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5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4) 유일 합법정부 논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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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4) 유일 합법정부 논쟁박태균 | 서울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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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8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주장 설 자리 잃어


1948년 12월12일 유엔 총회는 195호 결의안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2000년 이전까지 모든 교과서는 유엔의 승인을 근거로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정의했다. 이것이 곧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1991년 문제가 발생했다. 9월17일 오후 3시30분 46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59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유엔에 가입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했던 대한민국 정부의 주장에 금이 간 것이다.


남북한은 원래 유엔에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었기 때문에 남한과 북한이 각각 다른 국가로서 가입할 경우 통일의 원칙에서 어긋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암묵적 원칙을 먼저 깬 것은 남한 정부였다. 1973년 6·23 선언을 통해서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6·23 선언에서 ‘북한이 우리와 함께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제4조),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제5조)라고 북한에 제안했다. 6·23 선언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현실화된 것이다. 1991년 12월31일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제1조)고 전제한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1991년 일본과 북한의 수교 협상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논쟁이 다시 재현되었다. 일본이 북한 정부를 법적으로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일본은 이미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III)를 상기’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1991년 12월13일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제3차 본회의에서 남측의 정원식 총리(오른쪽)와 북측의 연형묵 총리(왼쪽)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공식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유엔 승인안, 헌법 3조와 충돌


도대체 유엔의 결의안을 다시 상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유엔 총회의 승인안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로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임시위원단이 관찰하고 협의할 수 있었고, 한국인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한국의 그 지역’에서 통제와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 정부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 정부는 ‘한국의 그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자유의지가 표현되었다고 일컬어지고 임시위원단이 관찰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에서 오직 그러한 정부라고 끝을 맺고 있다.


유엔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에서 선거가 이루어졌고, 그 정부를 유엔이 승인했는데, 왜 이렇게 다양한 조건이 붙었을까?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 선거를 통해 수립된 유일한 정부라고 승인했다. 그러나 승인된 대한민국은 오직 유엔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에 선거가 실시되었던 지역에만 국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지역(that part)’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 점을 의미했고, 한일협정에서 일본은 대한민국 정부를 ‘그 지역’에서만 관할권을 갖는 정부로 규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북한 정부와도 수교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만약 1965년 한일협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전체에서 유일 합법정부로 규정했다면, 일본은 북한 정부와 수교를 할 수 없다. 북한의 유엔 가입도 마찬가지다. 유엔의 승인이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북한 정부는 불법 단체가 되며, 이는 북한 정부가 유엔의 성원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민주화 이후 역사학자들은 유엔의 승인안에 기초해서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규정을 수정했다. 그 결과는 2003년부터 ‘근현대사’ 검정교과서에 반영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총선거가 실시된 38선 이남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와 충돌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10여년간 정부의 승인 아래 모든 역사 교과서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5월10일 선거가 이루어진 지역(또는 38선 이남)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서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3년 갑자기 교육부가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권고안을 냈다. 교육부는 ‘당시 유엔 결의문은 합법적인 정부로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뿐임을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38도선 이남’이란 표현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교육부의 수정권고안이 나오자마자 뉴라이트 학자들 사이에서 교육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국제법적 관할권을 선거가 이루어진 지역, 곧 38선 이남으로 한정한 것은 유엔 결의안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며, 원문에는 ‘한국에서’(in Korea)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엔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안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 다시 재개되지 않았다. 승인안의 영문 표현을 보면 대한민국의 관할권이 선거가 이루어진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인안의 내용을 왜곡하면서까지 논쟁을 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유엔 승인안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독 유엔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 창설된 유엔군은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으며, 유엔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을 조직, 전후 한국의 재건을 도왔다. 1980년대까지 유엔의 생일인 10월24일이 공식 휴일(유엔데이)이었다.


■ 대한민국 정부 정통성,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에서 나와야


한국이 이렇게 유엔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미국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필리핀이나 일본과는 달리 유엔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북한이 남침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의 연설에서도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되었지만, ‘국제기구를 통해 수립된 국가는 국제기구를 통해 지키겠다’는 원칙이 천명되었다. 미국으로서는 소련과의 합의를 통해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유엔을 통해 그 절차적 합법성을 인정받고자 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합법성은 유엔의 승인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게다가 1948년 상황에서 유엔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었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유엔은 명실상부한 유일한 세계정부가 되었다. 현대 국가의 정통성은 신화나 외부로부터의 인정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알에서 태어나고 두꺼비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먼 옛날의 일이다. 외부의 인정만으로도 정통성을 얻고자 했던 것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만주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을 때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정통성과 합법성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나와야 한다. 선거를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구성원들이 그 국가 아래에서의 삶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이 중요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의 정통성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 국가가 구성원들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가에 따라 정통성이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진행되는 구시대적 논쟁이 없었으면 한다.


▲ 한국 정부의 관할권 문제
유엔 승인안서 제한… 북 급변사태에도 당분간 관할권 없어



유엔이 결의안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정부로 승인했다는 소식을 전한 경향신문 1948년 12월14일자 기사.

유엔 승인안은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의 영토 관할권을 직접 규정, 제한했다.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1948년 5월10일에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 4·3항쟁 때문이었다. 1949년에 가서야 유엔한국위원단의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된 이후에야 정식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다.


1950년 인천 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했을 때 누가 38선 이북 지역을 관할하는가가 문제가 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북 5도에 도지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유엔군과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한국 정부가 임명한 도지사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은 그 지역에 관할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후 수복지구도 문제가 됐다. 서해5도와 강원도의 일부 지역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관할권이 없었기 때문에 1954년 총선거에서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유엔군과 한국 정부와의 협약에 의해 정전협정 후 1년이 지나서야 관할권이 이양되었다.




만약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는 당분간 관할권을 갖지 못한다. 유엔 승인안의 국제법적 효력이 계속되는 한 유엔의 권위 아래에 다국적 국가로 구성된 기구가 수립될 가능성이 크다.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북한에 가서 부동산 투자를 해야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282203395&code=210100#csidx6bcf6921e4a28ff96a6469c5a956c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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