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2

알라딘: 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알라딘: 모던 하트

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은이)한겨레출판2013-07-12

296쪽

책소개

정아은 장편소설.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서른일곱,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김미연의 삶을 통해 대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이다.

헤드헌터 김미연은 학벌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발버둥을 치며 살아간다. 출신대학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것이 회사 조직에서는 물론, 연애와 결혼 같은 개인의 삶과 인물들의 내면까지 확고하게 지배하는 현실을 <모던 하트>는 솔직하고도 세세하게 묘사한다.

또한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슈퍼맘의 고충과 그를 둘러싼 관습과 제도의 문제, 세대 간의 갈등 등을 폭넓게 보여준다. 특히 일, 연애, 결혼을 앞두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해피엔딩으로만 끝날 수 없는 비루한 일상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속도감 있게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총 252편의 경쟁작 가운데 예심 심사위원들의 추천과 본심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현실의 이면까지 체크하는 꼼꼼한 진술과 과장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는 서사, 그에 따른 견실한 문학적 관점이 장점',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 통속과 품위의 경계, 훈계와 반성의 경계에서 즐거이 줄타기하는 작품', '눈으로 읽고 있지만 귀로 들리는 소설' 등의 심사평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세태를 안정된 문장력으로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목차
1 이직의 시대
2 통하는 사람
3 윗집 여자
4 슈퍼맘과 짝퉁 용
5 미스 커뮤니케이션
6 퍼즐의 완성
7 비상용 남자
8 결혼 특별 부록
9 오뚝이 헤드헌터
10 20억짜리 꿈
11 장밋빛 인생
12 오늘도 무사히
13 진실 게임
14 공범 의식
15 세련된 인간

작가의 말
심사평

책속에서
P. 66-67 집에 돌아와 거실의 불을 켜는데, 거실 등 밑으로 드러난 내 집이 너무나 아늑하고 깔끔해 보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있는 세연은 언니에게도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과 사생활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언니의 손을 잡으려 한다. 전쟁이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나라로 가버릴 거면서. 남편도, 자식도, 애인도 없는 나는 잠깐의 쓸모 때문에 임시로 고용된 단기 용병. 이 어리숙한 용병은 애국심에 들끓는 다른 나라 병사들의 절절한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만 내일의 휴식을 반납하고 말았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접기
P. 109-110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푸른 등 옆의 세모꼴이 두 개에서 하나로 바뀌더니 이내 붉은 등이 들어왔다.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청회색 하늘 아래 불야성처럼 불을 밝힌 유흥가가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거리 세 면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한 면에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군집해 있었다. 나는 대각선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쓰러져가는 5층짜리 주공 아파트가 있었던 자리에 L자 세 개가 새겨진 초고층 아파트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회색 구름이 천천히 지나갔다. 유영하는 구름 사이로 우뚝 솟은 아파트를 보고 있으니 중세의 성이 떠올랐다.
중세의 밤. 높다란 성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사랑하고, 싸우며 당대의 일상을 채워갔을 것이다. 전깃불이나 자동차 따위가 없었을 뿐 사람들의 욕망과 기대는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지금, 저 아파트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희로애락을 부지런히 새기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아파트 옥상의 테두리 조명과 유흥가의 조명이 경쟁하듯 불을 밝히고 있는 이 밤의 풍경을 중세의 괴기스러운 밤이라고 회상할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저 아파트는 L자 세 개가 들어간 국적 불명의 이름보다 ‘산성’이라고 이름 짓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잠실산성. 역사성을 함축하기에도, 이름만 듣고 택시 기사들이 찾아가기에도 훨씬 낫지 않은가.  접기

P. 98-99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출신대학이 채용 여부의 관건이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출신대학을 왜 그렇게 따져요? 일만 잘하면 되지. 희한한 사람들이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최 팀장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연 씨가 아직 대한민국을 모르는구나. 대한민국에서 출신대학은 낙인이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 경력 좋고 대학원 좋은 데 나와봐야 아무 소용없어. 대학을 좋은 데 나와야지. 학부를 좋은 데 안 나온 사람은 절대 A급이 못 돼. 외국계 회사도 정말 인지도 높은 회사는 사람 뽑을 때 출신대학 다 따져. Z사 봐. SKY 출신 아니면 아예 이력서도 보내지 말라고 하잖아? 서울대 대학원, 아니 하버드 대학원 나와도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다 꽝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단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회사의 브랜드가 그 사람의 이름값이 된다고 생각했다. 순진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내 생각은 서치펌 일을 하면서 완전히 개조되었다.  접기

P. 152 내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럴 때이다.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생의 동반자와 새끼들을 데리고 와 지지고 볶을 때. 그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이 ‘새끼들 돌봄’과 ‘친구와의 사교’라는 멀티태스킹을 해내도록 성심으로 도와야 할 때. 정작 나는 관심도, 아는 바도 없는 화제에 대해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때. 아프거나 외로울 때가 아니라 바로 이럴 때! 정말이지 나는 결혼하고 싶다. 아무나 붙잡고 당장에라도 결혼하고 싶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
는 건 얼마나 큰 손해인가.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을 만나면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자유를 존중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무거운 짐들을 당연한 듯 나누어 들자고 한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시간이 넘쳐나는 인간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이 현상은 심화된다. 정작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돌보거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간혹 내 의견을 말하면, ‘네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그래’라거나 ‘그러니까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같은 지긋지긋한 말만 돌아온다. 독신자 클럽 같은 데 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지겹게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접기

P. 200 이. 십. 대. 그 단어를 나직이 음미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 내게도 20대가 있었지.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육신은 어느새 20대를 훌쩍 뛰어넘어 낯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른일곱. 아무리 되새겨도 늘 낯선 나이. 3년 뒤면 나는 마흔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흔. 그때 나는 어떤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까. 서치펌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여전히 싱글일까. 지금처럼 흐물 같은 남자나 만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작정 나이 먹기가 두려운 것. 그래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행해온 공고한 관습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것. 차라리 차악을 택해 무시무시한 세월을 덮고 건너가는 것.  접기

 
추천글

늘 커피 체인점을 드나들며 수시로 아이패드로 카톡을 하거나 메신저로 대화하는 현대적 일상, 결혼과 이직을 둘러싼 평범한 샐러리맨의 욕망과 비애, 학벌주의와 계급을 둘러싼 정글 자본주의의 생태학……. 이처럼 익숙하면서도 쿨한 대도시,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유능한 헤드헌터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포착한 《모던 하트》에 의해 ‘한겨레문학상’의 스펙트럼은 한층 다채롭게 확장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내가 이 거대하고 슬픈 도시에서 여전히 살아간다는 사실에 잠시 마음이 아연해졌다. - 권성우 (문학평론가) 

어떤 무게를 지닐 것인가? 무거우면 침잠하고 가벼우면 휘발된다. 얼마나 진창에 발을 빠뜨릴 것인가? 비속하면 천해지고 고상하면 조롱당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가르치자면 배울 사람이 없고 자성만으론 허망하다. 현실 속의 제자리를 탐색하는 문학의 난문제에 《모던하트》는 대답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 통속과 품위의 경계, 훈계와 반성의 경계에서 즐거이 줄타기하겠노라고. 2013년식 세태소설의 모범 답안이다. - 김별아 (소설가) 

《모던 하트》는 모처럼 읽은 건강한 세태소설로서 내 마음에 남는다. 현실의 이면까지 체크하는 꼼꼼한 진술과 과장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는 서사, 그에 따른 견실한 문학적 관점이 장점이다. 이는 오늘의 삶을 충직하게 반영하는 소설이 많지 않은 문단의 일반적인 트렌드와 배치된다는 점에서 귀하게 읽힌다. 현재 진행형의 우리네 세태를 이만큼 가감 없이 형상화하는 일은 쉬운 듯하지만 기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박범신 (소설가) 

우리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 없다(아니, 그렇게 살아지지가 않는다). 집만 해도 그렇다. 소파, 스탠드, 식탁, 침대 커버와 커튼들.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조화로운지! 내가 사는 집을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단번에 비교가 된다. 욕실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 유행 지난 벽지, 식탁 한쪽에 쌓인 각종 영양제들. 드라마는 먹는 걸 자주 보여주지 치우는 걸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그걸 버리러 갈 때마다 다른 집들의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보아야 한다. 하물며 연애는 더더욱 드라마와 다르다(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처럼 꿈꾸고 싶긴 하다). 일이고, 연애고, 결혼이고…… 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예기치 못한 것이 간섭한다. 그것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근사해지지 않는다. 그 예기치 못한 놈이 바로 ‘일상’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지저분한 내 집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느낌이 든다. 무심한 듯 던지는 삐딱한 말들이 가슴에 박힌다. 그건 인물들이 삐딱해서가 아니라, 대사 속에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 번도 세련된 적이 없는 여자인데 스스로 그걸 알까? 그래서 자신이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강남역을 향해 가는 여자의 마지막 모습이 더더욱 슬프다. - 윤성희 (소설가) 

《모던 하트》는 무리한 설정이나 과잉 의식 없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착실하게 서사를 쌓아간다. 연애라는 강물이 흘러가면서 주변에 있는 회사, 가정, 사회 등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살려낸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문제적 단면이라고 할 풍경 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번엔 다소 좁고 유유한 강이었지만 앞으로는 격랑을 불러오고 범람을 일삼으며 힘차게 흘러가기를 기대해본다. - 은희경 (소설가) 

《모던 하트》는 현재를 달리는 기차 안의 세상이다. 헤드헌터의 눈에 비친 풍경들은 목적지가 모두 다른 동승자, 소설의 가독성처럼 우린 너무 짧은 시간에 먼 곳까지 와버렸다. - 백가흠 (소설가,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헤드헌트라는 말은 멋지다. 외래어 속에 숨겨진 세세한 사정을 모르니 더 멋지게 보인다. 멋진 외래어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감추는 그럴듯한 포장지가 된다. 정아은은 이직이 생존이 되는 험난한 자본정글, 대한민국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직업적 은어들의 리드미컬한 배치도 신선하다. 《모던 하트》는 새롭고, 사실적이며, 뜨끔하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강남대 국문과 교수) 
《모던 하트》는 막스 베버가 경고한 ‘영혼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주의자’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야기이다. 누구보다 회사 일에, 그리고 연애에 열정적이지만 그들의 열정의 대상은 ‘그 일과 그 회사’가 아니어도, ‘너’가 아니어도 된다. 고유명사 대신 화려한 ‘브랜드’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열정, 《모던 하트》는 이 현대인이 품은 차가운 플라스틱 ‘하트’에 대한 블랙코미디이다. - 정은경 (문학평론가) 

헤드헌터의 세계를 치밀하게 그린 소설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가 얼얼한 펀치를 맞았다. 오지랖 넓은 남자 흐물, 채식주의자 시크남 태환, 슈퍼맘 여동생, 전직 군인 아버지, 위층에 이사 온 첫사랑, 동호회에서 만난 민선, 결혼했거나 애인이 있는 여고 동창생들, 그리고 회사 동료들……. 이 소설은 당당한 싱글 커리어 우먼이 그들과 나누는 대한민국 2013년판 실시간 대화록 같다. 눈으로 소설을 읽고 있지만 귀로 들리는 신기한 소설이다. 좋은 소설은 세세한 설명도, 어려운 사유도 필요 없다. 책을 덮고 나면 따뜻한 희망이 남는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 서진 (소설가) 

소설은 시민권을 획득한 이들의 독점물인 아크로폴리스의 언어가 아닌, 이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의 공간인 아고라의 언어이다. 소설이 구체적인 삶의 결들을 담아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나아가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지금의 삶 ‘너머’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모던 하트》는 세태에 대한 천착으로부터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헤드헌터’의 시대, 야만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풍속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이토록 비루한 현실과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소설이다. - 장성규 (문학평론가) 

《모던 하트》는 모든 것이 세속적 욕망 앞에서 휘발되어 날아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자 그 심연에 대한 보고서이다. 헤드헌터인 미연에게 도시는 학벌로 번식하고 스펙으로 증식하는 인간들의 냉혹한 정글과 같다. 이곳에서 사랑과 가족은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지 못한다. 현대인의 내면을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불안하고 쓸쓸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모던 하트》는 ‘세속의 심연 또는 핵심’이라고 읽어도 될 것이다. - 서희원 (문학평론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7월 14일자

줄거리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았는데 나이에 따른 노화는 착착 진행되고 있는 서른일곱 김미연. 전문대 졸업 후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인사부로 8년 동안 일하면서 사이버 대학을 거쳤고 서치펌 ‘헤드 앤 코리아’에 입사한 지 3년 차다.
헤드헌터 김미연이 일하는 사회란 지극히 속물적이다. 학벌로 사람을 철저히 재단하는 사회. 능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학벌’ 낙인으로 입사의 당락이 좌우되는 곳. 눈치껏 사람을 날라야 하는 헤드헌터에게 남는 건 오뚝이 근성뿐이다. 매일매일 날아드는 후보자의 탈락 소식 가운데서도 눈 깜짝하지 않고 벌떡 일어설 수 있는 근성.
세월처럼 착실한 것이 또 있을까. 나이트 삐끼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지만, 주변엔 온통 애 딸린 친구들뿐. 결혼 안 한 미연을 부러워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자기들 필요할 때면 불러대기 바쁘다. 결혼은 다들 왜 하는 걸까? 평소에는 가족 테두리 밖에 두었다가 자기 필요할 때만 ‘애들 친이모’라는 이름으로 가족에 포함시키는 여동생 세연만 봐도 그렇다. 고시 공부 하겠다며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의 수발 및 집안일, 두 아이 양육에다가 밥벌이까지.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상사인 최 팀장의 거래처를 넘겨받으며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해가고 있는 직장 생활은 그럭저럭 안정되어 가는데, 미연의 연애 스코어는 영 별로다. 여러 번 만났지만 스킨십을 전혀 하지 않는 썸남 태환과 심심할 때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오는 동호회 물고기남 흐물 사이에서, 미연은 외롭고 또 혼자다.
흐물은 주변 분위기를 맞추는 능력도 뛰어나고 돈도 펑펑 아낄 것 없이 써대고, 기분까지 맞춰주지만, 미연에게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 흐물과 어느 때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태환에게 전화가 오고, 미연은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취한 상태로 태환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날 이후 흐물과는 연락이 끊기고, 태환과는 먼저 연락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 업무는 차질이 생기고 미연의 일상은 꼬여만 간다. 게다가 동호회 친구 민선이로부터 난데없는 소식까지 들려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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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아은 (지은이)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잠실동 사람들》 《모던하트》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등을 썼다.
수상 : 2013년 한겨레문학상
최근작 :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총 2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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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상에는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되뇌어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익숙하면서도 쿨한 대도시,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

1996년 한국 문학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가기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올해로 제18회를 맞았다. 2회 김연의《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3회 한창훈의《홍합》, 4회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6회 박정애의 《물의 말》, 7회 심윤경의《나의 아름다운 정원》, 8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9회 권리의《싸이코가 뜬다》, 10회 조두진의《도모유키》, 11회 조영아의《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12회 서진의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13회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 14회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15회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16회 장강명의 《표백》, 17회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1회, 5회 당선작 없음)까지 기존의 당선작들은 오랜 시간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정아은의 《모던 하트》로, 총 252편의 경쟁작 가운데 예심 심사위원들의 추천과 본심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현실의 이면까지 체크하는 꼼꼼한 진술과 과장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는 서사, 그에 따른 견실한 문학적 관점이 장점’,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 통속과 품위의 경계, 훈계와 반성의 경계에서 즐거이 줄타기하는 작품’, ‘눈으로 읽고 있지만 귀로 들리는 소설’ 등의 심사평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세태를 안정된 문장력으로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던 하트》는 서른일곱,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김미연의 삶을 통해 대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이다. 헤드헌터 김미연은 학벌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발버둥을 치며 살아간다. 출신대학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것이 회사 조직에서는 물론, 연애와 결혼 같은 개인의 삶과 인물들의 내면까지 확고하게 지배하는 현실을 《모던 하트》는 솔직하고도 세세하게 묘사한다. 또한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슈퍼맘의 고충과 그를 둘러싼 관습과 제도의 문제, 세대 간의 갈등 등을 폭넓게 보여준다. 특히 일, 연애, 결혼을 앞두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해피엔딩으로만 끝날 수 없는 비루한 일상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속도감 있게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출신대학이라는 낙인, 인생의 로또는 주식과 부동산뿐.
세속적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2013년판 실시간 대화록

《모던 하트》의 주인공 서른일곱, 싱글 김미연은 헤드헌터로 일한 지 3년 차다. 헤드헌터인 그녀 앞에는 보다 높은 연봉과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줄지어 선다. 쟁쟁한 스펙과 철저한 경력 관리를 통해 신분 상승을 노리는 그들 앞에 헤드헌터는 기꺼이 첫 심판자가 된다.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잣대는 학벌 세탁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출신대학’이다. 아무리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을 출중히 갖췄다 하더라도, 학벌이라는 선을 넘지 못한 지원자에게는 명목상 ‘훌륭한 인재이지만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탈락 소식만 전달될 뿐이다. 사내 정치에 어둡고 눈치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 미연에게 헤드헌터로서의 성과는 멀기만 하고, 아래로 들어오는 20대 직원들의 정보 수집력과 인맥 동원력은 그녀를 더욱 소심하게 만든다.
나름 험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거라고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근성만 남은 미연에게, 로맨틱한 연애는 해본 지 오래다. 썸남과 물고기남, 두 남자 사이에서 그저 긴장감 없는 줄다리기 중이다. 우선 스킨십 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썸남 태환. 그가 있는 곳으로 미연은 늘 달려간다. 채식을 하는 그에게 맞춰 주문을 하고,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을 검색해서 듣는다.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 Y대를 나온 그가 미연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다. 그런 그녀 앞에, 전화 한 통만으로 대전에서부터 서울까지 달려오는 흐물은 그저 지방대 나와 공사를 다니는 하찮은 남자일 뿐이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주변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살아가는데, 혼자 뭔가 엄청난 것을 놓친 것 같은, 대오에서 뒤처져 앞사람들을 영영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 같은 불안감은 미연을 수시로 덮친다. 그렇다고 결혼한 사람들이 다 행복해보여서 그 길을 덥석 따라가기에는 영 시원치 않다.
미연의 동생인 세연만 봐도 그렇다. 세연은 통칭 슈퍼맘이다. 직장을 다니며 두 아이의 양육을 도맡아 하느라 일상이 전쟁이다. 그 전쟁터 아래 홀로 평온한 사람은 서울대 나온 이름 하나로 버티고 있는 사법고시생 제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그를 볼 때마다, 미연은 분노가 치솟는다. 서울대 출신 사위를 봤다고 좋아하던 엄마도 어느새 싸늘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기 시작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모임에 나와서는 시댁과 남편을 흉보고, 재건축될 아파트에 대한 부동산 투자로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관심도, 아는 바도 없는 화제에 인내심을 갖고 들어야만 하는 미연은 억울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싱글 독자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킥킥 웃다가 씁쓸한 끝 맛을 느끼게 한다.
《모던 하트》는 우리와 너무나 닮은 미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2013년판 풍속도를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헤드헌터라는 직업의 내밀한 세계를 파헤치면서, 학벌 따지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내 애인, 배우자 또한 학벌로 재단하며 평가하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메신저를 훔쳐본 듯한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가 실시간 대화록처럼 귀로 들리며 단숨에 읽히는 신기한 소설이기도 하다. 접기

평점분포    8.4
100자평
     
다른 사람의 성격이 모두 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의 미연이 내 친구라면, 나는 이 무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하소연을 들으며 술마시다가 잔소리를 좀 했을것 같다. 그전에 물론, 나와 친해지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구매
다락방 2013-10-31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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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보기 드문 박력 넘치는 여류 소설가의 등장. 그대의 당당한 운명론에 박수를.  구매
깐따삐야 2013-08-1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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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적지 않은 나이를 지닌 여성에게 공감을, 뒤를 한 번 돌아보면서 나의 일상과 함께 어우러져 한 장, 한 장을 넘긴다.  구매
라즈베리 2013-08-0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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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에서 은희경 작가가 말한 무리한 설정이나 과잉 의식 없이.. 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냥 무난하다.  구매
윤재홍 2013-08-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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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재미있어, 과거의 정이현 생각나게 하네요. 속도감있게 잘 읽었습니다.  구매
wateraroma 2013-08-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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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그녀의 습관 보따리 
'인생이란 제멋대로 뻗은 나뭇가지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저마다의 셈법이 다 달라서 사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어쩌면 날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기로 보자면 말복도 지났고 더위도 어지간히 수그러들 만한데 연일 푹푹 찌는 열기로 사람들의 화만 돋우더니 기상청 예보 또한 번번이 엇나가는 바람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기상청으로 집중되었었지요. 그러던 게 처서가 지난 밤기온은 거짓말처럼 한결 시원해졌던 것입니다.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야 나름 항변할 말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셈법이 다른 일반 국민들과 언쟁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겠지요. 한낮의 기온이 33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를 예측하는 기상청 예보가 서너 번 엇나갔었고 이번 주 금요일로 다시 또 연기된 상황이지만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그 말조차도 믿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기온이 조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갈등과 오해가 모두 풀렸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이겠지만 말입니다.

 

정아은 작가의 <모던 하트>는 셈법이 모두 제각각인 요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개인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개인주의'라는 말 속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끈적끈적한 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가 내포된 듯하여 나는 일부러 '셈법'이라는 말을 꺼내들었던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까지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던 하트>의 주인공 김미연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는 서른일곱 ,전문대 졸업 후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인사부에서 8년 동안 재직하면서 사이버 대학을 나왔고, 서치펌 '헤드 앤 코리아'에 입사한 지 3년차의 헤드 헌터로 미혼입니다. 작가는 주인공인 김미연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성 차별, 결혼을 둘러싼 여러 고민과 다양한 시각들을 파헤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을 만나면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자유를 존중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무거운 짐들을 당연한 듯 나누어 들자고 한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시간이 넘쳐나는 인간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이 현상은 심화된다. 정작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돌보거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p.152)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군인 출신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중 장녀인 미연은 직장 근처에 있는 강남의 작은 아파트에서 독립하여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거래처로 삼고 있는 여러 회사의 인사부로부터 오더를 받고, 그에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여 의뢰한 회사에 소개하고, 최종적으로 취업이 결정되면 연봉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게 그녀와 같은 헤드헌터가 하는 일입니다. 유능한 상사인 최 팀장을 통하여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는 있었지만 미연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결혼입니다. 그녀는 현재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태환'을 마음에 두고 있으나 일치하지 않는 여러 조건 때문에 관계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육식을 배제하는 태환의 식성과 돈에는 도통 욕심이 없으면서도 까칠한 그의 성격과 전문대를 나온 그녀의 학벌은 넘을 수 없는 어떤 장애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그녀를 죽자 사자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호회에서 만난 '흐물'(본명은 정경훈)은 지방대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공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미연의 요청이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서울로 달려오는 열혈남입니다.

 

회사 정치에도 어둡고 눈치도 빠르지 않았던 미연은 그녀의 상사였던 최 팀장이 회사를 떠나면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그녀에게는 확실한 거래처도, 회사내에서의 확실한 보호막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삼십대 중후반의 나이에 확실한 경력이나 소득원도 없는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 주변에는 뛰어난 정보 수집력과 인맥 동원력을 겸비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녀들을 볼 때마다 자신은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녀의 연애전선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날 대학로로 나오라는 태환의 제안을 거절한 채 흐물을 불러냅니다. 흐물을 만나면서도 온통 태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미연은 결국 태환에게로 달려갑니다.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흐물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이지요. 그 날 밤 만취했던 미연은 흐물을 까맣게 잊고 태환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던 흐물은 그 날 이후 그녀와의 연락을 끊었고 얼마 후 동호회의 아는 언니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차피 생이란 그런 것. 진행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든다면 그것은 파국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완전한 격정과 놀라운 속도,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완성된다. 원인과 과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생에 같은 순간이 두 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파국으로 인한 교훈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스스로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후일담이다." (p.282)

 

미연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소설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태환에게 달려갔던 그녀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가 하는 문제는 태환을 만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드 헌터는 쟁쟁한 스펙과 철저한 경력 관리를 통해 신분 상승을 노리는 많은 직장인들을 일차적으로 검증하는 직업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화려한 스펙과 뛰어난 능력, 외모와 학벌, 인맥과 환경 등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게 되고 그것은 마치 습관처럼 굳어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그녀의 동생 세연도 비록 서울대 출신의 남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고시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무위도식 하는 남편 때문에 일간지 기자로, 두 아이의 엄마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동동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동생의 그런 모습을 영 못마땅하게 여겼었던 미연도 결국 비슷한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오래 전에 형성했던 자신의 낡고 쓸모없는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닌가 봅니다. 그 낡고 쓸모없는 습관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하면서 자신의 보따리에 꽁꽁 숨겨두기만 할 뿐 버려지는 건 도통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보따리 안에 숨겨 둔 자신의 습관들을 겨드랑이에 꼭 낀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두고 '보수적'이라고 하던가요? 물론 대가(보수)를 받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자신의 습관 보따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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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6-08-24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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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한국현대소설에 대하여



    사실 한국현대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한국 문학은 주로 고등학교 다니면서 문학 지문으로나마 만났고, 기억나는 작품들로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삼대’, ‘오발탄’, ‘소나기’, 읽다 만  ‘토지’처럼 근현대 시기의 작품들뿐이었고,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필독서를 읽어야지 하며 주로 외국의 책들을 읽어왔다. 물론 소설 자체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한국의 소설들은 대부분 암울한 시대상이 너무 드러나고,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뉴스, 신문에서 매일 암울한 소식투성이인데 소설마저 암울할 수는 없지 하며 일부러 외면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회사분에게 빌려 보게 되었는데, 처음 받았을 때에는 얇은 두께에 ‘모던 하트’라는 제목이 못 미더웠다. 그런데 너무 기대치를 낮추었었는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나라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용의 주요 축이 결국은 사랑, 로맨스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학벌사회부터, 뉴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층간소음 문제, 경력여성의 육아문제, 결혼 문제, 아이들의 과도한 영어교육 문제, 30대부터 걱정하게 하는 부동산 문제까지 이렇게 나열해보니 이 책은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들을 한번씩은 건드렸다. 하지만 억지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고, 30대의 헤드헌터가 그 모든 문제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설정하여 자연스럽게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어느 나라의 소설이 층간소음을 한 장의 내용으로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파울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의 그 이국적이고 부드러운 소설들과는 다른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묘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국문학은 갈수록 위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안 힘든 분야가 어디있겠느냐마는 한국문학은 갈수록 그 영향력도 잃어나고 책의 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의 후보는 고은 시인으로 정해져있었고, 새로운 작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좀 큰 서점을 가도 우리나라의 문학작품들이 좋은 자리에 차지해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출판사, 소비자들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국의 작품들을 동경하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암울한 시대상만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한국문학과는 다르게 외국의 작품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 평온한 세계라고 인식했었다. 눈 앞에 마주한 축 처진 현실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자 소설을 읽는데 소설에서도 시대의 부조리를 보게 되면 더 슬플 것이기에. 물론 이건 나만의 이유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외면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소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점이 쓰러져가는 한국문학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 직원분이 없었다면 이 책의 존재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한 신문사의 문예에서 수상한 작품이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엄마를 부탁해’나 ‘7년의 밤’처럼 간간이 인기 있는 작품들이 나오지만 모두 기성 주류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울 따름이다. 분명히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퍼져나갈 수 있을까. 기존의 출판사 중심의 판매정책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나는 비록 이 한권의 책이지만 한국 소설의 힘을 보았다. 외국의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힘.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현실성.  이로써 읽어야 할 책이 수도 없이 많은 와중에 더 늘어버렸다.  읽은 책이 1권 늘어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5권씩 늘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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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헤드 2015-06-21 공감(9)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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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헤드헌터는 무엇으로 값을 매길까? 새창으로 보기
사람에게 값이 두 번 매겨진다.

한번은 커리어를 결정하는 헤드헌터에 의해서

또 한번은 듀오와 같은 전문결혼중매사에 의해 매겨진다.

주인공은 젊은 여성 헤드헌터다.

그녀는 자신의 몸값을 올려가며 회사들을 넘나드는 전문가들을 도우며 자기 사업을 해나간다.

포지션이라는 자리와 커리어라는 인적자원의 매치매이킹이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일을 하다보면 헛발질도 많다.

특히 다 좋은 것 같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지만, 막상 그가 매우 중요시되는 대학 학부의 급이 떨어진다는 발견하고 분노한다.

"출신 대학은 낙인이야" 하고 선배가 해준 교훈 섞인 심판의 말을 곱씹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카인의 낙인 같은 것인가 정말?

하지만 그녀 자신도 사실 그렇게 좋은 대학 출신은 아니다.

덕분에 결혼시장에 섰을 때 컴플렉스가 짙게 있다.

명문대 생을 쫓을 때도 그 컴플렉스는 뒤에서 갑자기 자신을 낚아챈다.

평소에 남의 가격을 매김이 자신의 전문영역이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가격 매김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는 당황스럽다.



소설은 이렇게 사회적 활동과 상호작용에서 학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아주 노골적으로 그린다. 마치 소의 원산지가 호주인지 미국인지 아니면 한우로 특정 지방 출신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출발선이 결승선 까지 결정하게 되는 경향은 점점 강화되어가고 있다. 

변동이 심한 사회에서는 기회도 많다. 하지만 저성장으로 가면서 그런 변동성은 점점 줄어든다. 누군가 깃발 들고 모험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정주영이 벌인 중동건설이라던가 울산 백사장의 조선사업 등은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내놓은 신사업 아이템들은 기껏해야 중국 소비에 기대는 모양새다.

그렇게 꿈들이 작아지다 보니 내 포지션, 내가 만든 인맥, 나의 정치적 줄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니 그 뿌리인 학력의 중요성은 커질 수 밖에 없어진다.



작가는 이런 사회행태를 음서제의 부활로 압축해 표현한다.

우울해보이는 세태지만 우리는 멈추어 설 수는 없다. 음서제의 고려와 과거문란 했던 후기 조선의 말로를 잘 알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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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05-18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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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정아은 지음 새창으로 보기


 

직업이 헤드헌터인 미연은 37살의 미혼 여성이다. 주위의 친구들은 결혼해서 아이가 있거나, 결혼 예정인 친구들뿐이다. 그럴듯한 직장과 매너를 가지고 있는 태훈과의 만남은 뜨거운 로맨스도 없이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이름보다는 별명 흐물이 더 익숙한, 연상이지만 오빠라는 존칭은 너무 낯선 경훈은 미연에게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남자다. 직장도, 연애도 어느 것 하나 만족할 수 없는 미연은 늘 불안하고 외롭다.

 
전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대충 짐작만 하는 정도였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미연의 직업이 헤드헌터이다 보니까 여태 몰랐던 사실들에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재를 필요한 곳에 꽂아 넣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머리 아픈 직업임은 틀림없다. 그 직업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속물적인 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다루고 있는 직업 때문일까.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인데 굉장히 씁쓸하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그런 건지. 출신 대학에 따라 차별되는 직장이라던가, 연애나 결혼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신분의 계급 차이들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인 결혼한 동생이나, 친구들이 전해주는 현실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읽는 내내 불편하기만 했던 이 소설이 싫지만은 않다. 되게 속물처럼 보이는데 미워할 수가 없다. 너무 공감이 돼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나,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럴지도...

 
감성에 젖지도 그렇다고 과장을 하지도 않았다. 덤덤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가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만약 감성에 젖었거나, 과장을 했다면 많은 공감을 하진 못했을 거다. 이른바 세태소설이라 불리는 글들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본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완벽한 학벌, 탯줄이 스펙인 사람들을 우러러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각에 생기는 욕망들이다. 감히 체감할 수 없는 것들이라 사람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 정작 현실은 비루하기만 한데 말이다. 보태고 더하지 않아도 씁쓸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본래의 몫을 다했다고 본다.

 
스펙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되어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는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통쾌함은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여러 문학상들 중 그래도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여태 읽었던 수상작들이 대부분 괜찮았기 때문이겠지. <모던하트>로 한겨레수상작에 대한 믿음이 더 커졌으니 다음 수상작에 대한 기대는 긴 말이 필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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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위로 2013-08-06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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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아쉽다. 새창으로 보기
 캐릭터와 대사. 드라마나 영화를 고를 때의 선택 기준이다. 저 두 가지가 마음에 들면 나머지 단점은 크게 걸리지 않는다. 소설도 비슷하다. '문제적 인물'이 나와야 이입을 하든 비판을 하든 몰입해서 볼 수 있다. '밍밍한 인물'이 나오면 아무래도 팔짱을 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모던 하트>의 주인공 '미연'은 아쉽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사람이다. 



 30대 후반의 헤드 헌터. 

 전문대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한 콤플렉스 있음.

 결혼에 대한 양가 감정. (결혼한 주변 사람들의 현실을 보며 스스로 위안하는 동시에 배우자가 없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초라함으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좀 별로다.



 좋아하는 남자(태환)가 채식주의자인데 그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식하는 척을 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실수로 '씨푸드 스파게티'를 주문하곤 황급히 '까르보나라'로 주문을 바꾼다. 그러면서 채식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들켰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 여자, 너무 무매력인 거 아닙니까? 내가 채식주의자인 남자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육식을 하는 여자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다. 자신의 육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이라면, 사실 만날 이유도 없는 거지. 자신의 윤리적 선택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사실 그 선택은 이미 윤리적일 수 없는 거니까.



 더 최악인 건, '보험용 남자'로 나오는 '흐물'에 대한 태도이다. 자신에 대해 흐물의 호감을 이용해서 미연은 흐물을 편할 대로 활용한다. 심심하면 불러서 밥 얻어 먹고 술 얻어 마시고(뒤에 가면 밝혀지지만 이를 위해 흐물은 적금도 깨고 대출까지 받았다는 설정이다.) 오라가라 아주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좀 있고 외모가 썩 훌륭하지 않은 흐물이 자신에 대해 연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나서는 격한 반응을 보인다. '너 같은 놈이 감히 나를....'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아 진짜, 이 인간 뭐지?



 특별히 최악이라고 여겨진 대목 하나.

태환은 커다란 흰색 꽃이 그려진 하늘색 라운드 티에 흰 바지와 흰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촌스러운 차림 때문에, 금방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티를 입으셨군요."

(중략)

"어제 이 옷을 사면서 그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제가 취향을 자발적으로 억압해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조직에 속한다는 게 그런 거죠. 자신의 색깔을 자동적으로 억압하는 걸 습속으로 삼는 거."

나는 인상을 쓰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네 티가 촌스럽단 얘기를 하고 있다고. (279쪽)

 

 우와, 다시 옮겨 적으면서도 정말 속에서부터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이중언어를 쓰는 여자와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남자의 대화는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라도 읽고 싶지 않다. 내 기준에서는 두 인물 모두 곁에 두기 어려운, 아니 10분 이상 대화하기도 힘든 사람이다. 





 이것말고도 디테일한 '별로'가 곳곳에 나온다. 물론, 30대 후반 싱글 여성의 일상적인 내면을 현실적으로 그리려는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현실 중에서 특정한 현실을 그려내기로 선택하는 것이 이미 작가의 의도나 역량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울 것도 없고, 공감하기도 힘들고, 특별히 논쟁적이지도 않은 주인공을 1인칭 서술자로 내세운 건 아쉽다. 



 주인공 말고다 다른 인물들도 대체로 별 매력이 없다. 주인공 동생, 제부, 위에서도 언급된 태환, 흐물, 등등. 주변에 있을 법하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랄까. 그걸 보여주는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할 만은 없지만서도. 



 너무 나쁜 말만 쓴 것 같은데, 헤드헌터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점은 좋았다. 그리고 세태 소설답게 통속적이어서 쉽게 쉽게 잘 읽힌다. 그리고 2020년에 2013년에 나온 세태 소설을 읽으면서 문화나 의식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모던하트, 정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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