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영화 2편 때문에… 중국-일본 신경전
hiasiaro2009.05.19 ( 09:38 )
기사입력 2009-05-19 09:59
영화 ‘난징!난징!’. 주인공을 참수하려는 일본군.
난징대학살 다룬 전쟁 영화 ‘난징!난징!’ ‘라베일기’ 돌풍
중국인 반일감정 자극… 아소 총리 첫 국빈방문도 썰렁
두 편의 전쟁영화가 중·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영화는 각각 지난 4월 22일과 29일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난징!난징!’과 ‘라베일기’. 이들 영화는 극장가 흥행열풍을 주도하면서 중·일 양국의 외교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 다 중국인들의 아픈 기억인 ‘난징대학살’을 스크린에 되살려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라베일기’ 개봉일이던 지난 4월 29일부터 시작된 중·일 양국 정상회담은 시종일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는 것이 베이징 외교가의 전언이다. 4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만난 아소 일본 총리는 “역사문제를 합당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훈수를 듣고 일본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번 아소 총리의 중국 방문은 지난해 9월 총리 취임 후 첫 번째 국빈방문이었다.
‘난징!난징!’
개봉 10일 만에 220억원 수입 “일본군에 면죄부 줬다” 논란도
중·일 관계에 처음 불을 댕긴 영화는 지난 4월 22일 개봉된 영화 ‘난징!난징!(南京!南京!)’이다. 중국 루촨(陸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자행된 난징대학살을 정면에서 다룬 영화다.
영화에는 일본군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양민을 집단학살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펼쳐진다. ‘세계 최대 학살사건인 난징대학살이 발생한 것은 중국 민족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메가폰을 잡은 루촨 감독은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홍콩 금상장 아시아영화상(2006년)과 대만 금마장 작품상(2005년)을 수상한 떠오르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난징!난징!’은 독립영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데다 역사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뤄 당초 흥행여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이 영화는 흑백화면에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22일 중국 전역에서 동시 개봉된 이후 기대이상의 흥행성적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노동절 3일 연휴를 지나면서 영화는 개봉 10일 만에 1억1000만위안(약 22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이는 제작비 7500만위안(약 15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또 전라(全裸)의 일본군 위안부가 대거 등장하는 등 선정성 논란까지 가세하자 영화는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싼 영화관람료 때문에 불법 다운로드나 해적판 CD를 통해 최신 영화를 관람하는 중국의 영화 관람 행태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난징대학살을 다룬 영화지만 정작 주인공은 일본 군인이기 때문이다. 양민학살 명령을 받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한 일본군인이 중국인 포로를 탈출시키고 스스로 자살한다는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다. 때문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30만 중국인을 살해한 일본군에게 왜 인성(人性)을 부여하나, 이는 30만 중국인을 화나게 하는 것’ ‘난징대학살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시각도 필요하다’ ‘백인참(百人斬·100명의 머리를 먼저 베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 사건이 빠져있는 등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라베일기’
실존인물로 ‘중국판 쉰들러리스트’ 독일 감독 메가폰… 日선 상영 취소
영화 ‘난징!난징!’의 뒤를 이어 지난 4월 29일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라베일기(拉貝日記)’도 마찬가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라베일기’는 ‘난징!난징!’과 마찬가지로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당시 실존인물이던 ‘존 라베(John Rabe)’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당시 지멘스(Siemens) 난징 지사장이자 나치당원이던 라베는 그의 신분을 이용해 피란민 대피구역인 ‘안전구(安全區)’를 설치해 25만명이 넘는 중국인의 목숨을 구한 인물이다. 당시 사건으로 라베는 ‘살아있는 부처(生佛)’라는 소리를 들었다. 중일전쟁 당시 독일이 일본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영화 속에는 라베가 나치완장을 차고 난징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는 ‘난징!난징!’과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되면서 잊혀져 있던 난징대학살에 대한 중국 사회의 논란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흥행수입에도 탄력이 붙었다. ‘라베일기’는 개봉 3일 만에 3000만위안(약 60억원)이 넘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렸다. 이는 개봉 10일 만에 1억1000만위안의 수입을 올린 ‘난징!난징!’과 거의 비슷한 속도다. 특히 개봉일이 공교롭게도 아소 다로 일본 총리의 방중기간과 겹쳐 흥행몰이에 도움이 됐다. 노동절 3일 연휴, 5·4운동 기념일과도 맞물리며 장기상영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의 멀티플렉스 극장가에는 영화 ‘라베일기’와 ‘난징!난징!’이 거의 모든 스크린을 양분하고 있다. 현지 극장주들은 두 영화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크린 배분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 언론과 네티즌들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 두 영화의 박스오피스 경쟁에서 누가 이길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네티즌은 “둘 다 좋은 영화지만 중국인이 감독한 ‘난징!난징!’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베일기’는 독일인 플로리안 갈렌베르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가 인기를 끌자 현지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난징!난징!’과 ‘라베일기’를 비교 분석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 네티즌은 “존 라베가 실제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한 ‘라베일기’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지만, 학살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 현지 언론은 “‘난징!난징!’은 역사의 무거움을 잘 표현했고, ‘라베일기’는 인간의 감동을 이끌어냈다”며 두 영화에 모두 별점 4점을 부여했다. ‘중국판 쉰들러리스트’라 불리는 ‘라베일기’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4월 9일 ‘존 라베-난징의 굿맨’이란 제목의 책으로 먼저 그 내용이 소개됐다. 일본에서는 시사회와 상영이 모두 취소됐다.
■ 난징대학살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南京)을 점령한 일본군이 벌인 대량 학살 사건. 일본군은 1937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약 40일 동안 부녀자를 강간하고 약 3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기관총, 소총, 일본도 등으로 무차별 학살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난징대학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중국군 패잔병에 의한 소행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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