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6
특파원 칼럼 - 끝나지 않은 고이즈미의 도전
특파원 칼럼 - 끝나지 않은 고이즈미의 도전
끝나지 않은 고이즈미의 도전
운영자
조회 수: 40, 2015.06.17 09:29:13
문명을 바꿀 변화 앞에서 우리는 가끔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 변화가 필요불가결한 것인지 헷갈릴 경우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기 쉽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한동안 거부하다 퇴보와 좌절을 경험하는 이유다. 반대로 변화를 앞장서 수용하면서 자기화해 새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경우도 있다.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선택이 그 사회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꿔왔던 것을 역사는 웅변한다.
9일 끝난 도쿄도지사 선거를 복기하면서 드는 생각의 일단이다. 선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집권 여당이 총력 지원한 후보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지지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에 압승하며 싱겁게 끝났다. 아베 총리는 최종 승자로 평가받았고, 고이즈미 전 총리는 패배자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과연 고이즈미의 도전은 실패한 것인가.
물음에 답하기 전에 미리 밝혀 둘 게 있다. 그건, 일본 현대정치사에서 비중이 작지 않고 인기도 높은 고이즈미 전 총리에 대해 기자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05년 우정 민영화를 위해 중의원을 해산한 뒤 총선 승리를 통해 관철한 집념이 무섭고, 총리 취임 이후 매년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그의 사상에도 동의할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이젠 고이즈미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2011년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국민적인 관심 속에 탈원전(脱原発)을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시켰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선거나 중·참의원 선거에서 탈원전을 주장한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전국적인 관심 속에 선거판 자체를 원전 대 탈원전 구도로 몰고 간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원전 찬성파였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핀란드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처분장을 견학하면서 탈원전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곳에서 ‘플루토늄 반감기는 2만4000년이고 생물에 해가 없어지려면 10만년 동안 500m의 지하에 묻어둬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실제 10만년이라는 세월은 국가도 수십, 수백 번 바뀔 수 있고 심지어 지금의 말조차 유지될지 알 수 없는 상상불가의 시간이다. 더구나 지진과 화산 등 온갖 재해에 노출된 일본 아닌가.
남는 의문은, 비록 그가 탈원전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왜 다시 ‘정글 같은 정치판’으로 돌아왔느냐는 점이다. 자신이 키운 아베 총리와 처절히 맞서야 하고, 패할 경우 정치생명에도 치명상이 예상됐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그는 2001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 5년5개월간 재임해 전후 일본 총리들 가운데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7년8개월)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7년2개월)에 이어 3번째로 오래 집권한 ‘성공한 총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고이즈미가 ‘탈원전 너머’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기자는 감히 추측한다. 즉 탈원전 이후 펼쳐지는 재생에너지 사회와 이에 따른 사회구조의 격변, 그리고 총체적인 문명사적 전환의 가능성을 봤을 수 있다. 실제 리프킨(Jeremy Rifkin)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재생 에너지로 열리는 ‘제3 산업혁명’을 주장한다. 19세기 증기 에너지와 인쇄술이 결합해 생겨난 제1 산업혁명, 20세기 전기 에너지와 대중매체의 결합으로 이뤄진 제2 산업혁명에 이어 우리는 지금 재생가능 에너지와 인터넷 혁명이 결합된 제3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독일과 함께 리프킨이 말하는 제3 산업혁명에 가장 근접한 나라 중 하나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54기의 원전으로 전력의 29%를 책임진 ‘원전 사회’였지만 지금은 ‘원전 제로’임에도 전력난을 겪지 않는다. 비록 에너지 수입에 막대한 무역적자가 생겼지만, 화력발전을 첨단화하고 방치되던 자가발전도 재가동하는 한편 새로운 재생 에너지원도 속속 개발하는 등 일대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고이즈미는 바로 탈원전을, 거리의 혁명이 아닌 선거와 정치라는 ‘제도’ 안에서 고민하는 길을 연 것이다. 탈원전 이후 열릴 재생에너지 사회가 제3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깃발을 권력투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그와 호소카와가 겨우 95만표 밖에 얻지 못했지만, 그의 도전이 이제 시작인 이유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일본의 여명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용출(2014. 2. 17). <특파원리포트> 끝나지 않은 고이즈미의 도전. [세계일보], 2014년 2월17일, 31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6/20140216002733.html?OutUrl=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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