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5

Kang Haejung 손영미 님을 애도하며

Kang Haejung
6 hrs


손영미 님을 애도하며

손영미 소장님의 따뜻한 미소와 목소리와 모습이 너무도 생생해서 보내 드리기가 아직은 정말 힘이 듭니다. 실은 저보다 더 마음을 많이 나누고 벗으로서 동지로서 가깝게 지내왔기에 그 고통이 더욱 커서, 직접 이 자리에 서지 못한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 봐온 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때문에 소장님의 기억을 나누고자 여기 섰습니다만, 정말 마음 아픈 사람들이 차마 입도 떼지 못하고 같이 견디고 있음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의연이 정대협이었던 시절,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생존자들을 모실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함께 모여 살기를 원하는 분들, 또는 수요시위나 기타 활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분들이 같이 묵거나 몸을 편히 쉬게 할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정대협은 당시 서대문의 작은 사무실에서 밤낮 없이 쫓기며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사무실 옆에 쉼터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면 시작하는 정대협이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소수의 상근활동가들이 과로한 업무 중에 돌아가면서 할머니들을 모셨습니다. 교대로 쉼터에서 묵으며 밥을 해드리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병원이나 시위에도 함께 나가는 일들을 처음에는 사무실 상근활동가들이 맡았습니다. 그러다가 손영미 실장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쉼터 생활공간 속 일들을 전담하는 역할을, 손영미 실장님(후에 소장님)이 기꺼이 맡아 주셨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요, 피해 생존자들께는 영원한 지킴이를 만난 때였다고 생각됩니다.

좀 전에 본 영상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손 소장님을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 했지요. “양산 사람이라서 나와 입맛이 똑같다”고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저는 ‘양산사람이라서 입맛이 똑같은 게 아니에요, 할머니…’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뇨를 얻어서 식사를 너무나 가려야 하는데 고기도 드시고 싶고 과자도 드시고 싶은 길원옥 할머니를 야단도 쳐가면서 당뇨 맞춤 식사, 입맛 까다로운 김복동 할머니의 어려운 식성에 맞춤 식사… 할머니들의 일상을 돌보는 것은 손 소장님에게 너무도 당연한 기본이었습니다.

노인이 된 어르신들 모시기는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에 더해 우리가 만나는 이 분들은 끔찍한 전쟁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50년을 침묵하다가 말문을 트신 생존자들입니다. 그 트라우마의 어두운 심연을 우리가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때문에 소장님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생존자들의 일상, 음식, 몸단장, 건강을 돌본 일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생존자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분이었음을 특별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손영미 소장님 하면, 성실, 사랑, 돌봄, 책임… 온통 이런 단어들 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성정이 돌봄과 사랑의 천사 같은 사람, 때로는 할머니들을 품는 언니나 엄마 같은 존재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고, 때로는 마치 피해생존자 한 분 한 분을 치유하는 신심 깊은 사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대협/정의연에서 회의를 하면, 상근활동가들이 전국각지 할머니들을 방문하고 연락 나눈 생존자복지활동 보고가 몇 쪽 분량으로 꽉꽉 채워지는데, 쉼터 소식은 손영미 소장님 몫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으로, 수요시위 현장으로 생존자들이 나서서 피해체험을 증언하고, 평화의 마음을 나눠 주셨습니다. 쉼터가 문 열었을 당시는 할머니들도 아직 건강이 좋고 상대적으로 젊으셨기에, 듣고자 하는 이들의 요청이 있으면 증언도 많이 다니셨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할머니들을 여성인권평화운동가로 존경하게 되고, 말씀에 공감하고, 같은 아픔을 지닌 국내외 여성들이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나게 되었는데, 정작 할머니들은 집에 돌아오면 잠을 못 이루기도 하셨습니다. 수십년 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고통 때문에 며칠을 악몽에 시달리거나 잠들지 못하고, 심지어 무슨 병이 나시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손 소장님이 속상해 할 때의 특유의 표정으로, “할머니가 어디어디 캠페인 다녀오신 후 너무 힘들어 못 주무시는데 다리 주물러드리면 겨우 잠드신다”, “어찌 어찌해서 찜질해드리니 어떻게 좋아시셨다”……전해주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회의 도중에도 종종 걸음으로 할머니들을 모시러 가던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이렇듯 수십년 전의 기억과 싸우는 피해생존자들을 곁에 계신 손영미 소장님의 손길이 어루만졌습니다. 할머니들이 웃음, 평온, 자존감을 되찾도록 돕는 분이셨습니다. 할머니들 스스로가 듬뿍 사랑받는 귀한 존재임을 느끼도록 만들어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손 소장님을 떠올리려 하니, 생존자들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임을 느끼기만 했지 책임을 나누지는 못했다는 자책이 저를 괴롭힙니다.

정대협/정의연에서 하루 종일 집중회의를 하면 쉼터공간을 활용할 때가 있었습니다. 짜장면이나 시켜 먹자고 해도 굳이 식사를 준비해주시는데, 진밥, 꼬들밥…밥이 종류별로 나왔습니다. “사람은 다 취향이 다르니까…” 하셨지요. 아, 이런 식으로 할머니 각각에 맞춰드리고 있구나, 놀라고 고마워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살피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그 마음이 세상의 고통을 더 아프게 느끼게 할 섬세함으로 작용했을까 봐, 지금은 좋은 추억에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손영미 소장님, 언제나 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항상 할머니와 짝이 되어 다니던 소장님이 연간 활동보고를 겸한 후원행사 때면,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오셨습니다. 같이 공부하신 친구들이나 여러 분들과 어울리며 좋은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저 분도 가족이 계시고, 친구도 계신데…싶었습니다. 명절 때면 할머니들을 특별하게 모신다고… 그렇게 모든 사생활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헌신으로 할머니들을 치유해온 그 분이 느꼈을 아픔을 살피지 못했던 것, 지금 닥쳐온 고통 속에서 혼자 버티게 한 것이 너무도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고마웠던 손 소장님, 그 감사 고마움이 이런 비수 같은 미안함이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부디 평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6월 9일 추모의 밤에서
*현장에서는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지 못해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