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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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
최근 독일 벤츠 자동차 회사에서 최고급 모델인 ‘마이바흐’ 100주년을 맞아 초호화 승용차 ‘S680’ 한정판 100대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한다고 한다. 한국에 17대를 배정했다.
벤츠는 한국을 적어도 세계 5대 부자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정도면 일본보다 더 대접하는 게 아닐까?
최저 임금은 OECD 국가 가운데 11위에 불과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 부자 나라로 인정받는 데에도, 이번 정부는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에게는 감세를, 하루벌이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은 억제하려고 한다는 뉴스가 있다.
이런 부의 양극화를 심화하려는 기사를 보자 먼저, 내가 조금 친분이 있는 홍세화 선생이 생각났다.
홍세화 선생은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들을 돕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는 시민모임 '마중'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1979년, 홍세화 선생은 회사일로 프랑스에 출장 갔을 때 한국에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위원회) 사건'이 터졌다.
남민전의 일원이었던 홍선생은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이주노동자로 생활했다.
1999년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고 2002년에는 '영구 귀국'했다.
그때부터 ‘자유인’으로 살면서 언론에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언제나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다뤘다.
1995년, 홍세화 선생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을 낸 뒤 한국에서 주목받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톡톡 튀는 발언으로 언론에서 인기를 얻으려는 그 흔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엄밀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말과 글을 정제하여 우리 사회 문제점을 또렷하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진정한 <지성인>으로 나는 본다.
1947년생인 홍세화 선생은 젊어서는 ‘남민전’의 통일 전사였고, 만 75세인 지금도 실천 진보운동의 최전선에서 전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 』은 지난 5월 30일자 오마이뉴스의 홍세화 인터뷰 기사를 발췌 요약한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는 문장은 인터뷰 기자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하면서 써준 문장이라 한다. 이는 곧 홍세화 선생 자신의 삶이 아닐까?
아직도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고 있는 홍세화 선생에게 현 시국의 인식을 들어보자.
『홍세화 선생은 노동자·서민의 고통을 우려했고, 그들을 외면한 민주당에게 회의감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상대방을 반대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내는 데에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고 진단했다.
'진보 세력'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그는 솔직했다. "겸손하지 못했고, 학습이 부족했다."라고 성찰했다.
“구체적인 민생 문제인 일자리, 부동산·집, 교육 문제에서 실패했죠. 부동산은 완전히 실패, 교육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고요. 일자리 문제에서도 최저임금 상승 등 뭔가를 많이 해보려고 했지만 역풍이 불자 바로 손을 놔버리면서 국민의힘 세력과 차별성을 두지 못했던 것이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결국 민주당에게 고개 돌리게 하는 결과를 빚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의회와 지방 권력까지 장악했다. 군사정권을 제외한 역대 최강의 힘을 가지고도 개혁에 실패한 원인을 폭넓은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국제 정치를 분석하면서 ‘브라만 좌파(지식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산 엘리트)’가 교대 집권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피케티는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로 인해 전반적인 우경화 현상이 일어난 것을 노동자 정당이 실종된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한국은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 독재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나의 주註: 1981년과 1988년 대선에서 미테랑 대통령을 연이어 배출해 14년을 집권한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인 사회당은 이번 대선에서 12명 후보 중 1.75% 득표율로 9위를 하여 몰락했다. 사회당은 뼈 깎는 개혁이 필요하지만 현재 당내 내분도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우리 민주당의 미래는?)
그나마 민주당이 탈바꿈해서,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려면? 이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국민의힘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세력'이고, 민주당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세력'이라고 표현해요. 저는 586이 20대 때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데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서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한 상황에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고, 실천도 잘 보이지 않아요.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하려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이 그나마 야당으로서 노동자·서민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보정당의 세력이, 지지도가 점차 약화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보았다.
"민주노동당 시절에 비해서 퇴보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상처 등이 작용하는 것도 있을 텐데, 저도 그 안에 있는 한 명으로서 책임 의식을 갖고 있고요. 주체적 역량의 측면에서 자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 과정에는 비판적인 안목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메이데이' 등에서 시위를 한 경험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라면서도 정작 자본주의 공부는 안 하고요.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 인식이 너무 결여됐습니다. 좌파라고 하지만 그런 분들이 다 '브라만 좌파'인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합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이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좀 예민한 이야기지만, '노무현 효과'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분명 수구세력과 검찰이 적대와 분노로 만들었지만,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역시 '성역화' 됐다는 겁니다. 그것이 대중에게는 진취적이고 조금 더 사회주의적인 것에 대해서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죠."
(나의 주; 이렇게 이야기하니, 친노‧친문 그룹에 인기가 없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점에는 이렇게 답했다.
"크게 두 가지, '겸손하지 못함'과 '학습 부족'의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모순', 이를테면 '계급 모순', '민족 모순' 등에 대해서 '이것만 해결되면 다른 모순도 다 해결된다'는 배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주장하는 바가 옳은 만큼 상대방의 주장도 옳은 부분이 있다는 점, 내 주장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한 열린 자세가 너무 부족했어요.
또 '학습 부족'의 측면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적이거나 비판적인 안목을 갖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안고 어린 시절부터 고민 속에서 생각을 형성한 게 아니라, 그저 어떤 선배를 만나고 그 선배를 통해서 정파까지 정해졌잖아요. 그러니까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총체성, 보편성이 결여돼 있는데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를 않아요.
나아가 민주화 세력은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요. 선배나 학회 동아리를 통해서 소위 '의식이 깨어났다'는 건데, 정작 그 상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지적 우월성, 윤리적 우월성까지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학습을 멈춰 버리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을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봤어요. 심지어는 극복해야 할 기득권보다 동료들에게 더 적대감을 표출했고요.
물론 진보 정당 운동, 진보 노동 운동 모두 너무 어려운 물적 토대가 문제였던 것은 맞죠. 몇 안 되는 자리를 다퉈야 할 때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서로의 적대감을 극복해야겠죠."
(나의 주; 이렇게 말씀하시니 편협한 진보 세력에게도 인기가 없다.)
사회의 주요 소통 창구로 등장한 SNS를 이렇게 보고 있다.
“한국은 지금 '설득은 안 되고 선동은 가능한 사회'인데 그런 부분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SNS가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론이나 소통을 하기 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증폭시키고 진영논리를 강화시키면서, 공론장으로써의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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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진보세력의 한계 극복’, ‘청년 진보세력’, ‘진보 언론’에 대해 많은 견해를 밝혔다.
더 많은 견해를 원한다면 오마이뉴스의 아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10여 년 전, 홍세화 선생이 대구 어떤 후배의 시장 선거 출정식에서 한 찬조 연설을 들었다.
“정치는 고귀한 것입니다.”란 주제의 연설은 내게 감동적인 인상으로 깊게 남아 있다.
그 뒤 ‘고귀한 정치’란 개념을 내가 할 수 있는 정치 행위의 모토로 삼았다.
몇몇 인연으로 홍세화 선생 강의를 듣고 몇 번 술자리를 가졌다.
누구의 말이든 듣는 모습은 진지하셨고, 누구에게나 절제된 말씀을 소탈하게 하셨다. 술 한 잔 하시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신다.
우리 시대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을 알은 것은 내 생애의 큰 행운이다.
50.4%.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후보, 진보정당 후보들이 받은 득표율을 합한 수치다. 여전히 '개혁'과 '진보 정치'를 소망하는 과반 이상의 국민들이 지향하고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본다.[편집자말] |
▲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인권연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정권 출범에 대한 우려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이 정권을 빼앗긴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
ⓒ 유성호 |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
홍세화가 올해 낸 대담집인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를 인터뷰 장소에 들고 가 사인을 받았다. 그가 적어준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 홍세화의 삶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난민이었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었던 그는 한국에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며,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펴내 한국 사회에 '톨레랑스'(관용) 열풍을 일으켰다.
1999년 5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23년 전에 그는 한국 땅을 밟았다. 2002년에는 '영구 귀국'을 했다. 시대는 변해 있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민주화운동'이라는 훈장도 있었다. 경기고-서울대 출신이라는 소위 'KS마크'도 유효했다. 하지만 23년 동안 그는 울퉁불퉁한 길만 골라 다녔다. 잡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던 19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웃사이더'다.
동시에 그는 '자유인'으로 산다. 그래서 성역이 없다. 수많은 칼럼과 책을 집필하면서 언제나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를 겨눠왔다. 원외 진보정당 '진보신당'의 대표(현 노동당 고문),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들을 돕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는 시민모임 '마중'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76살, 여전히 그는 최전선에 있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홍세화를 만났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또렷하고 정제된 언어로 정치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반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냈으나,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엄밀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홍세화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따른 사회 공공성 악화와 이로 인한 노동자·서민의 고통을 우려했고, 민주당의 모습에는 여전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진보 세력'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그는 솔직했다. "겸손하지 못했고, 학습이 부족했다"라고 성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 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 사회공공성 침식 가장 우려되는 부분"
▲ 홍세화 “윤석열 정부, 왼손 자르고 오른손은 '검찰'로 강화” | |
ⓒ 유성호 |
- 요즘엔 비교적 대외적 발언이 뜸하셨던 것 같습니다. 언론 인터뷰도 거의 안 하셨고, 열심히 하시던 트위터도 끊으셨습니다.
"특별히 인터뷰를 안 한 건 아니에요. 정리가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몇 번 '나중에 한다'고 거절하긴 했지만요. 그리고 제 문제의식은 이송희일 감독과 같이 낸 대담집(<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에서 어느 정도 피력이 됐기 때문에 제 생각을 사회에 소통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SNS 같은 경우는, 한국은 지금 '설득은 안 되고 선동은 가능한 사회'인데 그런 부분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SNS가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론이나 소통을 하기 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증폭시키고 진영논리를 강화시키면서, 공론장으로서의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진 않아요."
- 어느덧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우려되는 지점이 있으시다면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취약하게나마 일궈냈던 사회 공공성이 침식당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아서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다른 나라에서는 다 이미 버린 카드가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다시 이거를 또 붙잡을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 때 경제 정책을 입안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라고 하니까 답답하죠. 지금 성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증세를 해야 하는데 증세는 안 할 거고, 결국 노동의 유연화, 구조조정 등으로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칼날이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 우려가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정부론'에 끌리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국가는 오른손과 왼손이 있는데, 오른손은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경찰·검찰·군대·고위 공무원 이런 쪽이라면 국가의 왼손은 교육·의료·복지 이런 쪽이거든요. 지금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국가의 축소는 정확히 얘기해서는 국가의 왼손은 잘라내고 오른손은 강화시키는 거예요. 피에르 부르디외가 경계했던 것과 정확히 맞물려있고요. 앞으로 왼손은 잘라내고 오른손은 검찰 중심으로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촛불 항쟁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문재인 정부가 이뤄야 했던 '진전'이 거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는 실망감이 워낙 컸죠. 조국 사태를 통해서 보여준 '내로남불'은 국민의힘과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가져오게 만들기도 했고요. 또 권위주의 독재 시절의 인물이나 상황을 전제하고 그 속에서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치적인 세력화를 하기에는 시기가 많이 지났잖아요.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반대'는 무척 잘하지만 뭔가를 이루는 것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민생 문제에서는 일자리, 부동산·집, 교육 문제에서 실패했죠. 부동산은 완전히 실패. 교육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고요. 일자리 문제에서도 최저임금 상승 등 뭔가를 많이 해보려고 했지만 역풍이 불자 바로 손을 놔버리면서 국민의힘 세력과 차별성을 두지 못했던 것이 결국 민주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하는 결과를 빚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문재인 정부는 분명 역대 민주당 정부 중 가장 힘 있는 정부였습니다다. 그럼에도 개혁적이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대중 정부는 김종필(자민련)과 힘을 합쳐야 했고, 노무현 정부도 정몽준 (국민통합21)과의 해프닝도 겪어야 할 만큼 독자적인 힘으로 민주정권을 세우기 어려웠던 시절을 겪어왔습니다. 정치 지형이 그만큼 쉽지 않은 탓이었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인 힘으로 권력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까지 차지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계급'의 문제가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국제 정치를 분석하면서 '브라만 좌파'(지식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산 엘리트)가 교대 집권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피케티는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로 인해 전반적인 우경화 현상이 일어난 것을 노동자 정당이 실종된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한국은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 독재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 그렇다면 민주당이 탈바꿈해서,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의 색채를 띨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국민의힘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세력'이고, 민주당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세력'이라고 표현해요. 저는 586이 20대 때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데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서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화된 상황에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고, 실천도 잘 보이지 않아요.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하려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이 그나마 야당으로서 노동자·서민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비관적 전망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계급적인 지향 역시 '프티 부르주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국 사태 때 '안 그런 사람 어디 있냐' 식의 태도를 취한다든가, 서초동 집회에서 '우리가 조국이다'를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그래요."
"진보세력, '겸손하지 못함'과 '학습 부족'이 문제"
▲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 | |
ⓒ 유성호 |
- 문제는 민주당의 대안이 '진보정당'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진보정당의 세력이, 지지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민주노동당 시절에 비해서 낙후되고, 퇴보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상처 등이 작용하는 것도 있을 텐데, 저도 그 안에 있는 한 명으로서 책임 의식을 갖고 있고요. 주체적 역량의 측면에서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교육 과정에서는 비판적인 안목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메이데이' 등에서 시위를 한 경험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라면서도 정작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는 안 하고요.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결여돼 있습니다. 좌파라고 하지만 그런 분들이 다 '브라만 좌파'인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이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참 어렵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좀 예민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노무현 효과'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분명 수구세력과 검찰에 대한 적대와 분노도 만들었지만,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역시 '성역화' 됐다는 겁니다. 그것이 대중에게는 진취적이고 조금 더 사회주의적인 것에 대해서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죠."
- 진보정당에 쭉 몸을 담아오셨고, 진보신당 대표까지 역임하습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될 점을 꼽아보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겸손하지 못함'과 '학습 부족'의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모순', 이를테면 '계급 모순', '민족 모순' 등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순에 대해서 '이것만 해결되면 다른 모순도 다 해결된다'는 식의 배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주장하는 바가 옳은 만큼 상대방의 주장도 옳은 부분이 있다는 점, 내 주장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한 열린 자세가 너무 부족했어요.
또 '학습 부족'의 측면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적이거나 비판적인 안목을 갖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안고 어린 시절부터 고민 속에서 생각을 형성한 게 아니라, 그저 어떤 선배를 만나고 그 선배를 통해서 정파까지 정해졌잖아요. 그러니까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총체성, 보편성이 결여돼 있는데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를 않아요.
나아가 이건 민주화 세력도 포함되지만,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요. 선배나 학회 동아리를 통해서 소위 '의식이 깨어났다'는 건데, 정작 그 상태의 한계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지적 우월성, 윤리적 우월성까지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습이 멈춰 버리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 전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을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봤어요. 심지어는 극복해야 하는 기득권보다 동료들에게 더 적대감을 표출했고요. 물론 진보 정당 운동, 진보 노동 운동 모두 너무 어려운 물적 토대가 문제였던 것은 맞죠. 몇 안 되는 자리를 다퉈야 할 때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극복해야겠죠."
- 그렇다면 과거 '진보 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청년 세대에서의 '진보 세력' 구성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잘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있어서 저 역시 물음표인 부분이긴 합니다. 다만 이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계층화 내지는 계급화에 가까운 인식이 가능해진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과거에는 경제 총량이 늘어나고, 계층의 이동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입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성장은 둔화되고 계급은 부동산에 의해 갈리는 구도가 나타나니,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걔들(상층·중상층)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또 한동훈·조국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스펙 쌓기' 등을 보면 더더욱 계급적 인식의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서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한동훈과 조국은 적대하는 것 같지만, 2030이 보기에는 '뭐가 다른거야' 싶은 거예요. 삶의 패턴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하니까요. 그 지점에서 계급의식이 탄생하길 기대하는 겁니다."
- 진보정치의 희망이 조금은 보이는 상황이라고 판단하시나요?
"저는 국내·국제 상황을 살펴볼 때, 단기간 안에 변혁적인 국면이 조성되어서 진보 정치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굳건히 세워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진 않아요. 불평등은 심화가 되겠지만,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작용도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뚫고 나올만한 역량은 조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혁적인 국면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 갑자기 촉발될 수도 있으니, 불가능성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 그런 심정입니다."
- 그렇다면 가능성이 보일 때까지 어떻게 버텨나가야 하고, 또 어떻게 싸울 준비를 해야 할까요?
"저는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의 '우리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이건 일상 자체를 바꾸는 문제잖아요. 일상에 담겨 있는 권위주의적인 요소, 타성 등을 바꿔나가고, 그러한 가치관을 일상에서 몇 사람이라도 함께 공유하는 데서 오는 돈독함과 연대 의식이 우리를 지키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의 시민들, 고객·소비자에 더 가까워... 시민성 형성 중요"
▲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 | |
ⓒ 유성호 |
- 정당인인 동시에, 한겨레의 편집위원을 지내고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을 맡은 언론인이시기도 합니다. 한국 언론, 특히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한겨레>에 유독 강한 비판을 많이 하셨는데, 왜 그러셨나요?
"아무래도 제 성향 탓인지는 몰라도 언론이 전반적으로 '품격'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는 (입법·행정·사법에 이은) 제4부라고 했는데, 4부로서 갖춰야 할 품격이 소멸되어 가고 있어요. 이를테면 <한겨레>를 계속 구독하고 있지만 1면 제목 보고도 실망을 많이 해요. 1면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 경우가 많고, 그게 어떤 진영주의에 갇힌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정치의 팬덤화라는 게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이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든다/안 든다'를 따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언론에도 그들의 주장이 관철되고 있다는 거예요. 언론은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석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민들이) 비판적 안목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결국 (진보 언론이) '조국 사태' 때를 비롯해서 지난 정권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것이 보수정권이 탄생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선생님도 칼럼 때문에 비판을 많이 들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독자나 회원의 압력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한겨레>의 경우 독자의 절대다수가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한겨레 칼럼 쓰면서 자기 검열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자기 검열을 해야만 했어요. 진보 언론이 (정파적인) 그런 위치에 머무르게 되면 이제 사회의 진보적 움직임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려는 진보언론의 입장에서는, 독자라는 존재를 무시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은데요.
"시민성(citizenship)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볼 때 시민성의 핵심은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인데, 한국의 시민성이 제대로 형성이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학교 교육에서 일단 이뤄지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잠을 자도 교사가 깨우지 않아요. 이게 시민성의 부재예요. 한국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한 유럽의 교실에서도 그러진 않거든요.
시민성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만 그에 따르는 책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들은 고객·소비자에 조금 더 가까워보입니다. 그러니까 매체의 독자이거나 시민단체의 회원이 보편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조금만 안 들면 바로 내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건 '고객'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그 고객에 휘둘릴 게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이 시민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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