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북한 주장 聯邦制는 한반도 共産化의 길:金泌材 조갑제닷컴 기자



북한 주장 聯邦制는 한반도 共産化의 길:올인코리아



북한 주장 聯邦制는 한반도 共産化의 길

종북세력이 '연방제 통일이 평화적 통일방안'


金泌材 조갑제닷컴 기자




위 자료는 1990년 7월5일자 국내 모 일간지 기사이다. 당시 평민당 총재는 김대중 前 대통령 이었다. 위 토론회에 참석한 김남식(金南植)은 본명이 김동만(金東滿)으로 63년 철원 지역으로 간첩으로 침투됐다 같은 해 검거된 인물이다.


북한의 김씨왕조는 노동당규약에서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은 한반도 전체의 주체사상화 및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규정, 대남적화통일 전략이라는 통일기조를 변함없이 고수하면서 지난 60년대 초부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북한은 그동안 시기와 정세의 변화에 따라 ‘연방제’의 의미를 여러 차례 수정해왔으며,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지난 1980년 10월 10일 제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하 고려연방제)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연방제는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주한미군철수), ‘평화’(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민족대단결’(남한 내 공산주의 활동보장)의 3개항을 제시, 남한에서 이른바 ‘자주적 민주정권’ 즉, 연공(공산)정권 수립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려연방제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국보법 폐지·주한미군철수·공산주의 합법화·남한 내 ‘인민민주정권’ 수립 등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김정일 정권의 남한 무장해제를 통한 ‘적화통일’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인민민주정권이란 과거 소련공산당이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후진국에서의 공산화전략으로 완전한 공산정권수립에 앞서 민족주의 세력을 포함하는 연립정권(국방·내무 등 핵심은 공산당이 장악)을 세우는 것을 뜻한다. 김씨왕조의 이 같은 의도는 지난 1974년 1월 30일 개최된 남북 조절위원회 제3차 부위원장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북한 측 부위원장 류장식은 ‘대민족회의’ 구성문제와 관련해 쌍방 대표단의 인원수를 각각 350명 내지 1천500명 규모로 하고, 남한측 대표단 속에는 반공정당·반공단체·반공인사들이 참가할 수 없으며, ‘통일혁명당’ 대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고려연방제가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김일성주의는 역사·이념적 배경으로 스탈린주의에 의존하고 있고,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려연방제’는 레닌주의 혁명전통의 연장선상에 위치해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연방제’는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에서 실시되고 경험된 역사적 사실이며, 고려연방제는 레닌주의의 유산으로 북한이 적용한 과도적 조치로서 북한식 흡수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 점을 주체사상에 의존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려민주연방 창안방안은 무엇보다도 주체사상의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일관 되게 관통되어 있다. (고려연방제는) 주체사상과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 가장 정당한 통일 강령이며, 통일구국 대헌장이다.”(당 기관지 ‘근로자’, 1980년 제11호 54면)

예컨대 공산주의 역사에서 민족은 과도기적 형태로 존재하며 그들이 민족주의자를 용서했다는 사실이 없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방제는 그들에게 있어 ‘전술적 과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작고한 황장엽 비서는 “북한 통치자들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은 본질상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구현한 전술적 방안으로서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은 계급투쟁론과 무산계급 독재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고려연방제의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1국가 2제도다. 이것은 김씨왕조가 다스리는 평양정부를 중앙정부로 하고 김정일 정권을 추종하는 남한의 서울정부를 지방정부로 하여 연합한다는 것으로 북한이 남한을 흡수 병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고려연방제는 과거 중국의 모택동이 주도한 ‘국공합작’(國共合作)과도 매우 유사하다. 1923년 1월 중국의 손문은 소련 특명전권 대사인 ‘코민테른’ 특사 요페와 회동해 ‘대소 용공정책’ 수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부르주아가 진보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한 공산당이 원조해야 한다는 것으로 혁명적 부르주아와의 합작을 뜻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혁명적 부르주아적 정당으로서 손문의 중국국민당이 선정됐다. 이것이 바로 국공합작이다. 1924년 중국국민당 제1차 전당대회는 “소련과 연합하고 공산당을 허용한다”는 ‘연소연공’ 정책을 발표한 결과 이 대회에서 국민당 중앙위원 1/3을 중국공산당이 장악하게 됐으며, 중국공산당은 소위 ‘국민혁명’의 명분하에 대중조직 공작과 군중투쟁을 전개해 세력을 급속히 확장시킬 수 있었다.

국공합작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이 마땅히 국민혁명의 중심세력이 되어야 하며, 국민혁명의 영수로서의 지위에 서야 한다고 철저하게 ‘양보전술’을 구사했다.

나아가 중국공산 당원은 국민혁명을 위하여 충실한 국민당원 노릇을 할 것이고 공산주의 선전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6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제2차 국공합작을 요구하는 역사적 서한을 보내 혁명적 항일통일전선 구축을 촉구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연합전선 앞에 굴복시켜라!”는 지휘방침을 세웠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37년 모택동은 8로군 간부들에게 행한 비밀연설에서 “우리의 정책은 국민당과의 항일통일전선 결성 성공에 의해 숨 돌릴 시간을 얻었다...(중략) 이제 우리는 금후 우리세력의 70%를 자기발전에, 20%를 대 국민당 타협에, 10%를 항일 작전에 경주한다”는 투쟁의 계획을 제시했다.

국공합작을 통해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후 민족해방투쟁의 전략적 구도를 다음과 같이 체계화할 수 있었다.

△1단계: 타협단계: 눈을 꼭 감고 표면적으로 국민당 정부에 복종하며 손문의 ‘삼민주의’를 신봉하는 체하여 생존과 발전을 꾀한다.

△2단계: 경쟁과 대립단계: 2-3년 동안 정치력과 무장의 기초를 확보하며 국민당 정부와 대항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린다.

△3단계: 공세와 진출단계: 중화지구에 깊숙이 들어가 근거지를 설치하고, 국민당 세력을 고립 시켜 주도권을 쟁취한다.


이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국공합작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동원칙을 전술적으로 포기·양보·은폐시킴으로서 국민당 정부와 ‘항일연합전선’을 형성, 전략적 세력관계를 정반대로 뒤집어 놓아 모택동의 중국공산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국공합작을 통한 공산화 통일 방안을 이후 대만과 홍콩에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실제로 중국은 모택동 사후 등소평 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만통일정책을 무력통일노선에서 평화통일로 정책을 바꾼다. 그리고 여기서 구사한 정책이 바로 1국가 2제도 통일방안이다.

1979년 1월 1일 중국은 ‘대만 국민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1국가 2제도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당시 중국은 이를 구체화해 ‘엽(葉)9조’라는 대(對) 대만정책을 내놓았다.

엽9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차 ‘국공합작’ 형식의 조국통일
△3통(통상·통합·통우(通郵)), 4류(학술·문화·체육·공예)
△통일 후 대만은 특별행정구로서 고도의 자치권 부여, 군대를 보유할 수 있고 중앙정부는 대만지방사무소에 간섭하지 않는다.
△대만의 현행제도 유지.
△대만당국과 각계의 대표자는 전국 단위의 정치지도자가 된다.
△대만의 재정은 중앙정부가 보조한다.
△중국본토 이주희망자는 받아들이고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한다.
△대만 기업인의 본토 투자를 환영하고, 그 권익을 보장한다.
△대만 각계의 통일에 대한 제안의 일원화

이상이 엽9조의 내용이다. 김정일 정권의 1국가 2제도 통일방안은 바로 이 엽구조의 대만통일방안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대만정부는 대만이 주권국가임을 들어 중국의 대만 흡수 통일방안인 엽9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들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족 대단결’이란 단어다. 김씨왕조가 주장하는 민족 대단결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자주성의 확립’은 대한민국의 친미 성향을 타파한다는 의미와 함께 친일·친미 세력을 배척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고려연방 국가는 중립이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 말도 현재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철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김정일 정권이나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립국으로 통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 제안에는 ‘군대의 해체 및 통합과 감군’이라는 어구가 있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군대를 해체하고 완전 무장 해제시켜 군사적으로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미다.

결국 김씨왕조의 연방제 통일안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의 장애가 되는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다음 국군을 무력화하는 계략이다. 향후 남한 좌파는 2012년 대선(大選)에서 '국방비 감축' 통해 '복지비용' 마련하자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과 대선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은 뒤 국군의 힘을 빼고, 주한미군을 철수 시켜 한반도 중립화 지대를 천명하며 사실상 대한민국을 공산화 하는 전략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이 평화적 통일방안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김정일 추종세력 뿐이다.

(2007년 6월26일자 보도)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관련기사1] 통진당-민통당-한나라당의 '징병제 폐지' 음모
軍사병월급 대폭 올리면 최종적으로 '징병제' 폐지된다(2012년 2월3일)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軍心을 잡기위해 각 黨이 사병과 입대 예정자를 상대로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등 선심성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舊한나라당)은 현재 9만원 수준인 사병 월급을 40만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통당은 일반 사병의 통장에 매달 30만원을 적립, 제대 때 목돈으로 지급하는 ‘군복무자 사회복귀 지원금’ 제도를 추진한다.

민통당은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매달 21만 원까지 지원하고, 2022년에는 목표 지원액의 100%인 30만 원씩을 지원하도록 했다. 군인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별개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지급 규모는 월 40만 원 선으로, 한나라당의 방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통진당은 사병에게 2014년 최저임금의 50%를 지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지급액을 확대해 2024년에는 최저임금의 100%까지 지급하는 내용의 ‘군인 최저임금 지급’ 방안을 조만간 총선 공약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처럼 사병월급을 올리기 위해 재원마련은 국방예산 가운데 신무기 도입 예산을 아껴 마련하겠다고 한다. 어느 黨도 국방비를 증액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각 黨은 또 대만, 독일 등의 국가들과 國軍 사병월급을 비교했는데, 대만의 경우 사병이 11만 명, 독일의 경우 5만 명으로 사병 수만 46만명인 국군과는 병력 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국 사병 월급을 30만 원 이상 선으로 유지하기 위해 軍전력 증강이 뒤로 미뤄질 것이며, 軍복무 기간 단축 및 병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 현재의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전환’이라는 과거 민노당의 강령이 사병월급 상승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사병 월급을 30만 원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대폭 늘리거나 자체 핵(核)무장을 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얘기다. 이보다는 軍가산점 제도를 부활시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인원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할 것이다.

사병의 월급상승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차별 없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명문가족임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의 여왕의 아들은 포클랜드전쟁에 참전해 헬리콥터를 운전하면서 최전선을 누볐다. 영국의 이튼스쿨은 영국의 명문귀족 집안 자제들이 진학하는 학교이다.

그런데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며 국민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귀감이 되었다. 지금의 한국은 어떠한가? 사병 월급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병역의무를 동등하게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2] 2015년 주한미군철수 가능성 대비해야
전쟁국가에서 안보는 경제-복지보다 중요하다!(2011년 8월10일)

미국의 안보전문가들은 요즘 고민이 많다. 부채협상 타결로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지출이 수조달러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분야는 국방분야이다.

백악관과 의회는 당초 국방비를 향후 10년 동안 8500억 달러 감축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추가 협상에서 다른 항목 감축에 실패할 경우 추가로 국방비를 삭감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美국방비 삭감의 불똥이 한반도와 일본에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12년 예산안에서 미국의 국방 예산은 총 55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실질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당초 예상됐던 지출 규모보다 130억 달러가 줄어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이 발표한 향후 5년 간 국방계획에 따르면 국방 예산은 2013~2014년에는 증가율이 떨어지며 2015~2016년에는 물가상승분만이 반영되는 수준에서 동결된다.

이 계획에 따라 미 육군과 해병대는 전체 인원의 약 6%인 4만7천명에 달하는 병력을 감축한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철수하는 2014년까지 병력 감축은 이뤄지지 않으며, 2015년부터 육군은 2만7천명, 해병대는 2만 명의 병력을 감축한다.

2015년은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시기이며, 감축되는 육군과 해병대는 정확히 한국과 일본에 주둔한 병력 숫자와 일치한다. 이런데도 한국과 일본은 독도문제로 티격태격한다.

韓日양국은 4만7천명의 미군 병력 감축이 만에 하나 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주한미군 병력’과 ‘오키나와 주둔 미(美)해병대’의 철수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이 이런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고나 있는지 답답하다. http://www.chogab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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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05 [12:00]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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