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6

‘묵공’, 한·중·일이 부르는 반전(反戰)의 노래 : 영화·애니 : 문화 : 뉴스 : 한겨레

‘묵공’, 한·중·일이 부르는 반전(反戰)의 노래 : 영화·애니 : 문화 : 뉴스 : 한겨레

‘묵공’, 한·중·일이 부르는 반전(反戰)의 노래

등록 :2016-09-26 16:23수정 :2016-09-26 

[이승희의 중국영화 이야기-마지막 회] 장지량의 <묵공>


영화 <묵공> 포스터처음 <묵공>(Battle of Wits, 2006)에 눈이 갔던 건 이색적인 제작경로 때문이었다. 중국철학을 전공한 일본 작가 사케미 켄이치가 소설 <묵공>을 집필했다. 모리 히데키는 이를 만화로 다시 그려내었다. 머나먼 홍콩 땅에서 만화 번역본을 접한 장지량 감독은 춘추전국 시대 묵가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영화화할 뜻을 품은 그는 일본 출판사 소학관과 판권을 계약했고, 한국과 일본의 저명 프로듀서 이주익과 이세키 사토로가 공동제작을 결정했다. 아시아 곳곳에서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게 한·중·일 3개국을 아우르는 다국적 프로젝트를 통해 영화 <묵공>은 탄생했다.

그런데 이 영화, 심상치 않다. 자체적으로 많은 모순과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그걸 해결하려고, 그 무수한 틈을 봉합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단언하건대, 바로 이 점이 <묵공>의 미덕이다.



영화 <묵공> 스틸컷묵가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춘추전국 시대를 누빈 제자백가, 유가나 도가, 법가에 비해 생소한 이름이다. 유가와는 특히 어울리지 않았다. 오래전 맹자는 묵가를 맹렬히 비판했다. “묵가가 겸애를 주장하는데, 이는 자기 어버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금수이다.”

영화에서 묵가의 고수로 나오는 혁리가 비웃음을 사는 장면이 있다. 화려한 곳에 기거하지 않으며, 물질을 탐하지 않고, 쾌락을 금기로 삼기에 음악조차 듣지 않는다. 넝마 한장 걸친 초라한 행색의 혁리는 ‘정상인'의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러나 ‘비공(非攻)'과 ‘겸애(兼愛)'로 집약되는 묵가의 철학은 작금의 시대에도 참조할 만하다. 묵가는 침략 전쟁을 반대한다. 인간을 두루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 묵가가 보기에 자기, 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다. 전쟁은 백해무익하다. 설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한들 이는 권력자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일 뿐이다. 백성들이 생명을 다할 만한 가치가 없다. 그래서 비공을 주장한다. 공격하지 않을 것. 하늘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늘을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말한다.

다분히 이상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래서 무력한가? 그렇지 않다. 묵가들은 전쟁 전문가이기도 하다. 반전사상을 가진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기술을 연마한다. 하여 분쟁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가 신출귀몰한 전술을 펼친다. 영화에서 10만 대군을 가진 조나라가 4000 인구의 양성을 치려 하자 혁리가 탁월한 방어술로 막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던가. 폭력의 사슬에 얽혀 들어가 또 하나의 전쟁 괴물이 탄생함이 아닌가. 하지만 ‘방어'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묵가는 이상적이지만 상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증오와 원한에 사로잡힌 자들이 나를 치려 할 때 나를 지켜야 할 의무는 오롯이 나에게 속한다. 대신 그 수단은 반드시 공격이 아닌 방어이어야 한다. 목적을 배반하는 수단은 결국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영화 <묵공> 스틸컷

이 영화가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묵공', 묵가의 공격으로 달고 있다는 점이다. 묵가에 대한 오독도, 이해 부족도 아니다. 제목의 역설이 이 영화에 빛을 더한다. 처음엔 혁리를 비웃던 백성들이 점차 그의 겸허함과 희생정신에 감복하기 시작한다. 양성의 왕은 위기감과 질투심에 혁리를 쫓아낸다. 전쟁고아들을 이끌고 묵묵히 떠나는 혁리. 공훈을 세웠으나 보답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실패자로 단정 지을 수 없다. 혁리는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삶을 이어나간다. 가여운 생명들을 지켜내야 하기에, 그리고 그것만이 가치로운 일이기에 후회도, 회한도 없다. 진정한 공격은 타자를 해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애초에 품었던 뜻을 고스란히 지켜나가는 것. 그것만이 참된 승리이다.

덧붙여야 할 혁리와 일열의 러브 스토리. 세월도 비껴가는 유덕화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관객 서비스랄까. 하지만 결코 소모적 장치는 아니다. <묵공>은 묵가에 대한 이야기이되 묵가에 대한 찬가는 아니다. 판빙빙이 열연하는 일열은 묵가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랑스러운 타자이다. 그녀는 자기의 사랑을 외면하는 혁리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을 더불어 사랑한다는 겸애의 논리가 한 사람의 사랑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모순이 아닌가. 혁리가 일열을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건 파행인가.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과연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 규율일 수는 없다. 일열이 제시하는 사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혁리에게 일열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준다.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이념을 넘어서는 사랑만의 고유한 힘이다.



영화 <묵공> 스틸컷

아시아에 감도는 갈등과 반목의 기운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남북 간의 전운은 이제 일상화되어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핵 보유를 주장하고 전쟁도 불사하자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전쟁은 단연코 죄악이다. ‘불상애(不相愛)', 서로 사랑하지 않고, ‘불상리(不相利)', 서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묵공>은 이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를 나지막이 전한다. 그래서 3개국 합작영화의 ‘평화'와 ‘반전' 메시지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장기적인 안목, 지혜로운 판단, 상생의 마인드가 절실한 때이다.


이승희 李勝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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