기모노 등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대지진 여파로 전차가 끊기면서 파티에 오기로 한 300명 중 100명밖에 오지 못했다. 후쿠시마 이와키에 있던 친정과는 한동안 연락이 닿지 못했고 철도와 자동차 도로마저 두절돼 갈 수도 없었다. 4월10일 울퉁불퉁한 도로가 열리면서 버스로 구호 물자를 전달할 때 잠깐 친정에 들를 수 있었다.”
“무대 배우를 꿈꿨는데, 연기 연습 차원에서 고단을 배우기 시작했다. 협회의 견습 과정이 끝나면 프로 고단사로 출발하게 되는데, 1985년 견습이 끝나 해방감으로 사이판을 가게 됐다. 그런데 사이판의 자살 절벽(Suicide Sliff)에서 일본 군인과 민간인 7000∼1만명이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후 오키나와와 히로시마, 나가시마 등을 직접 찾아 전쟁의 무모함을 절감했다. 특히 만화 ‘하다시의 겐’을 읽고 전쟁과 방사능의 무서움, 피폭 속에서도 꿋꿋히 살아가는 어린이의 힘에 감동해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中澤啓治)를 만나 허가를 얻어 고단을 준비하게 됐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가 한창이어서 전쟁이나 원폭엔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았지만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사고가 나면서 고단 ‘하다시의 겐’에 관심이 고조됐다. 고단은 혼자 말하는 고독한 일이지만, 잘하면 성취감 또한 매우 크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다루고 있는데.
“‘체르노빌의 기도’를 2002년 발표한 뒤 전국 200여곳에서 공연했다. 그런데 많은 일본인이 ‘체르노빌 원전과 일본의 원전은 다르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2006년부터 30초 정도의 대사를 끝부분에 추가했다. ‘때는 0000, 일본 앞바다에 접한 원전에서 사상 최대의 사고가 발생했다. 피난 명령 발령! 사람들은 도망가라. 바람은 간토(關東) 방면으로 향한다’가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일본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당시 시즈오카(靜岡)현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근처 하마오카(浜岡) 원전에서 사고가 나는 걸 상정했는데, 5년 후 2011년 고향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예언자 같은 느낌이었고, 후회스러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면서 일본은 원전 재가동과 탈원전의 기로에 선 것 같다.
“일본 국민은 탈원전인데, 아베 정부는 어떻게든 원전을 재가동하려고 한다. 지난 2년간 원전이 멈췄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지진도 활발하고 (화산) 분화도 있는 이런 곳에서 원전 재가동은 안 된다. 후쿠시마의 교훈을 배워 자자손손까지 폐(메이와쿠)를 끼치는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한국도 원전이 많이 있지만 위험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해 5월 한국 YWCA에서 300명의 여성 앞에서 ‘후쿠시마의 기도’의 일부를 공연할 때 후쿠시마 주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구조되지 못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얘기했다. 그런데 많은 참석자들이 세월호 침몰 당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고교생들을 도와주지 못해 죽게 한 것을 떠올리며 울더라.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한 이들을 데려와 실제 겪은 일을 말하게 하고, 반대로 한국 사람들을 후쿠시마로 데려가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후쿠시마의 비참한 상황을 한국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만약 일본에 온다면 후쿠시마로 가서 자신의 눈으로 봐 달라.”
사이타마=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간다 가오리는 누구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출생(1954) ▲고단사 간다 산요(神田山陽)의 문하생이 됨(1980) ▲고단 ‘맨발의 겐’ 발표, 일본잡학대상 수상(1986) ▲최고 고단사인 신우치(眞打)로 승진(1989) ▲고단 ‘체르노빌의 기도’ 발표(2002) ▲마쓰이야요리 저널리스트특별상 수상(2010) ▲시민단체 ‘후쿠시마지원-사람과 문화네트워크’ 결성, 이사장으로 활동(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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