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온통 회색으로 물들 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과 세계 민주주의의 후퇴
손민석 자유기고가 202312
===
세계는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시화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균열이 이스 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거쳐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평화를 담보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그 자신의 보편성마저 증명하고 있지 못하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권위주의화로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왔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는 급진전했다. 1994~2007년 세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951~1973년 '자본주의 황금기'의 2.9%와 비등한 2.7%를 기록하며 '제2의 자본주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세계에서 농촌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역사상 최초로 50% 이하로 줄어들었다. 도시가 팽창하며 에너지, 식량 등 에 대한 수요가 늘자 농산물,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는 러시아 등의 자원 부국이 번영했다. 세계 경제는 러시아 등의 값싼 자원, 중국·인도 등의 값싼 노동력, 영미의 풍부한 금융 등을 결합해 생산한 값싼 상품에 기초해 번창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동구권이 붕괴하며 확장된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은 2011~2012년 '아랍의 봄'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거침없던 세계화의 진전은 2011년 무렵부터 정체 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2008년의 금융위기는 2011~2012년의 유럽 재정위기를 거쳐 2013~2014년의 아르헨티나 등의 신흥국 위기로, 그리고 2015~2016년의 중국의 증시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경제위기는 주변부로 권위주의화를 동반하며 점점 더 넓고 깊게 퍼져나갔다. 중 심부에서도 2016년부터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등 포퓰 리즘이 발흥했다. 미•중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사건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부식하더니 2021년에는 세 계인구의 68%가 권위주의적 정체(X)로 편입되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지만 이-팔 전쟁은 권위주의•포퓰리즘 정치의 부산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권위주의화를 일 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하마스는 왜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했을까
2020년 9월 15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 UAE, 바레인이 서명함으로써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 체결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한 것이다. 기존의 '두 국가 해법'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트럼프는 노골적인 친 이스라엘의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계속해서 건설하며 서안지구를 합법적 으로 병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주권문제인 정규군의 형성도 제한하고, 영공에 대한 통제권마저 차지한다. 심지어 요르단강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 농업용수의 공급마저 장악할 수 있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자원에 대한 접근마저 제한됐다. 1998년에 가자지구 연안 동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자 마린 가스전은 매장량으로 보아 가자지구의 '에너지 독립'뿐만 아니라 수출 까지도 가능할 정도였지만, 이스라엘은 접근 자체를 제한했다. 동지중해 천연가스로 이집트 등의 주변국들과의 관계개 선을 도모하는 이스라엘이기에 더 통제한다. 이번 하마스의 기습처럼 조잡한 무기로도 봉쇄를 뚫고 공격을 감행하니 더 강하게 봉쇄하고 예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을 미국은 왜 지지할까. 미국은 '아랍의 봄' 이 후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수니파 걸프 왕정의 반발과 러시 아·중국·이란 등이 세를 확장하는 상황에서 중동에서 빠지 기란 쉽지 않다. 이스라엘은 이런 미국의 고민을 해소해 준 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 유일의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원 의존적 경제를 탈피하려는 걸프 왕정에 이란 이슬람 공화주의와는 다른 '근대화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다. 수니 파 걸프 전제군주정과 시아파 이란 이슬람 공화정 간의 대 립에 유라시아 권위주의 대 영미 자유민주주의라는 대립이 포개지며 이스라엘이 파고들 틈을 만들어 주고 있다.
여기에 걸림돌이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한일 간의 협력이 '과거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듯이 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랍 수니파 왕정과 이스라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덮으려는 시점에 하마스의 기습이 이뤄졌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와의 수교 를 막고 반(x)이스라엘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는 아랍의 치원조차 받기 어려워진다. 막대한 희생이 예상 되는데도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한 이유에는 이 러한 절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팔 대립으로 심화되는 지역적 권위주의화
문제는 일련의 사건들이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권위주의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 이스라엘은 성문화된 헌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 법원과 검찰총장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나 주요한 국가정 책을 심사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사법부는 극우파의 발흥을 방지하면서 도 UN 등의 외부세력이 팔레스타인 탄압을 이유로 개입하 는 걸 차단해 왔다. 팔레스타인과의 대립은 이러한 사법부 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극우파들의 힘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 민주국가 그리고 고토(wk1)회복이 라는 세 가지 정체성 간의 모순에 빠져 있다. 점령지를 포기 하거나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 유 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반대로 하면 민주국가로서의 정제성을 잃게 된다. 이런 딜레마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후자를 택했다
이스라엘의 권위주의화는 팔레스타인의 권위주의화로 이어 진다. 현재 팔레스타인은 선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파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를 무기한 연기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무기력한 파타는 선거 패배가 두려워 선거를 개시하지 않고 하마스는 이를 비난하며 지지세를 모으며 강경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의 생존이 최우선인 아랍 왕정들은 이란 이슬람 혁명 에 맞서 조직한 걸프협력회의를 걸프연합으로 격상시키고 자 한다. 걸프연합의 상비군 10만 명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그들이 택한 건 이스라엘에 안보를 의존하는 것이었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이마저도 좌절되었다. 이란 또한 미국·이스라엘 및 수니파 왕정과의 대립을 이유로 신 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적 공화정으로의 반전(5)을 위해 이미 서방은 권위주의화가 강화되어가는 세계적 추세를 되 돌릴 기회를 놓친 듯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 라시아 권위주의는 확장됐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이 중동지역의 권위주의화를 촉진하고 있고, 서방의 이스라 엘 지원에 대한 대결로 유라시아 또한 서남아시아에의 영향 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으로 혼란 을 겪는 세계 경제도 권위주의화에 편승한다. 이 추세의 반 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간에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 주는, 더욱 급진적인 형태의 민주적 공화정이 필요하다. 유 대민족만의 국가가 아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를 위 한 민주적 공화정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원한에 찬 1,400만 의 팔레스타인 인민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한국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 권위주의화에 대응할 방안 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일각의 주장처럼 우크 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은 대만해협의 위기를 거쳐 한반 도의 남북 대립으로 전화될 것이다. 전쟁의 확산과 권위주 의화는 연결되어 있다. 전쟁 확산을 막고 '노동 없는 민주주 의를 극복해 한국이 세계 권위주의화의 진전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