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 :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문학감상
2009. 11. 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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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도읍지를>
【시조】- 길재(吉再)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어휘풀이】
<도읍지(都邑地)> : 서울을. 개성(開城)에. ‘를’은 처소격 조가 ‘에’의 뜻.
<필마(匹馬)> : 한 필의 말, 또는 말 탄 혼자 몸. ‘필(匹)’에는 ‘필부(匹夫)’, 곧 벼슬이 없고 신분이 낮은 남자란 뜻이 아울러 들어있다. 유의어는 단기(單騎).
<돌아드니> : 돌아와 들어가 보니.
<의구(依舊)하되> : 예와 다름 없으되.
<인걸(人傑)> : 뛰어난 인재(人才). 빼어난 인재. 여기서는 고려 충신(忠臣)들.
<어즈버> : '아‘와 같은 감탄사. 시조의 종장 첫 구에 흔히 쓰였음.
<태평연월(太平烟月)> : 태평하고 안락한 세월. 여기서는 고려가 융성하던 때. 유의어는 강구연월(康衢煙月).
<꿈이런가> : 꿈이던가. 꿈이었던가. 꿈인가. ‘러’는 회상 보조어간. ‘더〉러’로 ㄷ의 유음화.
【현대어 풀이】
오백년 이어온 도읍지를 홀로 말을 타고 들어가니
산과 강은 예와 다름없으나, 인걸은 간 곳 없구나.
아아! 태평성대를 누리던 지난날의 하룻밤 꿈과 같구나..
【해설】
길재는 고려말의 충신으로,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李芳遠)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節義)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敍用)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이 시조는 고려말 3은(三隱)의 한 사람이었던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백의(白衣)의 몸으로 영화로웠던 고도(古都) 송도(松都)에 와서 인재들은 흩어져 없어지고,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인생무상이 느껴져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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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지은이 : 길재(吉再: 1353∼1419)
▶갈래 : 단형시조, 평시조, 서정시, 회고가(懷古歌)
▶성격 : 영탄적, 감상적(感傷的), 회고적(懷古的)
▶명칭 : 회고가(懷古歌)
▶배경
- 시대적 배경 : 고려의 멸망
- 심적 상황 : 섬기던 고려 왕조는 망하고, 동지, 인물은 모두 죽어,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하구나.
▶정조(情調) : 세사(世事)의 흥망성쇠와 인생무상의 정
▶소재 : 도읍지(송도), 산천, 인걸
▶수사법 : 대조법, 영탄법
▶표현 : 직설적이고 순박함.
▶핵심어 : 꿈(이런가)
▶제재 : 고려조의 멸망
▶주제 :
- 고려 왕조의 무상(無常)함을 한탄함.
- 망국의 한
- 고려에 대한 회고의 정.
【구성】
▶초장 : 기(起) - 평민의 몸으로 돌아옴.
▶중장 : 승(承) - 인생의 유한성(有限性).
▶종장 : 결(結) - 인생무상(人生無常)
【감상】
고려 유신(遺臣의) 회고가(懷古歌)이다. 나라는 망하고 사람은 없어졌건만 자연은 예대로 아름다우니 인간의 부귀영화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자기가 벼슬살이하던 옛 서울로 돌아와서, 그 때의 영화, 그 때의 인물을 찾을 길 없음을 한탄하면서, 고려 오백 년도 덧없는 꿈과 같다는 무상감에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에 들러 회고의 상념에 잠겨서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한 노래이다. 초, 중장의 구상적 표현과 종장의 추상적인 표현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필마'에는 벼슬하지 않은 외로 운 신세, '태평연월'에는 고려조의 흥성했던 시절, '이런가'에는 무상감이 비유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시조는 고려의 멸망을 제재로 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회고의 정과 인생무상을 회고적·감상적 어조로 노래한 서정시이다.
초장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는 '오백년이나 이어져온 고려의 옛 서울에 한 필의 말을 타고 들어가니'라는 뜻이고, '필마'는 작가의 외로운 신세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중장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에서는 '산천'과 '인걸'을 대비하여 인간의 삶이 허망하고 무상함을 강조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회한의 정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종장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에서는 고려왕조의 흥성했던 시절을 의미하는 '태평연월'과 '꿈이런가'라는 표현이 서로 호응함으로써, 고려 멸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인간사의 무상함을 느끼는 마음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초장과 중장의 구상적 표현과 종장의 추상적인 표현은 서로 대조를 이루며 시조의 쓸쓸한 정조를 더욱 잘 드러내준다
이 시조에서 ‘필마(匹馬)’는 벼슬이 없고 신분이 낮은 남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곧 평민(平民)을 의미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야인(野人)의 몸으로 혼자 말을 타고 송도(松都)에 들러 본 것이다. 중장에는 세사(世事)의 무상함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산천(山川)과 인간의 짧은 생명과 잘 대조시켜, 사람의 덧없음을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인걸은 고려 충신(遺臣)들을 가리킨다.
또 중장(中章)은 두보(두보(杜甫)의 <춘망(春望)>이라는 시에서,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옛 그대로다.)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영화로웠던 궁궐에 봄이 와서 풀나무만 무성하도다.)
를 연상시킨다.
종장(終章)에서는 인새의 한때의 영화는 꿈과 같이 허무한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태평연월(太平烟月)’은 고려의 화려하고 융성했던 때를 말한다. ‘꿈이런가’는 과거를 회상하는 근거가 되는 말이다. 중장(中章)이 구상적(具象的)이라면 종장(終章)은 추상적(抽象的)인 표현이다.
이 시조는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와 함께 고려 유신(遺臣)으;l 화고가(懷古歌)로서, 시조의 기본 율조가 어긋남이 없는 전형적인 틀을 지니면서 전편에 애상적9哀想的)인 정조(情調)가 흐르고 있으며, 뷸사이군(不事二君)하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의 매서운 정렬(貞烈)과는 대조적으로 유약성(柔弱性)이 엿보인다.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야은(冶隱)의 이 시조는, 고려의 고관별직을 다 거친 그로서 고려가 망한 뒤의 옛 도읍을 찾은 감회가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말 창왕의 문하주서(門下注書)까지 지내던 중 향리의 노모를 섬기기 위해서 선산(善山)으로 내려가 칩거했었다.
그러한 그였기에 무너진 여조(麗朝)의 옛 정을 찾아 말을 몰고 구도(舊都)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감회는 자못 착잡할 수밖에..
산천은 그 옛날과 다름이 없으나, 세상을 걱정하고 지식을 천하에 널리 펴던 뛰어난 친구들은 자취를 감춰 만날 길이 없구나. 오백 년을 이어온 여조의 역사가, 그 화려하던 영화도 간 데 없이 텅 빈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의 폐허, 세정의 허무, 그 모든 것이 눈앞을 스치는 하나의 주마등과 같구나!
역사의 어제와 오늘의 경계엔 그만큼 엄청난 세월이 거칠었던가를 돌이켜 볼 때 모두가 꿈만 같이 자기와의 거리가 엄청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더구나 창왕의 문하주서까지 지내면서 여조에 충성을 다한 몸으로 흘러간 왕조에의 추억은 가슴을 조였을 것이다. 왕조가 자기의 생명이자, 신성한 지상 명제로 생각해 왔던 봉건 귀족의 처지에서 여조의 멸망은, 곧 자신의 멸망으로 생각하는 당시의 의식 구조로서 사라진 영화의 발자취들이며 백성을 다스린 경륜을 주고받던 벗들의 부재(不在)를 찾아서라도 말을 몰고 구도(舊都)를 찾은 자로서는 남다른 역사에의 비애가 있었을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천하가 바뀌어 옛 신하들이 새 임금을 모시노라고 여조의 잔영을 찾는 그의 심상에는 꺾이지 않는 한 임금에의 단심(丹心)이 서리어 있음을 우리는 쉽게 읽을 수 있다.
간결하고 지정적인 듯한 이 시조가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속된 세정과 눈앞의 이익을 찾아 몸을 바꾸는 전신(轉身)들에 대한 하나의 항의로써 그의 구도(舊都)답사는 인간이 지니는 하나의 역행 의식으로서 빛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행위의 배경을 아울러 들여다보면서 이 작품을 읽을 때, 거기엔 문인묵객 이상의 표현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인들은 왕조와 나라를 신성시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도읍지를 성지(聖地)로 여겼다. 더구나 임금을 천자로 생각하던 때라, 도읍지를 하늘이 점지한 곳으로 여겨, 그것이 500년이나 이어져 왔음에 느낌도 사뭇 깊었으리라. 그러나 고려인에게 있어서도 ‘역사의 주체’는 ‘하늘의 뜻’과 맥을 잇는 ‘사람’이었다. 지은이는 바로 이 사람을 노래하되, 영원한 자연과 대조시켰다.
이 시조의 초장에서는 홀로 한 필의 말에 몸을 얹고 옛 도읍지로 찾아드는 지은이의 추연(惆然)한 모습이 어린다. 그리고 중장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영상을 예대로인 산천과는 대조로써 한층 더 간절한 것으로 높이더니, 종장에 이르러 ‘이제’의 처지에서 ‘어제’를 그리는 점으로 맺었다. 실로 지은이는 ‘없는 것’과 ‘있는 것’, ‘사라진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그리고 ‘죽은 이’와 ‘산 이’들의 사이를 오가면서 역사와 자연과 사람의 삼각관계와도 같은 진실을 서정(抒情)하였다. - 이상보 : <명시조 감상>(을유문화사.1970) -
[출처] 길재 :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작성자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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