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9

알라딘: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군함도에서 야스쿠니까지,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알라딘: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군함도에서 야스쿠니까지,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eBook]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군함도에서 야스쿠니까지,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이치바 준코,김민철,조한성,김영환,조시현,김승은,김진영,노기 카오리,김미경,마메타 도시키,소라노 요시히로,야노 히데키,야마모토 나오요시,우에다 케이시,이희자,장완익,후루카와 마사키,김정미 (지은이),민족문제연구소 (기획)생각정원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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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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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496쪽

주간 편집 회의
"강제동원 100년, 분쟁을 넘어 역사를 마주하라"
해결 가능한 역사라는 게 가능할까? 벌어진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고, 누군가 겪은 일은 아무도 겪지 않은 일로 바꿀 수 없으니, 사실을 밝히고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하는 게 최선이겠고,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표현은 영원히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억지로 말을 만들어 지난 역사가 정리되었다고 마침표를 찍고는, 서둘러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모순이 오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오늘 한국에 얽힌 역사의 모순을 풀어보려 기획되었다. 최근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논란을 빚은 군함도를 시작으로,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일제가 강제로 끌고간 조선인의 삶이 남아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고, 길고 긴 세월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붙잡고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최근 한일 위안부 합의가 그러했듯, 이들은 고통을 받았을 뿐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쟁이든 협상이든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잊힌 그들을 불러내 망각을 기억으로 되돌리는 일은, 이렇게 역사를 마주하는 데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 역사 MD 박태근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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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부──군함도, 조선인을 기억하라
‘군함도’라 불리는 섬에 가다
조선인들은 어떻게 끌려갔을까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
강제징용의 현장, 세계유산이 되다
* 강제동원 역사 전체를 밝혀라

2부──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군수품 조달에 동원되다
환영받지 못한 여자근로정신대의 귀국선
수몰된 136명, 조세이 탄광의 비극
함포사격의 타깃이 된 ‘철의 도시’ 가마이시
아사지노 비행장에 버려진 유골들
우편저금과 연금 기록으로 아버지를 찾다
오키나와 전쟁에 끌려간 조선인들
* 오사카의 강제연행 유적지 안내판 설치와 우익들의 공격

3부──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되다
누가 조선 청년을 전범으로 만들었는가
일본군으로 죽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시베리아에 억류된 조선인 포로들
하이난 섬 ‘조선촌’에 묻혀 있는 살해당한 조선인들
파푸아뉴기니의 유골들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와 나
*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

4부──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여정
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 한국인 유족들
피해자 보상의 길이 열리기까지
일제 강제동원 사건 17년째 소송 중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다
재한군인군속 재판의 발자취
한일협정을 다시 생각한다
*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 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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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1945년 9월 일본 나가사키長? 앞바다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저자 및 역자소개
이치바 준코 (市場 淳子 )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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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났으며 오사카외국어대학의 강사로 활동 중이다. 1979년 1월 한국의 피폭자를 방문하고 현재까지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의 모임'에 관여하고 있다. 공편역한 책으로 <유리 파수꾼 - 한국여성작가단편집>, <일본이 나오는 한국동화집>, <사랑의 한국동화집>, 공저로 <강제연행의 기업책임>, <이웃나라로부터의 고발>, <지구의 여인들>, <여성의 성과 삶>, <도큐멘트 '일본국헌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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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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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저서 『기억을 둘러싼 투쟁』 『기로에 선 촌락』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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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성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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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료 읽는 법과 연구사 정리하는 법 등을 훈련하며 역사학의 정수를 배웠다. 반독재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을 탄압하기 위해 이승만 정권이 일으킨 유도회사건을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교와 수원과학대 등지에서 강의를 하고,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에 참여했다.
2006년부터 3년 반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는데, 이때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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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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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포럼 ‘진실과 정의’ 사무국장. 역서 『인권 30,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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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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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법학사 및 석사학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 취득.
‘2000년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남북한공동검사단 검사, 성신여자대학교.건국대학교 부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식민법제 연구를 기획 중.
주요 논문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역사와 법적 책임”, “한일‘위압부’ 합의에 대한 하나의 결산” 등.
주요 연구주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국제법사, 전쟁범죄, 식민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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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공저) 『한일청구권 50년 비틀린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한다』(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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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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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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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시각표상과 집합적 기억』(공저) 『(식민지 소년의) 창공에의 꿈』(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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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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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생활을 잇는 모임’ 대표. 전 ‘태평양전쟁?오키나와전 피징발자 한의 비 건립을 추진하는 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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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부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 일본인 측 사무국장. 오사카변호사회 국제인권부회 위원. 서일본 난민변호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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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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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기업책임추궁재판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목표로 하는 한일공동행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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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야스쿠니 합사 취하를 실현하기 위한 한일연대 운동단체 ‘노!합사’ 사무국장. 저서 『야스쿠니에 묻는다』(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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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 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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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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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해마루 대표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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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 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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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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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 회원. ‘하이난 섬 근현대사연구회’ 회원.


최근작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총 2종 (모두보기)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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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기념사업 저지,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친일파 독립운동가 사진전, 친일음악의 지상전,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전 등 다양한 활동과 전시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알리고 있다. 특히 2004년 친일... 더보기


최근작 :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 통감부.조선총독부 편>,<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역사와 책임 10호> … 총 3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얼마 전 외교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부산의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독일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회담 자리에서도 일본 측에게 공문 발송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는 한국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일제히 중단한 사실을 보도했다. 와중에 일본 고위층의 역사 부정 망언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달만 해도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고쳐 부르려 하고 자꾸 눈앞에서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12?28 ‘위안부’ 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배 30년, 해방 후 70년…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조세이 탄광, 하이난 섬, 파푸아뉴기니…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다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이곳에 세웠다.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마치 신분 계급을 상징하듯 방파제 끄트머리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중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그 위에 일본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자랑하는 광부들의 주택이, 그 위에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 관리소장의 사택, 섬 꼭대기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故 서정우 씨는 16세에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인근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다(책 65쪽에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찍은 높이 10미터의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서정우 씨의 사진이 실려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시체 수거 작업에 동원되어 피폭되기도 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하고, 그중 절반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하시마 바로 옆에 있는 섬 다카시마에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거대한 동상과 석탄자료관이 자리하지만, 강제동원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0개는 넘게 들어 있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책에는 원폭피해자 2, 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꾸려진 평화기행단이 하시마와 다카시마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난 섬에는 ‘조선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1939년 하이난 섬을 점령한 일본은 이곳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다. 전황이 악화되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형무소에 있던 조선인 죄수들까지 동원해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섬에 보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토지와 가축, 각종 자원을 수탈하고, 군용시설을 짓기 위해 현지인과 아시아인을 강제노동시키고, 심지어 성노예로 삼고 학살했다. 1945년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푸아룽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일본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두 사람씩 나무에 매달아 때렸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때리게 하면서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죽으면 다른 조선인에게 구덩이를 파서 묻게 했다.”
그해 8월 15일 패전한 일본군은 1,000여 명의 조선인에게 갱도를 파게하고 무기와 물자를 묻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한곳에 묻었다.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은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
하이난 섬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기슈 광산을 운영했던 이시하라산업의 만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활동가, 연구자들이 모여 30차례에 걸쳐 하이난 섬 조선촌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수차례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시도했는데, 땅을 파자마자 100여 구가 넘는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2004년 설치된 강제동원위원회에 차례로, 체계적인 유골 발굴, 관련 문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2006년 ‘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은 일본인 고고학자, 발굴 전문가를 동반하고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하이난 섬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가석방되어 귀향한 한국인들을 찾아 새로운 증언을 듣기도 했다. 모두가 열대기후 속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조선촌은 현재 대규모 개발과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인이 매장된 땅 절반이 이미 토사로 뒤덮였고 그 위에 도자기 공장이 세워졌다. 현지인은 말한다. “한국정부가 조선인이 묻힌 장소를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고.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원폭피해자, 재일조선인…
증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귀담아듣다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선 청년 조문상은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는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17세 때 위험이 덜 하고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속아서 포로감시원이 된 이학래도 전범재판에 올랐다. 그는 포로감시원이 되자마자 욕설과 구타, 마주보고 뺨 때리기 등의 가혹 행위를 훈련 받았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에 젖어 있던 그는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호주정부가 자국의 전쟁포로에게 포로감시원들의 사진을 보이며 용의자를 가려낸 결과였다. 포로들은 실질적인 책임자보다 눈앞에 있는 말단 감시원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학래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이학래처럼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은 일본 스가모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뒤에도 이들을 석방하지 않았다.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남은 형기를 마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막상 석방되더라도 가석방 신세라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 중에는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재일한국인 전범자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내각이 바뀔 때마다 청원서를 내고 법적투쟁을 벌여 왔다. 17세 소년 이학래는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2004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합국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포로가 혹독하게 당한 것은 사실이고,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형편없었다 해도 연합국에게 불평하지는 않겠다. 정말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일본정부다. 징용해서 써먹어 놓고 필요가 없어지니 다 쓴 걸레처럼 버리고 모른 척한다. 인간다운 말 한마디라도 왜 건네지 않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24개국 417만 명의 전쟁포로를 억류하고 소련의 전후복구사업에 강제동원했다. 일본군에 징병되어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에 배치되었던 조선인들도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에 포함되어 시베리아 각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8월에 종전을 맞은 조선인들은 여름 군복 차림으로 시베리아 삭풍을 버텨야 했다. 혹한, 기아, 중노동, 장티푸스·이질 등의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땅이 얼어 바로 묻지 못했다. 소련군은 사망자의 옷을 벗기고 가마니에 말아서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이듬해 봄 한꺼번에 포로들을 시켜 시체를 매장하게 했다.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되어 입대 날 바로 소련과의 전쟁이 개시되는 불운을 겪은 이규철의 수기 기록 《시베리아 한의 노래》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를 살피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몸조심하고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하는 가족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 떠나는 아들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를 위해 전쟁터로 가야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 싶지 않다. _이규철, 《시베리아 한의 노래》
하바로스크에서 화물선을 타고 귀국한 조선인 포로 중에서 북한을 거쳐 고향 남한으로 내려온 포로들은 기총 사격을 받거나 공작원이나 간첩으로 오해받아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적성국가 체류 경험이 있다고 하여 최전방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생존하더라도 내내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결성한 ‘시베리아삭풍회’는 일본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전억협)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중앙공문서보관소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시베리아삭풍회와 전억협의 공동 투쟁은 한일 피해자 단체가 함께 싸운 보기 드문 사례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총 55명의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성과를 거뒀다. 시베리아삭풍회는 이후 재한군인군속재판 제2차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고, 기각되자 재차 항소했다. 일본 법원의 기각 사유는 일본정부의 말과 다름없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쟁으로 우리가 왜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는 의미로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것으로, 1951년 9월 8일 조인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발효됐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한일협정’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수교에 이른 일이다. 일본의 침략과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죄가 선행되지 않았고, 청구권, 어업, 문화재반환 등에서 한국 측의 지나친 양보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협정은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일본에게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법원 판결의 근거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배상문제는 모두 매듭지었다” “한일청구권협정 및 조치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말이 되돌아오곤 한다.
이는 때때로 일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적용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한 조선인 전범들은 석방을 기대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형기를 마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산 일본군 ‘위안부’?근로정신대 소송은 일본의 지방재판소에서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정부가 미국에 로비하여 “전쟁배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2국 간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을 끌어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한일협정도 사사건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1967년 원폭피해자협회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인 항의 시위에서, 그리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본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답했다.
2015년 12월 28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의 외교적 압승”이라고 평한다. 피해 당사자와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보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크게 반발했던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연상시킨다. 지금 일본은 주한일본대사를 귀국시킨 후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10억 엔의 보상금을 보냈다는 말과 “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말과 함께. 일본은 이제 뒤로 물러나 우리끼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외교부가 지자체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에 이어 노총이 추진해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건립도 외교부와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가,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가. 그토록 성급히 두 손을 부여잡고 ‘불가역’을 선언할 이유가 뭐였을까. 식민치하 30년, 해방 70년… 백 년을 하루 같이 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한국정부였다.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실 조회와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했지만 한국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일본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한국정부와 법원의 태도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망각의 현장을 기억의 유산으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들은 잘못 꿰인 첫 단추로 ‘한일협정’을 꼽는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결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에 유리한 명분만 우리에게 족쇄로 남았다. 이것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을 향해 취했던 전략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의 전후 개혁을 주도하면서 책임을 묻는 대신 재건을 도왔다.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를 위해 한일회담 타결을 재촉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숙제는 제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전후보상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일본에게서 받은 청구권자금 대부분이 경제건설의 재원으로 쓰였다고 하니,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과 지금의 경제성장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한일협정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새로 밝혔다. 피해자 구제를 방기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지원법을 제정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결의가 없었다면, 일본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조직적 시민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피해자와 유족, 한일 시민운동가들의 연대로, 길고긴 재판투쟁으로,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일본이 그토록 ‘근거 없음’이라고 부정하는 역사, 그러나 우리 곁에는 비록 하나둘 사라지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증인들이 계신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고, 그러나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걸 상기하고 싶다. 이 책과 함께 이전에는 다 알지 못했던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고, 그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섬세히 기록하고 영영히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써내야 한다.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
나와 당신, 우리의 싸움으로

더불어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보자. 분노와 적대감, 반일감정만 높이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각자 ‘책임질 몫을 다하기’ 위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이, 유족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듯이, 이제 나와 당신도 무엇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할지, 무엇으로 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지 결정할 때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더라도 잠시 이 말에 멈추어 서보길 권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지만, 모든 일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소송을 하는데, 좋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미워할 때는 자신이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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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날지 모를 지옥‘ 군함도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이야기. 책을 통해나마 그들을 기억하고 힘이 닿는 한 많은 분들께 전하고 싶다. 희미해져가는 우리의 역사를.
카키모카 2017-03-0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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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볼까 다큐로 볼까 고민하다가 다큐로 결정했다.차분하게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다보니 내가 그동안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사례가 많았다.소설 군함도를 봤으면 흥미진진하게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차분하게 보면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홍대사시미 2017-07-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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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잊지 말아야 할,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입니다. 어떤 힘도 기억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JEDIHONG 2017-04-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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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에 대한 서술이자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한일 양국 시민들의 노력이 빛난다
훌라댄서 2017-05-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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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한일관계른 만들어낸 박정희 체제가 그 딸 박근혜의 파면으로 인해 종식되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 들어선 지금, 잊거나 알지못했던 일제의 악행을 망각에서 소환해내고 우리에게 상기시키므로써 정당한 한일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dorinia 2017-03-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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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속에 묻힌 조선인들의 눈물








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가 1916년 경복궁 궐내에 지은 건물이다. 해방 이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일제 잔재 청산과 경복궁 복원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1996년 역사적인 철거 사업이 시작됐다. 역사의 흉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일제 잔재가 사라졌다며 쾌재를 부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조선총독부가 사라지면서 일제 잔재를 말끔히 청산한 것일까? 친일파 연구와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고 내리게 된 답은 분명 ‘아니다’다.



해방된 지 반세기 가까이 흐른 오늘날까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절정을 이뤘던 강제연행의 실상은 아직도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수천여 명의 젊은 조선인이 동원되었고, 이중 절반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땅에 잠들어 있다. 일본군의 점령지 전역에 버려져 있는 유해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피맺힌 한을 안고 숨져간 조선인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은 물론 강제징용에 관한 실태조사 등을 위한 별다른 노력이나 관심조차 없었던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도 일본, 중국, 러시아 땅은 물론 국내에서 강제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전용 성노예’ 등 여러 형태로 일제에 끌려갔던 피해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불치의 병으로 혹은 가난으로 고통과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강제연행 희생자 및 그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실상,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강제징용 · 징병의 현장 등에 대한 탐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이 책은 무엇 때문에 강제연행의 실상이 뒤늦게나마 밝혀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일본 정부의 전쟁책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를 밝혀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억울한 희생자들을 부끄러운 과거 역사의 한 부산물로만 간주, 은폐와 망각의 세월 속에 묶어 두려는 우를 범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만악의 근원’이다. ‘경제문제 해결’, ‘군부가 일으킨 정권의 적법성 인정’이라는 박정희 정권의 필요와 ‘식민지 피해청산’의 부채를 경제협력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해소하려는 일본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박정희 정권은 ‘역사적 소명의식’에 따라 한일협정을 타결했다고 강변했으나,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규탄하는 극렬 반대 데모를 계엄령으로 잠재운 상태에서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협정은 미국의 중재가 주효한 결과이기도 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통합 전략의 목적으로 한일 양국을 종용해 국교 정상화를 서둘렀으며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문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라이트(New Right) 또는 몰상식한 ‘가짜 보수’들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강조하는 일은 한일 양국 관계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사 청산 노력을 ‘색깔론’으로 덧씌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일본 극우 세력들은 침략전쟁을 오히려 정의로운 전쟁으로 미화한다. 아베 정부는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 섬(군함도) 등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수 산업의 중심지로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화를 일궈낸 일본 산업의 역사’로 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쓰비시는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사에 큰 해악을 끼친 전범(戰犯) 기업이다. 일본 근대화의 기초를 닦은 산업 발상지라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 등재를 책동하는 것은 일본의 저급한 역사 인식을 증명한다. ‘수인번호 503번’과 뉴라이트 세력들은 1965년 한일협정이 과거사 청산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한일협정을 맺은 지 정확히 50년 후에 ‘수인번호 503번’은 위로금 10억 엔(한화 100억 원)을 받으려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였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뉴라이트는 ‘전범 기업’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박정희를 ‘근대화를 일궈낸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한다.



영화 <군함도>로 불거진 논란이 당분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현재 상황이 걱정스럽다. ‘군함도’는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의 현장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군함도’는 강제징용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지로 끌려와 강제노동으로 혹사당했던 가슴 아픈 현장들이 많다. 홋카이도에서 류큐(오키나와)까지 일본 어디를 가나 강제동원 현장이 아닌 곳이 없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 하이난 섬이 우리 민족의 한이 깊게 서린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이난 섬의 학살’을 처음 알았다. ‘군함도’가 알리기 시작하면서 강제징용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아직도 이역만리에서 떠돌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수록 우리는 지금부터 기억해야 할 그 ‘무엇’을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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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7 공감(23) 댓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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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조한성 외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13)
지난 세기 가혹한 고통을 당하고 질곡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정의와 공동체의 번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120)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일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산 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 의례를 넘어 생활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의미의 추모와 기억이 아닐까.(303)
우리는 일본, 일본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 침략 및 일제 강제동원의 '강제성''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용서 없이 역사 청산을 이룰 수 없다.(405)

R의 고백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 슬퍼서 책을 덮고 잠시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문뜩 내 머릿속으로 심리학, 자아 정체성, 역사가 뒤얽힌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마침 제가 제 생각을 발표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때 떠오른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뭔가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저만의생각이 담긴 것이기에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겪였던 몇 년에 걸친 심리적인 자가 치유의 시간에 있어서 제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제 자신의 여려 면모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 전의 저는, 저 자신의 나쁜 면, 추한 면, 악한 면, 부끄러운 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만 해왔습니다. 회피는 저 자신에 대한 부정이나 환멸, 자학으로 이어지더군요. 우울증이라는 문제가 생기고, 치유의 과정을 가지고서야 저는 저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회피하다 못해 부정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서야 저는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끌어안고 그것이 저 자신의 자아 정체성임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과 인정의 과정을 거친 저는, 그 이전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되더군요. 과거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강해지고, 더 나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의 존재. 저는 지금의 저가 좋습니다.

이 자아 정체성을 인식하는 과정의 문제를 단지 '자아'의 문제를 넘어서 확장시켜봅시다. 공동체,사회,국가의 영역으로. 공동체,사회,국가에도 긍정적인 면와 부정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고 부정적인 면은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말하고 기억한다면 그 공동체가,사회가, 국가가 건강하고 괜찮은 공동체,사회,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아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 저 자신의 과거의 모습처럼, 그 공동체,사회,국가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역사의 문제를 여기에 연결한다면 좋은 역사만 기억하는 공동체,사회,국가는 어딘가 있는 문제가 있는 공동체,사회,국가라는 말이 되겠죠? 어쩌면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존재가 속한 공동체,사회,국가가 더 건강하고 건전하며 나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으며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건전한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피해,차별,학살,폭력,강제동원 등의 사건들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사과나 보상도 안한 채 자신들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그것만 기억하는 나라가 어떻게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국인 피해자들을 돕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각각의 개인들을 떠나서 일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일본 사회 전체를 역사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일본만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고 더 건강하고 건전한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일까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보면 이 부분에서 한국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저는 저 자신이 자기 치유를 했던 것처럼, 미약한 힘이지만 저 자신이나마 더 괜찮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사회로 한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위해 더 많은 역사책을 읽고 혼자서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과 저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저의 이런 미약한 행동이 작은 파문이나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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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2-03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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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작년 5월 쯤 소설가 한수산님의 군함도가 출간되었다. 그 때 그 소설을 지인에게 선물 받았는데, 아직까지 읽지 않고 소장하고 있다. 최근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군함도, 영화 속 우리의 아픈 역사 이야기는 처음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점점 더 대중들에게 식어갔다. 영화 속에서 보여진 역사 왜곡에 대한 뜨거운 논쟁, 더 나아가 전국의 영화관 독점으로 인한 폐단이 불거지면서 , 영화 군함도는 700만을 코앞에 두고 영화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소설과 영화에 대한 관심, 그로 인해 한수산님의 작품들을 훑어보다가 소설 군... + 더보기
깐도리 2017-08-2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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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끝나지 않은 전쟁




한.일관계는 과거의 역사 문제로 오랜 세월 옥신각신하고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한국은 피해자인 관계에 놓여 있는 채 오랜 숙원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가 일제 강점기하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되고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품고 있는 분들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조선의 젊은 청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아직도 속시원히 해결해 주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태평양 전쟁 즈음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젊은 청년들은 꽃피는 시절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희생되기도 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 일본에 눌러 살아야만 하는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징용 및 징병 그리고 여자정신근로대들에 대한 책임 있는 인정(사과) 및 피해보상이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식 명칭은 하시마(端島)이고 섬의 모양이 군함과 비슷하다해서 붙여진 군함도(궁깐또)는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인공섬이다. 일제가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위해 세운 미쓰비시사(社)가 조선소와 하시마 탄광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는데, 침략전쟁 기간 군함과 어뢰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조선에서 징용되어 온 젊은이들은 수없이 희생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을 할 의지조차 없다. 나는 이 도서를 구입할 무렵 '군함도'라는 영화를 관람하면서 일제 제국주의가 저지른 온갖 만행을 한층 더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잔인하고 악랄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재현했다고 생각을 했다.이제 피해를 입고 희생을 입었던 분들은 거의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대신 유족들이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 및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시기에 강제동원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다음(DAUM) 스토리펀딩 및 TV 《무한도전》에서 군함도의 사연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동일한 과거의 아픔과 상처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전향적인 역사의 인식을 갖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합의로 인해 일본 정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10억 엔의 대가로 소녀상의 철거를 약속한 것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의 이면은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역사가 과거로 회귀하거나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도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일제 강점기하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은 어찌 군함도의 탄광에 강제 징용된 젊은 청년들의 희생뿐이겠는가. 태평양 전쟁의 앞잡이로 나서게 된 조선의 젊은 청년들, 일본군의 위안부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정신근로대들은 싸구려 희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강제 징용되었던 청년들이 전범(戰犯)으로 몰리고 형해(形骸)화된 유골들이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된다는 말인가. 일본 정부가 가해자로서 1차적 책임이 있다면 한국 정부 역시 피해자들에게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들이밀어야 할 판국이다. 지옥섬 군함도의 징용 조선 청년들의 희생부터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걸쳐 군수품 조달에 동원되고, 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되었다.









이제 광복 70주년을 지나고 현재 한반도는 어느때보다 정치.경제.군사 문제에 있어 예측하기 어려운 난관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 강점기하 일본 제국이 저지른 강제연행.강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유족 및 유지(有志)들의 피말리는 여정에 들어서 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키면서 군함도가 세상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미해결된 갖가지 한.일협정의 재정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일본 정부 및 미쓰비시사(社)를 상대로 기나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유족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재판 및 (한국의 정부기관이) 피해자 심사 시 '기록'이 판단 근거가 되는 바, 일본정부는 아직도 극히 일부만 알려주었을 뿐이다. 은폐된 진실, 쪽뿐인 전시성 추모에서 실질적이고 (한.일 양국)동반 상생하는 양국 관계를 향해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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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7-12-3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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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강제징용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섬.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고통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섬, 군함도,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라 부른다는데, 19세기부터 탄광사업이 번영했던 섬으로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수많은 조선 징용인들이 군함도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렇듯 조선사람에겐 수모의 땅인 ‘군함도’를 우리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2015년 7월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조선 청년들의 한맺힌 사연이나 고된 노동의 아픔을 묻어두고 그들은 군함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기록은 사실적 역사로서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아야 한다.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가 나치의 학살을 증빙하는 자료로 길이 남겨졌듯,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젊은 나이에 쓰러져간 조선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군함도의 진상은 세계만방에 알려져야 하고 강제징용의 자료로써 인류문화재로 길이 보존되어야 한다.



일본은 ‘군함도’를 등재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하였다. 조선인 5만 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된 바 있는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노동착취 사실을 숨기고, 일본의 근대 문화유산을 선전하는데 군함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 군함도라는 작은 섬에 조선인 수 만 명이 강제로 끌려와 하루 12시간 이상씩 탄광 속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역사적 아픔을 돌아보면 결코 일본이 군함도를 자신들의 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선전하는 일을 좌시할 수 없다.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청년의 꿈을 짓밟고 임금착취 및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많은 조선인이 죽어간 통한의 섬, 군함도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늦었지만 근래‘군함도’를 영화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알린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죄 없이 끌려가 이국의 바다 낯선 섬에서 죽어간 원혼을 달래고,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잔악한 실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일본이라는 민족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듯이, 앞으로도 충분히 역사를 조작하고 침범할 우려가 높다. 한국 고유의 땅 독도를 올해부터 일본의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예부터 일본의 땅이라 기술하고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 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세계적 여론을 등에 업고 한국과 영토 전쟁을 벌일지 모를 일이다.



군함도가 일제강점기 한국민이 당한 피해상황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이제 당시의 산증인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군함도의 역사적 현실을 길이 후손들에게 남길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수 십 년에 걸쳐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들을 모아 후대에 길이 남을 군함도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했다. 우리 후손들은 다시 있어서 안 될 치욕의 역사를 올바로 배우고,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부정과 영토야욕을 철저히 분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위안부 소녀상 설치 반대 및 2016.12.28.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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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7-03-2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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