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6

특파원 칼럼 - 열도에는 K문학회가 있었네

특파원 칼럼 - 열도에는 K문학회가 있었네

열도에는 K문학회가 있었네
운영자조회 수: 191, 2015.06.23 13:51:53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혼자 고뇌하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최고라고, 신경림의 시 <농무>는 노래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2012년 4월부터 도쿄특파원으로 3년간 근무한 나도 그랬다. 동북아에서 국가주의(nationalism) 광풍이 불면서 힘들었지만, 다행히 한국문학 공부모임인 ‘K문학회’ 사람들과 함께 하며 고통의 파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나의 칼럼의 토양이요, 진의를 가장 먼저 이해해준 첫 독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난달 18일 오후 7시, 도쿄의 서점가 진보초(神保町)에 위치한 출판사 ‘나시노키샤(梨の木舍)’. 나는 뜻하지 않게 10여명의 K문학회 회원 앞에서 한국 <세계일보>에 게재한 ‘특파원칼럼’을 낭독해야 했다. 한 회원이 우연히 나의 칼럼을 호평하면서 학원의 한국어 수업교재로 활용 중이라고 알리자 다른 회원이 내 칼럼을 모아 전체 회원에게 이메일로 배포한 게 발단이었다. 마침 나의 귀국일이 임박하자 그들은 세미나를 칼럼 낭독회로 급히 대체한 것이다.

회장에는 이미 나의 칼럼 5편과 함께 칼럼에 인용된 작품이 배포되거나 해당 작품의 일본어 번역본이 회람되고 있었다. 나는 칼럼 취지와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뒤 선정된 칼럼을 1편씩 낭독했다. 회원들은 각 칼럼의 낭독이 끝날 때마다 질문했다. ‘희망의 포복’이나 ‘동북아 화쟁 공동체’ 등 칼럼 속 단어나 용어의 의미나 맥락부터 특정 문장에 대한 함의까지.

 장소를 인근 이자카야(선술집)로 옮겨 조촐한 송별회로 이어졌다. 나를 제외한 전원이 각자 3000엔(약 3만원) 이상을 갹출해 준비한 것이었다. 다과와 술 등이 들어오자 다시 칼럼 이야기가 재개됐다. 낭독회 때보다 좀더 진솔했다. “거의 10년 만에 칼럼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극찬에서부터 ‘칼럼 문장이 어려운 이유’를 묻거나 ‘정형화에 빠지지 말라’는 조언도 나왔다.

K문학회. 1990년대 후반 도쿄에서 박완서의 소설 등을 일본어로 번역한 자이니치(在日) 대학강사 박복미씨를 비롯해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던 일본인과 자이니치 5, 6명이 모여 만들었다. 한때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埼玉)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10여년 전부터 진보초의 나시노키샤에 정착했다. 2015년 현재까지 K문학회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 이들은 50∼60명으로 추정된다.

세미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중심으로 매월 한국 단편소설 1편을 읽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모임이 거의 20년이 돼가니 대략 200작품 이상 읽은 셈이다. 발제자는 작품 요약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해 배포한다. 토론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소설에 주사위 놀이가 나오면 인터넷 등에서 한국의 ‘주사위 말판’ 사진을 구해 배포한다든지 편의점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룰 땐 한국 편의점 역사를 정리하는 식이다. 문학을 넘어 한·일 시사문제 토론도 활발하다. 세미나 후에는 작은 이자카야에서 ‘잘 차려진 작위의 표면’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보여주는 건 덤.

나는 처음 어리바리하게 나시노키샤에 고개를 내밀었지만, K문학회 사람들은 현실에 지친 나를 3년간 위무해주고 격려해줬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강한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공존을 소망하는 ‘국가주의 너머의 일본인’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지도자들이야 국가주의 틀에서 싸우든 말든’ 우린 한국문학의 숲에서 국가주의를 맘껏 조소했고, 동북아 화쟁 공동체의 꿈을 노래할 수 있었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3년간 국가주의에 맞서 ‘농무’를 함께 해준 열도의 친구들이여, 아리가토(감사).



김용출(2015. 4. 6). <특파원리포트> 열도에는 K문학회가 있었네. [세계일보], 2015년 4월6일자, 31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4/05/20150405002243.html?OutUrl=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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