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

이완 | 이재명 지사의 영웅적인 서핑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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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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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지사의 영웅적인 서핑 실력 

저는 이재명 지사를 매우 싫어합니다. 이재명 지사는 사회주의자도 아닐 뿐더러, 선택적으로 침묵하며 여우처럼 신 포도를 피하고 단 포도만 찾아먹는 위험한 포퓰리스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이재명 지사가 남녀노소 좌우중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분명 국민적 정치인이며, 유력한 대선 후보입니다. 
제 생각에, 이재명 지사가 폭넓게 지지받는 이유는, 제가 21대 총선 전부터 이야기해 온 사회적 현상, 바로 '원자화가 초래한 국가주의' 때문입니다. 

국가주의(Statism)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다만 여기서는, 국가가 개인이 미처 다룰 수 없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책임을 갖고 있으니, 더 많은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이재명 지사는 언제나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생존과 성장을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근에 기재부와 야당이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각종 보조금 정책들을 반대하자, 이재명 지사는 우리나라의 집단 자살을 방치한다며 기재부와 야당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지사가 폭넓게 지지받는다는 말은, 곧 다양한 사람들이 이재명 지사의 국가주의를 지지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회학계의 전설인 에밀 뒤르켐이 예고한 것처럼, 국가주의는 거스르기 힘든 시대의 파도가 되었습니다. 
뒤르켐은 분업의 발달이 사람들을 묶어주던 연대를 해체시키며 개인주의를 확산시켰고, 의존할 연대에서 분리된 개인, 다시 말해서 원자화된 개인은 결국 국가를 바라보게 된다고 진단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능력과 책임을 가진 사회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뒤르켐은 분업이 점점 더 진전됨에 따라서 국가의 중요성이 커지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평범한 진리라고 말한다. (..) 이 외견 상의 모순은 현대사회들에서는 개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할 일차적 책임을 지는 제도가 바로 국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해소된다. 이와 같이 국가의 팽창은 도덕적 개인주의의 발달 및 분업의 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앤서니 기든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우리나라는 국가주의가 성장하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 사회 연대는 무너져 왔고, 원자화도 순식간에 진행되었습니다. 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확산, 자발적 아싸의 급증과 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유능하고 적극적인 국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것처럼, 이재명 지사는 이 파도를 굉장히 잘 타고 있습니다. 다만 불리한 이슈를 잘 회피하고 유리한 이슈를 순식간에 낚아 채는 걸 보면,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보다 파도를 더 잘 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재명 지사는 남녀노소 좌우중도 가릴 것 없이 지지받는 것입니다. 정말 굉장한 서핑 실력입니다. 

반면, 이재명 지사를 상대하는 보수 진영은 수도 없이 넘어지며 몇 번이고 파도에 허벅지를 빠뜨리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은 항상 국가 역할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작은 국가'는 보수 진영의 명목상 중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도 결국은 국가주의적이었습니다. 보수는 단 한 번도 국가를 작게 만들려는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자를 뽑아 준 적이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정책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발전을 약속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수용하며 더 큰 국가를 약속했습니다. 보수 정권은 진보 정권 못지 않게 국가 역할을 확대해 왔고, 동성혼 문제나 예술 규제 같은 문화 이슈에서는 진보 진영보다 더 국가의 개입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민주당이 급성장한 이래로 줄곧 국가가 나서는 정책을 모조리 차단해 왔습니다. 자유한국당도 그래서 무너졌고, 미래통합당도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온건한 국가 개입을 지지하는 김종인 위원장 덕에 지지율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당 안밖에서 엉뚱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바람에 그것도 불안정합니다. 
만약, 보수 진영이 완전히 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한다면, 저는 민주당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이 보수 진영도 버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가의 축소를 바라는 주장은 적어도 이런 시국에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당장 불안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국가주의의 시대입니다. 미국도, 유럽연합도, 심지어 IMF도 몇 년 전부터 국가의 확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세상 가장 위대한 중국인이자 아시아 민주주의의 기수인 쑨원 총리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시대 조류에 순응하면 흥하고 거스르면 망합니다. 

이재명 지사는 지금 흥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오만함에 빠져 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한, 그 뛰어난 서핑 실력으로 앞으로도 흥할 것입니다. 
이재명 지사를 상대할 방법은 오직 하나, 시대 조류를 더 잘 타는 것 뿐입니다. 보수 진영이 이재명 지사를 상대할 방법은 단 하나, 기존의 상식적인 윤리와 보수적인 사회 관계를 고수하는 동시에, 국가의 힘을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시국에, 사람들을 살리고 안심시킬 수 없는 정치인은 민주국가에서 선택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홀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때에, 과도한 국가주의를 막을 방법은 절제된 국가주의 뿐입니다.
만약 이재명 지사가 다음 대선에서 선택받는다면, 사람들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재명 지사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관철시켜 온 덕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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