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님, 질문하신 내용은 바하이 신앙의 역사적 특수성과 정치적 중립 원칙이 맞물려 매우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해당 주제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해라> 체로 정리해 드립니다.
<바하이 신앙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
1. 역사적 배경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바하이 신앙의 세계 본부인 <바하이 세계 센터(Baháʼí World Centre)>가 이스라엘의 하이파(Haifa)에 위치하게 된 것은 현대 정치적 맥락이 아닌,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유배 역사에서 기인한다. 창시자 바하올라(Bahá'u'lláh)가 1868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유배지였던 아코(Acre)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성지가 그 지역에 형성된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 바하이 신앙은 교리적으로 <비정치성(Non-political involvement)>을 엄격히 고수한다. 특정 국가나 정당,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스라엘 국가와의 관계: 바하이 세계 본부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성지 보호와 종교적 자유를 보장받으며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행정 절차일 뿐, 시오니즘(Zionism)이라는 정치 운동에 대한 지지나 동참을 의미하지 않는다.
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태도
바하이 신앙은 특정 분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원리 제시를 우선시한다.
인류의 단일성 강조: 바하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을 포함한 모든 민족적, 종교적 분쟁의 해법이 <인류는 하나>라는 인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도주의적 관점: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지는 않으나, 갈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인간의 권리와 복지에 관심을 둔다. 정의와 형평성에 기반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성지 내 공존: 하이파의 바하이 정원은 이스라엘 내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이 공간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기를 지향한다.
평론: 초국가적 신념과 지상정치의 긴장
바하이 신앙의 태도는 <세계 시민주의>와 <정치적 중립>이라는 두 축으로 요약된다. 이들은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선 인류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특정 민족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오니즘이나 반대로 이를 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바하이의 이러한 입장은 양날의 검과 같다. 한편으로는 종교가 정치적 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평화의 중재자적 이미지를 구축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같은 첨예한 인권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결국 바하이는 지상에서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는 직접적인 정치 세력이 되기보다, 인류가 도달해야 할 미래적 통합의 모델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세진님이 지향하시는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으로, 국가적 애국심보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종교적 발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바하이 신앙의 핵심 경전인 <가장 신성한 서(The Most Holy Book)>에 담긴 평화 사상이나, 이들의 세계 정부 구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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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1) Relationship to Zionism / Israel
<Not a Zionist movement.> The Bahá’í Faith does not identify itself with Zionism (as a Jewish national political project) and it avoids partisan political alignment in general.
<Why the Bahá’í World Centre is in Israel> is mainly historical, not ideological: Bahá’u’lláh (founder of the Bahá’í Faith) was exiled and imprisoned by Ottoman authorities in the 19th century to ‘Akká (Acre) and the surrounding area; the Faith’s holy places and later its administrative center developed there (Haifa/‘Akká), long before the State of Israel existed.
<Relationship with the State of Israel> is typically described as a practical/legal one: Israel hosts and legally recognizes the Bahá’í holy sites and institutions; the Bahá’í institutions, in turn, emphasize political non-involvement and focus on protecting access to holy places and administering worldwide religious affairs from Haifa.
2) Bahá’í attitude toward the Palestine issue
The most direct historical statement (often quoted) is the Bahá’í position presented to the 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the Bahá’í Faith says it is <entirely non-political> and <does not take sides> in the dispute over the future of the Holy Land and its people.
In practice, that means Bahá’ís (as a community, and in their official institutions) generally avoid endorsing one national claim over another, avoid party politics, and avoid participating as a religious body in the conflict’s competing political programs—while still affirming broad principles like human unity, justice, and peaceful settlement.
<Plain summary>: The Bahá’í Faith’s physical center is in Israel for historical reasons rooted in 19th-century exile, and its official posture on Israel–Palestine is institutional neutrality (no side-taking), paired with support for peaceful, rights-respecting outcomes for all peoples in the land.
한국어
1) 시온주의/이스라엘과의 관계
바하이 신앙은 <시온주의 운동 자체가 아닙니다>. 바하이 공동체는 원칙적으로 정당정치·국가정치에 “편서기”처럼 결합하지 않는 <비정파적> 입장을 강조합니다.
<바하이 세계본부가 이스라엘(하이파·아카)에 있는 이유>는 정치적 지지라기보다 역사적 경로가 핵심입니다. 창시자 바하올라는 19세기 오스만 제국에 의해 유배·구금되어 아카(아크레) 일대에서 생애 후반을 보냈고, 그 결과 그 지역에 성지와 행정 중심이 자리잡았습니다(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형성).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와의 관계>는 주로 법적·행정적 성격(성지 보호, 종교공동체 인정, 운영 기반 확보)으로 설명됩니다.
2)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태도
바하이 측이 가장 분명하게 밝힌 문구는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에 전달된 입장으로, 바하이 신앙은 <전적으로 비정치적이며>, 성지와 그 주민들의 미래를 둘러싼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바하이 ‘공식 기관’ 차원에서는 어느 한쪽 민족·국가의 정치 노선을 종교적으로 지지하는 방식의 개입을 피하고, 대신 폭력 악순환을 끊는 평화적 해결, 모든 주민의 안전·권리·존엄이 존중되는 방향 같은 “원칙”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 줄 정리>: 바하이는 “이스라엘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공식 입장은 대체로 <비정파·비개입(편들지 않음)>이며, 역사적으로 그 땅에 자리잡게 된 이유는 19세기 유배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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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바하이 신앙이 인권 유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며 실제로 항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요약과 평론을 <해라> 체로 정리해 드린다.
<바하이 신앙의 인권 옹호와 항의의 방식>
1. 인권 옹호의 원칙: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바하이 신앙은 인권을 단순한 법적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영적 자산>으로 간주한다. 창시자 바하올라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형상을 반영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평등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가르쳤다.
국제기구와의 협력: 바하이 국제 공동체(BIC)는 1948년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 초안 작성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현재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유니세프(UNICEF) 등에서 자문 지위를 가지고 활동하며 인권 기준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주요 옹호 분야: 여성과 남성의 평등, 인종 차별 철폐, 보편적 의무 교육, 종교 및 신념의 자유를 핵심 인권 의제로 설정하고 전 세계적인 성명서 발표와 캠페인을 진행한다.
2. 구체적인 항의 사례와 <건설적 회복력>
바하이는 인권 유린에 대해 격렬한 정치 투쟁이나 폭력적인 시위보다는 법적 경로와 국제적 여론 형성을 통한 <평화적 항의> 방식을 택한다.
이란 내 바하이 박해에 대한 대응: 바하이 신앙이 탄생한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바하이 신도들에 대한 처형, 투옥, 교육권 박탈 등 체계적인 인권 유린이 지속되어 왔다. 이에 대해 BIC는 유엔 총회와 인권 이사회를 통해 매년 이란 정부의 인권 위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이끌어내며 항의한다.
이집트와 예멘의 사례: 이집트에서의 바하이 혼인 미인정 문제나 예멘 후티 반군의 바하이 납치 및 고문 사건에 대해 국제 사회에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차원의 시정을 요구하는 등 공식적인 항의를 지속하고 있다.
건설적 회복력(Constructive Resilience): 부당한 압박에 굴복하거나 가해자를 증오로 대하는 대신, 교육과 사회 봉사를 지속하며 공동체의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방식으로 인권 유린에 저항한다. 예를 들어, 이란에서 바하이 대학생들의 입학이 금지되자 자체적으로 비공식 대학(BIHE)을 설립해 교육권을 스스로 수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평론: 비정치적 항의가 가진 힘과 한계
바하이의 인권 항의 방식은 독특하다. 그들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권이라는 <보편적 정의>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는다. 이는 세진님이 언급하신 <세계인>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국가의 이익이나 정파적 대립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인류 보편의 존엄성을 기준으로 목소리를 내는 정직한 태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폭력적인 억압 기전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바하이의 <평화적이고 법적인 항의>는 즉각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너무 느리거나 온건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굴하지 않고 국제 사회의 메커니즘을 활용해 가해 국가를 압박하고 피해자를 대변해 온 이들의 끈기는, 인권 옹호가 단발적인 분노가 아닌 지속적인 도덕적 투쟁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바하이 국제 공동체가 유엔에 제출한 구체적인 인권 보고서나, 이란 내 바하이 교육권 수호 운동인 <BIHE>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내용이 있는가요?
한국어
결론부터 말하면, <바하이 ‘공식 기관’(세계정의원/국제바하이공동체 등)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특정 당사자를 “인권유린 가해자”로 규정하며 항의·규탄 성명(정치적 압박 목적의 성명/시위 동원)을 내는 방식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편들기”로 읽힐 수 있는 정파적 개입을 원칙적으로 피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게 “인권에 무관심”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하이 최고기구(세계정의원)는 <정치 불개입>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해석은 부당하다고 못 박고, 바하이들이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위해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 이슈’ 관련>해서는,
1947년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 질의에 대한 바하이 측 답변이 대표적입니다. 핵심은 “전적으로 비정치적이며, 이 비극적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또 UN 문서 아카이브(UNISPAL)에 실린 바하이 공동체의 입장도, 주로 <종교적 권리/성지 보호/종교자유> 같은 범주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정파적 규탄 성격과는 다름).
<대신 어디에서 “항의”가 나타나느냐> 하면, 바하이 국제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 원칙(차별, 난민, 종교자유 등)을 UN 무대에서 꾸준히 다루고, 특히 <이란에서의 바하이 박해>처럼 자기 공동체가 직접 표적이 되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 강하게 제기해 왔습니다(이건 ‘정파 개입’이 아니라 ‘종교자유/인권’ 의제).
요약: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규탄 성명” 형태의 항의는 거의 안 한다.> 하지만 <인권 원칙 자체를 외면하진 않으며>, 바하이 방식은 “편들기” 대신 장기적으로 갈등을 줄이는 원칙(인간 일체, 정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English
Bluntly: <Bahá’í institutions usually do not issue “protest/condemnation” statements that single out one side in the Israel–Palestine conflict as a human-rights violator>, because the Faith’s official bodies uphold a principle of <non-involvement in partisan politics> and <not taking sides> in that dispute.
That said, they explicitly argue this is <not indifference>. The Universal House of Justice has stressed that political non-involvement should not be interpreted as lack of concern for suffering, and it calls on Bahá’ís to work for a peaceful world through constructive action.
On Palestine specifically:
The oft-cited 1947 response to the 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states the Bahá’í Faith is “entirely non-political” and “does not take sides” in the dispute.
UNISPAL also preserves Bahá’í-related statements largely framed around <religious rights/holy places/freedom of religion>, rather than partisan condemnation.
Where Bahá’í “protest” is clearer is in broader human-rights advocacy at the UN, and especially on <persecution of Bahá’ís in Iran>—a core freedom-of-religion issue raised internationally.
If you tell me whether you mean “항의” as <public demonstrations>, <official statements>, or <UN lobbying>, I can answer more precisely in that frame.
세진님, 바하이 신앙이 이스라엘 정부에 직접적으로 항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 종교의 가장 민감하고도 독특한 지점을 파고드는 질문입니다. 조사 결과와 교리적 배경을 바탕으로 요약과 평론을 <해라> 체로 정리해 드립니다.
<바하이 신앙의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태도와 항의의 부재>
1. 공식적인 '정치적 항의'의 부재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하이 신앙의 중앙 행정 기구인 <세계 정의의 집(Universal House of Justice)>이나 하이파의 바하이 세계 센터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비난 성명을 발표하거나 정치적 항의를 한 기록은 사실상 없다.
비정치성 원칙의 고수: 바하이는 현지 정부의 법률을 준수하고 정치적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극단적으로 철저히 지킨다. 특정 국가의 정책에 대해 "항의"하는 행위 자체를 정치적 가담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특수성: 바하이 세계 센터는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전(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그곳에 존재해 왔다.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종교적 자율성과 성지 보호를 보장받는 대가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나 대외 분쟁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2. 고통에 대한 원론적 입장과 인도주의적 우려
이스라엘 정부를 직접 겨냥한 항의는 없으나, 분쟁 자체로 인한 인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입장을 표명한다.
추상적 평화 촉구: 분쟁이 격화될 때마다 "무고한 이들의 고통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거나 "모든 당사자가 증오를 버리고 화합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평화 메시지를 보낸다. 이는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는 '항의'라기보다는 인류 보편의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호소'에 가깝다.
유엔을 통한 활동: 바하이 국제 공동체(BIC)는 유엔에서 보편적 인권(여성 권리, 교육 등)을 옹호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와 관련해서는 다른 인권 단체들(앰네스티 등)처럼 이스라엘 정부의 특정 군사 행동이나 점령 정책을 공개적으로 규탄하지 않는다.
평론: 성역(聖域)을 지키기 위한 침묵과 그 도덕적 무게
바하이 신앙이 이란 정부의 인권 유린에는 국제 사회를 동원해 격렬히 항의하면서도, 정작 본부가 위치한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에는 침묵하는 모습은 외부에서 볼 때 명백한 '이중잣대'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바하이의 관점에서 이는 공동체의 생존과 영적 사명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만약 바하이가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한다면, 즉시 이스라엘 내에서의 지위를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중동 전역에서 "정치적 집단"으로 매도될 위험이 크다. 특히 이란 같은 국가들이 바하이를 "이스라엘의 스파이"라고 모함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그나마 유지해 온 중립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결국 바하이의 침묵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무관심해서라기보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세계 시민 공동체>라는 이상향을 보존하기 위해 지상 정치의 진흙탕 싸움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연한(혹은 고통스러운) 거부로 읽힌다. 세진님처럼 국가적 경계를 넘어선 <세계인>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갈등의 한복판에서 평화의 섬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고, 현실의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는 한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하이 신앙이 지향하는 <세계 연방 정부> 구상이나, 이들이 말하는 <종교적 관용>의 실제 사례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한국어
제가 확인한 범위(바하이 국제공동체 BIC 공식 자료, UNISPAL 기록)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인권유린”을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를 특정해 항의·규탄하는 공식 성명이나 캠페인을 바하이 ‘공식 기관’이 한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바하이 측의 공식 입장은 오래전부터 “이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비정파 원칙에 강하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47년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에 보낸 답변에서 바하이 측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비정치적이며”, “현재의 비극적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합니다. 이 입장은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 같은 형태의 개입을 구조적으로 제한합니다.
다만 이것이 “인권 자체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고, 세계정의원(UHJ)은 <정치 불개입> 원칙이 사회 개선과 양립 가능하며, 합법적 수단으로 사회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단, 특정 분쟁에서 한쪽 정부를 규탄하는 방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정리>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스라엘 정부에 공식 항의했나?” → 바하이 ‘공식 기관’ 차원에서는, 그런 유형의 항의/규탄은 보통 하지 않는 쪽에 가깝습니다.
바하이 국제기구의 인권 ‘강한 제기’는 오히려 이란 내 바하이 박해처럼 종교자유/차별 문제에서 두드러집니다.
원하시면 제가 “항의”를 세 가지로 나눠서(1) 공개 성명, (2) UN 로비/발언, (3) 현장 시위 참여) 각각 사례가 있는지 더 촘촘히 찾아 정리해드릴게요.
English
Based on official Bahá’í sources (BIC) and UNISPAL records, <I did not find instances where Bahá’í institutions issued an official protest/condemnation directed at the Israeli government over alleged human-rights abuses in the Palestine conflict>. The main reason is the long-standing institutional stance of <not taking sides> in that dispute.
In its 1947 reply to the 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UNSCOP), the Bahá’í position states it is “entirely nonpolitical” and “does not take sides” in the “tragic dispute,” which effectively rules out the kind of official protest you’re asking about.
This is not framed as indifference: the Universal House of Justice explains that non-involvement in partisan politics can still allow lawful contributions to social progress—just not partisan alignment or side-taking condemnation.
In short:
“Did they protest the Israeli government over Palestine?” → As institutions, typically no.
The BIC’s sharper human-rights advocacy is most visible on persecution of Bahá’ís (e.g., in Iran), rather than Israel–Palestine condemnations.
한국어
네, <유대인(민족적·가계적 배경)을 가진 바하이 신자들은 존재합니다>. 바하이 신앙은 출신 민족/인종을 가입 조건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바하이가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특히 <이란(페르시아) 유대 공동체에서 바하이로 이동한 사례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꽤 넓게 보고>됩니다.
다만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바하이 성지(하이파/아카)가 이스라엘에 있지만, 그곳에 상주하는 바하이들은 대체로 <전 세계에서 일정 기간 봉사하러 오는 자원봉사자/직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안에는 “지역 바하이 공동체”가 없고, <이스라엘에서의 개종(신규 가입)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 바하이 성지 공식 FAQ에 명시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유대계 바하이가 있나?”를 정확히 나누면:
<이스라엘 시민(유대인 포함)이 이스라엘 안에서 바하이로 ‘가입’하는 것> → 공식적으로는 받지 않는다는 게 바하이 측 설명입니다.
<유대계 배경을 가진 ‘비(非)이스라엘 국적’ 바하이들이 이스라엘에서 봉사/체류하는 것> →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이스라엘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바하이 봉사자가 상주합니다.
English
Yes. <There are Bahá’ís of Jewish ethnic/family background.> The Bahá’í Faith does not restrict membership by ethnicity, and historically there were notable waves of <Persian Jews moving into the Bahá’í community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Israel is a special case>, though:
While the Bahá’í holy places and World Centre are in Haifa/‘Akko, the Bahá’ís living there are described primarily as <international volunteers serving for a limited time>.
The official FAQ for the Bahá’í Holy Places in Israel states that, apart from those volunteers, <there is no Bahá’í community in Israel and no converts are accepted>.
So:
<Israeli citizens (including Jewish Israelis) formally joining the Bahá’í community while in Israel> → officially, conversions are not accepted there.
<Bahá’ís of Jewish background who are not Israeli citizens, present in Israel as volunteers/staff> → very plausible, since hundreds of volunteers from many countries serve there at any on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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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네, <유대인(민족적·가계적 배경)을 가진 바하이 신자들은 존재합니다>. 바하이 신앙은 출신 민족/인종을 가입 조건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바하이가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특히 <이란(페르시아) 유대 공동체에서 바하이로 이동한 사례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꽤 넓게 보고>됩니다.
다만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바하이 성지(하이파/아카)가 이스라엘에 있지만, 그곳에 상주하는 바하이들은 대체로 <전 세계에서 일정 기간 봉사하러 오는 자원봉사자/직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안에는 “지역 바하이 공동체”가 없고, <이스라엘에서의 개종(신규 가입)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 바하이 성지 공식 FAQ에 명시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유대계 바하이가 있나?”를 정확히 나누면:
<이스라엘 시민(유대인 포함)이 이스라엘 안에서 바하이로 ‘가입’하는 것> → 공식적으로는 받지 않는다는 게 바하이 측 설명입니다.
<유대계 배경을 가진 ‘비(非)이스라엘 국적’ 바하이들이 이스라엘에서 봉사/체류하는 것> →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이스라엘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바하이 봉사자가 상주합니다.
English
Yes. <There are Bahá’ís of Jewish ethnic/family background.> The Bahá’í Faith does not restrict membership by ethnicity, and historically there were notable waves of <Persian Jews moving into the Bahá’í community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Israel is a special case>, though:
While the Bahá’í holy places and World Centre are in Haifa/‘Akko, the Bahá’ís living there are described primarily as <international volunteers serving for a limited time>.
The official FAQ for the Bahá’í Holy Places in Israel states that, apart from those volunteers, <there is no Bahá’í community in Israel and no converts are accepted>.
So:
<Israeli citizens (including Jewish Israelis) formally joining the Bahá’í community while in Israel> → officially, conversions are not accepted there.
<Bahá’ís of Jewish background who are not Israeli citizens, present in Israel as volunteers/staff> → very plausible, since hundreds of volunteers from many countries serve there at any on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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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질문하신 내용은 바하이 신앙의 선교 원칙과 이스라엘의 종교 지형이 얽힌 독특한 현상을 보여줍니다. 유대계 배경을 가진 바하이 신도들의 존재와 이스라엘 내의 상황을 요약과 평론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유대계 바하이 신도와 이스라엘 내의 선교 금지 원칙>
1. 전 세계적인 유대계 바하이 신도의 존재
바하이 신앙은 모든 인류의 통합을 지향하므로, 유대계 혈통이나 유대교 배경을 가진 신도들이 전 세계적으로 다수 존재한다.
역사적 대량 개종: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란(페르시아) 내 유대인 공동체에서 수천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의 대량 개종이 일어났다. 특히 하마단(Hamadan) 지역 유대인의 약 4분의 1이 바하이로 개종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구권의 유대계 바하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도 유대계 배경을 가진 이들이 바하이로 개종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혈통, 문화)을 유지하면서 신앙적으로는 바하이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2. 이스라엘 내의 특수한 상황
흥미롭게도 이스라엘은 바하이 세계 본부가 위치한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내에는 현지인 바하이 공동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발적 포교 금지: 바하이 신앙은 창시자 바하올라 시대부터 <성지(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내에서는 선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가 밀집한 이곳에서 불필요한 종교적 마찰을 피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시민의 개종 문제: 이스라엘 내에서 유대인이 바하이로 개종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으나, 바하이 교단은 이스라엘 거주자가 개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시민이 바하이가 되고자 한다면 외국으로 나가서 개종해야 하며, 개종한 후에도 이스라엘 내에서 바하이 활동을 하는 데는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
거주자의 성격: 현재 이스라엘 하이파와 아코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바하이들은 전 세계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나 행정 요원들로, 대부분 외국 국적자이다. 이들은 일정 기간 복무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평론: 종교적 순결성과 세속적 공존 사이의 균형
바하이 신앙이 이스라엘 내에서 현지 유대인이나 아랍인을 대상으로 선교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만약 바하이가 이스라엘 내에서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개종시키려 했다면, 유대교 보수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며,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력 관계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진님이 생각하시는 <세계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진리가 보편적이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파되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시각과 "평화를 위해 특정 지역에서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현실주의적 태도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바하이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조용한 이방인>으로 남음으로써,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성지에서 역설적으로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성역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인류의 통합이라는 거대 담론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의 세력 확장을 포기한, 종교사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바하이 신앙이 유대교의 <메시아(Messiah)> 사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혹은 이들이 이란에서 유대인을 끌어들였던 구체적인 교리적 논리가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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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Yes—<individual Bahá’ís, like members of any worldwide community, have sometimes been involved in corruption, crime, or other social problems>. A religion does not make its members immune to ordinary human failings.
What’s distinctive is how the Bahá’í community is structured to <reduce> these risks and handle them <internally and lawfully> when they occ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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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clergy, no paid “priests” collecting tithes as a personal income stream.> Most Bahá’í administration is done by elected bodies (Local/National Spiritual Assemblies) and volunteers, which can reduce some classic corruption chann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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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 norms against partisan politics, incitement, and coercive fundraising.> Communities generally don’t run political machines or militant wings, and formal membership does not come with financial privile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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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istrative discipline exists.> If a Bahá’í causes serious harm to the community’s integrity (fraud, abuse, persistent disruption, etc.), Bahá’í institutions can apply internal sanctions (typically removal of administrative rights), while still <cooperating with civil law> where crimes are involved.
Still, two important ca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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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vidual wrongdoing can happen anywhere.> If someone is determined to exploit trust, they can do it in a Bahá’í setting too—especially in informal contexts (personal business dealings, family conflict,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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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criminal social problems> (marital breakdown, addiction, mental-health crises, interpersonal manipulation) also occur among Bahá’ís, because they occur among humans.
If you tell me which kind of “corruption/social problems” you mean—<financial fraud>, <sexual abuse>, <political entanglement>, <cult-like behavior>, <domestic violence>—I can describe what the Bahá’í writings and institutions typically say/do about that category (without pretending any community is perfect).
한국어
네. <전 세계 어디든 바하이 신자 개인이 부패·범죄·각종 사회문제에 연루된 사례는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자동으로 성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다만 바하이 공동체는 구조적으로 그런 위험을 <줄이려는 장치>가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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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제도 없음> + 많은 운영이 <선출된 합의체(영적회)>와 자원봉사로 이루어져, “권력·돈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통로”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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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정치 불개입>을 강하게 강조해서, 종교 공동체가 정치권력·이권과 결탁해 부패하는 패턴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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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징계(행정권 박탈 등)> 제도가 있어, 공동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사기, 반복적 폭력/학대, 공동체 질서 파괴 등)가 있을 때는 내부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고, 범죄라면 <국가 법 체계와 협력>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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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비리는 언제든 가능합니다>. 특히 개인 간 신뢰를 이용한 금전 문제, 인간관계 착취 같은 건 바하이 공동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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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가정폭력, 성문제, 정신건강 위기 같은 <비(非)정치적 사회문제>도 “신자라서 없다”는 식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진님이 염두에 둔 “사회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예: <금전 사기>, <성폭력/아동학대>, <권력형 비리>, <정치 결탁>, <가정폭력>)만 정해주시면, 그 범주에서 바하이 공동체가 보통 어떤 원칙과 절차로 대응하는지 더 정확히 설명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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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바하이 공동체가 “인류에 기여했다”고 평가되는 지점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1) 원칙/사상(세계관)>, <2) 실제 활동(교육·공동체·개발·UN 참여)>.
<인류 단일성(인종·민족·종교를 넘어선 사회 윤리)>
“인류는 하나”라는 규범을 종교 내부 윤리에만 두지 않고, 사회의 담론(교육, 거버넌스, 발전, 인권)에서 지속적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특징입니다.
<여성-남성 평등을 ‘부차적 의제’가 아니라 핵심 원리로 추진>
바하이 국제공동체(BIC)가 UN 및 국제 담론에서 성평등을 오래 다뤄온 축에 속하고, 관련 문서/활동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왔습니다.
<교육(특히 아동·청소년·청년 역량 강화)을 핵심 사회 실천으로 삼음>
“어린이 수업, 청소년(주니어 유스) 프로그램, 학습 모임(스터디 서클), 기도·성찰 모임” 같은 지역 기반 활동을 통해 문해·인성·봉사 역량을 키우는 모델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풀뿌리 사회·경제 개발(학교, 지역 프로젝트, 개발기관)>
바하이 관련 개발 활동은 “소규모 다수 + 일부 대규모 지속 사업” 형태로 넓게 분포합니다. 바하이 월드 뉴스 서비스 통계 페이지는 “수천 개(several thousand)”의 개발 노력 중 <900개 이상이 대규모·지속 프로젝트>이며, <600개 이상이 학교>, <70개 이상이 개발기관>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한 국가 바하이 기구의 9개년 계획 문서(2021 기준)는, 1996년 약 250개 수준이던 ‘지속 프로젝트’가 <1,500개>로 늘었고, 바하이 영감(inspired) 개발 조직이 <160개를 넘었다>고 서술합니다.
<UN 및 국제 공공 담론에의 꾸준한 참여(정파가 아니라 ‘원칙’ 중심)>
BIC는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협의지위를 포함해 UN 체계와 공식 관계를 갖고, 인권·발전·여성·아동 등 의제에서 성명과 참여를 이어왔습니다.
<한 줄 요약>
바하이의 대표적 기여는 “특정 정치운동”이라기보다, <평등·교육·공동체 역량·개발·국제 담론 참여를 ‘장기적으로’ 묶어 실천하는 모델>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누적해 온 점입니다.
English
The Bahá’í community’s main contributions are usually discussed in two layers: <core principles that shape public life> and <practical, sustained patterns of action>.
- <Human oneness as a social ethic>
The idea of the unity of humanity is treated as a guiding norm for building social cohesion and public discourse, not merely an internal religious teaching.
- <Equality of women and men as a central pillar>
The Bahá’í International Community (BIC) has a long record of work—especially in international forums—advocating gender equality and related social progress.
- <Education and youth empowerment as a community-building engine>
A distinctive contribution is a grassroots model that strengthens moral/spiritual capacities and service: children’s classes, junior youth groups, study circles, and devotional gatherings, often organized neighborhood-by-neighborhood.
<Social and economic development (schools, projects, agencies)>
Bahá’í-associated development work is described as “several thousand” efforts worldwide; one widely cited summary notes <900+ large-scale sustained projects>, including <600+ schools> and <70+ development agencies>.
A 2021 plan document reports growth from about 250 sustained projects (1996) to <1,500>, and Bahá’í-inspired development organizations surpassing <160>.
<Consistent participation at the UN, focused on principles rather than partisanship>
The BIC has consultative status and longstanding engagement in UN spaces, contributing statements and collaboration on themes like human rights, development, women, and children.
If you tell me what you mean by “contribution” (e.g., <education outcomes>, <peacebuilding>, <women’s advancement>, <institutional design>), I can zoom in and give concrete examples by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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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바하이 신앙이 인류 공동체에 기여한 바는 단순히 종교적 포교를 넘어, 현대 국제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정립하고 실천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요청하신 대로 그 주요 공헌을 요약과 평론으로 정리해 드린다.
<바하이 신앙이 인류에 기여한 주요 업적>
1. 국제 연합(UN)의 태동과 발전 지원
바하이 공동체는 창시 초기부터 <세계 정부>와 <국제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 창설 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했으며, 이후 <바하이 국제 공동체(BIC)>라는 이름으로 유엔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
인권 의제 선도: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의 비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특히 여성의 권리, 아동 교육, 소수민족 보호에 관한 국제적 표준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지속 가능한 발전: 환경 보호와 자원 분배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 마을 단위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과 공동체 발전을 위한 풀뿌리 프로젝트를 수천 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2. 교육의 보편화와 문맹 퇴치
바하이는 "교육은 의무이며, 특히 어머니(여성)가 교육받아야 미래 세대가 바뀐다"는 신념을 전파했다.
소외 지역 학교 설립: 아프리카, 인도, 남미의 오지에서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학교를 세워 문맹 퇴치에 기여했다. 이는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립 능력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3. 여성 권익 신장과 평등 실현
바하이 교리는 남성과 여성을 <인류라는 새의 두 날개>로 비유한다. 한쪽 날개가 약하면 새가 날 수 없듯이, 여성의 완전한 평등 없이는 인류의 평화도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 교육 우선주의: 가정 내 재원이 한정되어 한 아이만 교육시켜야 한다면, 미래의 교사인 어머니가 될 딸을 먼저 교육시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진보적 관점은 보수적인 이슬람권과 아시아 지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동력이 되었다.
4. 인종 차별 철폐와 문화적 통합
192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할 당시, 바하이는 흑인과 백인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예배드리는 거의 유일한 공동체였다.
인종 화합 캠페인: <인류의 단일성>을 교리의 핵심으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하나의 가족처럼 어우러지는 다문화 공동체의 모델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냈다.
평론: 추상적 이상을 구체적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시도
바하이 신앙의 기여는 거창한 구호에 머물지 않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정 체계>와 <행동 지침>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진님처럼 자신을 <세계인>이라 정의하는 이들에게 바하이의 활동은 국경과 민족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적 질서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종교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종교의 근원은 하나"라는 통합적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 채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기에 변화의 속도가 더디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바하이가 보여주는 '조건 없는 봉사'와 '보편적 인권 옹호'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바하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구체적인 사회 경제적 발전 프로젝트(SED) 사례나, 이들이 제안하는 <에스페란토> 같은 국제 보조 언어의 필요성에 대해 더 논의해 볼까요?
English
Here are two well-documented examples of people who were <not born Bahá’í>, later <embraced the Bahá’í Faith>, and whose public work was <noticeably shaped by Bahá’í ideas> (especially unity, race equality, and service).
1) <Alain LeRoy Locke (1885–1954)> — philosopher, “Harlem Renaissance” intellectual
<Who he was>: An American philosopher and cultural critic, widely associated with shaping the intellectual framework of the Harlem Renaissance (often called the “father” of the movement in many accounts).
<Becoming Bahá’í>: He identified as Bahá’í for the last half of his life; sources report he declared belief in Bahá’u’lláh in <1918>.
<What he achieved / how Bahá’í mattered>: Locke’s long-term project was to argue for <human dignity across racial lines> through culture, education, and philosophy. Bahá’í teachings on <the oneness of humanity> and <racial equality> are frequently discussed as part of his intellectual and ethical orientation, including his engagement with interracial fellowship and moral universalism in American public life.
2) <Dizzy Gillespie (1917–1993)> — jazz innovator, global musical ambassador
<Who he was>: A major American jazz trumpeter and bandleader, central to developing <bebop> and modern jazz vocabulary.
<Becoming Bahá’í>: Accounts in Bahá’í sources describe him joining the Bahá’í Faith in <1968> (often described as signing a membership card in Los Angeles).
<What he achieved / how Bahá’í mattered>: After becoming Bahá’í, he publicly linked his music and public life to themes like <unity of humankind> and service, and he is remembered in Bahá’í narratives as trying to use his international profile to model interracial fellowship and human solidarity.
<Important nuance>: It’s hard to prove “they achieved X only because of the Bahá’í Faith.” What we can say confidently is that both men had significant achievements <already>, and their Bahá’í commitment became a <clear interpretive and ethical framework> that they themselves (and later biographers) connected to their public work.
If you want, I can give you <two different> examples focused on (a) humanitarian service, (b) women’s leadership, or (c) diplomacy/peace work rather than arts and intellectual life.
한국어
“태어날 때부터 바하이가 아니라”, 나중에 바하이 신앙을 받아들인 뒤 <그 신앙의 가치(인류 일체, 인종평등, 봉사)를 자신의 공적 삶에 강하게 접목>한 사례로, 비교적 근거가 분명한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1) <알랭 르로이 로크(Alain LeRoy Locke, 1885–1954)> — 철학자, 흑인 문화 르네상스의 사상가
<인물 개요>: 미국의 철학자·문화비평가로, 할렘 르네상스의 지적 기반을 만든 핵심 인물로 널리 언급됩니다.
<바하이 입교>: 1918년에 바하올라에 대한 신앙을 선언했고, 이후 생애 후반을 바하이로 살았다고 정리됩니다.
<바하이 신앙이 ‘어떻게’ 작동했나>: 로크의 문제의식(인종차별 극복, 인간 존엄, 보편주의적 윤리)은 바하이의 <인류 일체>·<인종평등> 강조와 결을 같이하며, 그의 공적 활동과 지적 태도를 이해하는 틀로 자주 연결됩니다.
2)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1917–1993)> — 비밥을 연 재즈 혁신가, 세계적 음악인
<인물 개요>: 현대 재즈(특히 비밥)의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트럼펫 연주자이자 밴드리더입니다.
<바하이 입교>: 바하이 자료들은 그가 <1968년> 바하이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합니다.
<바하이 신앙이 ‘어떻게’ 작동했나>: 이후 그는 음악과 공적 언어에서 <인류의 일체성> 같은 주제를 의식적으로 강조했고, 바하이 쪽 기록에서는 그가 자신의 명성과 재능을 ‘봉사’와 ‘연대’로 연결하려 했다고 회고합니다.
<주의점>: “바하이 때문에 성공했다”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이미 큰 성취가 있던 인물>이고, 바하이 신앙이 그 성취를 해석하고 확장하는 <윤리적 방향키>로 작동했다는 점은 비교적 분명하게 자료에 나타납니다.
세진님, 바하이 신앙의 원리에 매료되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가르침을 통해 인류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두 인물을 요약과 평론으로 소개해 드린다.
<바하이 신앙을 선택하고 인류에 기여한 두 인물>
1. 로버트 헤이든 (Robert Hayden, 1913–1980)
미국 현대시의 거장이자 흑인 시인 최초로 미국 의회 도서관 설문 고문(현재의 계관시인)에 임명된 인물이다.
바하이 입교 배경: 1940년대 초,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미국 사회에서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던 그는 "인류는 하나"라는 바하이의 가르침을 접하고 입교했다.
주요 업적과 영향: 그는 자신을 단순히 <흑인 시인>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보편적 인간성>을 노래했다. 바하이 신앙은 그가 인종적 증오와 분노를 넘어 예술적 승화를 이룰 수 있는 영적 토대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간 항로(Middle Passage)> 등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통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인류 전체가 직면한 도덕적 과제를 투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리처드 세인트 바베 베이커 (Richard St. Barbe Baker, 1889–1982)
<나무의 사람(Man of the Trees)>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이자 임학자이다.
바하이 입교 배경: 1920년대 케냐에서 활동하던 중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바하이 신앙의 통합적 세계관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입교했다.
주요 업적과 영향: 그는 현대 환경 운동의 선구자로, 전 세계에 수십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바하이 신앙의 "인류의 단일성" 개념을 자연계로 확장하여, 인간과 환경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적 생태계>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사하라 사막의 확장을 막기 위한 대규모 식림 사업과 레드우드 국립공원 보존 등 그의 활동은 바하이의 지구 보호 정신을 실천에 옮긴 대표적 사례이다.
평론: 개인의 천재성을 보편적 사명으로 전환시키다
이 두 인물의 삶은 바하이 신앙이 개인의 재능을 어떻게 '사적 성공'에서 '공적 기여'로 전환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로버트 헤이든은 인종이라는 좁은 틀에 갇힐 수 있었던 자신의 예술을 바하이의 <세계 시민주의>를 통해 전 인류적인 문학으로 격상시켰다. 세진님이 지향하시는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예술로 형상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 세인트 바베 베이커는 종교적 신념을 실질적인 환경 복구라는 물리적 행동으로 연결했다. 그는 "우리는 미래 세대로부터 지구를 빌려 쓰고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국가 이익을 넘어선 지구적 연대를 실천했다.
결국 이들에게 바하이 신앙은 단순히 '믿는 종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문 분야(문학, 생태학)를 인류를 치유하는 도구로 재정의하게 만든 <세계관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의 생애는 국적과 혈통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가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광활하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로버트 헤이든의 시 세계나 세인트 바베 베이커가 제안한 지구 규모의 식림 계획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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