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황제’를 비판하다
등록 :2021-03-16 14:51수정 :2021-03-17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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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9
코로나19가 우한에서 확산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응을 비판했다가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은 런즈창 화위안그룹 전 회장의 2012년 모습. 베이징/AP 연합뉴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까지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들은 정책 노선에 대해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시진핑 주석과 측근 세력은 다양성을 불안정 요소로 여기고 사상통제를 강화했다. 중국공산당은 최근 2035년을 중국의 주요 프로젝트들이 완료되는 ‘중기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이 2035년까지 실질적 통치를 이어가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까지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들은 정책 노선에 대해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시진핑 주석과 측근 세력은 다양성을 불안정 요소로 여기고 사상통제를 강화했다. 중국공산당은 최근 2035년을 중국의 주요 프로젝트들이 완료되는 ‘중기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이 2035년까지 실질적 통치를 이어가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의 우환이 중국을 뒤덮고 있던 2020년 3월 초, 한 편의 글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우한 폐렴’이 폭발한 것은 언론이 오직 당만 따를 때 인민은 버려지는 현실을 증명했다. (…) 온 나라가 위대한 영수의 연설에 환호작약하는 것은 중국이 다시 위대한 대약진의 시대로 들어서고, 온 사방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붉은 서적을 높이 들고 ‘지도자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진지하게 그 연설을 학습했다. 내가 그 안에서 본 것은 벌거벗은 채 황제라고 우기려 하는 광대(小丑)였다. 자신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가리려 하면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은 전혀 가리지 않고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황제라고 우기는 벌거벗은 광대’로 칭한 이는 국유 부동산개발회사 화위안그룹의 런즈창(任志强) 전 회장이었다. 장문의 글에서 그는 시진핑 주석의 절대권력 강화와 중국공산당의 코로나19 대처를 조목조목 비판했고, “중국공산당이 우매함으로부터 깨어나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 지도자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대담한 주장을 한 런즈창은 반체제 인사가 아닌, 중국공산당 내에서 영향력이 큰 고위 인사였다. 상무부 부부장(차관)의 아들로 ‘태자당’(고위 지도자들의 자녀)의 일원이며, 왕치산 부주석과도 친밀하다.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온 그는 ‘런 대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2016년에도 인터넷에 시진핑 주석의 언론 통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지만, 1년간의 관찰 처분과 에스엔에스(SNS) 계정 폐쇄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번 글의 여파는 훨씬 심각했다. 그는 공산당적을 박탈당하고, 재산은 몰수됐으며, ‘공금유용·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8년 형과 벌금 420만위안의 중형에 처해졌다. 중국공산당 엘리트 내부, 특히 태자당 내부의 비판적 세력들을 향한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는 엄포였다.
2020년 6월에는 “‘그 사람’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공산당 중앙당교 퇴임교수 차이샤(蔡霞)의 음성 녹음이 공개되었다. 중앙당교는 중국공산당 간부들을 교육하는 기관이며, 차이샤는 법학자이자 공산당원으로서 오랫동안 간부들에게 강의를 해왔다. 공개된 녹음파일에서 그는 시진핑 주석과 측근들이 2017년 19차 당대회 폐막 이틀 전 급작스럽게 국가주석 임기제한 철폐를 담은 헌법 개정안 통과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헌법 개정은 당 내부 절차에서 명백하게 불법적이었다. 그(시진핑 주석)는 19차 당대회를 인질로 잡고, 대회가 끝나기 이틀 전에 성급하게 임기제한을 없애버렸다. 그는 당대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수정안을 삼킬 수밖에 없도록 강요했다. 당은 이미 정치적 강시(僵屍)가 되었다.”
공산당 간부들을 교육하던 차이샤는 어쩌다가 이토록 강한 어조로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에 나서게 되었을까.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2020년 12월호에 ‘실패한 당’(The Party That Failed)이라는 글을 실어, 혁명가의 딸로 태어나 철두철미한 마르크스주의자로 평생을 산 자신이 어떻게 ‘당과 결별’을 선택했는지 밝혔다.
그는 공산혁명에 참여해 당 간부가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17살에 인민해방군에 들어갔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당 조직에 선발되어 교육을 받고 1998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중앙당교 교수가 되어 20년 동안 간부들에게 강의했다. 그는 언제나 중국공산당의 노선에 너무 헌신적이어서 동급생들 사이에 ‘마르크스 여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사회주의의 목적은 개인을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마르크스 철학을 신뢰”했으며 “중국이 공산당 안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장기간의 과정을 거쳐서 헌정 민주로 가게 될 것이고, 중국에도 언젠가는 의회와 진정한 야당이 생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간직했다”고 말한다.
“2012년 시진핑이 권력을 잡았을 때 나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중국공산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혁이 필요했고, 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온 시진핑은 그것을 이끌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곧 큰 실망으로 변했다. “그의 임기 동안 정권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권력을 쥐고 있으려는 정치적 과두집단으로 타락해갔다. 이제 시진핑은 개인숭배에 둘러싸여 있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치적 발언과 시민사회의 공간도 없애버렸다.”
그는 2016년 런즈창이 시진핑의 언론 검열을 비판했다가 반당분자로 비판받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웠고 런즈창을 옹호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린 뒤 직장과 공안의 위협을 받고 미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여행 비자로 미국에 간 뒤 런즈창이 18년 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공산당은 정치적 강시가 되었다”고 한 친구들과의 온라인 대화 내용이 동의 없이 공개된 것을 알았다. 그는 당에서 축출되었다.
차이샤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유튜브 갈무리
차이샤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유튜브 갈무리
장쩌민·후진타오 시대까지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들은 정책 노선에 대해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중국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둘러싸고 마오주의 좌파, 신좌파, 자유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도 벌어졌다. 시진핑 주석과 측근 세력(習家軍·시자쥔)은 다양성을 불안정 요소로 여기고 사상통제를 강화했다. ‘시진핑 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의 영도’에 국가 전체가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당내 엘리트 내에서도 이견과 열린 토론의 공간은 사라지고, 민간의 사회운동가들은 투옥되거나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자유주의자와 민주사회주의자들이 탄압을 받은 반면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인한 불평등을 비판하던 신좌파 학자들은 점점 더 당과 국가의 역할을 긍정하면서 시진핑 체제의 동맹 세력으로 변했다. 신좌파의 대표적 학자로 한국을 비롯해 외국에도 잘 알려진 왕후이는 2020년 4월 ‘혁명적 인격과 승리의 철학’이란 글을 발표해 레닌과 마오쩌둥을 예로 들며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강력한 카리스마 지도자의 권력을 지지했다. 자유주의 학자 룽젠은 반박문을 써 ‘왕후이가 국가주의를 긍정하고 시진핑의 개인 권력 강화가 중국을 강하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지적인 엄격함을 잃고 시진핑과 권위주의 사상에 영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의 이익을 절대화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의 사상이 중국 좌파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나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슈미트 사상을 받아들인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국가가 사회와 시장을 통제하는 중국의 상황이 서구의 규제받지 않는 시장주의보다 우월하다고 강조한다. 서구가 제국주의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국가가 이들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국가주의 사상이 중국 사상계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동방의 굴기와 서방의 쇠퇴는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고, 국제정세의 변화는 중국에 유리하다”며 쇠퇴하는 미국에 중국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요란한 ‘승리의 선전’은 시진핑 주석과 측근 세력들의 구상과 연결된다. 이들은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성과를 부쩍 강조한다. 2022년 말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해 ‘시진핑 시대’의 장기화를 이어가려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통치가 필요하다’는 정당성의 확보가 중요한 것이다.
이론상 종신집권도 가능해진 시진핑 주석이 언제까지 중국을 통치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분분하다.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덩샤오핑이 설계한 2연임 규칙을 깨고 세번째 연임에 나서면서 후계 구도를 확정할지, 더 장기적인 집권 의지를 보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세번째 임기가 끝나는 2027년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군사현대화는 2027년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무렵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현대화의 주요 목표는 중국의 군사력이 대만해협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2027년 세번째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 주석이 정통성을 드높일 수 있는 ‘대만 통일’과 관련해 더욱 강압적인 조처를 취하면서 이런 ‘업적’들을 내세워 또다시 임기 연장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공산당은 최근 2035년을 주요 프로젝트들이 완료되는 ‘중기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35년까지 실질적 통치를 이어가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시 주석이 이때까지 국가주석이나 총서기직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중앙군사위 주석으로서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2035년이면 시진핑 주석은 82살이 되는데, 마오쩌둥도 82살까지 통치한 뒤 사망했다. 시진핑 장기집권 구도가 형성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전시 태세’가 강조되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내놓을 이들이 사라지고, 충성의 목소리만 높아져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이데올로그인 허이팅(何毅亭) 중앙당교 부교장은 시 주석의 67번째 생일인 2020년 6월15일 공산당 이론지인 <학습시보>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시진핑 사상은 세계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시진핑 총서기는 우리나라와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에 중국의 입장과 지혜, 이념, 주장, 방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절대권력 아래서 중국이 잃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박민희 |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6970.html?_fr=mt2&fbclid=IwAR0hz7x63axlLOkC4haS3iI92FMAl5W8AGyUKVDwcLiFjx8lF7lSWU9N6sU#csidx217be1f7f8df6aba8c35dc7123c6a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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