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

‘반일 종족주의’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 박찬운 2019. 8

‘반일 종족주의’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

책과 인생/역사

‘반일 종족주의’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

박찬운 교수 2019. 8. 23. 10:00

내가 평소 책을 많이 사지만 아무 책이나 사는 것은 아니다. 읽을 만한 책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사고 말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낚인 것이다. 덕분에 나도 이 책 베스트셀러 만드는데 작은 도움을 주고 말았다. 이왕 샀으니 읽을 수밖에. 

도대체 이 책이 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일까? 대학자(?)인 이영훈 교수와 그 사단의 학문적 업적을 많은 사람들이 이교수 말대로 반일 종족주의로 깔아뭉개는 것은 아닐까? 조국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은 구역질나는 그런 책일까?

지면 관계상 책 전체를 하나하나 비판할 수는 없다. 단지 문제되는 이슈 하나만을 선정해 이 책이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지금 한참 논란 중인 강제징용 문제다. 이 문제는 이 책 중 이교수가 쓴 프롤로그와 이우연이 쓴 67쪽 이하의 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교수는 프롤로그에서 대한민국은 거짓말의 나라라고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국민도 정치도 학문도 거짓말만 하는 거짓말 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이 거짓말이 급기야 사법부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15쪽). 사법부 거짓말의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8년 10월 대법원이 선고한 강제징용 판결이다.

이교수가 대법원 판결을 엉터리 판결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여 판결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이 인정한 기본적 사실관계가 원고들의 거짓말 주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법원은 이런 엉터리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판결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쓴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자.

“대법원의 판결문은 해당 사건의 ‘기본적 사실관계’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읽은 저의 소감은 한마디로 “이건 거짓말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 제 비판의 초점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 ‘기본적 사실관계’는 사실이 아니다. 아니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서 그런 흔적을 잦을 수 없습니다. ...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주장을 검증하지 않은 재판은 과연 유효한 것인가.”(16-17쪽)

이교수는 강제징용 판결에서 원고들의 거짓말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사실관계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일본제철이 원고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강제저축 운운하는 판결문 자체가 그 점을 입증하고 있다. 임금이 원고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사감이 범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는지는 사감을 취조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감은 미성년인 원고를 대신하여 원고의 본가에 원고의 월급을 송금하였을 수도 있다. 요건대 해당 사건은 원고와 사감 간의 민사사건이다.”(18쪽)

이제 나의 반론이다. 

첫째, 대법원이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법률의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다.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으로 사실인정을 하는 절차가 아니다. 사실인정은 원심인 하급심(이 사건에선 파기환송심인 고등법원)에서 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중 기본적 사실관계는, 원심이 증거에 의해 인정한 사실관계를 옮긴 것에 불과하므로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을 비난할 게 아니라 원심 사실인정을 문제 삼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교수가 법률가가 아니므로 너그럽게 넘어가자. 그저 그의 주장을 대법원 판결을 비롯한 원심 판결 모두가 사실인정을 잘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하자.)

둘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건에서 일본제철(현재 신일철주금의 전 회사)의 원고들에 대한 임금 미지급은 아예 쟁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교수가 이런 책을 내려면 원고들과 피고의 주장을 좀 더 철저히 조사했어야 마땅했다. 

이 사건의 1심과 2심 그리고 파기 환송심 판결문을 모두 읽어보면 피고(신일철주금)는 원고가 주장하는 임금 미지급 부분에 대해선 전혀 다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피고의 전신인 일본제철은 1947년 경 원고들의 급료에 대해 오사카 공탁소에 공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즉, 원고들에 대해 일본제철이 임금을 직접(현실적으로) 지불하지 않은 것은 원피고 간에 다툼 없는 사실(피고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관계임에도, 이교수가 원고들과 일본제철 사이에 사감이란 존재를 넣어, 그가 중간에 돈을 가로챘을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본가에 돈을 보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참으로 용서받기 어려운 무책임한 주장이다. 

셋째, 이 사건과 관계없이, 징용이건 징용 이전 노무동원이건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근로자들이 사감들의 농간으로 급료를 지급받지 못했더라도, 법률적으론 충분히 일본제철의 책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교수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감이 이교수의 주장대로 조선인 근로자를 통제하는 존재로서 급료통장과 도장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그는 일본제철의 지시 감독을 받는 사실상 피용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사감의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급료를 못 받았다고 해도 일본제철이 사용자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교수가 원고들과 사감 간의 민사사건이라고 한 것은, 아무리 법률 문외한이라고 해도 학자로선, 창피한 수준의 법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책이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학술적 주장이라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독선적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강제징용의 경우 이교수는 원고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버렸고 대법관들까지도 그렇게 보았다. 

”그들(대법관들)은 원고들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어릴 적부터 거짓말의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18쪽

책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모욕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인가. 엄밀한 사료를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는 학자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과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것이다. “과연 이 책은 누가 쓴 것인가. 한국의 학자가 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극우인사가 쓴 것인가.”



출처: https://chanpark.tistory.com/entry/‘반일-종족주의’-과연-읽을-만한-책인가 [박찬운의 아브라카다브라]



======
‘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박찬운 교수 2019. 8. 23. 10:07

이영훈 교수와 그의 사단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강제징용과 함께 대한민국 반일 종족주의의 극단적인 예로 제시하는 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이교수는 위안부 장을 다룬 총 120쪽 글에서 80쪽이 넘는 양을 직접 쓰고 있다. 그만큼 위안부 문제는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하는 그에겐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이영훈 교수의 관점

이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외에서 형성되어 온 성노예로서의 위안부(그러므로 이를 운영한 일본군은 국제범죄의 당사자가 됨)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이교수가 위안부를 보는 관점을 그의 글로 직접 확인해 보자.

“저는 위안부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라는 인식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당시의 제도와 문화인 공창제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을 일본군의 전쟁범죄로 단순화하고 줄기차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한 것은 한국의 민족주의였습니다.”(337)

이교수는 위안부가 일제 강점기에 공식적으로 존재했던 공창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위안부의 성격규정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일본군 위안부제는 민간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되고 편성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301)

나아가 그는 위안부를 전 근대의 남성 중심의 착취적 성문화와 연결시킨다. 즉 그는 위안부의 뿌리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그것이 일제강점기의 공창제로 나아가 해방 이후엔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이어졌다고 한다.

“기생제, 공창제, 위안부제는 본시 역사적으로 한 계보였습니다.”(291)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1945년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위안부 제도는 1960년대까지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군 위안부의 형태로 건재했으며, 오히려 발전하였습니다.”(273)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가 당시의 성문화의 군대식 표현에 불과하고, 공창제를 범죄시 할 수 없었다면 위안부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수 십 년 동안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 사고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교수(또 그의 사단)가 사용하는 집단적 광기로서의 민족주의, 반일 종족주의가 나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밑바닥에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종족주의적 적대 감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271)

......

나의 비판

이교수의 관점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이 중심이 되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아 온 전시 성노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문제의 초점은 일본군 위안부를 당대(1930년대 후반에서 1945년까지)에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많은 지역에서 허용되어 온 공창제(이것은 지금도 많은 나라가 시행하고 있음)와 본질적으로 같은가 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위안부를 공창제로 이해하는 것은 어불성설

공창제가 비록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과 일본군 위안부는 그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공창제에서도 인신매매에 희생되어 성매매업에 종사한 여성이 있지만, 그것(인신매매)은 그 당시에도 범죄에 해당되었다. 본질적으론 근대사회의 공창제는 성매매업을 허용하면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권리보호와 국민의 보건 위생을 위해 국가가 그 관리 운영에 간섭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인신매매를 허용하면서까지 성매매업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위안부는 어땠는가. 많은 경우가 이교수도 인정하는 것처럼 기망에 의해 전장의 위안소로 갔고 거기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굶주린 병사의 성노리개감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신매매 이상의 범죄가 저질러졌음에도 국가는 방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주도했다. 도저히 공창제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근대의 공창제는 민간이 운영하는 성매매업에 국한된 것이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일본군 위안부는 민간이 위안부를 모집하고 운영하는 데 역할은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일본군 곧 국가이었다. 

일본군은 전장에서 군인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위안소 운영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국가권력을 이용해 시행했다. 다른 말로 말해 국가가 위안소를 직접 운영한 것이다. 더욱 그 운영방법은 폭력적이었고 위안부 개인의 인권은 (대부분)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것은 이 책에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위안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었습니다. 군이 직접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민간 업소를 군 전용의 위안소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형태였습니다. 어느 경우든 위안소의 운영은 군의 세밀한 통제 하에 놓였습니다.”(302)

일본군 위안부의 반인권적 처우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시인된 내용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3년의 고노담화인데, 이 책은 그 내용까지도 이렇게 소개한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고,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는 일본군이 직접 간접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있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그를 담당했지만, 이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한 사례가 많이 있었으며, 당시 관헌 등이 직접 모집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또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 상황에서 처참한 것이었다.”(356)

사실이 이럼에도 이 교수가 위안부를 공창제에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명백히 사실왜곡이며 논리의 비약이다. 

미국 흑인노예도 백인남성을 사랑하기도 했다

이교수가 위안부의 삶이 노예적 삶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선에서 병사와 위안부는 어느 의미에선 한 덩어리의 운명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짓눌러지기도 했지만, 남녀가 살을 섞는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위안부를 사랑한 병사도 있었고, 병사를 사랑한 위안부도 있었습니다. ... 위안부라 하지만 생활실태에서나 정치의식에서 심리 감정에서 무권리의 노예상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326)

이것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어느 구절을 연상시키는데(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이 책이 나옴), 살아남아 투쟁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겐 머리를 들고 말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나는 저 대목에 대해 특별한 반박을 하기 보다는, 몇 글자만 바꾸어,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노예제 하에서 사랑을 주고받았던 어느 백인과 흑인의 이야기로 돌려주고 싶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노예제도 하에서도 백인과 흑인노예는 어느 의미에선 한 덩어리의 운명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짓눌러지기도 했지만, 남녀가 살을 섞는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흑인 여성노예를 사랑한 백인도 있었고, 백인을 사랑한 흑인노예도 있었습니다. ... 흑인이라 하지만 생활실태에서나 정치의식에서 심리 감정에서 무권리의 노예상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정대협에 대한 비판, 도를 넘었다

정대협(현재 명칭 정의기억연대)은 지난 30여 년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했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끌어내 세계의 양심에 호소했다. 그 결과 전시 성노예라는 개념이 국제범죄로 재정립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은 정대협의 이런 활동을 철저히 무시하고 폄하하며 나아가 반일 종족주의로 낙인을 찍는다.

“정대협은 그들의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원 위안부들을 앞세운 시위를 줄기차게 벌여왔습니다.”(337)

“정대협, 그 이름을 바꾼 정의기억연대는 실상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로 일본을 무릎 꿇리려 해 왔습니다. 2015년 박근혜-아베 합의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었는데도 역시 걷어찼습니다. 문재인 정권도 똑 같은 입장이죠. 진정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이 문제를 이용해서 한일관계를 파탄 내는 게 이들의 진짜 관심사일 것입니다.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373. 이 부분 집필은 이영훈 교수가 아니라 이영훈 사단의 주익종 박사임)

아무래도 이것은 과도한 비판이다. 정대협의 관심사가 한일관계를 파탄 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데, 한국인이 쓴 책에서 이런 대목을 만난다는 게, 나로선 경이로울 뿐이다. 나도 일정 기간 정대협에 관여했지만 무슨 억하심정으로 한일관계를 파탄낼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말인가. 정대협으로선(정대협을 지원한 사람들로선) 모욕 중의 모욕이다. 소송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저자들이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



좋아요7
공유하기
글 요소구독하기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책과 인생/역사'의 다른글
이전글‘반일 종족주의’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
현재글‘반일 종족주의’, 말문을 잃게 하는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주장
다음글조국의 미래를 위해 청문제도를 고치자


관련글

‘반일 종족주의’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2019.08.23


8번이나 이름이 바뀐 도시, 리비우-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의 기원-2019.04.26


미국 건국의 진정한 일등공신, 알렉산더 해밀턴 -베개 같은 책 <알렉산더 해밀턴>을 읽고-2018.09.30

댓글 2


에피메테우스 2019.08.23 15:42

저는 교수님의 조국론에 할말이 없어지더군요ㅋ
저런 책이 인기를 얻는건 국민들의 반일정서를
이용해 정치적 상대방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짓고
우리가 정의 내지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만연한 미신의 반작용이 아닐런지요..
덧: 조국교수님이 큰일을 하신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를 내세웠던 유명인들 상당수가 진보는 커녕 최소한의 양심세력조차 아니라는걸 사람들이 알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요
물론 아직도 광신도들이 많이 있지만
막말보다 나쁜 침묵이 있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답글
더보기

Chun Jiuqien 2020.02.03 03:22

Let's DESTROY RUSSIA! ♪ o(^▽^)○ Oh~!

Isn't "2019 Japan–South Korea trade dispute" the plot that Russia designed? d(*´m`)=3
Doesn't Russia hatch to drag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into war using Abe administration? ( ̄▽ ̄)b
Russia is dengerous for both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 ゚,_・・゚)ブブブッ

Let's join hands and the people of Japan, and cooperate with the United Kingdom then
Let's DESTROY RUSSIA! ♪ o(^▽^)○ Oh~!

http://harmonium.g3.xrea.com/sjp/statements/sjp20190815a.html
>the Korean War Ⅱ

m9(゚∀゚)Идиот!> номенклату́ра
נומנקלטורה עמלק
Ceterum autem censeo, Nomenklaturam esse delendam.
답글
더보기


비밀글등록


출처: https://chanpark.tistory.com/entry/‘반일-종족주의’-말문을-잃게-하는-이영훈-교수의-‘일본군-위안부’-주장 [박찬운의 아브라카다브라]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