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4

박정미 - 이남순 회고록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를...



(1) 박정미 -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살아가는 법 -이남순 회고록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를...

박정미
1 hr ·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살아가는 법
-이남순 회고록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를 읽고


한 때 우리도 혁명의 시대를 산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낡은 세상을 단박에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겠노라고 외쳤던 젊음이 있었다. 객관적인 세계의 흐름에서는 고립되었지만 그러한 긴장감과 사명감에 불타오른 적이 있었다.

혁명의 시기는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자리잡은 사고의 관성은 여전히 남아 이제 주류세력이 된 86세대의 레토릭으로 작동하고 있다.
조국사태나 윤미향사태 모두 머릿속 언어와 사고 관성과 발딛고 있는 생활현실과 욕망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기로 쓰는 언어는 적폐, 척결 등의 전쟁용어이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자식들 학벌 재창출과 돈을 모으기 위한 졸렬한 잡범죄일 뿐이다. 비분강개 내뱉는 검찰과 조중동의 음모론이 얼마나 공허한지 그들만 모른다.

그 때 혁명의 시기, 여성운동가의 자세는 돌이켜보면 두가지 전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무늬만 여자일 뿐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고 남자보다 더 전투적이고 저돌적으로 혁명에 헌신하는 타입이다. 또 하나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주체성과 독자적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여성해방을 생의 과제로 삼는 페미니스트 타입이 그것이다.
둘 다 노선은 달리 설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해방을 겨냥했으며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나아간다는 면에서는 일치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사적인 관계나 내면의 충실성은 언제든 내던질 태세였다.

하지만 그 두 부류에 속하지 않고 무정형, 비전형의 길을 혁명적으로 걸어온 여성운동가가 있다. 일선(一仙) 이남순(1922.7.17생, 2013.3.14 졸)의 인생이 그렇다.
일선은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딸로서의 자신을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고 가정을 도량으로 삼아 긴장감과 사명감으로 여성과 인간해방의 길을 걸어간 운동가로 보여진다. 여성으로서 생활을 긍정하면서도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사회적 삶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인 것이다. 이제 그러한 삶은 또 하나의 여성운동적 전범으로 새롭게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더 유용하다거나 더 낫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마다 상황마다 요구되는 인간형이 다르고 독특한 인간존재로서 각자 타고난 지향성도 다를 것이다.
다만 혁명의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 생활 속에서 그 젊은 시절 배웠던 가치와 꿈꾸었던 세상을 어떻게 실현시켜나갈 것인지 그의 삶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다. 혁명의 언어와 꿈이 평화로운 일상에서 모순되지 않게 실현되는 방법론 말이다.
일선은 유명한 혁명가나 사회운동가, 영적 지도자로 일가를 이룬 분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생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에 어머니, 사회운동가, 영적지도자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끊임없이 통합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보았다.

일선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남과북의 무서운 대치기에 남북문제, 세계평화문제에 천착하고 실천한 청장년기를 보냈으며 말년에는 평화의 섬 제주에서 남북통일과 셰계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며 여생을 마쳤다.
일제하 유명한 광산왕이자 ‘대동사상’을 가지고 농촌개혁과 교육사회사업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해방후에는 자진월북하여 북의 고위관료를 지내다가 유일하게 자본가로서 애국열사능에 묻힌 이종만선생이 그의 아버지이다.
어린시절 ‘밥상머리 교육’ 으로 뇌리에 심어진 아버지의 대동사상은 일선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사상이었으며 남과 북을 오가며 그가 추구해온 영세중립평화통일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대동사상은 사심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고 차이와 분별을 넘어 모두가 동일한 본질의 존재임을 깨달아 ‘인류동포 세계일가’의 평화세계를 이루자는 사상이다.)

40대의 그는 과감한 결단을 통해 이민을 결정하고 새로운 가족생활을 열었다.
이것은 월북자가족으로서의 제약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여자들의 날개를 꺾어놓고 집안을 한으로 도배해놓은 가부장적인 관념”에 맞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이었다.
거의 빈손으로 브라질 이민을 결정하고 이후 캐나다에서 새로운 기반을 잡기까지 그의 굳건한 정신과 생활력은 놀랍다.
일선은 일제시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지식상류층 출신이다. 그런데도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이민을 가게 되자 재봉사일을, 캐나다 이민초기에는 병원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강하고 책임감있는 여성인지 보여준다.

일선은 남북한의 실상을 알기 위해 서슬푸른 유신독재시절을 비롯한 70년대부터 세번이나 북한을 방문하여 실상을 알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근사한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일선은 1975년 북한에 가서 아버지를 상봉한 이후 죽을 때까지 40여년을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한다. 때로는 직접적 정치활동으로 때로는 영적인 행보로 그를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선님의 삶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비상하게 사로잡은 것은 가정생활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정은 일생동안 자아를 성숙시켜주고 훈련시켜준 영혼의 학교였고, 평화의 존재로 커나가는 의식의 싹을 틔워주고 길러준 영혼의 못자리였다.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다 실로 나의 스승이었고 성숙과 행복의 동반자였다.
나는 지금 우리 가정의 제일 큰 어른이 되어, 어머니, 외할머니, 증조외할머니의 자리에 있다. 모든 가족들의 삶 속에 나라는 존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


그의 친북한적인 정치행동으로 인해 한때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일기도 했다. 그는 이 때의 일을 정직하게 회고하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지도자형의 어머니는 에너지흐름의 방향이 같은 자식들에게는 순풍에 돛을 달아준 것처럼 초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하지만 반항적이고 회의적이고 독자적인 지성을 가진 정신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부모자식관계에서 도반관계로의 전환을 이루어낸 큰 어른이시다.
그는 사회적, 정치적, 영적의식의 진전을 딸 둘, 아들 둘과 함께 공유했으며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식을 둔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꿈 아닌가!


어린시절 맑고 깨끗한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보람차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진성과 열의가 내게도 있었다.
하루하루 자신을 갈고 닦으면 무언가 참되고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완성되리라고 믿었다. 인생의 목적은 완성에 있으며 거기에 도달하려 노력하다 죽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어리고 새것이어서 반짝반짝 빛났던 옛 마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와 다르게 일선은 구십이 넘은 한 생을 어린시절 그 마음 그대로 밀고 나가신 분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책 <닥터지바고>에 보면 바리끼노에서의 마지막 나날 중에 행선지를 놓고 라라와 유리가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보인다.
그 때 라라는 이런 말을 한다."우리의 처지가 같지 않다는 걸 모르시겠어요? 당신에겐 구름 위로도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주어져 있지만, 여자인 저에게는 땅 가까이를 날면서 어린 것을 감싸줄 수 있는 날개만 있어요."
일선은 라라보다 셋이나 더 많은 자식을 보듬어 안고 하늘로 오르려 구십평생을 그침이 없이 날개를 퍼덕였다.
그의 마지막날의 이야기는 자서전의 성격상 나오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평생을 날고 또 날아 마침내 하늘에 이르렀다고.




9강길모 and 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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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hin 저희 집에서도 직접 씨를 심어 발아시킨 뒤 다시 심은 해바라기들이 작은 밭을 이루어 잘 자라고 있어요. 왜 해바라기에 집착하는지 자신도 잘 모른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정미 replied · 1 reply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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