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 기득권’ 탈피 한목소리…“소신파 통해 민주당 쇄신을”
등록 :2022-06-09
임재우 기자
이재훈 기자
정치·사회 전문가 20명 심층 인터뷰
계파갈등·패권정치 넘어…다당제 정치개혁 등 약속지켜야
반대 위한 반대는 그만, 지지층 결집시킬 리더십 필요할 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 직업을 정치가라기보다 국회의원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국회의원이 아닌 삶은 상상하지 못하니 정치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 없어 보였습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김만권 경희대 교수는 <한겨레>와 한 심층 인터뷰에서 지난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 즈음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여럿 만난 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란 기득권에 취해 선거 승리에만 몰두하고 우리 사회 다양한 갈등을 조정해 민생을 바꾸는 ‘정치’의 본령을 잊은 듯 보였다는 것이다.
‘위선적 기득권’ 이미지 벗어라
지난 4~8일 <한겨레>의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각계 전문가 대다수는 ‘조국 전 장관 일가 의혹’을 민주당의 대선·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진 “이 모든 사태의 시작”(김만권 교수)으로 꼽았다. 자녀 입시를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7가지 스펙을 꾸며낸 조 전 장관 부부의 모습이 “가족이 어떻게 계급 재생산, 권력 재생산의 철저한 기반이 되는지” 보여줬고 “사람들이 권력화, 기득권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꿨다”(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모든 부모가 다 그런다는 식으로 구조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민주당이 원칙 없는 태도로 망가지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이 ‘자신의 범죄·비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운동권 아저씨’라는 ‘위선적 기득권’ 이미지를 고착
세대교체 위한 당내 성장시스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민주당=기득권 정당’이란 이미지를 깨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방선거 직전 ‘쇄신 카드’로 꺼내든 ‘586 용퇴론’은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측면에서 얼핏 이들의 진단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다만 이들 다수는 박 전 위원장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목표 설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세대가 바뀌면 변화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586 용퇴론’이 나온 건데,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청년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순치해온 탓에 민주당 내부에 교체될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진순 와글 이사장은 “주변에 586 용퇴라고 하면 그 자리를 채울 신진 세력이 있는지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민주당 권력층과 핵심 지지층이 폐쇄적 구조를 만든 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똘똘 뭉쳐서 방어하고 비판자들을 공격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는데 이 구조의 상층에 일부 586 정치인이 있고, 다음 세대의 정치 엘리트들도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엔 초선 의원들이 개혁적인 목소리로 당의 외연을 확장해왔는데, 민주당의 ‘처럼회’ 같은 초선 의원 모임은 도리어 전도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 교수는 “(검찰개혁 강행을 주도한) 김용민 의원이 1976년생인데, 그분이 (586보다) 더하다”며 “1970~80년대 출생 민주당 의원들에게 세대 차원에서 기대할 만한 건 없다”고 말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일부 초선 의원들이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온라인 의제 따라가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이에 무조건적인 ‘586 용퇴론’ 대신 ‘586 쓸모론’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586이 가지고 있는 기회 자원을 투자해서 당내 성장 시스템과 인재팀, 조직문화팀 등 혁신하는 체계를 만드는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586이 권한과 책임을 젊은 사람들에게 위임해 혁신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586이 397을 못 만들어낸 것을 부끄러워 해야”(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계파 투쟁 대신 소신 투쟁을
민주당이 맞닥뜨리고 있는 계파 갈등과 패권 정치도 기득권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결국 공천 싸움이고 당권 싸움”(장현주 전 민주당 민원법률국 변호사)이라는 점에서 “계파의 이익을 억누르고 당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조정”(김준우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계파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며 “계파 경쟁을 당의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경쟁으로 만들고 현장에서 정책 성과를 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형성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로베이스부터 바꾸지 않는 한 국민의힘과 표를 나눠 먹으며 계속 집권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권명아 교수)고 보는 것이다. 김만권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인물 중심의 정치는 민주화 시대의 산물”인데 “민주화를 넘어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온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은 추구하는 중요한 정책들을 중심으로 당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의 주류와 다른 색깔을 갖고, 소신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평론가는 조응천·박용진 의원이나 김해영·금태섭 전 의원 등 민주당 내 ‘소신파’로 불리는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단순히 올곧은 발언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소신파들이) 사회경제적 의제나 정치개혁 등을 내걸고 대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당을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순 소장도 “쓴소리하는 사람을 귀하게 대우해야 (잘못된 정책이라도) 당론으로 무더기로 왔다 갔다 해왔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소신 있는 의원들도 이제 상황 탓만 하지 말고 공동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재정의…약속한 건 지켜야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민주당이 추구해온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시대에 맞게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혜민 대표는 “지난 몇년 동안 민주당을 지켜보면서, 부동산 문제나 20대 여성 문제 등에서 ‘저 사람들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에 나는 없구나’ 박탈감 같은 걸 느꼈다”며 “민주당이 추구하는 서민·중산층은 어떤 모습인지 당내 합의를 이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다섯 가지 정책의제를 담은 보기를 제시하며, 이들 전문가들에게 민주당이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정책 두 가지를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보기는 △차별금지법 등 구조적 차별 철폐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 △국가책임돌봄제 등 복지국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 노동개혁 △수사-기소권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검찰개혁 마무리 등이었다.
20명 가운데 가장 많은 9명이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을 꼽았다. ‘복지국가’와 ‘차별금지법 제정’(각각 8명), ‘노동개혁’(7명)이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을 꼽은 건, “정치개혁의 전제는 민주당의 기득권 내려놓기에 있기 때문”(장현주 변호사)이기도 하다. 김준우 변호사는 민주당이 거듭 정치개혁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것, 의석을 몰아줬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눈에 띄는 건, 민주당이 사활을 걸었던 ‘검찰개혁 마무리’는 단 1명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진욱 교수는 검찰·언론 개혁은 “물질적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된 중산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할 만한 이슈”라고 말했다. 홍혜은 공덕동 하우스 대표는 “민주당이 (최근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당색만 다를 뿐 똑같은 공약을 내걸었다”며 “차별금지법 같은 중도 리버럴들의 의제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70석 거대 야당, ‘반대를 위한 반대’ 지양하라
오만한 기득권 정당의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선, 170석 거대 야당으로서 대립의 정치나 반대만 하는 정치가 전략이 되는 상황은 자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는 더 이상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꼭 필요한 정책은 여당과 끝까지 협의하고, 합의에 기초한 입법 추진을 반복적으로 시도하면서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최근 쟁점인 21대 국회 하반기 법제사법위원장 배분권의 경우 민주당이 애초부터 힘의 논리로만 접근하며, 기존의 약속을 뒤엎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특히 민주당이 다수 여당으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을 땐 하지 않았던 법사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이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지, 지금 당장은 법사위의 과도한 권한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의명분 앞세운 리더십 세워라
이런 의제와 전략의 성패는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렸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현재 민주당이 계파 갈등에 취약한 것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 이상의 강력한 비전으로 지지자와 당원을 설득하지 못하는 ‘약한 리더십’ 탓이라는 것이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계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다 상위의 가치 아래 당원과 의원을 통합시킬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고,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지지층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해야할 가치에 따라” 지지층을 결집시켜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의원이 8월 전당대회에 정말 당권 도전을 할 거라면 ‘역할을 피하지 않겠다’와 같이 뜻이 불투명하고 비겁한 메시지만 낼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민주당 정치와 다 싸우겠다는 식의 큰 명분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팬덤정치’ 역시 ‘국가적 의제’를 발굴하는 리더십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손민석 작가는 “당분간 민주당에는 수도권 중산층 중심의 디지털 포퓰리즘 기세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며 “이를 제어하고 지역정치에서부터 정당 조직을 정비한 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논의를 중앙 정치로 끌어올려 국가적 의제로 바꿀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순)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 직업을 정치가라기보다 국회의원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국회의원이 아닌 삶은 상상하지 못하니 정치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 없어 보였습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김만권 경희대 교수는 <한겨레>와 한 심층 인터뷰에서 지난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 즈음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여럿 만난 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란 기득권에 취해 선거 승리에만 몰두하고 우리 사회 다양한 갈등을 조정해 민생을 바꾸는 ‘정치’의 본령을 잊은 듯 보였다는 것이다.
‘위선적 기득권’ 이미지 벗어라
지난 4~8일 <한겨레>의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각계 전문가 대다수는 ‘조국 전 장관 일가 의혹’을 민주당의 대선·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진 “이 모든 사태의 시작”(김만권 교수)으로 꼽았다. 자녀 입시를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7가지 스펙을 꾸며낸 조 전 장관 부부의 모습이 “가족이 어떻게 계급 재생산, 권력 재생산의 철저한 기반이 되는지” 보여줬고 “사람들이 권력화, 기득권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꿨다”(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모든 부모가 다 그런다는 식으로 구조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민주당이 원칙 없는 태도로 망가지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이 ‘자신의 범죄·비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운동권 아저씨’라는 ‘위선적 기득권’ 이미지를 고착
세대교체 위한 당내 성장시스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민주당=기득권 정당’이란 이미지를 깨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방선거 직전 ‘쇄신 카드’로 꺼내든 ‘586 용퇴론’은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측면에서 얼핏 이들의 진단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다만 이들 다수는 박 전 위원장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목표 설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세대가 바뀌면 변화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586 용퇴론’이 나온 건데,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청년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순치해온 탓에 민주당 내부에 교체될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진순 와글 이사장은 “주변에 586 용퇴라고 하면 그 자리를 채울 신진 세력이 있는지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민주당 권력층과 핵심 지지층이 폐쇄적 구조를 만든 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똘똘 뭉쳐서 방어하고 비판자들을 공격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는데 이 구조의 상층에 일부 586 정치인이 있고, 다음 세대의 정치 엘리트들도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엔 초선 의원들이 개혁적인 목소리로 당의 외연을 확장해왔는데, 민주당의 ‘처럼회’ 같은 초선 의원 모임은 도리어 전도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 교수는 “(검찰개혁 강행을 주도한) 김용민 의원이 1976년생인데, 그분이 (586보다) 더하다”며 “1970~80년대 출생 민주당 의원들에게 세대 차원에서 기대할 만한 건 없다”고 말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일부 초선 의원들이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온라인 의제 따라가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이에 무조건적인 ‘586 용퇴론’ 대신 ‘586 쓸모론’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586이 가지고 있는 기회 자원을 투자해서 당내 성장 시스템과 인재팀, 조직문화팀 등 혁신하는 체계를 만드는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586이 권한과 책임을 젊은 사람들에게 위임해 혁신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586이 397을 못 만들어낸 것을 부끄러워 해야”(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계파 투쟁 대신 소신 투쟁을
민주당이 맞닥뜨리고 있는 계파 갈등과 패권 정치도 기득권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결국 공천 싸움이고 당권 싸움”(장현주 전 민주당 민원법률국 변호사)이라는 점에서 “계파의 이익을 억누르고 당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조정”(김준우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계파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며 “계파 경쟁을 당의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경쟁으로 만들고 현장에서 정책 성과를 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형성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로베이스부터 바꾸지 않는 한 국민의힘과 표를 나눠 먹으며 계속 집권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권명아 교수)고 보는 것이다. 김만권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인물 중심의 정치는 민주화 시대의 산물”인데 “민주화를 넘어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온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은 추구하는 중요한 정책들을 중심으로 당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의 주류와 다른 색깔을 갖고, 소신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평론가는 조응천·박용진 의원이나 김해영·금태섭 전 의원 등 민주당 내 ‘소신파’로 불리는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단순히 올곧은 발언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소신파들이) 사회경제적 의제나 정치개혁 등을 내걸고 대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당을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순 소장도 “쓴소리하는 사람을 귀하게 대우해야 (잘못된 정책이라도) 당론으로 무더기로 왔다 갔다 해왔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소신 있는 의원들도 이제 상황 탓만 하지 말고 공동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재정의…약속한 건 지켜야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민주당이 추구해온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시대에 맞게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혜민 대표는 “지난 몇년 동안 민주당을 지켜보면서, 부동산 문제나 20대 여성 문제 등에서 ‘저 사람들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에 나는 없구나’ 박탈감 같은 걸 느꼈다”며 “민주당이 추구하는 서민·중산층은 어떤 모습인지 당내 합의를 이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다섯 가지 정책의제를 담은 보기를 제시하며, 이들 전문가들에게 민주당이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정책 두 가지를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보기는 △차별금지법 등 구조적 차별 철폐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 △국가책임돌봄제 등 복지국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 노동개혁 △수사-기소권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검찰개혁 마무리 등이었다.
20명 가운데 가장 많은 9명이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을 꼽았다. ‘복지국가’와 ‘차별금지법 제정’(각각 8명), ‘노동개혁’(7명)이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다당제 정치구조 확립 등 정치개혁’을 꼽은 건, “정치개혁의 전제는 민주당의 기득권 내려놓기에 있기 때문”(장현주 변호사)이기도 하다. 김준우 변호사는 민주당이 거듭 정치개혁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것, 의석을 몰아줬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눈에 띄는 건, 민주당이 사활을 걸었던 ‘검찰개혁 마무리’는 단 1명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진욱 교수는 검찰·언론 개혁은 “물질적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된 중산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할 만한 이슈”라고 말했다. 홍혜은 공덕동 하우스 대표는 “민주당이 (최근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당색만 다를 뿐 똑같은 공약을 내걸었다”며 “차별금지법 같은 중도 리버럴들의 의제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70석 거대 야당, ‘반대를 위한 반대’ 지양하라
오만한 기득권 정당의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선, 170석 거대 야당으로서 대립의 정치나 반대만 하는 정치가 전략이 되는 상황은 자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는 더 이상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꼭 필요한 정책은 여당과 끝까지 협의하고, 합의에 기초한 입법 추진을 반복적으로 시도하면서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최근 쟁점인 21대 국회 하반기 법제사법위원장 배분권의 경우 민주당이 애초부터 힘의 논리로만 접근하며, 기존의 약속을 뒤엎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특히 민주당이 다수 여당으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을 땐 하지 않았던 법사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이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지, 지금 당장은 법사위의 과도한 권한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의명분 앞세운 리더십 세워라
이런 의제와 전략의 성패는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렸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현재 민주당이 계파 갈등에 취약한 것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 이상의 강력한 비전으로 지지자와 당원을 설득하지 못하는 ‘약한 리더십’ 탓이라는 것이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계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다 상위의 가치 아래 당원과 의원을 통합시킬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고,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지지층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해야할 가치에 따라” 지지층을 결집시켜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의원이 8월 전당대회에 정말 당권 도전을 할 거라면 ‘역할을 피하지 않겠다’와 같이 뜻이 불투명하고 비겁한 메시지만 낼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민주당 정치와 다 싸우겠다는 식의 큰 명분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팬덤정치’ 역시 ‘국가적 의제’를 발굴하는 리더십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손민석 작가는 “당분간 민주당에는 수도권 중산층 중심의 디지털 포퓰리즘 기세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며 “이를 제어하고 지역정치에서부터 정당 조직을 정비한 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논의를 중앙 정치로 끌어올려 국가적 의제로 바꿀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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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명아 동아대 교수(한국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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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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