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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지옥'을 바라보는 주류 언론과 종교 언론의 시선
[미디에이티드 비평]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Hell Bound)'③
기자명 김승수
승인 2022.01.03 17:10
이 글은 미디어·종교 연구 집단 '미디에이티드' 연구원들이 진행한 공개 포럼 '지옥을 말하다: K-드라마 속 종교 상징과 아포칼립스 코드'(2021. 12. 16.)에서 발제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초자연적 존재가 지극히 한국적인 일상에 나타나 당신과 나의 '지옥행'을 고지한다. 지옥 가는 날짜와 시각을 한국말로 알려 주는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지옥이 과연 어떤 곳인지, 어떤 기준으로 지옥행이 선고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이 미지의 현상에 대해 '신의 의도'라는 도덕적·인과적 설명을 제공하는 종교 집단 '새진리회'가 나타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지옥행에 대한 '새진리회'의 해석에 굴복당하는 제도 언론, 공권력, 다수의 대중, 그리고 그 해석에 틈을 내며 저항하는 소수의 인물들을 묘사한다.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지옥'은 진짜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지옥'은 불가지론자의 텍스트처럼 보인다). 도리어 신의 의도라 불리는 미지의 현상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집단들의 '해석과 반응'을 그려 내는 데 집중한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지옥'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드러내는 것은 드라마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라, 이 텍스트를 읽는 '우리 자신'의 의도와 반응일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주류 언론과 종교 언론들의 '지옥' 보도를 살펴보고 이들의 반응과 의도를 읽어 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지옥'은 텍스트 해석의 단일성·완결성 및 독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이질적인 내러티브들을 영리하게 뒤틀고 혼용한다. 예를 들어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는 택시 기사의 대사는 세속적 휴머니즘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반면 죄 없는 아기가 지옥행 고지를 받지만 부모의 희생으로 살아나고, 이후 박정자(배우 김신록 분)의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은 기독교적 상징 및 세계관을 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하나의 내러티브만으로 매끈하게 읽히지 않는 '지옥'을 주류 언론과 종교 언론은 어떻게 읽어 냈을까? 이들은 '지옥'이 촉발하는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질문과 문제의식 중 특히 무엇에 무/의식적으로 집중하고 또 무엇을 간과했을까? 그리고 이는 이들에 대해 무엇을 드러낼까?
지옥행 고지를 받고 공개 시연을 기다리는 박정자(배우 김신록 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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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언론과 종교 언론의 '지옥' 보도를 탐색하고자 네이버 뉴스 검색 서비스를 이용했다. 검색 기간은 2021년 11월 14일부터 12월 13일까지 한 달, 검색어는 '넷플릭스 지옥'과 '지옥'을 사용했다. 주류 언론으로는, 보수 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29건)와 진보 언론으로서 가장 기사가 많았던 <경향신문>(16건)을 분석했다(<한겨레>의 경우 12건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종교 언론으로는 개신교·불교·가톨릭 언론들을 살펴보고자 했으나, 불교 언론의 경우 검색 기간 내 '지옥'을 다룬 기사가 없었다. 가톨릭 언론의 경우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만이 3건의 기사가 있었다. 개신교 언론으로는 예상 외로 <뉴스앤조이>의 '지옥' 관련 기사가 전무했으며, <크리스천투데이>가 발행한 6건의 기사가 있어 이를 분석했다. 실증 연구를 수행했기에 자료 수집 과정의 엄밀성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학술장에서 받아들여지기에는 부족한 탐색적 시도임을 밝힌다.
먼저 <조선일보>를 살펴보자. 총 29건의 기사 중 정보 전달을 위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23건(79%)에 달했으며, 시리즈의 주제 및 문제의식을 비교적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칼럼·리뷰·인터뷰 형식 기사는 6건(21%)이었다. 총 23건의 스트레이트 기사 중 절반이 넘는 13건(57%)이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라는 워딩을 사용하며 '지옥'의 글로벌 흥행 소식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이 중 3건의 기사는 <BBC>·<CNN> 같은 해외 유력 언론의 '지옥'에 대한 극찬 리뷰를 그대로 전달했다.
위와 같은 스트레이트 기사의 주제 분포를 볼 때, <조선일보>가 뉴스 가치로 삼은 것은 '지옥'이라는 텍스트의 특정한 주제나 문제의식이라기보다는, 'K 콘텐츠'라는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지닌 미디어 상품으로서 해외로부터 받은 인정과 그로 인한 국위선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일보>가 '지옥'을 논의하고 소비하는 가장 주된 담론은, 텍스트가 다루는 '세속적 휴머니즘'도 '기독교적 세계관'도 아닌 '민족주의' 혹은 '국뽕' 담론으로 보인다.
나머지 스트레이트 기사들은 대체로 '지옥'을 한국 정치에 대한 코멘터리로 사용했다. 총 4건(17%)의 기사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인터넷 신상 털기를 '화살촉'에 비유한 조동연 씨의 입장을 전달하거나 이에 대한 강용석 씨의 변을 보도하기 위해 '지옥'을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영 스피커라 할 수 있는 김어준 씨를 '화살촉'에 비유한 커뮤니티 글을 전하는 기사도 1건이 있었다. <조선일보> 칼럼 4건 중 2건 또한 더불어민주당 진영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을 '화살촉'에 비유하기 위해 '지옥'을 언급했다.
"'지옥'의 그가 말했다 '공포 아니면 뭐가 기자를 참회시키나'" 칼럼은 '화살촉'과 주류 언론의 비호를 받는 '새진리회'를 이재명 후보와 등치시키며 그의 언론 인식을 비판했다. "[동서남북] '지옥'은 넷플릭스에만 있는가"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보이는 "광신도"적 행태를 '화살촉'에 비유하고, 이재명 후보의 역사왜곡처벌법을 '새진리회'와 마찬가지로 해석에 대한 독점을 탐하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두 칼럼은 '지옥'을 제도 종교 비판으로 읽는 익숙한 시각을 넘어, (종교화된) 현실 정치에 대한 코멘터리로 전유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종교화된 정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적대적(이자 공생적) 타자인 더불어민주당에게만 향하고, 보수 진영 내부의 박근혜 전 대통령 숭배나 태극기 부대 같은 사례에 대한 자기 성찰과 비판은 홀연히 회피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경향신문>의 경우 칼럼·인터뷰·사설의 비율이 총 14건 중 7건(칼럼 3건, 인터뷰 4건)으로, <조선일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수집된 표본이 너무 적기에 진보 진영 언론 일반이 더 텍스트의 주제 의식에 집중한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경향신문> 스트레이트 기사들의 경우에도, '지옥'의 "전 세계 1위" 소식에 대한 보도가 43%(7건 중 3건)를 차지했다. 칼럼·인터뷰·사설을 모두 포함할 경우, '세계 1위' 혹은 'K-콘텐츠 흥행·인기'를 언급한 기사는 전체 14건 중 7건 으로 50%에 달했다. 총 3건의 <경향신문> 칼럼 중 1건은 정확히 이러한 '국뽕' 담론을 견지하며, K-콘텐츠의 글로벌한 인기를 지속하고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누리기 위해 기업·국가가 긴밀하게 협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나머지 두 칼럼이 '지옥'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더 복잡하다. 위근우 씨의 칼럼 "<지옥>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K콘텐츠의 지옥도는 무엇을 욕망하나"는, 그가 말하는 핵심 주제인 '파국'에 도달하기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지속적으로 맹신·복종하는 '지옥'의 인물들과 서사가 보여 주는 '개연성 부재'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지옥'이 건드리는 다양한 주제 및 여러 생각거리 - 공권력, 제도 종교, 제도 언론의 실패, 탈진실(post truth), 타자에 대한 악마화와 폭력의 정당화, 정의 실현의 지연과 갈망- 와 진득하게 교전하지 않는다.
"[직설] 인터넷의 재현" 칼럼도 마찬가지로 '지옥'을 통해 논의할 수 있는 주요 주제들을 비껴간다. 이 칼럼은 외국인들이 '지옥'과 같은 콘텐츠에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자체" 이기에, K-콘텐츠가 한국을 제대로 재현해야만 한다는 당위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버퍼링도 없고 현대적 밈도 없고 비아냥도 없고 시니컬함도 없"는 '화살촉'의 인터넷 방송 장면이 "지독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단언하고는, "과연 이 드라마는 '한국'을 제대로 조망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라고 묻는다.
이러한 물음 앞에 다음과 같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를 "제대로 조망"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한국의 제도 종교·언론 및 공권력에 대한 클리셰적 표현은 왜 묵과되고, 오직 인터넷 방송 장면의 지엽적 묘사가 "마음에 걸리는" 걸까? '지옥'이 외국인들에게 유독 '한국 사회에 대한 (충실한) 재현'으로서 소비돼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일까? 지옥의 글로벌한 인기가 과연 한국 사회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 성공해서일까? 도리어 '지옥'이 내포하는 주제가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다른 국가들의 정치적·문화적 맥락에서도 '탈진실', '정의 실현의 지연과 갈망'과 같은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사회라는 콘텍스트에는 가짜 뉴스, 종교적 메시지, 인터넷 문화로 무장한 대중들이 본인의 해석이 옳다는 확신과 정의감 속에서 다른 동료 시민들 - 세월호 유가족, 페미니스트, 성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등 - 을 낙인찍고 마녀사냥하고 조리돌림해 온 현실('지옥'이 지옥으로 그리는 바로 그것!)이 버젓이 존재한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맥락과 '지옥'이라는 텍스트의 긴밀성을 <경향신문>의 두 칼럼이 묵과하는 기이한 모습을 1) 진보 진영이 실패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의도적 눈가림으로 이해해야 할지, 2) 무의식적 회피로 이해해야 할지, 3) 칼럼 기고자들의 사심 없는 '무관심'으로 이해해야 할지는 후속 연구 없이 단언하기 어렵다.
종교 언론으로는 <크리스천투데이>의 기사 6건과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기사 3건을 분석했는데, 스트레이트 기사는 전무했다. <크리스천투데이>의 경우 타 언론이 연상호 감독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한 기사 1건을 제외하고는, 칼럼 3건, 비평 1건, 카드 뉴스 1건에서 모두 개신교에 대한 '지옥'의 부정적 묘사를 비판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지옥>? 성경이 말하는 '지옥!'"이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는 지옥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님을 설명하며, 개신교의 (정통)교리가 왜곡되게 받아들여질 것에 대한 우려 속에서, '지옥'에서 재현된 종교와 현실 개신교를 구별 짓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칼럼은 '지옥'에서 논쟁적으로 묘사된 원죄론이 개신교만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개신교가 힌두교·불교·이슬람교에 비해 더 합리적이고 세련된 원죄론을 갖고 있음을 설파했다. 전체적으로 '지옥'이 던지는 신학적 질문에 대해 상당히 수동적이며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한 비교 우위를 주장하거나 구별 짓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경우 칼럼 2건과 사제 인터뷰 1건 모두에서, '지옥'이 그리는 '새진리회'의 지옥론과 가톨릭의 지옥론을 구별 짓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톨릭 교리에 입각해 '지옥'의 지옥론을 문제 삼거나, 지옥 교리와 관련해 다른 종교(동남아 불교)에 대한 비교 우위를 주장하며 현대 가톨릭을 중세 가톨릭과 구분 지으려는 시도를 했다. 전반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분명 <크리스천투데이>에 비해 '지옥'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일부 주류 언론과 종교 언론이 '지옥'과 관련해 무엇에 주목했고 또 무엇을 묵과했지 살펴봤다. 미미한 탐색적 시도였지만, '지옥'을 둘러싼 한국 언론과 종교의 논의 지형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기 바란다. 더불어 한국 사회의 정치·종교·언론 집단들이, 타자를 악마라 심판(화살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내부의 폭력성·악마성을 성찰하고 비판하기 위해 '지옥'을 보고 논하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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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미디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국 쯀라롱꼰대학교에서 미디어와 문화 연구를 가르치고 있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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