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착각과 오만 - 김당 < 민간교류 < 기사본문 - 통일뉴스
<중앙> 김영희 대기자의 착각과 오만 - 김당
[특집기획] 한반도에 부는 `자주 아리랑` 훈풍<1>
기자명 연합뉴스
입력 2002.04.01
김당 기자 dangk@ohmynews.com
▲ 1월23일자 <중앙일보> 6면 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버스 타고 평양 간들`.
국제관계 전문가인 `김영희 대기자`가 중앙일보 1월23일자에 `버스 타고 평양 간들` 제하의 칼럼을 썼다. 칼럼의 요지를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다.
`예측불가능한 사람으로 소문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아리랑 축전` 기간에 금강산에서 평양까지의 육로를 개방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한시적인 육로개방이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개선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제안도 믿을 수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남북관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사건`은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김대중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에 큰 합의가 없는 한 새로운 일을 시작해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과욕을 버려야 한다. 버스를 타고 평양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쯤에서 남북관계를 소강상태로 남겨두고 떠나는 지혜와 여유가 아쉽다.`
그럴 듯한 논리다. 남북관계보다는 한미·북미관계를 중시하는 국제관계 대기자의 냉엄한 현실 감각도 엿보인다. 그러나 "(국민은) 버스를 타고 평양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니 김대중 대통령이 이쯤에서 남북관계를 소강상태로 남겨두고 떠나는 지혜와 여유가 아쉽다"는 결론은 `영 아니다` 싶다. 딴 길로 새도 한참 샜다.
▲ 아리랑 축전 포스터
우선 김 대기자는 `예측불가능한 사람으로 소문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처음에는 월드컵의 김을 뺄 요량으로 아리랑 축전을 기획했다가 남한 사람들과 월드컵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외화벌이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같다는 논지를 전개했다. 북한의 아리랑 축전 개최 의도와 관련해서는 이미 조선·동아일보도 이를 월드컵을 훼방놓기 위한 `맞불 작전`으로 간주한 만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주장`일 뿐이다. 북한은 지난 2000년도부터 이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을 기획·추진해왔다. 그런데 지난 1월11일 통일부 정보분석국 자료(북한의 아리랑 공연 관련 동향)에 따르면, 북한은 당초에는 4·15 김일성 생일(이른바 태양절)을 고려해 아리랑의 기본주제를 `태양의 노래`로 하였으나 최종에는 `아리랑`으로 확정했다. 통일부는 이를 지난 2000년 11월 김정일의 예술인들과의 `담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 근거는 이 담화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작품 창작의 원천인 `종자의 핵`을 `아리랑 정신`에서 찾을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아리랑 정신`이 무엇인지는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1월17일) 보도에서 엿볼 수 있다. "아리랑은 조선의 력사와 함께 전해지면서 민족의 감정과 넋으로 정화된 인민적 가요로 되었다. 그것은 이 민요가 세기를 이어 오며 민족의 운명사를 반영한 데 있다.…아리랑은 오늘도 내외 인민들 속에 즐겨 불리워지면서 커다란 예술적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 조선에서는 이 아리랑을 주제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세계적 걸작품으로 창작하고 있다."
▲ 피바다가극단 김수조 총장
이 집체종합예술의 총연출자인 피바다가극단 김수조 총장(70)은 아리랑의 주제를 좀더 명쾌하게 설명한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조선로동당 창건 55돌 기념창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연출자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김수조 총장은 지난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재일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와의 인터뷰(11월26일)에서 이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주제를 `아리랑`으로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서나 그 지방의 특성에 맞게 즐겨 불리우는 노래이다. `아리랑`은 지난 시기 살지 못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날 때 등 수난 많던 우리 사람들이 부른 노래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강성부흥 아리랑` 등이 있듯이 행복의 `아리랑`으로 전변되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조선민족은 `아리랑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과거 수난을 겪은 우리 민족이 오늘은 긍지를 안고 당당히 살고 있는 모습을 형상하는 데서 가장 적합한 조선민요 `아리랑`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주제사상으로 했던 것이다."
김 대기자가 북의 `아리랑 축전`을 월드컵의 김을 빼기 위한 `맞불 작전`으로 보는 유일한 근거는 그 시점이 `월드컵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기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런 해석을 덧붙였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서 김 위원장은 아리랑축제의 목적을 월드컵 김빼기에서 외화벌이로 바꾼 것 같다. 축구 구경하러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10만명의 일부를 평양으로 유치하는 구상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리랑을 기획한 것은 중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딴 것보다 훨씬 더 전의 일이다. 또 북한이 집단체조를 일종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해외에 수출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6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등 40여개국에 전문가들을 파견해 행사를 지도하고 외화벌이도 해왔다. 더구나 우리가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듯이, 늘 외화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아리랑이건 스리랑이건 그들의 경쟁력 있는 상품인 고유한 집체예술로 외화벌이 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도 있잖은가. 또 어차피 월드컵 관광차 남한에 오는 `형제국`의 10만 인민 가운데 일부나마 북한을 들러서 가길 기대하는 것은 책망받을 일도 아니다.
실은 아리랑 축전이 월드컵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김 빼기로 보는 것부터가 사실 왜곡이다. 물론 일정이 일부 겹치는 것은 사실이다. 월드컵은 5월31일 개막전(서울)부터 6월30일 결승전(요코하마)까지 한 달간 열리지만 아리랑 축전은 4월29일부터 6월29일까지 두 달간이다. 6월 한 달이 겹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월드컵 전 5월 한 달 동안의 아리랑 축전은 월드컵 개막을 축하하는 축전행사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월드컵을 보러온 사람이 `여흥`으로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축전)을 보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만 보고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리랑 축전의 막이 월드컵 개막식(5월31일)보다 한 달 앞서 오른다는 것부터가 아리랑이 남한 관광객과 함께 주로 월드컵 관광 중국인을 겨냥한 것임을 의미한다. 월드컵 보러 한반도 남쪽에 가는 길에 북쪽에 들러 `아리랑쇼`도 보고 가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1월17일 나온 김대중 대통령의 `경의선 공사 재개 조짐` 발언은 바로 그런 북한의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아리랑 축전 기간에 남한 관광객들에게 금강산∼원산∼평양 가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제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김 대기자는 이런 `그림`이 못마땅하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제안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답답하게 막힌 남북관계의 한 귀퉁이가 뚫리는 그림으로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박수를 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판문점∼평양 코스가 되든 금강산∼평양 코스가 되든 한시적인 육로개방이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개선으로 연결될 것인가다. 카니발 뒤에 허탈감만 남는 건 아닌가…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의 제안을 믿을 수 있는가."
모든 카니발 뒤에는 허탈감이 남기 마련이다. 심지어 아버지나 아들을 한번만 만나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말해온 이산가족들도 50년만의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해원 굿`에서 이산의 한을 풀고 나서는 "다시 헤어지니 더 큰 허탈감이 남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허탈감이 무서우니 이산가족 상봉도 하지 말자는 것인가. 한시적으로 육로개방 했다가 다시 닫으면 더 허탈하니 판문점 코스건 금강산 코스건 아예 가지 말자는 것인가. 결국 이 말은 북한더러 개방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우리가 북한에 개방을 요구한 것은 관광객들이 `돈`만 떨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도 함께 떨구고 가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조선·동아도 아니고 `국가예산의 1%를 대북 지원에 쓰자`는 국가정책 아젠다를 제시해 신선한 충격을 준 중앙일보의 국제관계 전문가가 정작 남북관계는 `까막눈`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냉전의 해체와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반북 이데올로기와 증오의 뿌리가 깊긴 깊은 모양이다. 그러나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리버럴리스트로 알려진 이 국제문제 대기자가 내린 다음과 같은 칼럼의 결론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상호의존적이다…앞으로의 남북관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사건`은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김-부시 정상회담이다…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에 큰 합의가 없는 한 새로운 일을 시작해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과욕을 버려야 한다. 버스를 타고 평양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금강산 사업의 기본 아이디어를 살려두는 정도로 좋은 것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론과 다음 정권의 몫이다. 김 대통령이 이쯤에서 남북관계를 소강상태로 남겨두고 떠나는 지혜와 여유가 아쉽다."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마치 구한말의 외세 의존·종속적 지식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대해서는 굳이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반문으로 대신한다. 우선 김 대기자부터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상호의존적`이라면서 왜 사실상 일방적 대미 종속을 강요하는가. 제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남과 북의 국가 수반이 합의·서명한지 2년도 채 안된 6·15 공동선언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부시가 합의해 주지 않는 한 북한과는 더 이상 대화도 협상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버스를 타고 평양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정말 `해탈`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놀라운 발상력이다. 사실 중앙일보를 포함한 이 나라 모든 언론이 월드컵 16강이 이른바 온 국민의 염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20대 실업자에게 월드컵 16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보나마나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잠자리가 더 불편해질게 뻔한 노숙자들에게 월드컵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식의 발상이라면 통일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사실 형식은 점잖지만 "김대통령이 이쯤에서 남북관계를 소강상태로 남겨두고 떠나는 지혜와 여유가 아쉽다"는 표현은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면 누군들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식의 칼럼은 사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고.
(출처: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제공)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