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9

알라딘: 원시적 열정



알라딘: 원시적 열정




원시적 열정 | 이산의 책 29
레이 초우 (지은이),정재서 (옮긴이)이산2004-04-16원제 : Primitive Passions







크게보기


정가
18,000원
판매가
16,200원 (10%, 1,800원 할인)


9.0100자평(3)리뷰(3)





목차


서문

1부 시각, 근대 그리고 원시적 열정
"한 편의 뉴스영화가 근대중국사를 바꿨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말하기
문학이라는 기호를 탈중심화하기
원시적 열정의 출현
'신녀'
'학제성' 시대의 중국영화
1960년대 중국의 초상화
'자연으로의 회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영화에서의 시각성
여성의 장소
'중국'이라는 기호를 탈중심화하기

2부 몇 편의 현대중국영화
1장 오래된 우물 파기: 사회적 환상으로서의 노동
미래... 국가의 무익함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국가
낭만적 사랑의 불모성
사회적 환상이라는 노동

2장 고대의 평원은 말이 없다: 음악, 영화제작 그리고 새로운 중국영화에서 사회변화의 개념
'제3세계' 영화비평에서의 사회변화 페러다임
이미지라는 문제
음악이란 무엇인가?
여성이 균형을 깨뜨릴 때
부분적 방어, 문화의 위기 그리고 조합

3장 남성 나르시시즘과 국민문화: 천카이거의 '아이들의 왕'에서의 주체성
1부: 우회로
2부: 아직 가지 않은 길

4장 표층의 힘: 장이머우 영화의 저항
새로운 민족지의 요소들
구체성의 탐구
환상으로의 접근: 장이머우와 천카이거
이데올로기 비판에 깊이 배어 있는 습관들
동양의 오리엔탈리즘 또는 문화간의 노출벽

3부 민족지로서의 영화 혹은 포스트콜로니얼 세계에서의 문화간 번역
인류학적 상황의 교착
보여지는 것의 중요성
번역 그리고 기원의 문제
'문화적 저항'으로서의 번역
제3항
쇠약, 유동성 그리고 세계의 우화화
아케이드의 불빛

지은이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저자는 중국영화 안에서 원시적인 것이 머무르는 장소로 여성, 자연, 어린이에 주목한다. 1930년대 롼링위 주연의 무성영화부터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 마오쩌둥과 홍위병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이미지를 거쳐, 1980년대 천카이거와 장이머우 등의 영화를 공동체, 국가, 일, 학습, 사랑, 혁명, 젠더 등과 같은 범주과 뒤섞... 더보기
상상을 해보려는 시도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에서는 전형적인 것이지만,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을 나의 어머니와 연관지어왔다. 어머니는 20대 중반에 이미 방송 캐스터, 대본작가,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로서 일가를 이루셨다.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를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낯익은 목소리, 예기치 않게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 라디오와영화대본의 이야기꾼, 그리고 대중소설 표지에 실린 이름으로 더 잘 알고 있었다. 미디어에 의해서 매개된 이런 경험과 혈연적인 친밀감이라는 특이한 혼합이 최근 수년간 나를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연구하게 했을까?-14쪽 접기 - 찰스



저자 및 역자소개
레이 초우 (Rey Chow) (지은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1957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홍콩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어바인) 교수를 거쳐 현재 브라운 대학 교수이다. 전공은 미디어론과 비교문학.

지은 책으로 <원시적 열정> 등이 있다.


최근작 :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원시적 열정> … 총 59종 (모두보기)

정재서 (옮긴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신화학자,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 석사. 박사를 거쳐 계명대,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했고 하버드 옌칭연구소,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중국어문학회, 비교문학회, 도교문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5년 국내 최초로 『산해경』을 역주, 소개하여 지식 사회에 동아시아 상상력의 화두를 던졌다. 이후 계간 《상상》, 《비평》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의 동양학, 차이의 신화학, 주변문화론 등을 제창하고 다양한 글쓰기로그 실천을 모색했다. 저서로는 『불사의 신화와 사상』, 『동양적인 것의 슬픔』, 『... 더보기


최근작 : <한국적 자연학과 치생의 문화론>,<동양고전으로 오늘을 읽다>,<포박자연구> … 총 52종 (모두보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이 아직 없습니다.


마니아
읽고 싶어요 (0)
읽고 있어요 (1)
읽었어요 (9)
이 책 어때요?



구매자
분포



0% 10대

0%


18.6% 20대

6.7%


27.4% 30대

15.3%


10.5% 40대

14.6%


2.6% 50대

3.3%


0.2% 60대

0.7%
여성 남성

평점
분포

9.0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서의 아케이드, 그리고 원시적 열정

“1904년에서 1906년 사이, 루쉰(魯迅)은 가난한 유학생으로 일본의 센다이(仙台) 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졸업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국가개혁이라는 시급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높은 뜻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루쉰의 계획은 하나의 구경거리(spectacle)를 접한 어느 날, 과감하게 바뀌었다.”(본문 20쪽)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아케이드(arcade)는 그야말로 근대의 대표적인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곳은 바로 상품들이 줄이어 진열된 공간, 즉 ‘구경거리’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근대는 이러한 시각문화(특히 집단적으로 ‘엿보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데, 당대 가장 근대적인 도시였던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곳도 바로 모르그(morgue, 시체공시장)였다.

근대, 주체의 탄생

근대란 곧 ‘주체’의 탄생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근대적) 주체란 사실 데카르트가 말한 바와 같이 그 자체를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주체(Cogito ergo sum)가 아니라 단지 그것(의심할 수 없는 주체)을 '상상'하는 주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주변부(객체)를 인식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엿보는 주체다. 즉, ‘(근대적) 세계’란 결국 타인을 그 비밀스러운 곳까지 구석구석 엿보는 “당시증(瞠視症)”(31쪽)의 공간이며, 비서구 세계를 ‘야만’의 눈으로 구경거리로 ‘전시’한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아케이드’이다. 저자인 레이 초우는 이에 대해 티모시 미첼을 인용하여 “세계 자체를 일종의 끊임없는 전시회로 정리하고 서열화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구경거리, 근대적 주체의 주변부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에서 ‘구경거리’가 된 이들, 즉 주체 바깥에 위치 지어진,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사물처럼 전시된 운명에 처한 이들(대표적으로 비서구 세계)에게 근대란 어떤 의미인가? 글의 서두에 인용했던 에피소드에서 루쉰은 어떤 영화를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아 의학도(물질적 측면에서의 근대)로서의 길을 버리고 문학(정신적 측면에서의 근대)으로 전향한다. 그가 영화에서 보았던 것은 어떤 중국인들이 일본인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하는 장면이었는데, 레이 초우는 그가 받았던 충격이 단순히 처형에 대한 공포나 중국인들이 힘없이 처형당하는 모습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먼저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날 것”으로서의 힘, 그러니까 단순히 스크린에 보이는 것(화면, 그림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계)전체’를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과 관계되어 있다. 바로 영화라는 ‘구경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스펙타클(Spectacle)이며, 이것은 언급한 공포와 분노를 아우름과 동시에, 영화를 바라보는 루쉰 자신에 대한 인식과 관계한다. 즉, “더 정확히 말하면 한 편의 영화로, 하나의 구경거리로, 이미 늘 보고 있던 존재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28쪽)

그가 영화를 보며 느낀 공포는 단순히 스크린 속 핍박받는 중국인에 대한 인식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중국인의 모습―구경거리로 전락한―을 무기력하게 인정하며 바라보는 중국인(루쉰 자신을 포함한)에 대한 자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루쉰에게 있어 가장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봉건적 악습뿐만 아니라 중국인들 사이에 만연한 무기력증이었다. (대표적으로 전자에 대한 비판은 《광인일기》를 통해서 후자에 대한 비판은 《아Q정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자신의 문학 활동을 통해 전통적 질서(힘, 권력)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중국과 중국 민족을 만들기 위해,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앞서 언급했듯이, 근본적으로 타자에 의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보여지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즉, “루쉰의 급진적 행동은 전통적 관행을 새로운 삶으로 부활시키려는 신경증적인 시도”이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주체란 역설적이게도 결코 주체적이지 못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원시적 열정’

그런데 사실 이것은 비단 루쉰 개인이나, 개항기 중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역사, 즉 모든 근대화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실제로 모든 ‘민족’, ‘전통’, ‘역사(민족사)’ 등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 또는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이다. 타자의 시선에 억압된 자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전통’은 양가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레이 초우는 이를 ‘원시적 열정’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후진적’인 것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태고적’인 것으로서 긍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은 말 그대로 복합체이며 따로 분리된 것은 아니다. 바로 근대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개항기와 문혁시기 전근대적인 악습의 전형으로 부정되었던 ‘공자’가 오늘날 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러한 “악순환적 감정의 복합체”는 전자는 주로 공동체 내부에 대해, 후자는 외부에 대해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전제한다. 근대화 시기 분명한 피해자였던 중국이 민족주의적 팽창주의를 오히려 점차 강화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근대의 역사는 곧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내부적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기 위해 이러한 ‘신경증’적 과정을 그대로 거쳐 왔다.


아케이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인가? 요컨대 근대화 이후, 제국주의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비서구 문명에 있어 ‘신경증’은 악질적인 불치병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레이 초우는 다시 처음, 벤야민이 바라보았던 거리, ‘아케이드’로 돌아가 볼 것을 권유한다. 전통적 질서의 해체는 단순히 억압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엘리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의 민주적 이동”을 수반한다. 그리고 아케이드는 ‘보여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이는 공간’이자 ‘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근대로서의 세계사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된 ‘신경증’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은 단순히 그것을 감추고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케이드가 참여의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라면, 제국주의적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은 그 공간에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즉 우리는 자신들을 끊임없이 타자(세계)와의 연속성 속에서 서로 내보이고,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폭력을 지양하고 새로운 의미들을 탄생시키는 ‘축제의 장으로서 아케이드’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pSyCHe 2014-03-17 공감(1) 댓글(0)




레이 초우 - 원시적 열정

... 미디어에 의해서 매개된 이런 경험과 혈연적인 친밀감이라는 특이한 혼합이 최근 수년간 나를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연구하게 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생각을 해보아야겠지만 몇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머니의 경력과, 그것이 우리(어머니와 나)의 삶에 가져다준 일군의 사람들과의 교류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근대에 있어서는 창조적 글쓰기가 상품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 영화와 텔레비전이 우위를 과시하는 뉴미디어 문화에서는 글쓰기가 어떤 경쟁에 직면해 있는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우리는 홍콩에 살고 있었으므로-식민화된 언어, 즉 중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비록 ‘문학’이 나의 전문영역이기는 하지만, 근대/모더니즘적인 문학이 ‘혁명적’(혹은 ‘전복적’)인 동시에, 내가 이 책에서 검증하는 시각이미지 같은 대중문화의 형식들보다 높은 서열에 있다고 보는 그런 유의 학문적 낭만주의를 믿지 않는다.

영사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힘에 의해 영화는 잔혹함이 주는 충격을 공격이라는 형태로 증강시킨다. 희생자를 불시에 내리치는 참수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그 영상은 루쉰에게 한 방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본다는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루쉰이 직면한 것은 첫째, 마치 매개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투명성이었고, 둘째 이 새로운 미디어의 힘과 처형 그 자체의 폭력성 사이의 친연성이었다.


해가지기전에 2016-08-23 공감(0) 댓글(0)
Thanks to

원시적 열정, 문학언어로부터의 해방과 문학에 대중을 도입하는 것


상상을 해보려는 시도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에서는 전형적인 것이지만,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을 나의 어머니와 연관지어왔다. 어머니는 20대 중반에 이미 방송 캐스터, 대본작가,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로서 일가를 이루셨다.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를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낯익은 목소리, 예기치 않게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 라디오와영화대본의 이야기꾼, 그리고 대중소설 표지에 실린 이름으로 더 잘 알고 있었다. 미디어에 의해서 매개된 이런 경험과 혈연적인 친밀감이라는 특이한 혼합이 최근 수년간 나를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연구하게 했을까?-14쪽


- 접기
찰스 2006-06-06 공감(0) 댓글(0)

No comments: