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6

특파원 칼럼 - 내셔널리즘 광풍과 오누키의 소망

특파원 칼럼 - 내셔널리즘 광풍과 오누키의 소망

내셔널리즘 광풍과 오누키의 소망
운영자조회 수: 93, 2015.06.17 09:27:20



시작이나 다짐은 보통 앞으로 향하지만, 과거에서 움터오는 반성 또는 저린 기억을 한 발쯤 밟고 있어야 제격이다. 과거의 경험이 새로운 시작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2월19일이었다.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기자 오누키 도모코(大貫智子). 서울특파원 부임을 앞두고 있던 그는 일본 국회를 견학할 수 있도록 주일 한국 특파원단과 중의원 의원실을 연결시켜줬다. 덕분에 일본 정치의 주무대인 국회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물론 재미 있는 에피소드나 취재현장 등 개인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는 것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오누키는 이날 의원회관 입구에서 우리를 살갑게 맞아주었고 견학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사만 하고 헤어졌지만, 해맑은 눈과 차분한 인상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해 말이었다. 적확히 말하자면 <마이니치신문> 지면에 실린 그의 기사와 사진을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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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일본 특파원이 본 일본인 한국특파원 오누키 도모코의 소망과 한일관계의 현실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 난에 ‘사상 최악의 한·일 관계’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4월 서울특파원으로 부임한 이후 느낀 소회를 실었다. 오누키는 글에서 한·일 관계는 긴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살아보니 ‘반일(反日)’적이라는 것은 실감하기 어렵고 오히려 일본어를 배우거나 일본 음식 등에 관심이 많은 ‘호(好)일파’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이 일본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5살짜리 아들이 가는 유치원에는 한·일 아이들이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잘 섞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쓸데없이 대립을 부추기지 않고 상호이해를 위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국의 전체적인 모습을 일본에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쯤으로 나에겐 읽혔다. 더불어 차분하면서도 솔직한 글을 읽고 있자니 그가 겪거나 느끼고 있을 생활과 고민도 그려졌다. 특히 같은 특파원 입장에서 나의 고민으로 오버랩되기도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 폭주와 이에 맞서는 일본 내 ‘지구 시민들’의 분투, 우익의 창궐과 국민들의 성실함, 언론이 그린 ‘현실’과 실제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 그럼에도 진실과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소명….

물론 고민은 한국과 일본의 진실을 종합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이를 강제하고 있는 어떤 ‘거대한 힘’이 두 나라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 내셔널리즘의 광풍과 공공연한 대결주의, 공존과 평화에 대한 절박함의 결여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터다.

 예를 들면 일본 주간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적인 감각이 결여된 이상한 사람쯤으로, 한국은 협력할 가치가 없는 나라로 비쳐진다. 반대로 한국에선 일본 리더들은 반성적 사유나 대화가 불가능한 이들로, 일본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나라쯤으로 치부되진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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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광풍은 미국의 ‘신고립주의’와 중국과 인도, 독일, 일본 등의 재부상과 맞물리며 지금 동아시아 전체로 퍼지고 있다. 센카쿠 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나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긴장, 역사갈등 등은 그 최전선이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곳은 아마 동아시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과도한 내셔널리즘은 합리적인 사고를 막고, 객관적인 비교 분석도 차단한다. 미래로 향하는 전략 구축이나 공존을 위한 대화의 시도조차 불온시하기도 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타자를 공존의 상대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거대한 폭력이 된다. 1914년 6월28일 사라예보의 총성과 함께 시작된 1차 세계대전도 기실 범게르만주의(Pan-Germanism)와 범슬라브주의(Pan-Slavism) 등으로 표현되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에 대한 안일함, 공존에 대한 절박함의 결여가 빚어낸 참화였지 않는가. 비행기와 전차, 독가스 등이 동원되고 총력전으로 번지며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은 1차 대전이 발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새해 그 내셔널리즘의 광풍 앞에 다시 선다, 오누키와 함께.


*김용출(2014. 1. 20). <특파원리포트> 내셔널리즘 광풍과 오누마의 소망. [세계일보], 2014년 1월20일, 31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1/19/20140119002854.html?OutUrl=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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