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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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0,500원
284쪽
편집장의 선택
"말이 좋아 공화국이지 이대로는 지옥이다"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논쟁과는 별개로 한국사회의 현실은 늘 성장 우선이었다. 단기간 고성장을 목표로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에 사회의 역량을 집중했고, 다행히 성장의 목표는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성장에 힘을 모두 쏟은 탓인지, 아니면 너무 높은 곳에 올랐기에 아래가 보이지 않았는지, 애초에 이야기하던 분배는 사라지고 격차와 서열이 그대로 자리를 잡은 게 오늘의 한국사회다.
강준만은 초집중화, 승자독식, 서열 사회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구도라고 설명하며, 젠트리피케이션, 게이티드 커뮤니티, 학습된 무력감, 지방 소멸론 등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벨탑'의 구조를 하나씩 분석하고,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꿔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주장이 다소 뻔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분석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장의 시급함과 절실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겠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2019.02.15)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한국은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가혹하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이 되어버렸다. 강준만 교수가 집중하는 의제도 탐욕이 빚어낸 병폐와 그늘이다.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등 작금의 주요 현안들을 총합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목차
머리말 : 왜 한국은 ‘바벨탑 공화국’인가?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 4 |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 7 |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 9 |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 투쟁 · 11 | ‘의자 뺏기 게임’과 ‘희망 고문’ · 13 |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 15 |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 18 |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 19
제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 초집중화
‘서울은 위대한 혁신의 집합소’ · 29 | “강남 재건축은 복마전” · 31 |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는 고시원의 삶” · 33 | 왜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을까? · 36 | 서울을 한국으로 간주한 서울만의 ‘신도시 잔치’ · 38 |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보다 못한 정부 · 41 | “서울이 곧 한국이다” · 43 |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소용돌이 · 45 | 서울 초집중화의 빨대로 악용되는 대학 · 48 | 지역 서열을 당연시하는 ‘기회균등 사기극’ · 49 | 군사독재 정권의 광기를 증폭시킨 민주화 세력 · 52 | 왜 정치는 늘 부유한 유권자들을 대변하는가? · 55 | 선거제도를 통한 ‘승자독식주의 체험 학습’ · 57 | “당신은 단추를 누를 때 이를 악물지 않는다” · 59
제2장 왜 ‘지주들의 소작농 수탈’은 여전히 건재한가? : 부드러운 약탈
폭력을 써서 빼앗는 것만 약탈이 아니다 · 65 |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 67 | 0.1퍼센트 강남이 전체 땅값의 10퍼센트를 차지한 나라 · 70 |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구조적 기억상실증’ · 71 | 상위 20퍼센트 아파트값이 하위 20퍼센트의 6배 · 74 |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 76 | 한국 엘리트의 필수 조건은 부동산 재테크 · 79 |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 · 82
제3장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 젠트리피케이션
배신당한 제인 제이컵스의 꿈 · 87 | 젠트리피케이션은 ‘구조적 폭력’ · 89 | ‘조물주 위에 건물주’는 비아냥이 아니다 · 91 | ‘불로소득은 성공한 투자, 자본주의의 꽃’ · 92 | “땅이 빈곤 문제의 핵심이다” · 94 | 헨리 조지마저 ‘빨갱이’로 모는 한국의 지주계급 · 96 | 시세를 따르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느끼는 심리 · 99
제4장 왜 ‘사회’는 없고 ‘내 집’만 있는가? : 게이티드 커뮤니티
“공동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었다” · 105 | “‘공’은 ‘사’에 점령당했다” · 108 |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아파트 단지’가 문제다” · 110 | 속전속결이라는 알고리즘의 참담한 결과 · 112 | “공공 공간은 좁게, 사적 공간은 넓게” · 114 | 왜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노마드족이 되었는가? · 116 | 초고층 아파트와 대비되는 ‘고공 농성’ · 119 | “분리와 배제는 도시 전체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 122
제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 : 소셜 믹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 · 127 | “여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만지지 마” · 129 | “임대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다” · 131 |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쳐진 1.5미터 높이의 철조망 · 133 | 소셜 믹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인가? · 135 |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 사업 · 138 |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잡힌 선량한 시민들 · 141 | 하향평준화를 두려워하는 진보 좌파 · 143 | 하향평준화라는 프레임의 함정 · 145 | 서울 초집중화가 지방의 희생 없이 이루어졌나? · 148
제6장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 전위된 공격
‘한국 사회는 거대한 모욕의 피라미드’ · 153 | 지방대학은 ‘헬조선행 설국열차’ 5번째 칸인가? · 155 |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보다 못한 인간 · 157 | “수많은 ‘을’의 눈물로 가득 찬 ‘갑질민국’” · 159 | ‘월급은 한 달 동안 모멸을 견딘 대가’ · 161 |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 만든 ‘서울 공화국’ · 163 | ‘불온서적’ 취급을 받은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165 | “내가 누군지 알아” 멘털리티의 폭력 · 167더보기
책속에서
첫문장
1969년 길옥윤 작사 · 작곡, 패티 김 노래로 나온 <서울의 찬가>다.
P. 362015년 7월 30일 손석희는 이런 앵커 브리핑을 했다. “작가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란 단편을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그 좁고 외롭고……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손석희는 앵커 브리핑을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한 것에 대한 보상은 있는 것인가”라는 말로 끝맺었다. 고시원 거주자의 희망은 고시원 탈출이겠지만, 누군가는 또 고시원을 찾는 끝없는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 만화방이나 찜질방 등 다중 이용업소와 같은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많게는 228만 가구로 추정하지만, 그 수가 많건 적건 이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선 안 될 인권 문제로 보는 게 옳다. 「제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접기
P. 89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떠한가?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비해 악성이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거주민을 저소득층에서 중상류층으로 대체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인 반면,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지속가능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이 서구형에 비해 더 잔인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한겨레』(2017년 11월 17일)에 따르면, “곳곳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고, 최근 5년간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책과 논문,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고 있으며, 국립국어원도 ‘둥지 내몰림’이라는 대체어를 내놓을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상이 되었다”. 「제3장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접기
P. 129~1301920년대 초, 미국에서 빈곤으로 인해 심화되는 사회문제의 치유책으로 시작되어 조닝(zoning) 규제를 적용시킨 소셜 믹스가 등장했다. 혼합 단지 아파트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초였으며, 2005년 4월 25일 건설교통부 주도로 시행된 지속가능한 신도시 계획 기준을 통해 소셜 믹스를 위한 본격적인 관련 제도가 도입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소셜 믹스에 거는 기대는 크다. 사회적으로 혼합된 거주 지역은 사회집단 사이의 문화적 상호 교류를 통해 지적·문화적 진보를 촉진할 것이고, 이는 점차 더 큰 관용으로 이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인프라 시설의 효율,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낳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선 그 기대가 완전히 배신당한 것으로 보인다. 「제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 접기
P. 183국가가 공모한 약탈 체제이니 하청 노동자들로선 체념할 수밖에 없다.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이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한 어느 주물공장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내하는 직원에게 ‘여기 환경 측정 실시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하청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사람 특수건강진단은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하청이라니까요’라고 익숙하게 답하는데, 그 대답을 지금까지 여러 번 해봤다는 듯 매우 예사로운 말씨다.” 하청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가? 2018년 9월 11일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은 2만 2,900볼트의 살아 있는 전선 아래에서 목숨을 내걸고 아슬아슬하게 일하는 한국전력 하청 노동자들의 현장을 담은 “한국전력의 일회용 인간들”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하청 노동자는 ‘일회용 인간’으로서 인간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제7장 왜 ‘무릎 끓리기’라는 ‘엽기 만행’이 유행하는가?」 접기
P. 227당위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 클 땐 차선, 아니 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하는 게 옳다. 우리는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투표를 할 때에 차악을 선택해오지 않았던가. 지방 소멸이 초래할 국가적 재정 위기는 마스다의 선의의 과장법을 원용해 ‘대한민국의 파멸’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 파멸을 목전에 두고서 당위 레토릭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균형과 상생’이라는 당위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지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놓고 비교한다면, 후자가 차악이다. 전자의 교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반세기 이상 충분히 입증된 이상 후자를 택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나는 생각을 그쪽으로 바꾸고 싶지만, 문제는 마강래의 대안도 험난한 장애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제9장 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파멸’인가?」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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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준만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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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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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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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파워하우스>,<집의 미래>,<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등 총 374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5위 (브랜드 지수 133,656점), 역사 14위 (브랜드 지수 227,78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강준만 교수가 ‘바벨탑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었다. 욕망의 내재와 분출로 응축된 ‘바벨탑’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형 투쟁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많은 바벨탑이 세워지며, 상호소통이 불가능해진 불통은 이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이러한 바벨탑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우리 사회는 주거지만 서열화되어 있는 게 아니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 서열화되어 있다. 서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심각한 건 서열 격차다. 서열 의식이 한국 못지않은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8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겨우 절반 수준이다. 사회적 대접까지 돈으로 환산하자면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임금은 최대 4.2배 차이가 난다. 이게 바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일본의 2배가 넘는 결정적 이유다.
한국은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가혹하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이 되어버렸다. 강준만 교수가 집중하는 의제도 탐욕이 빚어낸 병폐와 그늘이다.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등 작금의 주요 현안들을 총합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한국은 부동산이 주요 재산 축적 수단이 되어온 ‘부동산 공화국’이며, 이는 지방을 희생으로 한 사실상의 약탈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들은 수도권 유주택자인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간 수도권 무주택자였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분노하는 사람들마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흉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비극은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필연인데, 그로 인한 재앙을 유예하기 위해 거품을 지속시킨다고 붕괴를 피할 수 있을까? 한국의 엘리트 계급이 사적 삶에서 발휘하는 탁월한 시장 감각을 공적 정책에서도 발휘해 성공 확률을 높여주면 좋겠건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바벨탑 공화국의 시민들은 선량할망정 자신의 서열과 그에 따른 이익을 지키려는 데는 악착같고 집요하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부자가 아닌 사람들마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작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동력 삼아 바벨탑 공화국이 건재한 동시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닐까? 이 바벨탑 공화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습된 무력감을 가져야만 무난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요구한다.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한양대학교 교수 함인선은 타워팰리스의 3.3제곱미터당 월세는 11만 6,000원이고 고시원은 13만 6,000원이라고 했다. 그는 고시원의 ‘존재 이유이자 경쟁력의 원천’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리, 정보, 문화, 교류에서 소외되지 않고 짧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된다면 개인 공간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있음은 문제가 아니다. 좋은 입지는 ‘강남’만큼 희소하고 저성장 및 1∼2인 가구 증가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에 고시원은 당분간 시장지배자일 것이다.”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건 최장집이 말한 ‘초(超)집중화(hyper-centralization)’의 문제를 실감나게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초집중화란 정치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원들이 지리적·공간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는 단일 공간 내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이런 중앙 집중은 집중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면서 집적되는 형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청년들의 주거환경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서울의 1인 20∼34세 청년가구 중 주거 빈곤 가구(지옥고)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수도권의 일자리 집중도와 비슷하다는 게 우연일까?
국세청의 ‘연말정산 통계현황’에 따르면 2013년 억대 연봉자 70퍼센트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2015년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기업들의 신규 채용공고 650만 9,703건을 근무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채용 공고의 73.3퍼센트가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제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 그런 ‘신주거난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서울 초집중화는 ‘승자 독식 사회(Winner-Take-All Society)’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이 서울에 몰려 있는 체제에서 그곳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구조”를 가리키는 ‘프랙털(fractal)’의 원리에 따라 서울 내부에서도 똑같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벌어진다. 당연히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건너편에 펼쳐진 광범위한 기회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비좁은 지점, 즉 ‘기회구조의 병목(bottleneck of opportunity structure)’이다. 이 병목을 유지하고 악화시키면서 외치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슬로건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모순이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서울 초집중화는 지방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임박한 지방도시의 소멸이라는 재앙이 닥칠 경우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무사할 수 없는데, 서울의 존속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지방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지방 돈이 서울로 몰려 서울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부추긴다는 건 이미 수없이 입증되어왔다. 입시전쟁과 취업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최악의 주거 실태(고시원, 쪽방 등)와 교통지옥의 문제는 어떤가?
이런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확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바꿔도 달라진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강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한국은 음식 배달의 지상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런데 입장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2011~2016년 23곳의 병원 응급실에서 집계한 교통사고는 총 26만 여 건인데, 이 중 배달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4,500건에 이르며 15~19세 사고자가 15퍼센트에 달한다. 또 싼 전기료의 뒤엔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있었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조심할 일이며 그런 노동은 누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청해서 한 일인데, 소비자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하느냐고 반문해야 할까?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밖의 모든 것이 그 이면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의 희생 또는 시장논리에 의한 사실상의 ‘수탈’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한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만, 이름 없는 영상 스태프 노동자들은 문자 그대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최종 생산물의 화려한 영상에만 취하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까지 취해주는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하지만, 그 영상 뒤의 어두운 곳엔 애써 고개를 돌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감정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쉽게 뒤바뀐다. 이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주요 경계선은 일자리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 이어 ‘사포(삼포+취업 준비로 인한 인간관계 포기) 세대’, ‘오포(사포+내 집 마련 포기) 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로 청년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있으며, 절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5가지를 모두 누리는 사람에게 한국은 천국일 수 있어도, 삼포?사포?오포 세대에게 한국은 얼마든지 ‘헬조선’일 수 있는 것이다.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의해 생겨난다.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도 그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산물일 뿐이다. 이게 바로 ‘갑질 공화국’의 비밀이다.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서울 초집중화이며, 그 슬로건 중의 하나는 “개천에서 용 난다”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표선수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선두를 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용을 배출했고, 내 집안은 아닐망정 한두 다리만 건너면 ‘개천에서 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거의 나오지 않을뿐더러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세계 무대의 선두에서 맹활약하는 재벌 기업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혼자 잘 나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그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중소기업을 희생으로 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 용의 반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고연봉도 다른 사람들의 저임금이라는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개천에서 난 용’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 개천에 사는 미꾸라지들이 아니라 자신이 어울리는 용들의 문법에 충실해야만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과 대부분의 주요 정책 결정자가 지방 출신임에도 지방을 희생으로 ‘서울 공화국’이 탄생한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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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분노하는 걸까? 아니 분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17년 집값이 1억 원 넘게 오른 집 주인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5억 원 넘게 집값이 오른 집주인도 6만 명이나 되었다. 집을 1채라도 갖고 있었던 사람의 70퍼센트는 집값이 올랐다. 2018년까지 포함하면 집값이 오른 사람의 수는 더... 더보기
노란가방 2020-12-22 공감 (5) 댓글 (0)
책 제목인 ‘바벨탑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신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바벨탑 멘털리티는 고성장 시대에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경쟁하면서 갖게 된 서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심성이다.(p. 15)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바벨탑 멘털리티, 바벨탑 정신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수도권 ... 더보기
노란가방 2019-10-02 공감 (9) 댓글 (0)
강준만이 줄곧 이야기해온 승자독식, 서울중심 사회가 불러온 폐해의 또다른 버전.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 땅의 욕망 바벨탑이 무너지는 날이 과연 올까? 글쎄 매우 회의적이다
잠자냥 2019-04-26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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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은 불만만 표출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바다7 2019-02-18 공감 (1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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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이 줄곧 이야기해온 승자독식, 서울중심 사회가 불러온 폐해의 또다른 버전.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 땅의 욕망 바벨탑이 무너지는 날이 과연 올까? 글쎄 매우 회의적이다
잠자냥 2019-04-26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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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빨리 시의성을 포착해 방대한 자료더미 속에서 글 써내는 게 강준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싶다면 강준만의 책을 시발점으로 삼아, 좀 더 심도 깊게 한 분야를 파고들며 독서하시는 게 좋을 듯하네요.
알료샤 2019-02-18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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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곧 한국이다˝ 라는 금기어를 과감하게 외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헐리우드키드 2019-02-10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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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안읽어보고 리뷰쓴 사람들 많네. 강준만씨의 균형잡힌 비판의식에 동의하며 우리사회가 ‘바벨탑 멘탈리티’의 해결없이 그 대표격 예인 서울 아파트에 집중된 욕망이 공급대책이나 그 무엇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감한다.
0302233 2019-02-18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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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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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바벨탑 공화국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우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이 존재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좋은 의도로 시행한 강사법개정이나 최저임금 인상도 누군가에 도움을 주려 했지만 나쁜 결과로 결국 그들의 일자리만
없앤 꼴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지난 박근혜정권을 소통부재라고 했는데
과연 문정부는 현장과 소통하고 배려를 한
결과가 이것이라는 말인가?
언제부터인지 엘리트의 필수 조건이 부동산
재테크로 바뀌었는가? 투자와 투기의 개념
을 내로남불식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묻고 싶다. 굳이 홍종학등을 언급하는
이유는 잘못을 알고도 장관임명이나 출세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사실이 투기꾼(자신은 투자)과 고위공직자들의
조건이 된 듯 싶다.
더 많이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나 개혁은 지금 권력을 가진
집단부터 고쳐야 한다.
고시원 월세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것이
정상인가?
약자를 짓누르는 힘은 사실상 무한하다는
글에는 가슴이 먹먹함을 느낀다....
좀더 지식인들이 잘못을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출세와 영달만을 위한 추종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전 정권도 인사문제가 실패였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던
자신의 집값은 몇억씩 오른 장하성이라는
정책실패자를 주중대사로 임명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추종자를 또는 부적격자는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서울 초집중화가 키우는 ‘제로섬게임과 내로남불
정의당 의원 심상정이 청와대와 행정부처의 1급 이상 국가공무 의 그 관할 기관 부서장 등 총 639명의 정기재산변동 관보(2017년말 기준 를 분석한 결과, 전국에 집을 2채 이상 가진 이는 298명의로 전체의 47퍼센트에 이르렀다. 다주택자 비율은 공정거래위원회 5퍼센트, 금융위원회 62퍼센트, 국세청 60퍼센트, 국토교통부 55퍼센트, 기획재정부 54퍼센트 순으로 높았다. 강남 3구에 집을갖고 있는 사람은 33퍼센트인 210명이었다. 힘 있는 사정기관이나 부동산 정책 유관 부처에서 비율이 높은 건 이 대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세청의 강남 집 보유자가 80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공정의 75퍼센트, 금융위 69퍼센트, 기재부 54퍼센트, 한국은행 50퍼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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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9-03-07 공감(2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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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날카로운 사회비평을 들려주는 강준만 교수의 <바벨탑 공화국> 한국사회가 노정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이 초집중화도시인 서울이 드리운 길고 어두운 그림자의 조각들임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초집중화’, ‘부드러운 약탈’, ‘젠트리피케이션’, ‘게이티드 커뮤니티’, ‘소셜 믹스’, ‘전위된 공격’, ‘학습된 무기력’, ‘소용돌이 정치’, ‘지방 소멸론’. ‘지방분권의 함정’ 이런 소제목을 다시 읽어보니, 책에서 봤던 내용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거 같네요. 그리고 그 문제의 시작은 바로 ‘바벨탑 공화국’에 있다는 것도요. 이런 생각을 지지하는 가장 큰 틀은 ‘개천의 용’인 것 같아요. 나도 성공해서 서울에 고층아파트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는 사람들, 그런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바벨탑 공화국은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겠죠. 흥미로운 것은 대한민국 역시 개천의 용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죠. 2차세게대전 이후 잿더미에서 올라선 나라,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더욱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해요. 얼핏 보면 그 생각 자체는 잘 못 된 것이 아니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던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만연한다는 것이 문제겠죠. 전에 <지방소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블랙홀처럼 인구를 빨아드리는 도시와 과소화된 농촌의 문제를 지적하는 책이었는데요. 문제는 더 이상의 성장동력이 없어지면 과밀화된 도시 역시 소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심각한 상황인데 과연 이대로 좋은가 고민한 적이 있는데요. 서울중심주의가 만들어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밖에 없거든요. 문제가 어떤 것인지 다 함께 분석하고, 공감하고, 고민해야 결국 길을 찾을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공동체조차 돈을 내고 사는 것이 되는 세상이라는 지적이 너무나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단순히 편하다고 좋아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단지 내에서 해결되는 ‘원 스톱 리빙’,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그런 공간이 결국은 자신과 비슷한 계층들이 모여 살고자 하는 벙커가 아니냐는 말에 반박하기 참 힘들었어요.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주된 감정이 그랬던 것 같고요. 그래서 도입부에 나왔던 ‘머그컵 실험’이 다시 생각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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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9-03-14 공감(2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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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지주들이 소작농을 수탈했던 것과 진배없는 일이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반복되는데도 그냥 침묵하는걸까?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우리'라고 말해선 안 된다. 내키진 않더라도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까 어쩔 수 없이 그 광기의 수탈극에 참여한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바로 바벨탑 공화국이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p73)
"민주문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진무구함에 동시에 있어야 한다. 빛의 자식들은 어둠의 자식들로부터 그들의 악의를 빌어오면 안 되겠지만 지혜는 빌어와야 한다. 빛의 자식들은 이기심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은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적 이기심이나 집단적 이기심 모두를 기만,통제, 이용, 억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지혜를 축적하고 발휘하는 게 정치의 본분이자 영역이 되어야 함에도, 한국 정치는 전혀 딴판이다. 대체적으로 보아 개혁을 하겠다는 정치세력은 사적 이익을 위해선 뱀의 지혜를 발휘하면서도 공적 이익을 위해선 한사코 '비둘기의 순진무구함'을 과시해 면책해보려는 헛발질이나 똥볼 차기만 일삼고 있는게 현실이다. (p101)
"아파트 단지 담장은 프라이버시 보호나 방범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중한 내 사유재산을 남들이 무단으로 사용하여 내 생활을 교란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안전장치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탓해야 하는가. 탓해야 할 것은 오히려 녹지와 공원이 태부족 상태인 도시 환경 아닐까. 온 골목이 불법 주차장이 되도록 방치하고 그 상태에서도 아무 대책 없이 계속 건축을 허가하고 자가용 차량 판매를 지속하는 사회 체제를 탓해야 하는 게 아닌가."(p112)
서울 초집중화는 지방에 대한 '착취, 소외, 파괴, 약화, 지배'의 산물로 이뤄진 게 아니었을까? 서울 시민의 대부분은 지방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다. 왜? 더는 지방에서 '착취, 소외, 파괴, 약화, 지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서울 초집중화는 지방을 넘어 국가 전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대안 모색이 제발이지 특정 지역을 시샘하거나 특정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는 심보에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겠다. (p150)
김창준이 지적한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와 위선, 조직 문화의 폭력성, 저급한 의리의식, 절대 권력에 굴종하는 비열한 인간 군상 등 사회의 모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평소엔 모든 사람이 그 모순을 키우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일조해놓고 막상 자신이 피해자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경우에 한하여 울분을 터뜨리며 이 사회에 정의가 있느냐고 묻는 일은 그 얼마나 흔한가.(p186)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좀 독특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광복 이후 70년 뒤,21세기 현재 일류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르게 되었고, 해외 유수의 언론에는 한국에 대해서 모범 국가로 칭송하곤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한국 국민은 그것을 피부로 절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 안에 보여지는 폭력성과 이중적인 잣대와 사회적인 모순, 갑과 을의 관계,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 민주 사회 구현,민주 정의를 외치면서 정작 갈등과 분열의 온상이 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저자 강준만은 바벨탑 공화국이라 지칭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바벨탑이란 초고층 부동산을 말한다. 그 부동산의 실체는 초고층 아파트이다.한국 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결정적인 요소이자 이기심의 요람, 타워 팰리스와 같은 초고층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부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를 벌려 놓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강남불패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며, 서울의 초집중화를 넘어서, 수도권의 초과밀화로 이어지게 된다. 수도권 인천광역시의 인구는 점점 더 커져서 대한민국 3위의 도시가 되고 있는 반면, 대구는 점점 더 인구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우리 앞에 놓여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를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고,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이나 대안을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곪아터진 사회적 문제의 시작이 되고 있다.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갑과 을의 관계는 소수에게서만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아닌 거였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속속들이 짚어 나가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서울의 모습과 지방의 모습이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욕망을 분출할려는 속성을 간고스란히 직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경제적 차이로 인해서 생기는 사회 갈등을 방치하게 된다. 또한 서로의 경계가 불분명해짐으로서 , 서로의 안전을 해치는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결말은 분명해진다. 대한민국 지방 소멸을 넘어서서 대한민국의 소멸이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광풍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누군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법과 제도가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인 현안들을 방치하고, 무방비상태에 놓여져 있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만함에서 벗어나 , 사회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질문을 통해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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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03-12 공감(1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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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
한국에서 가장 열정적이면서 꾸준하게 책을 내놓은 저자가 강준만이다. 한때 그가 제기한 문제에 공감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바꾼 적도 있다. 지금도 꽤 많은 부분에서 그가 제기한 문제들에 공감한다. 다만 너무 자주 나와 그의 글들을 모두 읽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책을 읽고 검색을 하니 3월에 도 한 권의 책이 나온다. 대단하다. 사실 데이터를 이용해 이렇게 글 쓰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라면 간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분량이라면 어떨까? 서평을 쓰기도 전에 갑자기 든 단상이다.
바벨탑. 처음 이 탑을 만난 것은 일본 만화였다. 해적판으로 나온 것을 띄엄띄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식 발간본이 나온 후 봐야지 했지만 다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면서 멈춘 상태다. 그런데 이 바벨탑이 수많은 소설 속에서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신에 대한 도전, 인간의 욕망, 언어의 분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바벨탑은 한국 사회의 욕망을 표현한다. 수도권의 초과밀화가 만들어낸 현상과 초양극화 문제들을 10장으로 풀어낸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미로 속을 해매는 느낌이다. 정보의 나열이 하나의 이론이나 문제의 해결로 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 제기가 나의 의식을 깨워준다. 덕분에 공부할 거리가 늘어났다.
한국 사화 전반의 문제 중 서울과 수도권 집중화는 아주 심각하다. 몇 년 전 누군가 부산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잘 갔다고 했는데 현실은 인서울 실패가 더 맞다. 내가 대학 다닐 때와 비교해서 인서울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이 쉽게 보인다. 한국 인국의 절판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인식 속에 서울에 대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조선 후기 외국인의 글을 인용하지 않아도 권력과 금력은 서울을 향했다. 예전에 서울 개발사와 발전사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조금 알게 되었는데 이 흐름이 바뀌려면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바꿀 의사가 우리에게 있을까?
서울 인구 1천만 명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날까? 실제로 이들이 서울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일은 서울에서 한다. 다만 주거지를 수도권 신도시 등으로 할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결혼한 회사 직원들 중에 서울에 집을 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느 정도 부모의 뒷받침이 없다면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나 집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 주변 도시들에 사람들이 몰려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이 현상과 일본의 주변 도시 붕괴 현상과 연결해서 풀어낸 부분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방 도시의 구도심이 무너지고 새로운 도심이 생기는 현상도 지적했는데 몇 년 전에 실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내가 살았던 도시도 그런 현상이 있는지라 금방 이해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교육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변별력이다. 이 단어가 만들어내는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하향편준화를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실제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이미지다. 상상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재의 중고생들을 보면 단순히 좀더 암기 잘 하고, 문제를 더 빨리 푼다는 것이 변별력과 상향화를 증명할 수 있을까? 교육이 학원 등의 사교육에 완전히 점령당한 현실에서, 인서울이 서울대라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무력감은 학습되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수십 년 전 서울대를 혜화동에서 관악으로 옮긴 것처럼 지방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작은 하나의 방법은 되지 않을까?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위에서 말한 인서울과 지방 국립대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초집중은 지방 소멸론으로 이어진다. 지방분권 문제를 다루는데 아쉽게도 이 부분은 좀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예전에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보내는 일들을 칭찬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수정되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을 때 욕을 하지만 내 집도 그처럼 오르길 바란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성과 욕망의 불일치는 우리를 휘어잡고 뒤흔든다. 같은 위치가 아니면 차별하고, 자신이 차별받으면 분노한다. 몇 년 전 강남의 아파트 대단지를 보고 나는 답답하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은 그 많은 집 중에 내 집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 내가 집을 사지 못한 것도 이런 시각 차이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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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19-03-08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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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바벨탑'은 성서에 등장하는 탑으로 인간의 욕망과 오만을 대신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바벨탑에 관한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했던 인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신은 분노하고 하나였던 언어를 여러개로 만드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언어가 달라지자 인간들은 탑을 쌓는 과정에 혼란과 혼돈이 생기고 결국 탑은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바벨탑에 관한 것은 중세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본 기억이 났다. <바벨탑 공화국>은 현대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대한민국인들을 향한 어쩌면 우려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바벨탑이 단지 하늘 높이 솟아나는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향해 높아져만 가는 대한민국이 바벨탑은 사회적인 구조와 현실적인 문제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만 치부하기엔 현대인들이 욕망이 더 크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현재 50층 이상 주거용 초고층 건물을 세계적으로 4번째로 많이 보유한 나라라고 한다. 주위에서도 5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고층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싶은데 전쟁을 치른 한반도에서 자신의 집은 곧 정착이고 부의 상징이 되었다. 고층에 살수록 높은 지위와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서양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변형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고급 주택화라는 뜻으로 슬럼화한 주택가를 고급 주택화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나 기업이 특정 지역을 살리기 위해 재개발의 형식으로 주도하는 것인데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침해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아직 많이 발전되지 않은 곳이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고 방송에 나오면서 '핫플레이스'가 되지만 곧 영세 세입자들이 쫓겨나야 할 정도로 집세가 오르게 되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핫플레이스가 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기 때문인데 요즘은 조물주보다 높은 사람이 '건물주'라고 하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의 소유는 불로소득으로 성공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라고 한다. 부동산 투자는 점점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고 제주도엔 외국인의 투자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지방을 떠나 도심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머지않아 지방을 소멸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간의 불균형과 지방분권은 점점 악화되고 지방이 지방을 죽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벨탑 공화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처한 사회와 국가적인 문제를 비판하기도 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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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03-10 공감(10) 댓글(0)
마이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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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다면 게으름뱅이가 되자
근면과 성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 이런 세상에서 게으름뱅이는 비난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노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주는 쾌락’은 조금이나마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게으름 예찬》은 무척 도발적인 책이다. 그러나 일은 적게 하면서 인생을 한가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들이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철학 · 수학 ·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썼다. 평화 운동에도 앞장섰던 러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인슈타인(Einstein) 등 명사들과 함께 핵무기 감축과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을 것 같은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독촉하기 위해 ‘근로의 미덕’을 앞세웠다.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에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노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휴먼하우스, 2018)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 (비즈니스북스, 2006)
여기서 잠깐! ‘노동 숭배’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예로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회자하던 노동 숭배는 러셀 못지않게 부지런히 활동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시간은 돈이다”란 명제를 만나면서 정점에 이른다. 19세기 영국의 사회개혁가로 활동한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는 《자조론》이라는 책을 그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마일스의 ‘자조 정신’을 함축한 이 경구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알려져 있다. 스마일스는 이 책에서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등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공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전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소개한다. 스마일스는 성공한 위인의 자리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개인의 근면성과 열정을 대치시키고 있다. 그는 성공에 이르는 기본적인 비결을 ‘개인의 노동과 근면’에서 찾는다. 하지만 신분 제약이나 재산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력하고 근면하면 부와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스마일스의 입장은 노동의 미덕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고정관념에 가깝다.
*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 (인물과사상사, 2019)
산업화 초기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달라졌다. 부와 행복을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하려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개인은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오직 나의 성공과 행복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한국식 서열 사회를 ‘바벨탑’에 빗댄다.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 즉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 위에 있는 기득권층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지금도 자본가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성실성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는 자신의 게으른 상태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게으름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죄책감을 용감하게 떨쳐버려야 사회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 (다산초당, 2019)
호주의 작가가 쓴 《게으름 예찬》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주요 내용을 계승하여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게으름 예찬》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게으름 예찬》도 게으름뱅이를 악덕으로 만드는 노동 숭배에 정면으로 대든다. 그런 다음 ‘빈둥거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무 것도 안 하기, 한가롭게 산책하기, 깃들이기(보금자리를 장만하여 그 내부와 외부를 꾸미는 일)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실천 방안들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게으름 예찬》에서 긍정하는 ‘게으름’은 각각 ‘여유’와 ‘휴식’에 가깝다. 게으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을 사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미덕이다. 게으름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며, 정신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게으름뱅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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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1-04 공감 (4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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