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홍보실
윤태룡 교수, [아침을 열며] 지뢰사건과 거짓말
1960년대 이후 청와대 기습사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EC-121정찰기 피격사건, 울진삼척공비사건, 판문점도끼만행사건, 1, 2차 연평해전, 박왕자 피격사건, 천안함사건 등 많은 악재가 있었지만, 역시 남북한 관계 최대의 악재는 6ㆍ25전쟁이었다. 이런 사건 때마다 남북한은 서로 진실공방을 벌여왔는데, 그 동안 북한의 가장 큰 거짓말은 6ㆍ25전쟁에 관한 것이다. 수많은 상황, 문서상 증거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전면 남침을 아직도 남한의 북침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하지만 늘 "북진통일"을 외쳐대며 북한에 남침의 구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발발 직후 제일 먼저 줄행랑을 쳐놓고 국민들에게는 피난 가지 말라고 한 이승만의 거짓말은 어땠는가. 한강 다리까지 폭파했고 서울 수복 후에는 다수를 부역자로 몰아 처형한 행각은 또 어떤가.
6ㆍ25전쟁이 자신들에게는 "민족해방전쟁"이었겠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고 민족 갈등의 골을 판 북한 정권은 과오를 시인ㆍ사과했어야 옳다. 화해와 신뢰 구축의 단초는 그래야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그럴 용기가 없다. 그러니 이번 지뢰사건을 두고 북한이 남한의 조작극이라고 주장해도 남한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북한은 외세(소련)를 업고 집권했고 역시 외세(소련, 중국)에 의존해 "반민족적 전쟁"을 일으켰다. 그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토록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역시 외세(미국)에 편승해 정권을 창출한 남한정부도 동베를린 간첩사건, 민청학련사건, 근래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 국정원 직원 대선 댓글조작 사건 등에서 드러나듯 국민을 향해 수없이 거짓말을 해왔다. 지금 국정원 ‘불법해킹사찰 의혹'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물론 천안함 사건도 아직 미제사건이다(신상철의 ‘천안함은 좌초입니다!'를 읽어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거짓말이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흔히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여기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존슨 대통령은 월남전 개입 명분을 얻기 위해 통킹만사건을 조작했고,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을 위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조작했다. 미국정부는 자국민에게까지 세균, 의학실험을 자행한 일도 있다. 그러니 최근 한국 내에서 불거진 탄저균 실험쯤이야. 일본의 보수세력은 미국의 잘못된 전후 정책 때문에 정치적으로 살아남았다. 9ㆍ11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도 아직 진행형이다. 이러니 미국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가 ‘왜 지도자는 거짓말을 하는가(Why leaders lie)'라는 책까지 쓴 것 아니겠는가.
지뢰사건을 놓고 벌이는 남북의 진실 공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의 ‘거짓말'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남한정부의 거짓말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정부의 ‘주장'을 ‘사실'로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북한 혹은 제3국과 공동조사를 실시해 우리 정부의 주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정부를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국민을 ‘종북'이라 낙인 찍을 것이 아니라, 신뢰를 잃게 만든 정부 스스로 먼저 반성해야 한다. 각종 비리, 부패사건뿐 아니라, 국가안보를 빙자한 정부의 거짓말이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주주의 강화야말로 안보의 지름길이다. 미워하는 자들끼리는 서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거울을 한번 보자. 혹시 우리 모습이 괴물로 변해 있지 않은지 확인부터 해보자.
윤태룡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보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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