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7

한국 민주주의의 혼란과 위기 박 재 순

Jaesoon Park
tScpomin1sored9mg  · 
저는 함석헌 선생님께 마음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함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씨알의 소리' 주필로서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페친 여러분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2021년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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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혼란과 위기
                                                          박 재 순 주필
한국은 3·1운동, 4·19혁명,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빛나는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오늘 한국 민주주의는 큰 혼란과 위기에 빠진 것 같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을 이룩하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를 통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크게 확장되었다.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 결사 시위의 자유는 폭넓게 허락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거짓말과 막말을 할 자유로 전락했고 언론의 자유는 거짓 뉴스를 퍼트릴 자유, 진실을 왜곡할 자유로 전락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법의 질서와 규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는 헌법 정신과 목적에 따라 국민의 주권, 존엄, 행복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오늘날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크게 확장되었는데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는 크게 위축되었다. 국민을 위한 일자리는 사라지고 돈은 소수에게 몰리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가난한 국민은 독재자와 사기꾼들의 선동에 놀아나기 쉽다.
법대로 하면 되는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와 충돌할 뿐 아니라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치인들도 시민운동 단체도, 교육 종교 문화계의 사람들도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 검찰과 경찰에 고발하여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결국 검사와 판사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검사와 판사가 사회를 지배하고,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문화의 위에 서게 된다. 
법은 사회생활의 최소조건이다. 법의 아래서 사는 사회는 최악의 사회다. 국민의 주권, 존엄, 행복을 실현하는 내용적 민주주의는 법 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도 가정과 사회의 공동생활도 모두 법 위에서 이루어지고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다. 정치인들과 시민운동단체들과 종교문화인들이 서로 고소 고발을 남발하여 검사와 판사의 발아래 서게 되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검찰총장, 감사원장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법에 따라 조사하고 판단하여 사람과 기관을 심판하고 처벌할 수 있는 기관은 법원, 검찰청, 감사원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들에게는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칼이 주어진 것이다. 수술하는 의사가 칼을 수술실에서만 그리고 환자의 아픈 곳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법원, 검찰청, 감사원도 아주 제한적으로 특수한 경우에만 칼을 사용해야 한다. 법의 칼은 수술하는 의사의 칼처럼 사심 없이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 만일 법의 칼을 욕심과 감정에 따라 사용하면 국가와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리고 국민에게 큰 해악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검사, 판사, 감사는 헌법과 국민에게 그리고 헌법과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에게 충성하고 복종할 의무가 있다. 이들은 특별히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고 희생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반헌법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군대, 검찰, 경찰의 수장은 대통령과 정부에 충성하고 복종할 의무가 있다. 만일 반헌법적인 범죄를 대통령과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군대, 검찰, 경찰은 대통령과 정부를 수사하고 처벌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훗날 반헌법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역사적 사법적으로 판결이 났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 검찰총장과 검사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기소하여 처벌한다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검찰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민주시대의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고 기소하려 든다면 헌법과 행정 질서를 파괴하는 반역적 행위가 된다. 
군대, 검찰, 법원, 감사원과 같은 기관의 수장이 곧바로 대통령이 될 야심을 품고 정치적 행위를 한다면 군대, 검찰, 법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이런 기관의 장이 대통령이라는 정치 권력을 쟁취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며 그 기관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 군인, 검사, 판사도 군대나 검찰, 법원을 나와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다. 그러나 군대, 검찰, 법원을 대표하는 그 기관의 수장이 곧장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그 기관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근본적으로 해칠 수 있다. 이런 기관의 특별하고 엄정한 직무를 존중하고 지키려면 그 기관의 장이 정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조선왕조 말엽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150년의 세월에 걸쳐 한국인들은 잔혹한 공권력의 위선과 불의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오랜 세월 공권력의 억압과 수탈 속에 살아온 한국인들은 공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분노, 저항 의식을 품고 있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정부 권력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뿌리 깊게 살아 있으므로, 한국인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고 싶어 한다. 또한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과 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한 한국인은 민주 정부를 세우고 민주 질서와 관행을 확립해 가기 어렵다. 반헌법적인 독재 권력과 민주 정부를 구분하는 비판 정신이 확립되지 않으면 민주시민의 구실을 할 수 없다. 민주시민이라면 독재 권력에는 맞서 싸우고 민주 정부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민주 정부라도 권력을 가진 만큼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못된 인간이 민주 정부를 앞세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민주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힘써야 하지만 민주 정부가 제 할 일을 하도록 지키고 힘을 실어주는 일도 민주시민의 책임이고 의무다.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
오늘 한국 민주주의의 혼란과 위기는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로 나타난다. 오늘의 청년은 비교적 풍요로운 사회에서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났다. 이들은 가난과 결핍을 모르고 살아왔다. 또 이들은 엄격한 입시경쟁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의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은 희생과 헌신, 책임과 의무에 기초한 공동체 생활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공정이란 공정한 규칙에 따라 시험을 치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성적에 따라 대접을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공정은 아주 좁은 의미의 절차적 형식적 공정을 뜻한다. 참된 의미에서 공정(公正)은 말 그대로 개인의 사사로움을 떠나서 나라와 민족 전체를 이롭게 하는 것이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옳고 바른 것이다. 참된 공정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오늘의 청년들은 부모의 보호 아래 안락한 사회에서 자기 개인의 삶과 생각에 충실하게 살아왔으므로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시한다. 또 오랜 입시 경쟁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가장 중시 한다. 개인의 권리와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마주한 사회는 심각한 양극화와 급격한 일자리 감소가 진행되고 있었다. 개인의 권리와 절차적 공정에 집착하는 청년은 가난과 실업의 절벽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절망한 청년은 자존감을 잃고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여유와 품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혐오하고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혐오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는 나라를 잃고 절망하는 청년에게 “청년의 절망은 민족의 죽음”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을 역설하였다.
오늘 한국의 노인들은 갑자기 분노하면서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사회를 향해 극우 보수적인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오는 노인들뿐 아니라 이 시대의 수많은 한국 노인들이 화를 내면서 정부와 사회를 꾸짖고 있다. 왜 갑자기 한국의 노인들이 이렇게 화를 내며 권력자들과 사회를 꾸짖으려 하는가? 노인들의 처지에서 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려서 가난을 경험한 한국의 노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절약하며 희생하고 헌신했다. 또한 노인들은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들을 돌보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 형제를 돌보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삶과 열정, 돈과 시간을 다 바쳤다. 
그런데 늙어서 보니 벌어놓은 돈은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고 자녀들과 형제들마저 남처럼 여겨졌다. 어려서 시골 마을에서 누렸던 돈독하고 정 깊은 공동생활과 인간관계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디지털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세계에 참여할 줄도 몰랐다. 급변하는 한국산업사회에서 노인들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노인들은 배척당한다. 한국 노인들은 갑자기 현대 사회에서 고립감과 허무감, 불안감과 절망감을 느꼈을 법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빈털터리가 되어 사회에 버려진 것처럼 무력감과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앞서 나아가는 산업기술 사회, 알 수 없는 디지털 세계를 보면서 불안과 허무,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나선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으나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국 노인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과시할 수 있는 길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와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고 사회를 꾸짖는 것이다.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를 치유할 길: 문명과 사회의 혁신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는 한국 민주주의, 한국 사회, 인류문명의 혼란과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는 정치적 접근만으로는 극복하고 치유될 수 없다. 문명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함께 문명과 사회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서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문명과 사회의 혁신을 통해서만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고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다.
서양문명에서 비롯된 현대문명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간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문제를 제기한다. 본래 서양문명은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을 기둥으로 세워졌다. 기독교의 초월적 하나님 신앙은 생명과 역사와 인간 영혼에 대한 초월적 이해와 설명을 가능케 하였다. 생명은 본래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것이다.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에 의존하여 살면서도 생명 자체는 물질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가진 것이다. 기독교의 초월적 하나님 신앙은 물질적 작용과 인과관계를 넘어서 생명과 역사와 인간 정신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제공하였다. 그리스의 이성 철학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물질적 작용과 인과관계를 넘어서는 고결한 이념과 목적의 형이상학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과학기술 혁명과 민주혁명을 일으킨 서양 현대문명은 학문과 정신의 세계에서 기독교의 초월적 하나님 신앙과 그리스의 고결한 형이상학을 제거하였다. 자연과학, 사회역사과학뿐 아니라 인문학과 철학에서도 우주, 자연, 생명, 인간을 물질적인 작용과 인과관계로만 보게 되었다. 결국 현대 서양의 학문과 정신의 세계에서 물질론(유물론)과 기계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물질론에 사로잡힌 학자들은 생명과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의미와 목적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서양의 대표적 현대철학자 들뢰즈는 생명체를 ‘욕망하는 기계’라 하고 인간을 ‘생각하는 기계’라고 했다. 물질은 생명이 없는 것이고 기계는 영혼이 없는 것이다. 우주, 자연, 생명, 인간을 물질과 기계로만 보는 것은 영혼 없는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과 인간을 영혼 없는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은 자연 생명 세계와 인간사회를 파괴하고 죽이는 것이다. 현대문명이 자연 생명 세계를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와서 인류를 파멸과 죽음으로 이끌게 되었다. 
자신과 다른 인간을 물질(돈)과 기계로만 대하면 살아 있는 인간관계와 사랑과 인정에 기초한 공동체는 소멸되고 만다. 물질과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치와 협동의 생활공동체를 이룰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생활공동체를 파괴하는 현대문명이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를 낳은 것이다.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를 극복하고 치유하여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사랑과 인정에 기초한 생활공동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월적 하나님 신앙과 고결한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물질과 생명과 정신을 살리고 높이는 새로운 철학과 문명을 형성해야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은 인간사회의 급격한 재편을 요구한다. 민주적이고 인간다운 공동체 세상을 만들어가려면 입시경쟁교육을 혁신하여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살리고 높이는 인간교육을 할 수 있고, 국민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연구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대의정치와 정당정치만으로는 결코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국민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려면 자치와 협동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자치와 협동의 직접 민주주의는 마을공화국의 형태로만 실현될 수 있다. 국민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마을공화국이 실현되고 인간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질 때 청년의 절망과 노인의 분노는 극복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한국 민주주의, 한국사회, 현대문명의 혼란과 위기는 극복되고 물질과 생명과 정신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새로운 문명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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