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5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 ②] 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 ②]

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 ②]
이보라·최민지 기자 입력 
2020.06.14.

연구와 운동의 불균형


[경향신문]

그래픽 | 김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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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간 굵직한 성과 이어온 ‘위안부 운동’…학계로 눈돌리면 해방 후 발표된 박사 논문 12건 불과
  • 기존 관점 벗어난 연구엔 ‘친일’ ‘매국노’ 비난…여성주의 측면서 문제 바라보면 여성 차별이란 민족 내부의 문제 지적하게 돼
  • 할머니 인터뷰조차 단체 통해야 하는 상황서 연구는 운동 영향권에…연구와 운동, 유기성 갖고 비판과 성찰 주고받아야』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한 국내외 논의 확산과 1444번의 수요시위,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2011년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문제 관련 ‘외교부 부작위 위헌 결정’과 위안부 운동의 국제연대 확대까지. 일본군 ‘위안부’ 운동 30년사 속 굵직하게 기억되는 역사적 사건과 성과들이다.

무대를 학계로 옮기면 어떨까. 해방 이후 75년간 ‘위안부’를 주제로 국내에서 발표된 박사논문은 12건이다. 운동이 30년 성장사를 쓰는 동안, 연구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민족적 피해를 강조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연구가 특히 그랬다. 증언 고증을 위한 역사학 기반의 연구도 미흡했다.

위안부 문제에 다양한 논의를 제시하기 힘든 사회 분위기와 무관심 속에 연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빈약한 논의는 비판과 성찰의 부재로 이어졌다. 김정란 박사는 2004년 발표한 논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전개와 문제인식에 대한 연구: 정대협의 활동을 중심으로>에서 “이제까지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위안부 운동은 위안부 문제 전반에 대한 연구물 부족과 함께 정대협이 위안부 연구와 운동의 주축이었다는 상황 속에서 비판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후 16년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연구의 다양화는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를 위해 고민해야 할 과제다.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피해자들 삶의 이야기는 다양한 담론을 통해 풍부해진다. 증언은 철저한 고증으로 탄탄한 기반을 얻는다. 운동은 비판과 새로운 담론으로 현재화된다. 연구자들은 위안부 문제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폭력’이라는 여성주의적 관점 등 그간 조명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선 자유로운 연구 풍토와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 ‘위안부’ 연구, 손에 꼽는다

경향신문이 국회전자도서관 검색 시스템을 통해 조사한 결과 1945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위안부’를 제목과 주제에 담아 발표된 국내 박사논문은 12건이다. 이 중 문학과 영화 등 피해 재현의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논문을 제외하면, 위안부 관련 논문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박사논문의 수가 해당 분야 연구를 평가하는 완전한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박사논문부터 전문 연구물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이 논문들은 관련 학계의 연구 활동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12건의 논문 가운데에서도 위안부 문제 자체를 집중해 다룬 것은 많지 않다. 2004년 김 박사 논문과 강정숙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전 한국정신대문제연구소장)의 2010년 논문 <일본군 ‘위안부’제의 식민성 연구-조선인 ‘위안부’를 중심으로->가 여기선 유일하다. 위안부 관련 저변까지 주제를 확대하면 2009년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일제의 공창제 시행과 사창 관리 연구> 등이 꼽힐 수 있다. 한국 학자의 해외 논문 중에서는 2000년 세계 첫 위안부 주제 논문인 윤명숙 박사의 <일본의 군대위안소제도 및 조선인군대위안부의 형성에 관한 연구>와 2012년 정유진 전 도시샤대 조교수의 <서벌턴 재현에 관한 연구-일본군 위안부와 국민기금> 등이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위안부 문제는 담론이나 콘텐츠 분야에서는 많이 다뤄졌지만 역사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변혜정 Sex&Steak(섹스앤스테이크) 연구소장은 “성폭력과 관련해 다양한 영역에서 학술논문이 생산되지만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다양하게 고민을 던지는 학술논문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다양한 피해자의 삶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했다.

■ 위안부 연구, 왜 왜소해졌나

위안부 연구가 공전한 배경 중 하나는 새로운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다. 위안부 문제를 ‘피지배 민족 여성에 대한 지배 민족의 성적 수탈’로 보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벗어난 연구들은 배제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러 연구자들이 말했다. 학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는 이 같은 연구와 담론을 ‘반일’ ‘친일’과 같은 이분법으로 소비했다. 동원의 강제성을 강조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는 학자들에게는 학문적 비판이 아닌 ‘매국노’와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2013년 8월 위안부 관련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한 뒤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다.

남성 학자들이 주류인 역사학계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연구 주제로 인정되지 않았다. 윤 박사는 “남성 중심적인 역사학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학이 다뤄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역사 연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이 중심이었다. 1980년대 제도적 민주화가 이뤄진 후에도 비슷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도 “위안부 문제는 계급·가족·교육·취업 제도 등과 관련한 근대 여성문제의 절정판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여성사는 오래전부터 역사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내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여성주의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려면 위안부 동원에 기여한 가부장제 등 당시 여성차별 문제도 짚어야 한다. 1993년 재일동포 2세 여성학자인 야마시타 영애는 논문 <천황제 국가와 성폭력-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성학적 시론>에서 위안부 문제 맨 밑바닥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유지를 위해 여성을 가사노동과 출산, 양육의 도구로, 혹은 성적 노리개로 전락시키고 있었던 복합적인 가부장적 폭력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운동 단체와 주류 학계로부터 제국주의의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윤 박사는 “위안부 문제는 민족주의 문제이자 여성주의 문제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 내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민족 내부 문제를 지적하는 논의는 한국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유진 전 교수도 “민족주의 관점에서 일본에 사과하라는 말은 쉽지만 위안부 문제에 한 요인이 된 민족 내부 체제를 지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피해자가 느끼는 현재의 고통은 일본의 법적 책임 부재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차별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운동을 주도한 정의연은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들을 운동에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지지·용인하는 범주의 문제에 더해, 사회운동 특성상 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메시지가 선명하고 단순화돼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담론을 정의연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연구는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연구자들은 할머니 인터뷰부터 기초 자료까지 모두 정의연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정의연이 곧 피해자이자 한국 입장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정의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운동과 연구가 서로 교감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면이 있었다. 연구 주제의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는 다양하게 바라볼 부분이 많다. 하지만 운동 영역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다소 단순화된 면이 있었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불거진 정의연과 피해자의 괴리·배제 문제는 2004년 김정란 박사 논문에서 지적됐지만 실제 운동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연구자들 스스로 위안부 운동·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까 위축되는 경향도 있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많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한 번은 꼭 연구해야 하는 여성문제로서 위안부 문제에 책임감·부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위안부 연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 정치적 부담을 갖는다”고 했다.

정의연에 우호적인 몇몇 특정 연구자가 국내 위안부 담론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역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한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군위안부연구회’는 2015년 한·일 합의 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2016년 1월 발족한 연구자 모임이다. 연구회는 위안부 운동을 성찰·비판하기보다는 운동의 민족주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있었다. 윤 박사는 “연구회 태생 자체가 한·일 합의 반동으로 생긴 것이라 운동 측 입장에 쏠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이 주로 연구회 소속 밖에 없어 독점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연구회 내부에서도 정의연 사태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위안부 연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정춘숙 의원 등이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위안부피해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위안부 연구는 대다수가 단기 용역 사업으로 진행되는 수준으로 지원됐다. 2018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설치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역시 별도 기관이 아니라 1년 단위 사업에 불과했다. 강 연구원은 “정부 지원은 1차적으로는 위안부 피해자, 2차적으로 운동 단체, 마지막으로 연구자에게 주어져왔다. 피해자 지원이 우선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규명을 위한 조사연구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고 했다.

이 같은 연구 지원 방식이 연구 풍토를 바꿔놓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프로젝트식 연구가 단기간에 언론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에 위안부 피해를 입증할 만한 영상 등 사료를 발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자는 “식민지 사회의 통치 방식이나 당시 경찰 제도 등 위안부 문제를 다양한 틀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지만 성과 중심 연구 풍토가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 연구와 운동, 함께 가야

연구와 운동의 이상적인 관계란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연구와 운동이 유기성을 갖고 비판과 성찰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간 위안부 연구는 제한이 있었고, 위안부 운동에도 영향을 제대로 미치지 못했다. 결국 운동이 깊어지거나 위안부 문제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이젠 공론장에서 도전적인 연구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연구의 다양화·활성화를 위한 안정적인 연구 환경도 강조됐다. 강 연구원은 “위안부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만한 연구기관과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소와 재단과 같은 안정적인 기구를 만들어 연구자들이 연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위안부 논의에 대한 다양한 공론장이 형성돼야 한다. 윤 박사는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가부장제, 여성혐오를 비롯해 디지털 성폭력 사건, 성매매 등 현재의 여성인권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김학순 위안부 피해 생존자 증언이 한국 내 ‘미투’ 1호라는 구호는 이런 맥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갖는 다양성·중층성에 주목해 한국 사회의 성찰과 변화로 이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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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오늘 아침에 경향기사를 읽고 뭐지 이건...하다가 그만 잊고 있었는데 역시나 문제가 많군요ㅠ

Kija Choi 선생님 글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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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너무 악의적이라 무시하려고 했으나 하루종일 깊은 우울감+빡침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또 한마디 거든다.

1.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연구자들은 할머니 인터뷰부터 기초 자료까지 모두 정의연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정의연이 곧 피해자이자 한국 입장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정의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 증언집 작업을 위해 할머니들을 만날 때 모든 팀원들은 할머니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해야했다. 내가 만난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군청 여성복지과 직원들이었는데 첫 번째 방문은 물론이고 두 번째 방문 때도 공무원이 같이 가기도 했다. 증언6집 작업에 참여했던 정대협 활동가들도 할머니를 방문할 때는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대협 활동가들도 생존자복지 담당자 외에는 수요시위에 안 나오시는 할머니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담당공무원에게 연락을 하면 공무원이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사람이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들으러 온다는데 괜찮겠는지 확인하고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아주거나, 할머니 댁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군청 앞에서 만나 할머니 집까지 같이 가거나 한다. 그게 너무 당연한게 ‘위안부’로 정부에 신고했다고 해서 활동가들이, 연구자들이 아무 때나 불쑥 불쑥 찾아오는 것을 견뎌야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라며 마이크를 들이밀 때 항상 이야기를 해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다. .
2000년대 초반엔 젊은 외국인 연구자들이 몇 달동안 매주 수요시위에 나와 할머니들과 라포를 형성한 후 할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봐서 할머니 댁에 찾아가 영상을 찍거나 증언을 듣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건 정대협에서 어떻게 연결을 해줄 수도 연결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질적연구에서 인터뷰이와의 라포형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기사에서 익명을 요구한 연구자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할머니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저 정대협에 할머니 정보를 달라고 전화를 한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려고 했다면 본인의 연구윤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운동을 주도한 정의연은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들을 운동에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지지·용인하는 범주의 문제에 더해, 사회운동 특성상 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메시지가 선명하고 단순화돼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담론을 정의연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연구는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 정의연 입장에서는 이 운동을 전시성폭력 문제, 전쟁과 여성인권의 문제로 꾸준히 확장해 왔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운동이 언론에서 ‘사용된’ 방식은 민족주의 메시지로 단일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은 연구자에 대한 너무나 심한 모욕이다. 정의연이 삼성처럼 장학금이나 기금을 연구자들에게 풀어 정의연 휘하에 두고 있다는 말처럼 모욕적이다.
일본군‘위안부’연구가 운동의 영향권, 즉 이 기사에서 말하는 민족주의 담론 안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 아래 두 글로 판단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합적이고도 다면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한 증언자들의 자기재현에 주목한다. 자신을 재현하는 증언자들의 구술에서는 정형화된 위안부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일본군에 대한 원한은 일본군 장교와의 사랑과 공존하기도 하고, 애기집을 강탈당한 현생의 원한이 아들 낳고 살아보는 후생에의 바람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독립운동가의 딸로서의 자부심은 다른 위안부들의 삶을 ‘더러운’ 과거로 치부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증언자를 쉽게 민족주의의 투사로 상상하고, 그러한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나 의식을 예외적인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증언자들은 여러 가지 지배 이데올로기들을 내면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들에 자생적으로 저항하는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단지 과거의 ‘위안부’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불굴의 생명력과 의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뚫고 한국사회의 불리한 조건을 뚫고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의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층적인 주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시선을 개방시키고자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2001),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서론 中

“이 책에서는 동원과정만을 부각시켜 일본군‘위안부’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간“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 민족담론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경험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거대담론 아래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기억을 국가나 민족 담론 내에 위치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존의 역사 담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위안부’ 생존자의 경험을 민족주의 담론으로 단일하게 읽어냈던 통합전략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경험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그동안 민족사가 전유해왔던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여성들의 역사’로 되가져오는 작업이자 경험 당사자의 시선과 기억으로 민족을 다시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2004),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서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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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shin Hong 제가 정말 의아해서 묻습니다.. 한국에서 도대체 위안부 선행연구는 어떤 위치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증언집이나, 대중과 소통하려는 연구<정진성연구팀>처럼... 해온 노력들이 한줄도 안다뤄 지면서.. 싸잡아 민족주의 연구로 말해 질 수가 있는 거지요? 운동과 함께 연구를 고민하면 전부 민족주의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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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ja Choi
Kija Choi 이번 사태(?)를 보면 위안부 연구와 운동 역사 지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증언집과 개념만 물어 뜯으면서 이후의 연구들은 거의 담론장에 안 불러옵니다. 오늘 경향 기사를 보면서 저는 이 사회에서 연구자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는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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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shin Hong
Yunshin Hong Kija Choi 그렇군요... 그저 저는 놀랐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인 기사를 쓸 수가 있지요? 박사논문 몇편, 해외는 몇편 이렇게 이야기 하던데... 세상에 검색은 기자가 직접 한 걸까요? 그저 저는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런 .. 솔직히 그 말 밖에는 못하겠어요. 받아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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