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중립화에 대한 질문과
답변 (윤태룡, 건국대학교)
[편집자 註] 오스트리아 국제문제연구소 Heinz Gartner 소장은 JPI PeaceNet 기고문을 통하여 오스트리아 통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통일한국도 중립화가 되지 않으면 통일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건국대 윤태룡 교수는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한만이라도 먼저 중립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북한이 핵무장까지 한 상황에서 과연 중립화란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일까?
혹시 이상주의가 앞서서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희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JPI PeaceNet은 중립화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을 풀고자 윤태룡 교수를 서면 인터뷰하였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한인택 연구위원(ihan@jpi.or.kr)
1.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지를 받는 것도 중요한데, 중립화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지지가능성은 중립화가 추진되는 시간적, 공간적, 국내외 정치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가부를 말할 수 없다.
만일 지금 당장 한국이 뜬금없이 ‘남북한 동시중립화’ 혹은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것이니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누가 합리적 제안이라고 보고 지지하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6.25전쟁에서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를 좌절시키고 그 후 북한의 재침을 억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온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매우 모욕적인
정책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런 식의 중립화라면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저 자신도 절대 반대할 것이다. 저는 중립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염려하기 보다는,
미국에 대하여 초당적(超黨的)으로 지지를 요구할
정도로 한국의 국내정치가 성숙해 질수 있을지를 더
염려하고 있다.
사실상, 저는 한반도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미국자신이 이미 과거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한반도중립화구상을 우리가 뒤늦게나마 수용하되,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이 더욱 이질화된 것을 감안하여 ‘남한만의 중립화’로 돌파구를
마련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은 6.25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1953년 후반기에 한반도중립화를 추진했다.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철회되었지만,
7월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닉슨 부통령, 덜레스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합참의장을 포함하는 요인들이 모여 국가안보회의(NSC)를 몇 차례 거듭하여 한반도중립화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또한, 한미동맹조약 공식서명 1주일쯤 전인 9월 24~26일에 걸쳐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된
보도에 따르면, UN 총회가 열리는 기회에 미국 주도의 한반도중립화 방안이 UN주재 소련,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인도 대사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는
남북한의 분단이 주변강대국을 연루시킨 국제적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자, 미국이 한반도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대로 중립화가 무산되었다는 것은 한민족 자체의 태도가 성공여부를 좌우함을
뜻한다. 또한, 설사 한민족이 중립화를 원하더라도 미국 등 주변강대국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역시 중립화의 실현가능성은 없다. 다시 말해,
국내외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립화를 위해서는 남북한과 주변강대국들
간의 합의형성을 위한 기나긴 상호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저는 당장 미군을 전부 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분단 70년만큼의 긴 기간에 걸쳐 조금씩,
단계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유럽의 오스트리아를 병행하여 중립화시키길 원했다.
하지만 Heinz Gartner 소장(오스트리아
국제문제연구소)도 지적하다시피, 오스트리아는 미, 소, 영, 프 4개국에 의해 분할점령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군사적 분할이었을 뿐 정치적, 행정적
분단 상태는 아니었고 단일정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한반도는 이미 2개의 상이한 정권하에 놓여 정치적, 행정적, 이데올로기적
분단 상태였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경우에는 6.25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중립화를 위한 외적 조건은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었지만, 한민족 자체의
분열로 인하여 기회를 놓친 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지도자들 간의 상호불신,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정치적 무능이 실패의 주요원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도 남북한을 통틀어서
통일국가를 향해 조금씩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장기적 비전과 그를 실행해 나아가는 의지, 인내심을 결여한 정치지도자,
지식인, 전문가를 포함한(저 자신도 포함)
한민족 전체의 총체적 무능함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이다. 남북한은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정권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공히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기형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의 억지(抑止) 모델에 입각한 안보정책은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의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한 간의 안보딜레마를
더욱 심화시키고 군비경쟁의 악순환 고리를 더욱 두텁게 형성해왔다. 한반도중립화 구상은 이러한 기존의 틀을 벗어나 동북아에 보다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안보레짐’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한반도중립화 레짐은 궁극적으로 미군철수를 수반할 것이다. 6.25전쟁 직전 일방적인 미군철수가 결국 전쟁을 유발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미군철수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점진적인 미군철수와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조치가
맞물린다면 미군철수는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조치(CBM)의 일환으로 활용될 수 있음도 인식해야한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중립화가 반미(反美)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한 첫 단계로서
‘남한만의 중립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야한다.
∎‘남한만의 중립화’가 필요하다는 최근 저의 주장이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논문을 통하여 제기된 것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설득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리라 본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에 편승(bandwagon)하는 정책을 버리고
중립화를 추진하는 것을 마치 미국에 대한 배은망덕, 반미주의, 심지어는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음모라고까지 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생리를 간과하는
것이다. 미국이 6.25전쟁에 개입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우리가 이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민에 대한 연민과 의리 때문에 한국을 지켜준 것인가? 그건 아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에게 가장 중요한 일본의 안보를 위해 6.25전쟁에 개입한
것이다. 어떤 국가가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타국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뭘 해준다는 것은 국제정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결국
자국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국익을 냉정하게 저울질하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을 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저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대결적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남북한과 주변4강의 국가이익을
장기적으로 동시에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지, 미국의 국가이익을
희생하는 대가로 한국의 국가이익만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저는
‘남북한 동시중립화’ 뿐만이 아니라 ‘남한만의
중립화’도 매우 주도면밀하게 시행이 되면 그 누구의 국가이익에도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이 오스트리아의 중립화에 합의했고, 6.25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한반도중립화를
공식정책으로 추진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한민족의
역량이 부족해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뜻한다. 4강의 이해가 교차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를 둘러싼
열강의 팽팽한 세력경쟁 자체가 이미 중립화를 필요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민족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중립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면, 미국이 무조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미국은 조건을 따져보고 상황을 판단해가며
찬성, 반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지,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한민족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지만, 저는 우선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정책)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정한 방식으로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대전략(grand
strategy)에 관한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형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저는 제2공화국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급하게 중립화에 관한 정치적 대중운동을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다.
한반도 중립화방안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불문하고 초당적
국가전략으로서 채택이 되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논리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이성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에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께서 먼저 동참하시길 희망한다. 찬성론이든 반대론이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토론(great debate)이 일어나길 희망한다. 어떤 통일방안이든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중립화에 앞서서 강대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강대국이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해줄 유인이 있는가? 만약 불가침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침공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불가침조약이나 적극적/소극적 안전보장공약을 지키지 않은 경우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중립화되는 국가와 중립을 보장하는 주변 강대국이 공식적으로 조약을 맺는 “중립화조약이 언제나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No)"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전쟁의 가능성(possibility)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개연성(probability)은 구체적인 전략적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따라서, 저는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경우와 같은 비무장 중립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남한만의 중립화’든 ‘남북한 동시중립화’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을 상정한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중립화
후에 군사력은 현재의 수준보다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주변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현저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강력한 패권국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중립화의 지위는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국내정치에서도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범법자는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이 법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중립화조약이 수반하는 불가침조약, 안전보장공약 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약, 공약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립화조약도 일종의 안보레짐으로서 일정 정도 국가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효과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자국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은 군사력이고, 그 밖에 타국의 자국에 대한 안보공약,
혹은 다자간 안보레짐의 형성, 국제법 등은 보조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2가지 이상의 수단을 모두 갖는 것이 군사력 하나만 갖는 것 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위의 질문은 사실 저의 제안이 국제정치의 현실을 무시한 다소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접근이
아니냐는 질문과도 같은 것으로 본다. 먼저 저를 오해마시길 바란다. 저는 현재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중립화를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남북한이 무력통일이나 일방의 체제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이 아닌 쌍방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진실로 원한다면 중립화통일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에 성공적 중립화를 위해 요구되는 여건을 갖출 때까지 스스로를 단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민족은 70년을 ‘나쁜 분단’에 시달려 왔다. 앞으로 또 다시 70년이 걸리더라도,
이젠 ‘나쁜 분단’을 ‘좋은 분단’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좋은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틀 때가 되지 않았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 마음은 일본이 강한 것 같은데, 일본에는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없나?]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립화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수동적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중립화는
대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의 중심에 놓여있는 약소국에 대해서 강대국들이 일종의 완충지대 설정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경험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가능성을 타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최근 미중간의 갈등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칭의 애매모호하고
양쪽으로부터 오해받기 쉬운 정책 보다는 보다 적극적, 긍정적, 능동적
정책으로서의 ‘남한만의 중립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제정치에서 중립화(neutralization)란 국제법적으로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 중립국의 국민들 다수가 원한다면 국민투표나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서 그 지위를
해소하고 일반국가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을 건넌 후에는 배를 버릴 수도 있고, 금방 또 다른 강을 만날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 배를 들어 운반하며 상비수단으로 늘 갖고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중립화라는 수단은 한반도가 또 다시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에 의해 원치 않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적 염원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인 것이지 중립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저는 중립화가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잘 이용되면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주도면밀한 계획이 없이 오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조차 담그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저의 입장이다.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며 장을 담가야할 것 아닌가!
∎중립화에 따르는 위험성과 관련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 미군이 한국에서 무조건 갑자기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립화는 주변강대국이 법적 합의를 해야만 가능하고 그 합의를 이루는 것 자체가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또한 중립화 후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하긴 해도 근처(일본)에 머물 것이다. 최악의 경우(worst case)만을 상정한다면 현재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의해 세상을 최악의 상태에 가깝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학자들까지도
모든 희망을 버린 상태에서 동북아의 상태를 현재처럼 내버려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유럽공동체에서 전혀 배울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중립화는 결국 주변 국가들 거의 모두와의 합의가 성립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중립화를 위한 외교적 교섭을 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안보를 직접 해치는 것은 아니고, 합의가 성립되지 못하면 중립화 협상도 도중에 무산될 것이다.
현실에만 안주하고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좀 더 나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Risk nothing, earn nothing.”) 그게 바로 훌륭한 정치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중의 하나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인식을 그대로 미래에 투영하여 미래를 분석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대결적 상태에서 국가들이 갖는 인식을 바탕으로, 중립화 합의 이후의 상태를
그대로 분석, 예측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중립화 협약에 이르는 과정자체는
매우 긴 과정이 될 것이고, 수없이 많은 회의가 거듭될 것이고, 그
후에야 결국 조약을 맺게 될 것이다. 이미 관련국간의 신뢰가 상당히 형성되어야만 중립화가 가능할 것인데, 그런 상태에서 미군이 궁극적으로 철수한다고 해서 중국이 갑자기
돌변하여 한반도를 침략하는 게 그렇게 쉬울까? 늘 있는 침략의 가능성(possibility)
때문에 평화의 개연성(probability)을 높이는 노력을 멈춰버린다면,
동북아의 평화는 지금까지처럼 영원히 위태위태할 것이다.
3. 만약 남한이 먼저 중립화를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중립화된 남한을 어떻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제가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1단계에서의 그러한 중립화가 남북관계에 있어 긴장완화 효과를 유발하여
2단계의 ‘북한만의 중립화’를 유도할 가능성을
증가시킬 것이고, 더 나아가 최종 3단계의 ‘남북한 동시중립화통일’로 귀착할 가능성을 늘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로드맵: (준비단계)남북대화/긴장완화 → (1단계)남한만의 중립화 →
(2단계)북한만의 중립화 → (3단계)남북한 동시중립화].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남한의 무장해제로 오해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립화 후에 남한이 지금 보다도 더
강력한 방어적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하지 않는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보장국(guarantor)으로 참여하는 미, 중,
러는 만일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공격을 할 경우, 이러한 선제공격에
대해 보복공격을 할 조약상의 정당한 권리를 갖게 된다.
∎제가 제시한 로드맵 자체가 만일 공론화되고 한국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그것이 남북한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길 희망해본다. 현재의 북한은 늘 남한과 미국이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수는 북측이 언제나 남침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 실제로, 김일성 사후에 남한과 미국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온 것 사실이다. 그러니,
북한은 고양이에게 몰리는 쥐와 같은 신세에서 극단적인 핵정책을 펴온 것이다. 기존과는
달리, 남한만의 중립화로 시작하는 통일을 위한 로드맵구상은 긴장완화 효과를 가질 것으로 희망한다.
∎나아가 스위스든 오스트리아든 둘 다 우리와 같은 조건이 아니고, 엄밀히 말해 한반도는 매우
독특한(unique) 경우이기 때문에 중립화를 추진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독특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중립화통일 찬성론자들은 비록 소수파에 속하기는 했지만 1945년 해방 이래 늘 존재해왔다. 그런데,
찬성론자들이 중립화를 말할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남북한 동시중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북한 관계에 상호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중립화가 남한의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우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이 문제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간의 극심한 다툼으로 합의를 볼 수 없었다.
찬성론자들은 중립화통일된 “최종적 상태”를
희구하여, 현재의 분단상태를 지속시키려는 반대론자들을 반통일세력으로 비난해왔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중립화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염려하여, 찬성론자들이 남한사회의 분열을 획책하고 공산화시키려는
의도룰 숨기고 있다고까지 의심하기도 했다. 찬성론자들은 중립화의 성공케이스만을 언급하고,
반대론자들은 중립화의 실패케이스만 언급해왔다. 이는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나 모두 편견에
사로잡혀있다는 뜻이다.
∎저는 남북한이 궁극적으로 동시에 중립화되면서도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통일이 된다면, 그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한이 서로 적대적인 상태에서는 중립화통일이 이루어질
수도 없겠지만, 설사 이루어진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선뜻 찬성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남한만의 중립화’는 다르다고 본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만일
여당, 야당,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초당적인 합의가 형성된다면 남한만의 중립화는 한민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중립화는 한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선제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겠지만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 미군은 계속 주둔할 것이고, 미국은 중립보장국(guarantor)로서 현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재래식 혹은 핵공격에 대해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보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남한의 중립화가 곧 비무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시에 한국은 중립화 이전보다 오히려 더 강력한 군사대국을 추구할 수도 있다. 결국 중립화가 되더라도, 자국의 안보는 자국이 스스로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의 중립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에게
남한으로부터의 위협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민주화로까지 연결될 공산이 크다.
외부위협을 빙자하여 독재체제를 강화해온 북한이 핑계로 삼을 외부위협이 크게 줄어든다면, 3대세습의 독재체제는 최소한 중국식의 집단지도체제로
변경될 것이다. 북한이 외부의 위협을 덜 느끼게 되면, 좀 더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북한과 미국 혹은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어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한다면 북한은 결국 민주화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게 통일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관계가 통일이 되든 말든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될 때까지 꾸준히 기다려야 한다.
통일 이후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쁜 통일’이 되는 것 보다는 아무리 길더라도 ‘좋은 분단’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
4. 남한이 단독으로 중립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남한의 안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그럴 정도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가? 북한의 비핵화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만약 남한이 단독으로 중립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개선이 된다면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
∎지금처럼 북한에 대해서 양보적 조치를 먼저 취하라고만
계속 주장하기 보다는 우리가 먼저 궁극적으로 북한을 집어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는 단계적 중립화통일론 추진 자체가 긴장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단계적으로 “나쁜 분단 → 좋은 분단
→ 좋은 통일”로 가야할 텐데, ‘남한만의
중립화’ 추진은 "좋은 분단"으로 가는 길이라는 게 제 생각이다. 현재의 “나쁜 분단”
상태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저는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만의 중립화’와 ‘남북한 관계의 개선’은 일방향적이 아니라, 쌍방향적 인과관계를 혹은 서로를 강화하는(mutually
reinforcing)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굳이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통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북한이 이미 사실상 핵국가인 상태에서 비핵화는 그 어떠한
제재에 의해서도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이 안보상의 위협을 느끼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크게 긴장완화 효과를 갖게 될 ‘남한만의
중립화’를 먼저 추진하자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이다. 최근에,
미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우리를 중국과의 대결상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한미관계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말려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독자적 목소리를 이제는 내야한다. 물론 미국을 배신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할 뿐만이 아니라, 미중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임시방편적 정책이 아니라, 좀 더 일관성 있는 우리 나름의 외교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주변에서 서로 싸우는 자들이 있으면, 누구 편인지 모호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누구편도 들지
않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화해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민족(남북한) 스스로 먼저 화해하는 방향을 취해야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남북한이 자신들끼리도 스스로 화해하지 못하면서, 남더러 화해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준비단계로서 남북한의 대화시작과 화해이다.
그게 모든 논의의 시초이고, 그게 안 되면 모든 게 공염불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남한이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평화통일의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꾸준히 실천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남북한 대화시작과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정부가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히 몰아붙이고 유엔인권사무소를 한국에 유치한 것이
한민족의 장기적 이익에 배치하는 정책 [?]이라고 본다. 덧붙여, 그동안 너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심지어 주권의 핵심중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내어줄
정도가 되다 보니)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는 (탄저균의
불법적 한국반입과 같은)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미중간의 경쟁구도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양국이 다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양국이 전형적인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비경쟁에 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드논쟁에서 보듯이 미국내 군산복합체의 막강한 세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이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미중간의 군사적 대결구도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중재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 핵무기를 제외한 한국의
화력(firepower)은 세계7위에 달한다. 경제력도 G20에 들어갈 만큼 커졌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니다. 중견국으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인 외교정책을 구사할 때가 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질질 끌려가는 다니는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한반도의 중립화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해야한다. 우선 학계에서 이런 방향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대결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동안 백약이 무효였다. 중립화안의 경우에도 기존의 남북한 동시중립화를 찬성하는 분들은 중립화통일된
궁극적 상태/결과를 갈망하여, 그 과정의 복잡성/위험성에 대해서까지 침묵한다. 남북한 동시중립화를 반대하는 분들은 그 과정의 복잡성/위헙성에 주목하여, 그 결과까지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상태에서 동시중립화는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단계적 중립화통일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는 솔직히 마음 속으로 저의 안이 혹시라도 공론화되어, 북한이 먼저
"북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하게 되길 바란다. 북한은 실제로 중립화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북한 혼자 중립화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북한이
"북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하면 그것이 북핵문제의 해결과도 연계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게 된 것은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안보가 위태하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북핵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며, 한반도의 중립화 혹은 남한만의 중립화는 그에 부합하는 정책방향이라고
저는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저의 답변이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북한이 핵무장까지 한 상황에서 과연
중립화란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일까? 혹시 이상주의가 앞서서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희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편집자의 문제제기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저의 답변이 대한민국호가
진실로 통일을 지향하여 국가방향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고,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갈 것(Haste makes waste.)”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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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지면에서 상세히 논할 수 없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람:
· Tae-Ryong
Yoon, "Neutralize or Die: Reshuffling South Korea's Grand Strategy Cards
and the Neutralization of South Korea Alone," Pacific Focus,
Vol.30, No.2 (August 2015);
· 윤태룡, “국내외 한반도중립화 논쟁의 비교분석: 찬반논쟁을 넘어서,” <평화학연구>, 14권 3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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