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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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종일 읽은 책들. 조희연 선생의 <투 트랙 민주주의 1,2>는 한국 진보파의 한국민주주의론을 이해하고 싶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저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려대에서 주최한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 - 비판 세미나의 결과물은 조희연의 ’사회운동 중심적인 급진민주주의론’과 유사한 입장을 보다 다양한 이론적 배경 속에서 다루면서 최장집의 제도 중심적인 정치론을 비판하고 있어 동향을 파악하기에도 좋다.
나는 이 두 입장 모두 제도 정치 대 사회운동이라는 이분법에 빠져서 무언가 논의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본다.
최장집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지 못한 지점이 여럿 보인다.
그럼시적 문제의식이 한국 급진민주주의론의 주요한 이론적 기반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부였다고 본다.
나중에 한번 긴 정리글을 써야 되는데.. 정말이지, 바쁘다 바뻐.
국정원·검찰이 야당보다 힘센 한국, 어떻게 봐야 하나
[투 트랙 민주주의] ① 97년 이후 한국사회와 정치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 201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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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투 트랙 민주주의>(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접근'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동안 제도정치 중심적인 민주주의론, 혹은 운동정치 비판론(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반 비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정치의 계급, 국가환원론(손호철 서강대 교수)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운동을 정치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것과 제도정치 간의 긴장과 보완의 측면에서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전망을 모색한다. 정치학자들이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의 운동정치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사회운동이 초래한 부정적 영향에 주목하는 점을 비판하는 필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정치를 곧 계급 혹은 사회적 역학의 직접적인 반영 혹은 그 당위적 문제의식 속에서 헤게모니의 역할, 정당정치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적절하다.
정치의 범주를 이렇게 이분화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만, 드는 의문은 왜 이 두 영역의 정치만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확대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중요한 정치세력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사실상 재벌과 사법부(헌법재판소), 보수언론이 아닌가? 라는 당연한 질문이 제기된다. 즉 시민사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재벌, 로펌은 로비나 압력집단의 형태로 가장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고, 보수언론은 헤게모니 투쟁의 전면에 부상했다. 거기에다 사법의 정치화 과정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검찰의 활동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기존의 여야 정당의 활동보다 훨씬 더 심대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보수적 시민사회의 정치화, 국가기관의 정치화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라는 이분법은 오히려 87년 민주화 전후의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갖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에 있거나, 그 밖에 있는 생활정치, 특히 지방자치 단체의 운영 과정에서의 지방정부와 지역운동, 지역운동의 지방정부 거버넌스 참여, 노동운동, 노동 시민사회 운동의 지방정부 참여 등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도 제기된다. 1, 2권의 대부분의 논의는 중앙정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당과 사회운동 간의 갈등과 긴장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지, 정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주거 생활 공간에서의 민주화 과정, 작업장에서의 권력 각축과 민주주의의 문제 등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은 역시 87년 전후의 문제의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으며,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국가나 시민사회에 더 깊이 침투한 이후의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다. 즉 97년 이후 제도정치나 운동정치 양자 모두의 문제해결 능력의 저하, 촛불시위 등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 지역 생활세계의 식민화, 소비주의 자기개발논리의 강화로 인한 시민사회 단체의 위축 등이 한국의 민주화에 가져온 심대한 변화를 이 두 정치의 개념으로 잘 포착할 수 있을 지는 좀 회의적인 점이 있다.
저자도 부분적으로 지적하는 점이지만, 정당의 대표성 약화, 제도정치의 한계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계급대표성과 사회적 대표성의 약화, 정치적 무관심, 청년들의 탈정치화, 정당 엘리트에 대한 불신은 지금 미국의 대선,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 그리스나 스페인의 새 정치세력의 등장, 폴란드에서의 극우세력의 등장 등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서구민주주의 혹은 대의제 민주주의, 근대 국가의 인민주권론이 갖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가 노정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정치가 사회경제적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형식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인 셈인데, 이것을 포스트민주주의 국면에서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새로운 각축과 역할의 변화라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구성적 각축'이라는 현실진단과 전망은 '제도정치'의 성격변화, '운동정치'의 주체와 성격의 변화, 그리고 이 두 영역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의 '내용'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정립 없이는 너무나 막연한 현실진단으로 머무르고 말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제도정치 일반에 대한 불신이 샌더스와 트럼프 열풍으로 나타났고, 그 열풍은 다시 제도의 힘에 굴복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제도의 혁신, 운동의 재활성화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의 큰 소동으로 끝날 것인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운동정치는 일부 샌더스 지지자들이 추진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당 혹은 정치집단으로 나아가야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정치제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가?)
'정치의 국가화', '정치의 사회화'의 개념은 마치 정치가 선행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가차원의 헤게모니 각축, 혹은 국가기관의 개입(필자의 표현으로는 '금단'과 '배제')이 진행되고, 다른 편에서 사회적 저항과 동원이 시작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의 '사회 중심성'을 강조하고 베버 등은 '국가 중심성'을 전제한다. 즉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사회 혹은 국가가 먼저이고, 그 기저에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는 결과이자 종속변수인데, 마치 정치가 독립변수이자 원인변수인 것처럼 설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18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에서 정치는 혁명, 민족 해방 투쟁이었고, 그것은 국가를 전복하거나 국가를 세우는 작업이었다. 즉 국가 다음에 정치가 있는 것이므로 '정치의 국가화'가 아니라 국가 안의 정치사회, 혹은 국가를 넘어선 지구정치(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 혹은 1945년 이후 지구적 자본주의와 관련된 지구적인 계급관계)라는 문제의식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한미 FTA, 쇠고기 수입문제, 한일 위안부 협상, 사드 배치 문제는 정치사안인가, 국가사안인가? 이 모든 결정은 한국의 여당 정치세력 내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한국의 주권 범위 밖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이런 사안에 대해 야당이 거의 아무런 입장과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야당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인가 아니면, 이것이 한국 조건에서 원래 초정치적 사안, 즉 국가사안이기 때문인가? 이것을 반대하는 운동들은 '운동정치'인가 반체제운동인가? 국정원과 검찰의 통진당의 내란음모 사건 제기,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정치적 결정인가, 국가적 결정인가? 왜 한국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이런 사안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가? 한국의 야당은 정당인가? 아니면 필자가 일부 언급하였듯이 국가의 일부인가? 국가와 정치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필자의 이상과 같은 개념 설정이 갖는 문제점의 원인은 바로 필자가 비판하는 최장집 교수의 정당중심적 설명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정리, 특히 정당정치를 보는 사회중심적 시각(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의 국가화'의 힘이 언제나 작용한다"라는 설명 만으로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것은 필자가 '전쟁정치'의 문제설정에서 강조한 것처럼, (준)전쟁상태의 국가에서는 정당정치의 자율성은 극도로 위축되고, 국가와 사회운동이 언제나 전면에 부딪치고, 양자의 충돌은 의회가 아닌 법원의 판결로 종결되며, 정당정치는 언제나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일종의 상시적 '비상사태', 모든 피고용자의 비정규직화, 실업자화, 고용 불안 상태라 본다면, 이것은 과거의 전쟁과는 다른 행태로 (경제)전쟁을 만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정치를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다른 방식으로 축소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보면 87년 민주화 이전, 혹은 문민정부 과정에서의 각축, 그리고 포스트민주화 국면 등의 시기 구분도 과연 타당한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국적 사회과학 정립의 문제의식 속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사회학"을 정립하려는 매우 야심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 책 전체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시기구분과 각 사건에 대한 해석과 설명, 포스트 민주주의의 대안 모색이 어느 정도 한국적인 특수성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는 지금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 확대라는 보편적인 과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이 어느 정도 한국에서의 특수한 것이며,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정치'라는 장(場)이 갖는 성격(곧 한국에서의 사회, 혹은 국가)에 대한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과의 유형적인 비교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으로는 일반화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온 경로, 즉 역사에 대한 천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표면적인 비교에 그칠 것이다.
본 연구자도 '정치의 장'(저자인 조희연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영역과 성격에 관한 문제 설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중인데, 기존에 제기했던 '전쟁정치'와 '기업사회'의 개념에 역사의 살을 붙이고 이론으로 일반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 연구자의 잠정적인 생각은 한국에서 정치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거의가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개인과 정당 혹은 정치를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고리이고, 선거 외에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게 되어있다. 우선 정당원이 되는 것이 어렵다. 공무원 교사 기업체 간부나 심지어 직원들도 정당원이 되는 것이 어렵다. 한국에서 정당원은 오직 자영업자만 가능하다.
사회적 고리가 차단되어 있다. 노동조합, 지역의 사회조직, 직능단체 등이 정당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기 어렵다. 여당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야당은 그 고리가 없다. 최근 이화여대와 성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사회는 탈정치성을 선포함으로써 존속할 수 있다. 각종 기부금품 모금법, 선거법은 대단히 엄격하게 되어 있어서 일상의 영역에서 사회구성원, 사회집단이 정치집단과 연계를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여당은 국가정당이며, 야당은 국가정당의 실패를 먹고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국가 환원론, 자본 환원론으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 그리고 국정원과 검찰이 야당 이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지역정치가 공간이 거의 차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정치사회를 진단하기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투 트랙 민주주의>(조희연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책 머리 중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투 트랙 민주주의>(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접근'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동안 제도정치 중심적인 민주주의론, 혹은 운동정치 비판론(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반 비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정치의 계급, 국가환원론(손호철 서강대 교수)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운동을 정치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것과 제도정치 간의 긴장과 보완의 측면에서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전망을 모색한다. 정치학자들이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의 운동정치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사회운동이 초래한 부정적 영향에 주목하는 점을 비판하는 필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정치를 곧 계급 혹은 사회적 역학의 직접적인 반영 혹은 그 당위적 문제의식 속에서 헤게모니의 역할, 정당정치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적절하다.
정치의 범주를 이렇게 이분화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만, 드는 의문은 왜 이 두 영역의 정치만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확대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중요한 정치세력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사실상 재벌과 사법부(헌법재판소), 보수언론이 아닌가? 라는 당연한 질문이 제기된다. 즉 시민사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재벌, 로펌은 로비나 압력집단의 형태로 가장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고, 보수언론은 헤게모니 투쟁의 전면에 부상했다. 거기에다 사법의 정치화 과정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검찰의 활동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기존의 여야 정당의 활동보다 훨씬 더 심대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보수적 시민사회의 정치화, 국가기관의 정치화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라는 이분법은 오히려 87년 민주화 전후의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갖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에 있거나, 그 밖에 있는 생활정치, 특히 지방자치 단체의 운영 과정에서의 지방정부와 지역운동, 지역운동의 지방정부 거버넌스 참여, 노동운동, 노동 시민사회 운동의 지방정부 참여 등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도 제기된다. 1, 2권의 대부분의 논의는 중앙정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당과 사회운동 간의 갈등과 긴장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지, 정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주거 생활 공간에서의 민주화 과정, 작업장에서의 권력 각축과 민주주의의 문제 등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은 역시 87년 전후의 문제의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으며,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국가나 시민사회에 더 깊이 침투한 이후의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다. 즉 97년 이후 제도정치나 운동정치 양자 모두의 문제해결 능력의 저하, 촛불시위 등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 지역 생활세계의 식민화, 소비주의 자기개발논리의 강화로 인한 시민사회 단체의 위축 등이 한국의 민주화에 가져온 심대한 변화를 이 두 정치의 개념으로 잘 포착할 수 있을 지는 좀 회의적인 점이 있다.
저자도 부분적으로 지적하는 점이지만, 정당의 대표성 약화, 제도정치의 한계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계급대표성과 사회적 대표성의 약화, 정치적 무관심, 청년들의 탈정치화, 정당 엘리트에 대한 불신은 지금 미국의 대선,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 그리스나 스페인의 새 정치세력의 등장, 폴란드에서의 극우세력의 등장 등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서구민주주의 혹은 대의제 민주주의, 근대 국가의 인민주권론이 갖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가 노정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정치가 사회경제적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형식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인 셈인데, 이것을 포스트민주주의 국면에서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새로운 각축과 역할의 변화라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구성적 각축'이라는 현실진단과 전망은 '제도정치'의 성격변화, '운동정치'의 주체와 성격의 변화, 그리고 이 두 영역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의 '내용'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정립 없이는 너무나 막연한 현실진단으로 머무르고 말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제도정치 일반에 대한 불신이 샌더스와 트럼프 열풍으로 나타났고, 그 열풍은 다시 제도의 힘에 굴복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제도의 혁신, 운동의 재활성화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의 큰 소동으로 끝날 것인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운동정치는 일부 샌더스 지지자들이 추진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당 혹은 정치집단으로 나아가야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정치제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가?)
'정치의 국가화', '정치의 사회화'의 개념은 마치 정치가 선행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가차원의 헤게모니 각축, 혹은 국가기관의 개입(필자의 표현으로는 '금단'과 '배제')이 진행되고, 다른 편에서 사회적 저항과 동원이 시작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의 '사회 중심성'을 강조하고 베버 등은 '국가 중심성'을 전제한다. 즉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사회 혹은 국가가 먼저이고, 그 기저에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는 결과이자 종속변수인데, 마치 정치가 독립변수이자 원인변수인 것처럼 설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18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에서 정치는 혁명, 민족 해방 투쟁이었고, 그것은 국가를 전복하거나 국가를 세우는 작업이었다. 즉 국가 다음에 정치가 있는 것이므로 '정치의 국가화'가 아니라 국가 안의 정치사회, 혹은 국가를 넘어선 지구정치(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 혹은 1945년 이후 지구적 자본주의와 관련된 지구적인 계급관계)라는 문제의식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한미 FTA, 쇠고기 수입문제, 한일 위안부 협상, 사드 배치 문제는 정치사안인가, 국가사안인가? 이 모든 결정은 한국의 여당 정치세력 내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한국의 주권 범위 밖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이런 사안에 대해 야당이 거의 아무런 입장과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야당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인가 아니면, 이것이 한국 조건에서 원래 초정치적 사안, 즉 국가사안이기 때문인가? 이것을 반대하는 운동들은 '운동정치'인가 반체제운동인가? 국정원과 검찰의 통진당의 내란음모 사건 제기,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정치적 결정인가, 국가적 결정인가? 왜 한국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이런 사안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가? 한국의 야당은 정당인가? 아니면 필자가 일부 언급하였듯이 국가의 일부인가? 국가와 정치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필자의 이상과 같은 개념 설정이 갖는 문제점의 원인은 바로 필자가 비판하는 최장집 교수의 정당중심적 설명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정리, 특히 정당정치를 보는 사회중심적 시각(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의 국가화'의 힘이 언제나 작용한다"라는 설명 만으로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것은 필자가 '전쟁정치'의 문제설정에서 강조한 것처럼, (준)전쟁상태의 국가에서는 정당정치의 자율성은 극도로 위축되고, 국가와 사회운동이 언제나 전면에 부딪치고, 양자의 충돌은 의회가 아닌 법원의 판결로 종결되며, 정당정치는 언제나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일종의 상시적 '비상사태', 모든 피고용자의 비정규직화, 실업자화, 고용 불안 상태라 본다면, 이것은 과거의 전쟁과는 다른 행태로 (경제)전쟁을 만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정치를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다른 방식으로 축소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보면 87년 민주화 이전, 혹은 문민정부 과정에서의 각축, 그리고 포스트민주화 국면 등의 시기 구분도 과연 타당한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국적 사회과학 정립의 문제의식 속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사회학"을 정립하려는 매우 야심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 책 전체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시기구분과 각 사건에 대한 해석과 설명, 포스트 민주주의의 대안 모색이 어느 정도 한국적인 특수성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는 지금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 확대라는 보편적인 과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이 어느 정도 한국에서의 특수한 것이며,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정치'라는 장(場)이 갖는 성격(곧 한국에서의 사회, 혹은 국가)에 대한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과의 유형적인 비교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으로는 일반화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온 경로, 즉 역사에 대한 천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표면적인 비교에 그칠 것이다.
본 연구자도 '정치의 장'(저자인 조희연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영역과 성격에 관한 문제 설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중인데, 기존에 제기했던 '전쟁정치'와 '기업사회'의 개념에 역사의 살을 붙이고 이론으로 일반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 연구자의 잠정적인 생각은 한국에서 정치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거의가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개인과 정당 혹은 정치를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고리이고, 선거 외에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게 되어있다. 우선 정당원이 되는 것이 어렵다. 공무원 교사 기업체 간부나 심지어 직원들도 정당원이 되는 것이 어렵다. 한국에서 정당원은 오직 자영업자만 가능하다.
사회적 고리가 차단되어 있다. 노동조합, 지역의 사회조직, 직능단체 등이 정당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기 어렵다. 여당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야당은 그 고리가 없다. 최근 이화여대와 성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사회는 탈정치성을 선포함으로써 존속할 수 있다. 각종 기부금품 모금법, 선거법은 대단히 엄격하게 되어 있어서 일상의 영역에서 사회구성원, 사회집단이 정치집단과 연계를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여당은 국가정당이며, 야당은 국가정당의 실패를 먹고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국가 환원론, 자본 환원론으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 그리고 국정원과 검찰이 야당 이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지역정치가 공간이 거의 차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정치사회를 진단하기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투 트랙 민주주의>(조희연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책 머리 중
▲ <투 트랙 민주주의>(조희연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서강대학교출판부
이 책의 목적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정당체계 기반의 제도정치 혹은 반대로 운동정치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일면적인 분석과 달리, 나는 이 책을 통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 관계 안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 과정을 보다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이를 나는 '투 트랙 민주주의'라고 표현하였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넘어 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중략)
바라기는, 20~30년 후 한국사회과학도가 현대 한국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최장집도 비판하고 그를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나의 저작도 비판하고 하는 식으로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의 축적'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럴 때라야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지난 9월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책 <투 트랙 민주주의>(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출판을 기념해 열린 학술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조희연 교육감과 저자들의 동의를 얻어 두 편을 게재합니다.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이 책에서 나는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넘어 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중략)
바라기는, 20~30년 후 한국사회과학도가 현대 한국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최장집도 비판하고 그를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나의 저작도 비판하고 하는 식으로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의 축적'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럴 때라야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지난 9월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책 <투 트랙 민주주의>(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출판을 기념해 열린 학술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조희연 교육감과 저자들의 동의를 얻어 두 편을 게재합니다.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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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를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가
[투 트랙 민주주의] ② '투 트랙 접근'과 한국 민주주의의
신진욱 중앙대 교수 | 2016-10-28
몇 가지 딜레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하 조희연)의 <투트랙 민주주의 1, 2>(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재구성하고 각 시기의 성격을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이 저작은 이론적 기초, 개념화, 역사적 지식, 분석과 종합적 통찰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탐구와 집필에서 부분적으로도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모든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는 역작이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대상과의 독백적 대화에 갇혀 연구를 수행하는 데 비해, 이 저작에서 조희연은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를 진단하고자 시도해 온 많은 선행연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좁게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이하 최장집)와 손호철 서강대 교수(이하 손호철)이라는 한국 진보정치학계의 두 거두와의 치열하고도 겸허한 대결 속에서 쟁점을 포착하고 자신의 주장이 놓인 위치와 그 의미를 명확히 정의내리고 있다. 나아가 이 저작은 서구적 기원을 갖는 추상이론에 의존하거나 그 반대로 한국적 특수성만을 역사기술적으로 부각시키는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하고, 한국 현대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제도정치-운동정치의 상호작용 동학이 함축하고 있는 보편이론적 함의를 성공적으로 규명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투트랙 민주주의 1, 2>는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며, 이후의 연구들이 반드시 참조하고 대결해야 할 준거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 저작이 기여하고 있는 바와 그 한계, 또는 남겨진 과제를 몇 가지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1.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투트랙 민주주의'론의 이론적 출발점은 근대 민주주의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한편으로 주권의 소재를 소수의 통치자에서 시티즌십(citizen-ship)을 인정받은 모든 시민으로 전환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도민주주의는 그 권력의 원천인 시민들로부터 괴리된 지배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의 괴리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에서 배제된 인민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주체화하고, 제도정치는 그러한 도전을 때로는 억압하고 때로는 흡수하면서 반응한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이중성을 주목하는 조희연은 한편으로 '정치'를 제도정치로 환원시키고 그 외부를 '비정치'로 규정하거나 위험시하는 경향을, 다른 한편으론 제도민주주의가 근대 인민주권의 성취임을 부정하고 그것의 지배기능만을 보는 관점을 모두 비판한다. 민주주의의 이중성 이론에 기초한 역사적, 경험적 분석은 그 이중성에서 유래하는 정치적 역동성을 주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치/비정치'의 경계는 자신이 유일한 정치의 주체라고 주장하는 지배 집단과,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인민 간의 각축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정치적 투쟁과 협상의 대상이며 역사적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제도정치-운동정치의 이중성과 그 경계를 둘러싼 각축이야말로 조희연이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를 해석하는 시각이다.
이상의 관점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어느 한 면만을 보는 관점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의미 깊은 이론적 기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중요한 정치이론상의 질문이 이 이론 틀에서 간과되고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하면 사회 내의 상이한 가치지향과 이해관계를 제도정치의 장으로 반영하고 배제된 사회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할 것인가? 둘째, 시민사회는 동질적 집단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움직이는 장(場)이라고 했을 때, 운동정치가 민주주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양면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서 조희연은 제도정치를 "일종의 '엘리트' 대표자 정치"(44쪽)로 이해하고 그것은 다만 아래로부터의 운동정치에 의해서만 개혁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민주주의 제도의 효율성과 제도정치 행위자들의 역량은 그 자체로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두 번째 질문에서 조희연은 반복해서 '인민'과 '인민 주체의 정치'를 말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데모스(demos)는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이질적인 개인적, 집단적 행위자들로 구성되며 민주주의론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어떻게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를 도출해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시민사회 내의 어떤 집단이 더 강력하게 정치화되고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치느냐,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장집은 제도정치중심론이라는 추상적 이론을 좇고 있다기보다는 이 두 가지 문제의식, 즉 제도정치가 사회 문제와 사회적 약자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운동정치가 바이마르의 전례처럼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봤을 때 조희연이 최장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 작용을 추적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제도정치인가? 어떤 운동정치인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어떤 형태의 결합이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개선하거나 악화시켰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그로부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규범적, 전략적 과제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2. 헤게모니, 문화, 자본주의
조희연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집단적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 과정과 그 구조적 결과를 추적하는 방법론으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각축의 방법론'을 통해 체계와 구조에 내장되어 있는 잠재성의 자기전개로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목적론적 접근, 또는 정치 외부의 구조적 힘에 의해 정치변동을 설명하는 외재적, 결정론적 접근보다 더 성공적으로 구조와 행위의 변증법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나아가 조희연은 그와 같은 각축의 동학을 다원주의적 의미의 상호작용 과정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신그람시주의적 시각"(169쪽)에서 "헤게모니의 구성을 둘러싼 각축과정"(167쪽)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것의 조건인 동시에 결과인 헤게모니 '지형'(terrain), 즉 "일정 기간 지속되는 '관계의 구조'"(157쪽)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갔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정치에 대한 운동정치의 도전은 대항헤게모니의 실천으로 이해되며, 또한 운동정치에 의한 제도정치의 변화는 헤게모니 지형의 변화로서 이해된다. 조희연은 이러한 접근을 통해 구조결정론의 일면성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제반 정치 행위를 상호주관적 주체형성 과정으로, 행위자간 관계를 특정한 민주주의론적 함의를 갖는 세력관계로 읽어내고 있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을 관통하는 헤게모니 개념이 조희연이 스스로 규정한 바와 같이 '신그람시주의적' 관점을 충실히 관철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첫째, 조희연은 헤게모니 개념이 문화와 정체성, 주체형성에 관련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각축과 경합을 분석하는 데에서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권력' 개념과 호환가능하게 보이며, 그의 헤게모니 지형 개념은 '세력관계'와 호환가능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때로는 현실주의 정치학의 패권 개념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람시에게 헤게모니 개념의 특정한 의의는 경제적 계급위치로 환원될 수 없는 지적, 도덕적 지도력의 문제를 이론과 실천의 중심으로 들여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신그람시주의적 시각에서의 헤게모니 분석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뿐 아니라, 어떤 지적·도덕적 실천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동의의 기반이 창출되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가에 대한 풍부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람시적 관점에서의 두 번째 비판은 헤게모니와 자본주의의 관계, 지적·도덕적 지형과 계급구성 간의 관계가 이 저작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람시 사상은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 역사결정론, 대기론을 넘어서고자 했던 당대의 여러 맑스주의적 시도 –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등을 포함한 - 의 흐름 속에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헤게모니 개념의 '특정한' 의의, 즉 바로 이 개념을 통해 특별히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는 현실의 측면은 의식과 윤리, 문화와 정체성의 차원이다. 그러나 그람시 헤게모니론은 계급론, 자본주의론, 사회주의 이행의 전망과 분리될 수 없다. 그에게 지적, 도덕적 지도력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두 ‘주요 계급’, 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여타의 '부차적 계급'들에 대해 행사하는 영향력을 뜻했다. 그에게 헤게모니 지형, 즉 '세력관계'는 주요 계급과 부차적 계급들 간의 관계를 뜻했다. 물론 오늘날 그와 같은 계급적, 맑스주의적 관점을 확장시키고 다원화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조희연의 이 저작은 자본주의 분석과 계급 분석에 충분한 위상을 부여하지 않은, 다소 간 정치주의적 일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점에서 조희연은 손호철의 일면성을 보완하고는 있지만, 손호철이 이론적으로 목표했으나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사회구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손호철보다 더 성공적으로 달성했는지는 물음표로 남는다.
3.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
이 저작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변화를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극우반공분단체제(53년 체제), 개발독재체체(61년 체제), 민주화체제(87년 체제와 97년 체제), 포스트민주화체제 등 몇 개의 정치레짐을 단계 구분하고 있고, 민주화체제와 포스트민주화체제의 4개의 경합국면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조희연은 '레짐(legime)'과 '경합'이라는 쌍개념을 손에 쥐고, 이제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어떤 저술보다도 체계적으로 정치레짐의 지속과 변화를 집단적 경합과 경합결과의 구조화 간의 변증법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이중 조희연이 '포스트 민주화 체제'라고 정의한 레짐 혹은 역사단계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두 가지 특성을 주목할 만한 것 같다. 첫째 제도정치의 측면에서 '결손 민주주의'(Wolfgang Merkel)의 성격과 '포스트 민주주의'(Colin Crouch)의 성격이 공존한다. 즉 한편으론 선거체제 이외의 다른 민주주의 요건들, 예를 들어 수평적 책임성과 시민적 자유 등이 상당한 정도 결핍되어 있거나 심지어 퇴행하는 문제, 나아가 그러한 결손이 하나의 레짐으로서 고착되어 가는 문제가 있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제도들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으나 정치과정의 투입국면에서나 산출국면에서나 사회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능력과 대표성, 정당성은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아직도 민주주의가 덜 된' 측면과 '민주주의지만…'의 측면이 함께 있다는 점, 양자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인지적, 실천적 난점을 유발한다. 실천적으로 이것은 민주주의가 여전히 진보정치의 중요한 과제인지, 아니면 경제적 불평등과 재분배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지의 쟁점에 관련된다.
둘째, 운동정치의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아직까지 대단히 미흡한 상태에서 미조직, 자생적 운동정치가 고도로 활성화되었다는 양면성이 있다. 시민사회는 결사체의 장이며, 운동정치는 시민사회의 가장 활동적 부위지만 시민사회 자체는 아니다. 몽테스큐가 말한 국가-개인 사이의 두터운 '매개영역', 그람시가 말한 '시민사회의 촘촘한 모세혈관'은 제도정치를 장악한 집단이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권력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대다. 오랜 식민지배와 독재시대를 겪은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만한 시민사회의 조직적 기반이 아직까지 매우 취약하다.
그런 가운데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직후 폭발한 촛불집회, 그 후에 방송장악반대, 4대강반대운동부터 국정원 비판, 세월호 집회에 이르기까지 '촛불집회'는 미조직된 대중의 자생적, 유동적 집단행동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되었다. 그것은 조직된 시민사회의 여러 한계를 극복하거나 보완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조직된 시민사회의 두터운 층을 형성해가는 길을 억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21세기 한국 시민사회와 운동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투 트랙 민주주의>(조희연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책 머리 중
'촛불집회'를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가
[투 트랙 민주주의] ② '투 트랙 접근'과 한국 민주주의의
신진욱 중앙대 교수 | 2016-10-28
몇 가지 딜레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하 조희연)의 <투트랙 민주주의 1, 2>(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재구성하고 각 시기의 성격을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이 저작은 이론적 기초, 개념화, 역사적 지식, 분석과 종합적 통찰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탐구와 집필에서 부분적으로도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모든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는 역작이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대상과의 독백적 대화에 갇혀 연구를 수행하는 데 비해, 이 저작에서 조희연은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를 진단하고자 시도해 온 많은 선행연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좁게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이하 최장집)와 손호철 서강대 교수(이하 손호철)이라는 한국 진보정치학계의 두 거두와의 치열하고도 겸허한 대결 속에서 쟁점을 포착하고 자신의 주장이 놓인 위치와 그 의미를 명확히 정의내리고 있다. 나아가 이 저작은 서구적 기원을 갖는 추상이론에 의존하거나 그 반대로 한국적 특수성만을 역사기술적으로 부각시키는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하고, 한국 현대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제도정치-운동정치의 상호작용 동학이 함축하고 있는 보편이론적 함의를 성공적으로 규명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투트랙 민주주의 1, 2>는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며, 이후의 연구들이 반드시 참조하고 대결해야 할 준거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 저작이 기여하고 있는 바와 그 한계, 또는 남겨진 과제를 몇 가지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1.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투트랙 민주주의'론의 이론적 출발점은 근대 민주주의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한편으로 주권의 소재를 소수의 통치자에서 시티즌십(citizen-ship)을 인정받은 모든 시민으로 전환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도민주주의는 그 권력의 원천인 시민들로부터 괴리된 지배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의 괴리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에서 배제된 인민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주체화하고, 제도정치는 그러한 도전을 때로는 억압하고 때로는 흡수하면서 반응한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이중성을 주목하는 조희연은 한편으로 '정치'를 제도정치로 환원시키고 그 외부를 '비정치'로 규정하거나 위험시하는 경향을, 다른 한편으론 제도민주주의가 근대 인민주권의 성취임을 부정하고 그것의 지배기능만을 보는 관점을 모두 비판한다. 민주주의의 이중성 이론에 기초한 역사적, 경험적 분석은 그 이중성에서 유래하는 정치적 역동성을 주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치/비정치'의 경계는 자신이 유일한 정치의 주체라고 주장하는 지배 집단과,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인민 간의 각축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정치적 투쟁과 협상의 대상이며 역사적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제도정치-운동정치의 이중성과 그 경계를 둘러싼 각축이야말로 조희연이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를 해석하는 시각이다.
이상의 관점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어느 한 면만을 보는 관점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의미 깊은 이론적 기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중요한 정치이론상의 질문이 이 이론 틀에서 간과되고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하면 사회 내의 상이한 가치지향과 이해관계를 제도정치의 장으로 반영하고 배제된 사회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할 것인가? 둘째, 시민사회는 동질적 집단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움직이는 장(場)이라고 했을 때, 운동정치가 민주주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양면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서 조희연은 제도정치를 "일종의 '엘리트' 대표자 정치"(44쪽)로 이해하고 그것은 다만 아래로부터의 운동정치에 의해서만 개혁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민주주의 제도의 효율성과 제도정치 행위자들의 역량은 그 자체로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두 번째 질문에서 조희연은 반복해서 '인민'과 '인민 주체의 정치'를 말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데모스(demos)는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이질적인 개인적, 집단적 행위자들로 구성되며 민주주의론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어떻게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를 도출해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시민사회 내의 어떤 집단이 더 강력하게 정치화되고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치느냐,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장집은 제도정치중심론이라는 추상적 이론을 좇고 있다기보다는 이 두 가지 문제의식, 즉 제도정치가 사회 문제와 사회적 약자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운동정치가 바이마르의 전례처럼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봤을 때 조희연이 최장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 작용을 추적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제도정치인가? 어떤 운동정치인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어떤 형태의 결합이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개선하거나 악화시켰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그로부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규범적, 전략적 과제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2. 헤게모니, 문화, 자본주의
조희연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집단적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 과정과 그 구조적 결과를 추적하는 방법론으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각축의 방법론'을 통해 체계와 구조에 내장되어 있는 잠재성의 자기전개로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목적론적 접근, 또는 정치 외부의 구조적 힘에 의해 정치변동을 설명하는 외재적, 결정론적 접근보다 더 성공적으로 구조와 행위의 변증법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나아가 조희연은 그와 같은 각축의 동학을 다원주의적 의미의 상호작용 과정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신그람시주의적 시각"(169쪽)에서 "헤게모니의 구성을 둘러싼 각축과정"(167쪽)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것의 조건인 동시에 결과인 헤게모니 '지형'(terrain), 즉 "일정 기간 지속되는 '관계의 구조'"(157쪽)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갔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정치에 대한 운동정치의 도전은 대항헤게모니의 실천으로 이해되며, 또한 운동정치에 의한 제도정치의 변화는 헤게모니 지형의 변화로서 이해된다. 조희연은 이러한 접근을 통해 구조결정론의 일면성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제반 정치 행위를 상호주관적 주체형성 과정으로, 행위자간 관계를 특정한 민주주의론적 함의를 갖는 세력관계로 읽어내고 있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을 관통하는 헤게모니 개념이 조희연이 스스로 규정한 바와 같이 '신그람시주의적' 관점을 충실히 관철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첫째, 조희연은 헤게모니 개념이 문화와 정체성, 주체형성에 관련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각축과 경합을 분석하는 데에서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권력' 개념과 호환가능하게 보이며, 그의 헤게모니 지형 개념은 '세력관계'와 호환가능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때로는 현실주의 정치학의 패권 개념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람시에게 헤게모니 개념의 특정한 의의는 경제적 계급위치로 환원될 수 없는 지적, 도덕적 지도력의 문제를 이론과 실천의 중심으로 들여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신그람시주의적 시각에서의 헤게모니 분석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뿐 아니라, 어떤 지적·도덕적 실천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동의의 기반이 창출되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가에 대한 풍부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람시적 관점에서의 두 번째 비판은 헤게모니와 자본주의의 관계, 지적·도덕적 지형과 계급구성 간의 관계가 이 저작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람시 사상은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 역사결정론, 대기론을 넘어서고자 했던 당대의 여러 맑스주의적 시도 –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등을 포함한 - 의 흐름 속에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헤게모니 개념의 '특정한' 의의, 즉 바로 이 개념을 통해 특별히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는 현실의 측면은 의식과 윤리, 문화와 정체성의 차원이다. 그러나 그람시 헤게모니론은 계급론, 자본주의론, 사회주의 이행의 전망과 분리될 수 없다. 그에게 지적, 도덕적 지도력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두 ‘주요 계급’, 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여타의 '부차적 계급'들에 대해 행사하는 영향력을 뜻했다. 그에게 헤게모니 지형, 즉 '세력관계'는 주요 계급과 부차적 계급들 간의 관계를 뜻했다. 물론 오늘날 그와 같은 계급적, 맑스주의적 관점을 확장시키고 다원화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조희연의 이 저작은 자본주의 분석과 계급 분석에 충분한 위상을 부여하지 않은, 다소 간 정치주의적 일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점에서 조희연은 손호철의 일면성을 보완하고는 있지만, 손호철이 이론적으로 목표했으나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사회구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손호철보다 더 성공적으로 달성했는지는 물음표로 남는다.
3.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
이 저작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변화를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극우반공분단체제(53년 체제), 개발독재체체(61년 체제), 민주화체제(87년 체제와 97년 체제), 포스트민주화체제 등 몇 개의 정치레짐을 단계 구분하고 있고, 민주화체제와 포스트민주화체제의 4개의 경합국면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조희연은 '레짐(legime)'과 '경합'이라는 쌍개념을 손에 쥐고, 이제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어떤 저술보다도 체계적으로 정치레짐의 지속과 변화를 집단적 경합과 경합결과의 구조화 간의 변증법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이중 조희연이 '포스트 민주화 체제'라고 정의한 레짐 혹은 역사단계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두 가지 특성을 주목할 만한 것 같다. 첫째 제도정치의 측면에서 '결손 민주주의'(Wolfgang Merkel)의 성격과 '포스트 민주주의'(Colin Crouch)의 성격이 공존한다. 즉 한편으론 선거체제 이외의 다른 민주주의 요건들, 예를 들어 수평적 책임성과 시민적 자유 등이 상당한 정도 결핍되어 있거나 심지어 퇴행하는 문제, 나아가 그러한 결손이 하나의 레짐으로서 고착되어 가는 문제가 있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제도들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으나 정치과정의 투입국면에서나 산출국면에서나 사회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능력과 대표성, 정당성은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아직도 민주주의가 덜 된' 측면과 '민주주의지만…'의 측면이 함께 있다는 점, 양자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인지적, 실천적 난점을 유발한다. 실천적으로 이것은 민주주의가 여전히 진보정치의 중요한 과제인지, 아니면 경제적 불평등과 재분배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지의 쟁점에 관련된다.
둘째, 운동정치의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아직까지 대단히 미흡한 상태에서 미조직, 자생적 운동정치가 고도로 활성화되었다는 양면성이 있다. 시민사회는 결사체의 장이며, 운동정치는 시민사회의 가장 활동적 부위지만 시민사회 자체는 아니다. 몽테스큐가 말한 국가-개인 사이의 두터운 '매개영역', 그람시가 말한 '시민사회의 촘촘한 모세혈관'은 제도정치를 장악한 집단이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권력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대다. 오랜 식민지배와 독재시대를 겪은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만한 시민사회의 조직적 기반이 아직까지 매우 취약하다.
그런 가운데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직후 폭발한 촛불집회, 그 후에 방송장악반대, 4대강반대운동부터 국정원 비판, 세월호 집회에 이르기까지 '촛불집회'는 미조직된 대중의 자생적, 유동적 집단행동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되었다. 그것은 조직된 시민사회의 여러 한계를 극복하거나 보완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조직된 시민사회의 두터운 층을 형성해가는 길을 억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21세기 한국 시민사회와 운동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투 트랙 민주주의>(조희연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펴냄) 책 머리 중
신진욱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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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트랙 민주주의 1 -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 | 서강학술총서 86
조희연 (지은이)서강대학교출판부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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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트랙 민주주의 2 -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
투 트랙 민주주의 1 -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
책소개
서강학술총서 86권.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어,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는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일면일 뿐이라고 보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를 제도화된 정치로 파악하는 시각 자체가 서구 중심의 특수한 이론화를 전제로 한 것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운동경험을 일반론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근대 이후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 조차도 한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제도화된 정치로 일체화된 적이 없다. 한국이 시민사회운동이나 운동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히 큰 사례라고 할 때, 그것은 서구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적절히 드러내지 못했던 어떤 일반적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사회학을 위한 시론0
1. 근대 민주주의의 이중성
2. 지배와 저항: 근대 민주주의를 둘러싼 구성적 각축
3. 적대의 다원화: 근대 민주주의를 통한 인민 주체화의 확장
4. 사회중심주의: 제도정치 중심주의를 넘어
5. 국가와 경제: 민주주의와의 관계
6.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민주주의 정치의 재구성
1장 민주주의 병행 접근의 방법론
1. 근대 민주주의 하에서의 ‘정치의 국가화’ 대 ‘정치의 사회화’의 각축
2. ‘정치의 국가화’의 기제들
1) 금단의 기제
2) 배제의 기제
3) 선택적 포섭의 기제
4) 국가, 정치 그리고 사회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극단 유형
3. 정치의 사회화의 전개 - ‘정치의 경계’ 허물기와 ‘경계투쟁’
1) 정치의 사회화의 지향들
2) ‘정치의 사회화’의 온건한 흐름과 급진적 흐름
3) 서구 정치사회에 대한 개괄 분석
4.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병행 접근의 방법론
1) 운동정치 혹은 사회적 정치
2)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각축의 유형
3)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의 순환 구조
5.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보는 4가지 시각
1) 민주주의의 자유화론, 민주화론, 외피론
2) 민주주의의 급진화론
6. 최장집과 손호철 논의의 계승과 비판
1) 최장집의 정당 중심 민주주의론
2) 전기(前期) 최장집과 후기 최장집
7. 한국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의 기본 분석틀
1) 한국 민주주의 네 개의 전선
2) 20세기의 네 가지 역사적 운동 유형
3) 세 가지 정치세력
8. 시기 구분, 사건, 지형, 그리고 대안 경로의 방법론
1) 87년 이후의 시기 구분
2) 전환적 저항사건과 체제 전환 사건, 그리고 지형, 그 변화 3) ‘다른 경로에 대한 상상’의 방법론
2장 대항헤게모니적 실천으로서의 사회운동
1. 사회운동에 대한 그람시주의적인 접근: 대항헤게모니적인 실천
2. 대항헤게모니적 실천의 구조적 · 역사적 맥락
3. 미시적 · 중범위적 · 거시적 수준에서의 헤게모니 각축
4. 민주화 과정에서 분화되는 운동들의 유형화
5. 탈독점화 과정으로서의 민주화와 사회운동의 대상
6. 민주화의 두 가지 구성적 차원
3장 53년체제와 61년체제
1. 53년체제: 극우반공분단체제와 금단의 정치
1) 분단효과
2) 제도정치의 국가화와 금단의 기제
3) 극우반공분단체제 후반기의 민주주의의 구성적 변화: 안보에 의한 ‘정치의 치안화’의 일탈과 과잉
4) 선거민주주의를 경쟁형식으로 착근시킨 4 · 19혁명
2. 61년체제: 개발독재체제와 ‘배제의 정치’
1) 개발독재체제와 배제의 과정
2) 개발독재체제 후반부의 민주주의의 구성적 힘의 변화: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국민화와 그 성격 변화
3) 80년대 운동의 급진화
4장 개발독제체제하에서의 운동정치
1. ‘금단의 정치’와 ‘비합법정치’
2. 1980년대 비합법정치
3.‘재야’와 경계정치
1) 재야운동
2) 재야의 구체적 형성과정
3) 70,80년대를 거치면서 변화하는 재야의 구성
4. 정치의 소멸과 ‘순수정치’의 출현: 광주꼬뮨
1) 투 트랙 민주주의와 순수정치
2) 광주항쟁의 전개과정 속에서의 정치와 사회
3) 낮은 수준의 폭력과 평화적 저항
4) 준(準)전시적 학살폭력과 민중의 자위무장투쟁
5) 꼬뮨과 순수정치
5. 극우반공분단체제와 개발독재체제하에서의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 변화
1) 개발독재체제하에서의 국가-시장-시민사회
2) 개발독재체제의 위기 속에서의 국가, 시민사회, 사회운동
3) 개발독재체제의 위기 하에서의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
5장 87년 민주화체제의 제1경합국면: 87년 6월 민주항쟁~90년 3당 합당
1. 87년체제의 출현과 그 성격: 87년 6월 민주항쟁과 6 · 29선언
1) 이중성을 갖는 87년 민주화 지형의 출현:6월 민주항쟁과 6 · 29선언의 상호규정
2) 87년체제의 성격
2. 민주주의 헤게모니 블록의 출현
3. 87년 6월 이후의 각축: 7 · 8 · 9월 노동자대투쟁과 87년 대선
1) 7 · 8 · 9월 노동자대투쟁과 개헌 협상
2) 12월 대선을 둘러싼 각축과정
3) 88년 4월 총선과 지역주의 정당질서의 출현, 그 성격
4. 제2소시기: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적 개혁과 운동정치
1) 저항의제의 선택적 포섭: 북방정책
2) 위로부터의 ‘포섭적 개혁’에 대응하는 운동정치의 급진화
5. 광주 의제를 둘러싼 제도정치의 내적 균열
6. 3당 합당과 지배의 혁신: 2차 변형 정치질서의 형성
1) 지역주의적 정당질서의 이중성
2) 정치적 ‘전향’
3) 3당 합당이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에 미치는 영향
6장 민주화체제의 제2경합국면: 노태우 · 김영삼정부 시기
1. 3당 합당 이후의 제도정치 내의 균열과 운동정치의 도전
1) 91년 5월투쟁
2) 5월 투쟁의 효과
3) 92년 총선과 대선
2. 김영삼정부: 개혁 국면 이후의 균열
1) 초기 개혁 국면
2) 중도 자유주의 우파 정부와 개혁자유주의 시민운동의 관계
3) 개혁정책의 균열
4) 사회적 정치의 새로운 역동화와 국가폭력의 증대
3. 제도정치의 균열과 위기: 97년 대선
1) 김대중의 복귀와 야권의 재편
2) 두 가지 요인
4. 문민정부: 자본권력의 강화와 세계화의 1차 위기
1)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딜레마
2) 경제적 자유화의 과정
3)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힘의 성격 변화
[보론1] 한국 정치 · 사회세력의 경계 변화: 보수주의-자유주의-급진주의
1. 53년체제와 61년체제하에서의 보수와 진보
2. 민주화 속에서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세력의 경계의 재획정
[보론 2] 87년 이후 한국 시민운동의 출현과 분화
1.시민운동의 구성적 출현과 그 성격
2.90년대 수동혁명적 민주화의 균열과 시민운동의 다양화
3.시민운동 분화의 사례-환경운동, 여성운동, 주민자치운동
7장 민주화체제의 제3경합국면( 1 ): 97년체제
1. 97년체제의 이중성
1) 97년체제의 이중성
2) 수평적 정권 교체
3) 지배블록의 구성 변화
2. 민주개혁정치: 위로부터의 진전
1) 대북포용정책
2) 대중들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의 새로운 단계
3) 인터넷 공간의 진보화-이후 노사모 등의 출현의 기반
4) 풀뿌리 보수주의의 지속
3. 정치적 자유주의의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1) 신자유주의의 개방화 경제 기조로의 전환: 이중성의 또 다른 측면
2) 반독재민주정부 하에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의 변화
3)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4) 김대중정부 하에서의 노동의 현실
5) 민주개혁 정치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사이에서-부패의 정치
4. 2002년 선거의 동학: 김대중정부 하에서의 위기와 새로운 하위 경합
1) 제도정치와 사회적 정치의 관계 상황
2) 정부 교체기의 우연적 · 전략적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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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희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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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교육감.
전북 정읍 출생. 전주 북중학교와 서울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한국학 객원교수와 일본 케이센대, 대만 국립교통대, 영국 랑카스터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비판사회학회장,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자 민주주의연구소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을 지냈으며 제20·21대 서울특별시교육감이다.
주요 저서로는 『계급과 빈곤』,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지구화 시대의 국가와 탈국가』 등이 있다. 민주화운동, 시민운동, 교수운동, 학술운동의 경험을 종합하여 한국정치와 사회운동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다룬 『투트랙민주주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전 2권)』을 출간한 바 있다. 교육 관련 저서로는, 『병든 사회, 아픈 교육』,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 『일등주의교육 넘어』, 『교육감의 페이스북: 특별하지 않은 꽃은 없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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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교육 대전환, 리더에게 묻다>,<지금 만나러 갑니다>,<[큰글자책]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 총 6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한 시도
이 책은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어,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는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일면(一面)일 뿐이라고 보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two track approach)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를 제도화된 정치(의회, 정당, 대표자 정치 등)로 파악하는 시각 자체가 서구 중심의 특수한 이론화를 전제로 한 것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운동경험을 일반론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근대 이후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 조차도 한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제도화된 정치로 일체화된 적이 없다. 한국이 시민사회운동이나 운동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히 큰 사례라고 할 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자 과도기적 사례가 아니라 그래서 빨리 서구적인 민주주의 모델(예컨대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로 회귀해야 과제를 안고 있는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적절히 드러내지 못했던 어떤 일반적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최장집과 손호철을 계승하면서 뛰어넘어
저자는 한국 정치사회학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 하에,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선도적으로 전개하여 온 최장집 교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투트랙 민주주의론’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일종의 ’한국 정치사회학‘의 누적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뛰어넘는 ‘한국적’ 민주주의론을 정립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좌파 반신자유주의론을 전개하여 온 손호철 교수의 논의 속에서는 정치의 공간이 없다는 취지 하에서, ‘급진적 정치주의’ 혹은 진보적 정치주의의 입장에 서고 있다. 이렇듯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손호철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 나름의 투트랙민주주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에 따라 한국현대 민주주의의 부침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나 서구 이론의 적용대상으로 한국사례를 생각하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전통은 존재할 수 없고, 우리끼리 인용하는 관행이 정착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토착화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경험과 다른 한국 및 아시아적 경험을 ‘새로운 준거’로 하여 새로운 ‘한국적 이론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투쟁을 단지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경험이 드러내주지 못하는 어떤 일반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례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분석 속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저자는 ‘민주화의 동학’이 작동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이른바 반독재 민주정부의 집권기인 97년 체제는 ‘세계화의 동학’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반독재세력은 독재와의 저항에서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독재 세력은 역설적으로 집권세력이 되면서 세계화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고 패배해갔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사의 시기구분
이를 위해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50년대의 극우반공분단체제, 61년 이후 87년까지의 개발독재체제,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 2008년 이후의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나누어, 통사(通史)적으로 한국현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저자 스스로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전개과정을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개념적 논의를 하는 1장과 2장이 있다. 1장에서 나는 근대민주주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한국민주주의를 여러 시각들을 포함하여, 이 책의 분석적 프레임을 제출하게 된다. 그런 이후에 2장에서는 운동 혹은 운동정치의 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한 논의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3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50년대와 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다루게 된다. 3장에서는 50년대 극우반공분단체제와 60·70년대 개발독재 하에서의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다루게 된다. 그런 후 4장에서, 50년대 비합법정치, 60년대의 재야, 광주꼬뮨 등을 통하여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가 각 시기에 따라 상이하게 수정되어지고 각축되는 과정을 다루게 된다.
5장에서 10장까지가 이 책의 메인 파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화 체제를 다룬다. 1987년부터 2007년까지의 시기이다. 2008년 이후 2012년까지의 이명박 정부 시기를 저자는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다루고 있다. 민주화 체제 분석에서는, 민주화체제 20년의 시기를 3개의 경합국면으로 나누게 된다. 즉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90년 3당합당의 시기, 3당합당 이후 97년 까지의 시기, 다음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라고 하는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이 어떻게 상이하게 전개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3당합당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역동적 각축과정의 중요한 전기로 본 점이 새롭다.
1권에서는 제1경합국면과 제2경합국면까지를 다루고, 제3경합국면의 전반부인 김대중정부까지가 다루어진다. 2권에서는 제3경합국면의 후반부인 노무현정부 시기를 다룬다.
5장, 6장, 7장, 8장에서는 제1경합국면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다루게 된다. 이어서 9장에서는 민주화체제 하에서 동반되는 변화를 수동혁명적 민주화와 포스트개발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고 규정하고 이것이 운동정치에 어떤 변화를 동반하는가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제도정치를 감시하는 운동과 제도정치를 대체하고자 하는 ‘대체정치운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게 된다.
11장에서는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이 장에서는 민주화 시기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있다.
학자 조희연과 ‘교육감 조희연’의 거리
이 책의 저자인 조희연교수는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성공회대 교수로서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어 서울교육행정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사실 교육감 선거에 나서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그 망설임 속에는 이 책을 더욱 완성된 내용으로 내놓고자 하는 의욕, 나아가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일련의 저작들을 완성하고 싶은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학자 조희연’을 마감하고 ‘교육행정가 조희연’으로 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이 책을 더욱 완성도 높은 책으로 만드는 작업 자체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현 상태로 책을 냄으로써 이것을 사회과학계의 자산으로 편입시키고 내가 의도했던 작업은 이제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이월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상태로 책을 낸다. 동료와 후학들이 나를 비판하면서, 학문을 전진시키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을 현재의 교육감의 입장이나 정책방향, 이념적 지향과 동일시하거나 연관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제2인생’을 사는 ‘교육행정가 조희연’과 제1인생의 ‘학자 조희연’ 간에 연속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이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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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트랙 민주주의 2 -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 | 서강학술총서 87
조희연 (지은이)서강대학교출판부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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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강학술총서 87권.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어,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는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일면일 뿐이라고 보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를 제도화된 정치로 파악하는 시각 자체가 서구 중심의 특수한 이론화를 전제로 한 것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운동경험을 일반론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근대 이후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 조차도 한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제도화된 정치로 일체화된 적이 없다. 한국이 시민사회운동이나 운동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히 큰 사례라고 할 때, 그것은 서구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적절히 드러내지 못했던 어떤 일반적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8장 민주화체제의 제3경합국면(2): 노무현정부 하에서의 각축
1. 노무현정부의 초기의 각축 국면: 제도정치와 사회적 정치의 ‘내전’적 각축의 항상화
1) 초기의 개혁정책
2) 보수의 격렬한 저항과 타협적 공존의 와해
2. 탄핵, 탄핵 반대 투쟁과 탄핵 이후의 좌익적 돌파: ‘보수의 의회 독점’ 해체
1) 보수적 내전과 진보적 내전
2) 탄핵 이후의 ‘좌익적 돌파’ 시도와 그 실패
3) 다른 경로에 대한 상상
3. 민주주의 블록의 균열과 반독재민주정부의 위기
1) 민주개혁의 수평적 확산의 성과와 그 한계
2) 민주개혁 자체의 내재적 한계
3) 노무현정부에서의 갈등의 격화 원인
4. 시민사회의 갈등적 분화
1) 시민사회의 갈등적 분화
2) 두 개의 대치선: 진보개혁적 대중의 수동화와 이반
5. 운동정치 내에서의 헤게모니 지형의 변화
1) 시민운동에 대한 이중적 도전
2) 뉴라이트의 등장과 보수적 ‘경계정치’
3) 민중운동 도전
6. 제도정치 내의 균열
1) 제도정치 내부-헤게모니의 와해
2) 제도정치 외부 급진운동정치세력과의 분리
3) 다양한 이반들의 우익적인 헤게모니적 접합
[보론 1]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아시아 자유주의 세력, 그리고 파퓰리즘
1. 정치적 신과두제와 포스트과두제
2.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대립구도
3.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맥락 속에서의 반독재자유주의 세력의 성격 변화
4.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자유화
5.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
6. 한국에서의 반독재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성격과 사회경제적 성격
7. 한국의 반독재자유주의 세력과 파퓰리즘-“노무현정부는 충분히 ‘파퓰리즘’적이지 못했다”
9장 87년체제 운동정치의 재구성: 민주화의 두 차원에 대응하는 운동정치의 변화
1. 수동혁명적 민주화에 대응하는 운동정치의 분화
1) 자율화와 사회운동의 변화
2) 제도화의 진전과 사회운동의 변화
2. 포스트개발자본주의에 대응하는 운동의 변화
1) 운동정치의 ‘1차 분화’: 생활세계 지향 운동의 등장
2) 운동정치의 ‘2차 분화’: 포스트개발자본주의의 전면화와 운동정치의 분화
3. 민주화 과정에서의 사회운동들 간의 관계-복합적 분화 속의 상호관계
1) 복합적 분화와 신사회운동의 세 가지 유형
2) ‘통일성의 연대’에서 ‘차이의 연대’로-사회운동의 분화와 연대
10장 민주화체제의 경계정치: 제도정치의 재구성을 향한 운동정치의 도전
1. 한국 제도정치의 정치지체
2. 대체정당운동의 두 가지 흐름
3.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인적 교류
4. 제도정치 감시운동의 전개
1) 정치체제 개혁운동과 낙선운동
2) 경제체계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의 전개
5. 철저한 민주개혁을 위한 민중운동의 급진민주주의투쟁
6. 제도정치의 변화와 시민운동적 정치성의 분화
[보론 2] 한국 과거청산 과정에 대한 병행 접근 분석
1. 과거청산에 대한 이론적 논의
2. 해방 공간과 4 · 19혁명 이후의 과거청산과 그 좌절
3.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의 과거청산의 동학
4. 국민정부 하에서의 과거청산의 동학
5. 참여정부 하에서의 과거청산의 동학
11장 포스트민주화체제
1. 포스트민주화체제의 성격
1) 신자유주의적 경제와 신보수정치의 결합
2) 신보수정부
3) 한국 신보수정부의 특성
4) 포스트민주화체제의 성격
2. 포스트민주화체제의 새로운 정치성
3. 포스트민주화체제하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1) 권위주의적 신보수정부의 균열
2) 포스트민주화체제하의 운동정치의 특성
3) 우익적인 헤게모니적 접합의 다층적인 균열과정
4. 민주화체제 헤게모니 블록의 해체: 중도개혁 자유주의정당의 헤게모니 균열과 국민 정치 공간의 공백
1) 국민정치 공간의 공백: 제도정치의 재구축을 둘러싼 경합국면
2) 집권보수정당의 혁신
3) 연합 정치의 부상
[보론 3] 87 년체제87년체제와 97 년체제97년체제, 그리고 포스트민주화체제와의 상호관계
1. 97년체제론
2. 독재에서 민주주의‘체제’로의 거대한 전환, 87년
3. 97년체제의 이중성
4. 신자유주의와 체제전환
맺음말 요약과 전망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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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희연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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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교육감.
전북 정읍 출생. 전주 북중학교와 서울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한국학 객원교수와 일본 케이센대, 대만 국립교통대, 영국 랑카스터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비판사회학회장,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자 민주주의연구소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을 지냈으며 제20·21대 서울특별시교육감이다.
주요 저서로는 『계급과 빈곤』,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 더보기
최근작 : <교육 대전환, 리더에게 묻다>,<지금 만나러 갑니다>,<[큰글자책]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 총 6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한 시도
이 책은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어,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는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일면(一面)일 뿐이라고 보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two track approach)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를 제도화된 정치(의회, 정당, 대표자 정치 등)로 파악하는 시각 자체가 서구 중심의 특수한 이론화를 전제로 한 것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운동경험을 일반론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근대 이후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 조차도 한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제도화된 정치로 일체화된 적이 없다. 한국이 시민사회운동이나 운동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히 큰 사례라고 할 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자 과도기적 사례가 아니라 그래서 빨리 서구적인 민주주의 모델(예컨대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로 회귀해야 과제를 안고 있는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적절히 드러내지 못했던 어떤 일반적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최장집과 손호철을 계승하면서 뛰어넘어
저자는 한국 정치사회학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 하에,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선도적으로 전개하여 온 최장집 교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투트랙 민주주의론’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일종의 ’한국 정치사회학‘의 누적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뛰어넘는 ‘한국적’ 민주주의론을 정립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좌파 반신자유주의론을 전개하여 온 손호철 교수의 논의 속에서는 정치의 공간이 없다는 취지 하에서, ‘급진적 정치주의’ 혹은 진보적 정치주의의 입장에 서고 있다. 이렇듯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손호철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 나름의 투트랙민주주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에 따라 한국현대 민주주의의 부침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나 서구 이론의 적용대상으로 한국사례를 생각하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전통은 존재할 수 없고, 우리끼리 인용하는 관행이 정착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토착화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경험과 다른 한국 및 아시아적 경험을 ‘새로운 준거’로 하여 새로운 ‘한국적 이론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투쟁을 단지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경험이 드러내주지 못하는 어떤 일반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례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분석 속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저자는 ‘민주화의 동학’이 작동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이른바 반독재 민주정부의 집권기인 97년 체제는 ‘세계화의 동학’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반독재세력은 독재와의 저항에서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독재 세력은 역설적으로 집권세력이 되면서 세계화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고 패배해갔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사의 시기구분
이를 위해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50년대의 극우반공분단체제, 61년 이후 87년까지의 개발독재체제,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 2008년 이후의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나누어, 통사(通史)적으로 한국현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저자 스스로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전개과정을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개념적 논의를 하는 1장과 2장이 있다. 1장에서 나는 근대민주주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한국민주주의를 여러 시각들을 포함하여, 이 책의 분석적 프레임을 제출하게 된다. 그런 이후에 2장에서는 운동 혹은 운동정치의 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한 논의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3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50년대와 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다루게 된다. 3장에서는 50년대 극우반공분단체제와 60·70년대 개발독재 하에서의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다루게 된다. 그런 후 4장에서, 50년대 비합법정치, 60년대의 재야, 광주꼬뮨 등을 통하여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가 각 시기에 따라 상이하게 수정되어지고 각축되는 과정을 다루게 된다.
5장에서 10장까지가 이 책의 메인 파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화 체제를 다룬다. 1987년부터 2007년까지의 시기이다. 2008년 이후 2012년까지의 이명박 정부 시기를 저자는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다루고 있다. 민주화 체제 분석에서는, 민주화체제 20년의 시기를 3개의 경합국면으로 나누게 된다. 즉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90년 3당합당의 시기, 3당합당 이후 97년 까지의 시기, 다음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라고 하는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이 어떻게 상이하게 전개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3당합당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역동적 각축과정의 중요한 전기로 본 점이 새롭다.
1권에서는 제1경합국면과 제2경합국면까지를 다루고, 제3경합국면의 전반부인 김대중정부까지가 다루어진다. 2권에서는 제3경합국면의 후반부인 노무현정부 시기를 다룬다.
5장, 6장, 7장, 8장에서는 제1경합국면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다루게 된다. 이어서 9장에서는 민주화체제 하에서 동반되는 변화를 수동혁명적 민주화와 포스트개발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고 규정하고 이것이 운동정치에 어떤 변화를 동반하는가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제도정치를 감시하는 운동과 제도정치를 대체하고자 하는 ‘대체정치운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게 된다.
11장에서는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이 장에서는 민주화 시기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있다.
학자 조희연과 ‘교육감 조희연’의 거리
이 책의 저자인 조희연교수는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성공회대 교수로서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어 서울교육행정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사실 교육감 선거에 나서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그 망설임 속에는 이 책을 더욱 완성된 내용으로 내놓고자 하는 의욕, 나아가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일련의 저작들을 완성하고 싶은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학자 조희연’을 마감하고 ‘교육행정가 조희연’으로 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이 책을 더욱 완성도 높은 책으로 만드는 작업 자체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현 상태로 책을 냄으로써 이것을 사회과학계의 자산으로 편입시키고 내가 의도했던 작업은 이제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이월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상태로 책을 낸다. 동료와 후학들이 나를 비판하면서, 학문을 전진시키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을 현재의 교육감의 입장이나 정책방향, 이념적 지향과 동일시하거나 연관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제2인생’을 사는 ‘교육행정가 조희연’과 제1인생의 ‘학자 조희연’ 간에 연속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이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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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이 그람시의 이론을 정리하며 만든 그림인데 설명에 사용하기 참 좋다.
헤게모니의 작동 영역을 깔끔하게 표현했다. 계급투쟁을 자연과학과도 같은 ’역사과학’의 분석과 예측이 적용되는 기계론적인 과정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우발성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해석하려는 그람시의 논리를 1980년대의 최장집은 참 깔끔하면서도 훌륭하게 요약하고 현실분석에 적용하고 있다.
어떤 모자란 보수 논객이 최장집을 비난하며 “마르크스주의 노동정치학”을 전공했다고 말했는데 재밌는 표현이고 그람시적 문제의식을 지닌 이때는 그렇게 불러도 되지 않았나 싶다.
여러 정치적 실천 속에서 좌절한 뒤에 ’좋은 지도자’ 만들기에 집중하게 된 이 노학자는 어찌됐든 한국 민주주의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후기의 최장집을 적절하게 비판하며 좌파의 정치기획을 이론화 해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그람시를 뛰어넘는 또다른 이론적 기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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